신동원지음
‘호환마마’오랜만에들어보는말이다.요즘은보기쉽지않지만어렸을때만해도마마를앓은사람들을종종보곤했다.좌측어깨위에는예방접종한자국이희미하게남아있다.우리나라에서는이미오래전부터접종을하지않고있다가최근들어생화학전쟁과관련하여언급된적이있었다.
이책은신문에소개된내용을보고알게되었다.제목은‘호환마마천연두’이지만내용은조선시대부터근대까지병에대한인식의변화를다룬책이다.전부터관심있던조선,대한제국시대의의료상황에관한내용을담고있는책이어서신문에소개된이후메모를해두었다가틈나는대로도서관홈피에서확인을해보았더니등록이되어있어읽게되었다.
병에대한인식,그리고제도의변화등을기술하고있어부분적으로지루한곳도있지만생각했던것보다는재미있는책이다.우리조상들은병에대해어떻게인식하고있었는지체계적으로기술하고있어궁금했던부분을많이해소할수있었다.또한합병전의료와관련된일본의강제적인정책,그리고종교와연관된내용도담고있다.
이책의상단에보면작은글씨로‘일상개념총서01’이라고되어있다.한림대학교한림과학원에서기획한‘일상개념총서’의첫번째책이다.발간사에서‘역사와정치의주류적관심에서제외된개념군,이데올로기적시작에의해간과되었던삶의영역등을표현하는개념등에주목하였습니다’라고하였다.그첫번째시도가근대의학에대한조사보고인셈이다.다음기획물도기대해본다.
책을읽으면서나중에책을읽었다는것을기억하기위해표시해놓는데나중에보니너무많아줄였는데도내용이많다.
책내용중에서
옛말인마마는현대어로서는천연두에해당하고,호환은호랑이에게잡아먹히는재앙을말한다.마마를앓을때생기는발열,통증,신음소리가호랑이에게살점을뜯길때의고통에뒤지지않기에두말이나란히붙어다녔다.392쪽중에서
일상적인관점에서병관련어휘를최초로모은자료는최세진의[훈몽자회,訓蒙字會](1527)다.이책은아동용학습서인데,범례에서“의학의병명과약명을나타내는여러글자에,혹의미가여러가지여서하나로발음하기가어렵거나일반에서발음하지않는것은이제모두수록하지않았다”라고하여일상생활에꼭필요한어휘만을모았음을밝혔다.게다가[훈몽자회]는한자음에대응하는한글을적었기때문에이를통해고유의병개념을일단이나마파악하게해준다.—중략—[훈몽자회]를보면,환자의몸상태와주요병에대해민간의고유어가존재한다.외과적증상에대해서는27개중19개가고유어다.즉버짐,어루러기,옴,문둥병(룡병),좀(노을),두드러기,부스럼,부르튼것,땀띠,혹,물혹,사마귀와기미,군살,부은것,핏발선것,딱지,허물,귀헌것이있으며,여기에한자어병명과고유어병명을둘가가진‘뜨리’를덧붙일수있다.고유어병명은‘노을’하나를제외하고는오늘날에도익숙한것이다.물론한자어병명인종기,두창(행역),연주창,악성종기,황달,퇴산,루창,치질여덟가지도오늘날까지쓰이는병명이다.42-45쪽중에서
[큰사전](1947-1957)에서는콜레라의동의어로고레라,코레라,괴질,호역,호열자를들었는데,이런명칭에는각각의역사성또는문화적관념이담겨있다.
먼저살필것은‘괴질’이란용어다.이말은1821년(순조21)최초유행때등장한다.“설사,구토하고근육이비틀리면서”갑작스럽게죽어간다는증산은이후[큰사전]에서말하는콜레라증상과같다.이기록에서는정체가파악되지않았다는의미로‘괴질’이라는말을썼는데,그것이일반화하여이후국내에서괴질은콜레라의명칭으로사용되었다.김옥균의[치도약론]治道略論(1882)에서도,1895년내부에서콜레라예방규칙을반포하면서도콜레라를지칭하는이름으로‘괴질’을사용했다.
