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밤이선생이다

황현산산문집

언젠가부터도서관에서인기도서제도를운영하고있다.대출기한은2.이책이전에대출받은책은시간을내기어려워다읽기전에반납해야만했다.그리고대출받은책이이책인데이책역시인기도서이다.그래도산문집이라기한내에읽을수있었다.

산문집은오랜만이다.소설처럼재미가있는것도아니고,읽고나도굳이남는것도없다는것이평소의생각이지만최근에이책이많은인기가있는책이라하니관심이생겼다.생각했던대로책속에는저자의과거경험,살아온시대에대한저자의생각들이적혀있다.저자의책은처음이라낯선부분도있지만,비평가답게여러부분에서비판적인시각을드러내고있다.생각이일치하는부분도있고,이해하기어려운부분도있다.산문집을별로읽어본적이없어어떻게이해해야하는지는잘모른다.하지만있는그대로보는것이좋겠다는생각이들어읽으면서표시해놓은부분을소개한다.

죽은시인의사회

우리사회에서시는대량으로소비되지만그원산지에서일하는시인들의삶은여전히고단하다.진이정의경우처럼특별히독창성이있는작업,그래서미래의생산성을크게기약할수있는작업에몰두하는시인일수록그고단함이더하다.이점은시의유통경로가복잡하기때문이기도하겠지만,그사태를파악해야할사람들이눈을감고있기때문이기도하다.근년에들어서는문학단체에지원하는공적자금까지도상식을가진사람으로서는생각할수도없는조건을붙이고있다.하기야저항의문학을말하는사람들에게다른정부도아닌이정부가돈을주고싶지는않을것이다.그러나이저항없이는한국사회를꿈에부풀게했던한류같은것도없다.공짜점심이없다는말은이경우에나써야할말이다.82쪽중에서

<고향의봄>앞에서

여러해전에,우리가미국을거들어베트남전쟁에끼어들었던일을사과하기위해한국작가회의가베트남작가들을찾아간적이있는데,나도그방문단의일원으로참가했다.베트남작가들은우리의방문을고마워하면서도크게감동하는것같지는않았다.말은하지않았지만,자기들이승리한전쟁인데새삼스럽게사과는무슨사과냐고묻는듯한기색이었다.우리에게도이승리가필요하다.우리가친일의상처에서해방되려면우리의역사를승리의역사로이끌어야한다.85쪽중에서

시가무슨소용인가

온갖종류의대중물과상업물에는가충분하게들어있다.그러나그것들은시를소비할뿐생산하지는않는다.시인이제몸을상해가며시를쓴다는것은인간의감정을새로운깊이에서통찰한다는것이며,사물에대한새로운형식과이미지를만든다는것이다.저대중소비적의소구력과성공에비한다면,새로운감수성과이미지의생산이목표인본격적인시의수요는거의없다고말할수있을만큼미미하다.그러나시가생산한것은어떤방법과경로를거쳐서든대중물들속에흡수되고전파된다.시는낡았고댄스뮤직은새롭다고믿는가.사실을말한다면시에서는한참낡은것이댄스뮤직의첨단을이룬다.184쪽중에서

유행과사물의감수성

현대의다단한문명을만들기까지에는권태에대한두려움이큰몫을담당했다.권태롭다는것은삶이그의미의줄기를얻지못해사물을새롭게바라볼수있는감수성을잃었다는것이다.유행에기민한감각은사물에대한진정한감수성이아니다.오히려그반대다.거기에는자신의삶을구성하는온갖것들에대한싫증이있을뿐이며,새로운것의번쩍거리는빛으로시선의깊이를대신하려는나태함이있을뿐이다.우리가사물을바라보며마음의깊은곳에그기억을간직할때에만사물도그깊은내면을열어보인다.그래서사물에대한감수성이란자아의내면에서그깊이를끌어내는능력이며,그것으로세상과관계를맺어나와세상을함께길들이려는관대한마음이다.제깊이를지니고세상을바라볼수없는인간은세상을살지않는것이나같다.192쪽중에서

사투리의정서

토속의언어는사람살이의깊은속내를터득하도록도와주고,감정의밑바닥을자극하여새로운영감을고취시키기도한다.토속어와방언에는감정과생각의어떤극한이있다.혈연과지연에서비롯한원시적정서의탄력을받고불쑥튀어나온한마디말이특별한이유도없이사람을웃게도하고울게도한다.사투리의장점이여기있지만위험도역시그자리에있다.같은언어정서를가졌던사람들에게는부담없었던말이다른사람들을아연하게만드는경우는허다하다.사투리로표현할때는제법훌륭하고탄탄했던생각을표준어로바꿔놓고보면여기저기허점이드러나는수도있다.일거수일투족이많은사람들의삶에영향을미치는공인이라면사석에서라도표준어를써야할이유가이와같다표준어는대다수의사람들에게통용되는말일뿐아니라,한개인이나한집단의특수한정서와얽혀있는생각을보다큰틀의잣대로검증하는말이기도하다.208쪽중에서

홍상수와교수들

<강원도의힘>에는교수들이입술을깨물지않고는보기어려운장면이있다.교수임용의낙점을받기위해선물을싸들고교수의집을찾아갔던대학강사가너무긴장한탓이었는지우산을놓고나왔다.아파트현관을나서서야강사는그사실을깨달았으나감히다시계단을올라가지못한다.그가망설이는순간아파트안의교수는가난한강사가놓고간우산이아직쓸만한것인지펼쳐살펴보며횡재했다는표정을짓는다.또다른장면에는이만큼직접적이지는않으나내용상으로는더신랄한야유가들어있다.그강사가대학후배,그러나일찌감치교수가된후배와함께설악산에올랐다.두사람에게감흥은별로없다.그무료함을깨뜨리려는듯젊은교수가한마디한다.“우리나라도여기와서보니참넓네,그치?.”이명언을뱉고나서그는바위위에누웠는데불편하다.이렇게도누워보고저렇게도누워본다.그가몸을고쳐눕는장면을카메라는끈질기게따라잡는다.이게무엇을뜻하는지아는교수들이옆으로고개를돌린다해도그고문을피할수는없다.그젊은교수는교수가된그날부터일순간도불편한것을참을수없는사람이된것이다.교수가되려는그의선배가원하고있는것과마찬가지로교수가되기까지그가원했던것은오직안정이었기때문이다.229쪽중에서

