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47일의 굴욕

병자호란47일의굴욕

윤용철지음

새해첫주는병자호란과같이하였다.2013년올해의책으로선정된10권중하나인[역사평설병자호란]을기다리다가눈에띈[병자호란47일의굴욕].찾아보니정리중이다.우선정리를신청하였는데바로다음날대출받으라고문자가온다.이책이도서관에들어오고는첫대출자다.

병자호란과관련하여그동안읽은것은소설두권,[남한산성(김훈지음)],[화냥년(유하령지음)]이다.[남한산성]은산성내의병졸들의이야기가많이나오고,[화냥년]은청으로끌려간포로들의이야기를담고있다.저자는책의앞부분에서[병자호란47일의굴욕]은전란당시남한산성에서군량과물품관리를책임지고있던양향사였던나만갑이지은[병자록]을주토대로썼다고하였으며그외[조선왕조실록]도중요한자료로참고하였다고밝히고있다.

병자호란과관련된소설이아닌독립된책은처음이지만큰줄거리에서새로운느낌은별로받지않았다.그동안이런저런자료를통해얻은내용이있어서그럴것이다.이책에서는남한산성을경계로서로대치하고있는상황에서서로사신을통해문서를주고받은내용을담고있다.그내용은시간이가면서조선이청과형제관계에서군신관계로바뀌는것을보여주고있다.또한척화론자(斥和論者)와주화론자(主和論者)들의주장도비교적상세히기술하고있어당시의상황을이해하는데도움이된다.

1636년12월14일부터1637년1월30일까지47일간인조를비롯한대신들이남한산성안에서항거하는동안수많은백성들은남한산성밖에서청군대의유린속에속수무책으로당할수밖에없는당시의상황이희미하게머릿속에떠오른다.

현대의시선에서,이런저런자료를통해비교적객관적인관점에서병자호란을보고있지만,만약당시의상황속에놓여일반백성이아니고정책의판단을해야하는입장이었다면어떤판단을내렸을까?병자호란후수세기가흘러환경은천지개벽을하였지만수세기의후세가지금을되집어볼때우리는올바른판단을하고있는것일까?자신이없다.

저자는‘들어가는말’마지막에서다음과같이적고있다.

가끔등산겸남한산성을오른다.감히적이근접할수없는지형,천연의요새다.성벽을따라나있는등산로를걷다보면1636년12월14일에서1637년1월30일에이르기까지혹한의겨울에굶주리고추위에얼어붙은병사들의얼굴이길목곳곳에서나를맞이한다.고통과비통의한숨이아직도산성골골마다성벽마다에서새어나오는것같다.

그분들에게이책을바친다.

이책에는1623년인조반정으로폐위된광해군에대한이야기가조금나온다.

병자호란중이었던겨울에폐주인광해군이강화에서교동으로옮겨안치되었는데,이는당시에그곳으로피난갔던세자빈을비롯해두대군의입장을고려한것이었다.또한조정에서생각하기를청이조선정벌후에그를다시왕으로세울수있다는염려도작용했을법하다.남한산성에서서울로돌아온뒤에신경진,구굉등이연명으로경기수사에게글을보내‘선처’하라고했다.그말은곧광해군을몰래죽여버리라는것이었다.그러나경기수사는이를듣지않았다.그리하여2월에광해군을교동에서제주로옮기기로결정을내렸는데무인황익이라는자가광해군을죽여공을세우려고했으나뜻을이루지못했다.이것도신경진등의사주에의한것이었다.

그의재위때명나라와청나라사이에서등거리외교를함으로써나라를전쟁으로부터막고자했던광해군!그는폐주가되어홀로외로운섬에안치되어겪었던정묘호란과병자호란을어떤눈으로바라보고생각했을까?그리고그가왕위에서쫓겨나지않았다면과연두차례의호란이일어났을까?광해군은병자호란이끝나고4년후인1641년7월2일에제주에서세상을떠났다.270-271쪽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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