민간에서는괴질을‘쥐통’이라불렀다.이렇게명명된순간,이병은혼돈으로부터이해또는설명의영역으로들어온다.쥐통이란이름이붙은것은이병의증상이발뒤꿈치근육의경련을수반하기때문이다.쥐에게물려서이런병이생긴다고보아쥐통이라부른것이다.1895년의료선교사에이비슨O.R.Avison은“쥐가발을물어근육에쥐가오르는것”같다고하여쥐통이라했다는유래를설명한후,고양이가쥐를쫓기때문에병을일으키는쥐귀신을막기위해고양이그림을대문에붙인다는기록을남겼다.—중략—
그런데일본에서는‘고레라’라는명칭이일반화하고,그에대한한자어로발음이같은虎列剌호열랄을썼기때문에문제가없었다.이와달리조선에서는한자虎列剌을조선어로읽는과정에서문제가발생했다.‘剌’(랄)을거의비슷한글자인‘刺’(자)로읽는일이벌어진것이다.이는전혀들어보지못한신조어였기때문에어떻게읽어야할지알수없었고,‘랄’보다는‘자’가조선인에게는훨씬익숙한글자였으며,특히[한성순보]등당시인쇄본은선명하지않았기때문에설령‘剌’을썼다해도흐려서‘刺’로보이는경우가적지않았기때문이다.하나더덧붙이자면,‘-자’가사물을지칭하는것으로쓰일때는조선어어감상한결친근한느낌을주는이유도작용했을것이다.그리하여1890년대후반이후에는순한글신문인[독립신문]이나[뎨국신문]에서도한글‘호열자’가떡하니자리잡게된것이다.148-149쪽중에서
조선의학사에서가장끔찍했던장면을하나꼽으라고한다면필자는망설임없이딱하나를고를수있다.1821년(신사辛巳,순조21)의괴질,곧콜레라의대유행이바로그것이다.
이괴질의끔찍한상황은1821년첫유행때기록인[순조실록]에다음과같이다급한필치로생생하게묘사돼있다.
평양부성안팎에서지난그믐간에문득괴질이돌아사람들이설사,구토하고근육이비틀리면서불똥튀듯이번져순식간에죽어버렸습니다.열흘안에1000여명이죽게되었으나치료할약과방법이없습니다.아무리기도를해도유행이그칠기미가없고인근마을각곳에유행이번졌습니다.이병에걸린자는……열명중한둘을빼놓고는모두죽었습니다.평안도에서시작하여여러읍에전염되는속도가마치불이번지는것과같습니다…….고관대작사망이열명이상이고일반관리와백성의사망은부지기수입니다.대략10만명이상이죽었습니다.이괴질은중국동북지방으로부터들어온것이라합니다.151쪽중에서
일본은조선인사절의일본방문일정에근대문물의한본보기로서양식병원시찰을포함했다.일본에서병원또는의학교를구경했다는기록이여럿남아있는데,이를테면1881년어윤중魚允中의[종정연표]從政年表,송헌빈宋憲斌의[동경일기]東京日記,조준영趙準永의‘일본의학교시찰’등이그것이다.한예로송헌빈의[동경일기]에나오는병원시찰기록을보자.
병원인즉좌우에긴복도가있었고병을고치고자하는사람이무려수백명이었으며의자醫者역시이와같았다.치병하는기구는많은것이껍질을벗기고,째고,막힌것을뚫는것이었다.이를테면체증의경우에는길실을가지고입으로부터아래로뚫었으며,대변이통하지않는경우에는조그만통을항문안으로집어넣었다.탕제는쓰지않았으며오로지환제와산제를썼다.인형의피부가벗겨진것,베어진장부와폐,이들을보니극히통해痛駭스럽다.병걸려죽은자는그병이생긴곳(受病之處)을입증하기위하여장부와폐를해부하니그술이매우정교함을알수있으나,그마음씀이진실로잔인하기짝이없으니이어찌어진사람이할수있는짓일까.괴이하고도통해할일이다.268-269쪽중에서
개항초기병원개념의등장과관련해가장주목해야할부분은1885년에조선정부가세운‘광혜원’廣惠院이다.이명칭은재가를받지못하다가얼마후‘제중원’濟衆院이란이름으로왕의재가를받았다.이기관의정식명칭에는‘병원’이라는말이들어있지않으며,이전에동서활인원에서썼던‘원’이들어있다.이기관을만들때의정부에서올린계를보면“혜민서와활인서를이미혁파했습니다.나라에서널리구제하는뜻이매우부족하니,별도로원하나를설치하여제중원이라부르고외서外署로하여금전담하게하되……”라는내용이있는데,병원이라는구체적인이름대신에전통적의미의‘원’이라는표현을쓰고있다.그렇지만제중원을개원하면서주관기관인외서(통리기무아문)가백성에게알린방에는“시병원시병원이갖추어졌으며,국가에서약값을대준다”라고하여‘시병원’이라는단어를사용했다.‘시혜를베푸는병원’이라는뜻자체가어렵지는않지만,조선인이처음듣기엔매우낯선용어가방문에선택되었음을주목해야한다.