돌덩이의폭력

며칠전,내가근무하는학교앞삼거리한복판에난데없이돌덩이하나가서있는것을보고깜짝놀랐다.그전면에는바르게살면미래가보인다는문장하나가큰글자로새겨져있고,아래쪽으로더작게새겨진글자는그거친돌덩이가무슨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의주관으로세워진것임을알려준다.그러고보니언젠가도여기저기고속도로의나들목에서이런비슷한문구가새겨진돌덩이들을보았던기억이난다.나로서는이거친비석이저확성기를타고울리던새마을노래에못지않은폭력이라고생각한다.232쪽중에서

복잡한일

물질문명의시대란역설적이게도몸이물질을누리지못하는시대이다.이제육체가물질을접촉하는순간이란저스냅동작의짧은순간뿐이다.우리는어디서나단추를누른다.옷을입을때도옷고름을매지않는다.글을쓰기위해서도커피를마시기위해서도위층에올라가기위해서도우리는단추를누른다.우리의육체가물질과교섭할때느끼게되는다양한감각들은이제누름단추의탄력으로통일된다.물질로부터듣게될모든소리는이제딸가닥에그치는경쾌한금속성의소리로통일된다.흙도물도불도나무도돌도모두손가락에한번튕겨오르는탄력과딸가닥으로추상화된다.이말은결코과장이아니다.우리같은문학선생들이시나소설을가르칠때갈수록힘이드는이유중에가장큰것은자연사물에대한학생들의감각이매우둔화되어있다는데있다.몸이물질로부터딸가닥이외의다른감각을느끼는일은이제천한일로까지치부되는실정이다.소위3D업종이라는것도따지고보면탄력과딸가닥의뒤에숨어있는무든물질의감각을몸으로느끼고견디어야하는직종들이기때문이다.277쪽중에서

다른사람또는다른사람의논문을비판적인시각에서보는것은비교적쉬운일이다.절대적인의미에서쉽다는말이아니라자신또는자신의논문을보는것보다그렇다는말이다.다른사람의논문을보면서지적하는사항을다른이로부터똑같이지적을받곤한다.그렇다고이런저런사정을고려하면지적할일도없어지기때문에지적을하곤하지만항상자신을되돌아보는것이중요하다.

되돌아보더라도경험이없는경우에는구체적인반성이쉽지않다.그런경우비판은한도끝도없을것같은생각이든다.하지만어설픈경험으로비판의시각이무뎌지기보다는경험이없는편이나을지도모른다는생각을해본다.

이책을읽고정리하고있는데문자가들어온다.대출기한은아직며칠남아있는데반납안내문자다.더시달리지전에반납해야지……

2006년에써놓은짧은글이다.

걷는일과쓰는일

걷는일과쓰는일은서로연관이깊은모양이다.걷고난후쓴책이출간되었다는일간지소개를보았다.

내용을읽어보니얼마전에소개한‘(소심하고겁많고까탈스러운)여자혼자떠나는걷기여행의저자김남희씨가스페인의유명한산티아고로가는길’800km36일에걸쳐걸은뒤두번째책소심하고겁많고까다로운여자혼자떠나는걷기여행2-스페인산티아고편을출간하였다한다.산티아고로가는길을선택한이유는역시전에소개한베르나르올리비에의나는걷는다(1-3)’라는책을읽은후실크로드를걷기전올리비에가걸었던것이영향을미친모양이다.

1편을읽은후김남희씨는보통여자들보다덜소심하고,보통수준의겁에털털한성격을가진여자혼자떠나는여행이어울린다고하였는데저자는소심하고겁많고까탈스러운이라는표현이마음에들었는지1편과같은제목을쓰고있다.아직책을읽지는않았으나앞으로읽을가능성이있기에저자의이번책은1편보다는읽는재미도늘었으면하는바램이있다.걷고난후쓴책중읽어본것은나는걷는다여자혼자떠나는걷기여행뿐이지만두책의공통점으로는읽는내용의재미는전문적인작가들의책들과비교해서는조금떨어진다는생각이든다.물론지난번김훈작가의자전거여행처럼내용이나표현이쉽지않은책도있지만말이다.

이번책에서는일정에대한걱정이없었으면한다.걷는일정에대한걱정이읽는재미를반감시키는역할을하는것같고이로인해걷는여행의내용이나이에따른책의내용도부실해지는느낌을받는다.쫒기는느낌을주고일기형식의배열이재미를추구하는데는한계가있으며걸으면서대하는환경이나사람들에게서재미난일이계속생길수는없으나,일반인보다는훨씬나은작가지만글만쓰는전문적인작가가아니라는점도무시할수는없을것같다.

그러나이런것을떠나서걷고,또쓸수있는저자는나에게는부러운일이다.이를소개한일간지에서는직장,남편,통장대신미지의세계로라는제목을쓰고있는데하루라도빠지면마음이편치않은직장,나를바라보고있는가족,매달빠져나가는항목이늘어나는통장으로둘러싸여있는나는미지의세계는아니더라도가까운길이라도걸어보고싶다.단하루종일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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