시병원은서양인의사가와서서양의의술을펼치는기관이었다.백성에게알린방의내용을보면,“미국의사알렌(한국이름안연安連)……의의술은정교하고우량한데,특히외과에뛰어나서한번진험하면신통한효과를보여준다”라고했다.극소수의조선인을제외하면그전에는듣지도보지도못한의술이이곳에서펼쳐졌다.서양인의사의이름은알렌이며,그는외과에특히능했다.269-270쪽중에서
기존한의학을인정하는방법에는차이가있었지만,일본본토,식민지타이완,식민지조선등에서일제의‘기존한의학의기득권인정과추후점진적폐지’라는정책은일관성을지니고있었다.일본에서는이미1874년신의제醫制를공포하면서한의제도를폐지하여의사제도안에편입했으며,타이완에서도1901년에한의를정리하고의생면허를주었다.일본의경우기존한의의기득권을인정하여영구면허를주면서앞으로신규면허는발급하지않는식으로한의를정리했다.타이완에서도일본과거의동일한정책이실시됐지만,한의를의사보다한등급낮은의료인인의생으로규정했다는점에서차이를있었다.일본은의생제도를조선에도적용했다.
이러한한의학폐지정책에대해일본에서는한의계의거센반발이있었고,한의제도를부활시키려는시도가줄기차게이어졌으나,성공을거두지는못했다.왜일본은한의학을부정하는태도를택했을까?이는근대화의길로나선일본이서양의과학기술을전면적으로택한것과관련이있다.특히군부의입김이강했다.1890년대중반일본에서10만여명의후원을바탕으로한의부흥운동이일어났지만,결국실패로끝났다.이때한의를공인하려는입법청원을강력하게저지했던외과의사출신장군인이시구로다다노리石黑忠德는다음과같이말했다.“근대일본의보건의료제도는위생적,법적,군사적목적에부합하는것이어야하는데,한방은이런일을수행할수없다.”게다가“일본이근대보건의료제도를성공적으로정착시킨다면서양과마찬가지로근대문명국가로발돋움하게되지만,돌팔이나다름없는한방을공인한다면문명국가의비웃음을살것”이라고말이다.즉후발국으로서근대화를지향하는일본으로서는서양인이전근대적으로생각하는것을관용할수없었던것이다.306-307쪽중에서
기독교에서는조선인병자의몸에대해기독교전파라는측면에서관심을가졌다.개항이전에뿌리를내리기시작한천주교의경우에는병자구료를포교에활용하겠다는의도가특별히나타나지않는다.천주교에병이들었을때‘마테오리치의이름으로’천주께기도하여병이낫기를바라는기도문이남아있는것을보면,천주교가서양에서와마찬가지로교인의병든몸에지극한관심을가졌음을짐작할수있다.그렇지만천주교는자생적으로교인을늘려나갔으며,드물게서양인신부가파견되었다고해도그들중의료선교사는존재하지않았다.
천주교와달리개항이후들어온개신교선교회는의료를기독교포교에적극적으로활용했다.주지하다시피‘알렌신화’가그것이다.1882년조선과미국이국교를수립한후1884년에젊은의사알렌이미국영사관부속의사신분으로조선에입국했다.신분은그러했지만그는북미선교회에서파견한의료선교사였다.조선에서기독교가공인되지않았기때문에이런방법을쓴것이다.알렌은입국직후조선정계에서벌어진정변의와중에자상을입어사경을헤매는왕비의친동생민영익을외과수술로희생시켜대단한기회를잡게되었다.그는곧고종의어의가되었으며,마침조선정부에서세우려고하는서양식병원설립의한주체로나서게되어,새병원제중원의의료총책임자가되었다.또1885년인천에세워진조선세관의의료책임까지맡게되었다.알렌은이때의의료성공이선교사업을시작할수있는길을터주었다고생각했다.324-325쪽중에서
책의내용을보면우리의근대적인의료체계의구축은강제적으로시작된것을알수있다.시작의과정이야타율적으로이루어졌지만100년넘게지나면서세계어느나라못지않게성장하였다고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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