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
BY t2star ON 8. 10, 2014
송호근지음
블로그에[퇴적공간,오근재지음]을올린지한달보름정도지나다른분이[퇴적공간]과함께송호근교수의[그들은소리내울지않는다]에대한내용을올려놓은것을보았다.내용중에송호근교수의[그들은소리내울지않는다]에대한평은혹독하다.그렇지만책의부제로적힌‘이시대50대인생보고서’가시선을끌었다.그에더해그동안몇권읽은송호근교수의책들[한국의평등주의,그마음의습관],[인민의탄생],[시민의탄생]등은나름기억에남아있어도서관에들러책을대출받았다.얼마되지않는분량,그리고전에읽은책들과는달리무겁지않은내용으로책읽는데오랜시간걸리지않았다.
저자는우연한기회에대리기사를불러귀가하면서50대의대리기사와대화를나누게된다.대리기사의사연을들으면서‘베이비부머’에대한연구를해야겠다고생각하고연구팀을꾸려10여명의베이비부머와인터뷰를하였다고하였다.책의내용중에는그들의이야기일부가그대로포함되어있기도하다.연구원이며,연구팀이야기가나오지만논문성격보다는그저그들의이야기를정리하고,송교수의의견을실은정도라고보면될것같다.
59년돼지띠에78학번이라책의내용은익숙하다.60년대의국민학교시절,대부분못살았던시절로서울은시골과다를바없는곳이많았다.한반에80명이넘는교실에그도모자라이부제수업.점심시간에미국원조식량으로만들어배급받은옥수수빵.70년대의중,고교시절과대학입학,정치적으로는유신과긴급조치의시대이며79년대학2학년때10.26을경험하였다.80년대대학졸업과전문과정,정치적으로는민주화투쟁,90년대본격적인직장생활과아이들키우느라바빴던시절등등.80년봄에는4월중순부터학내문제로수업이없었고,5월중순다시등교한지일주일만에5.18로휴교가되어8월말까지쉬었다.수강일자채운다고9월부터는일요일도없이2학기를보냈었다.
외형적인일들말고도부모,자식등가족문제들은그동안살면서겪거나고민했던내용들이다.제사문제도언제부터인지는기억이나지않지만저자와같은생각을해본적이있다.대여섯살부터인가,정신이들면서부터는선친옆에서서제사를지내다보니지금도제사를지내지만왜이렇게해야하나하는생각은여전하다.제사의원천인유교라는실체는경험해본적도없고,남아있지도않은데제사만남아있다보니이성적으로이해하기는쉽지않은일이다.교회다니는사람들은교회다닌다고차례안지낸다하고,명절마다는당연한듯뉴스를통해공항에여행을떠나는사람들로북적이는것을보면서본적도없는조상차례상준비로바삐명절이다지나가는것을이해하기는쉽지않은일이다.
우리나이쯤되면직장다니던친구들은대개그만둘나이가지났다.동창중에는벌써여러해전에퇴직하여나름새로운길을개척한친구도있고,전문직이라아직월급을받는친구들도있다.책에는50대들사이에서는새로울것도없는그런이야기들이정리되어있다.내용중에는앞으로노력하여정기적으로현금이들어오는방법을모색해야한다던가,아니면하루세끼를어떻게해야한다던가,취미생활이필요하다던가하는이야기도있지만,그것도새로울것은없다.그런이야기는벌써오랜전에친구들과술한잔하면서반복했던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읽고나서괜히읽었다는생각은들지않는다.50대중반을넘어가는지금,복습한번한다는느낌이든다.바둑으로치면복기가되려나?가끔직접검사하는사람들중에는같은나이의사람들을만나게된다.그때마다이사람은나와같은해에태어나50중반넘어가도록어떻게살아왔을까?라는생각을해보곤한다.이책은이런의문을가진나에게대부분비슷하게살아왔다는것을새삼알려주는책이다.우리세대가아닌다른세대가보면어떤느낌으로다가올지는모를일이다.
<책내용중에서>
교육열망은한국인이세계제일이라는사실은누구나안다.왜그럴까?선진국학자들은자주그이유를묻는다.답은간단하다.조선시대500년동안지식인이지배계급이었기때문이다.사대부,고관대작,양반층이모두지식인이었다!학자는고위관직으로나가는전제조건이었고그역도성립한다.들어오면사(士)요,나아가면대부(大夫)가사대부(士大夫)다.그러니배우지않고뭘하겠는가?이런나라는세계에없었다.조선이유일했다.일본의지식인은중류계급이었거나심지어는하류계급이기도했다.칼을쓰면족했지,배울필요가없었다.중국은왕실가문이거나귀족이면지배계급이었다.지식인은그밑에서책사역할을맡았다.
그래서한국에서는"배우자!"가국민슬로건이됐다.1894년갑오경장이후1910년까지전국에8000여개의사설학교가설립됐다.순식간에일어난일이었다.서울에는야학(夜學)이성행했는데,물장수야학,지게꾼야학도생겨났다.세상에이런야학은없을것이다."배우자"라는이국민슬로건은해방후더욱증폭되어산업화시대에가장효율적인‘성공의사다리‘가됐다.모두배우면서이‘성공의사다리‘를타고한없이위로올라가려했던것이다.2000년대들어이‘성공의사다리‘는비좁아터졌음에도베이비부머들은자식들을이좁은통로로올려보내는수밖에다른도리가없었다.1970년대에는30퍼센트를밑돌던대학진학률이이젠80퍼센트를웃도는기막힌상황앞에베이비부머들은망연자실한다.대학교육의대중화가절정에달한나라에서성공의레이스를포기하라고할부모가어디있겠는가?이럴줄은몰랐던것이다.조선시대의출세유전자가21세기에더극성을부릴줄이야누가알았겠는가?45-46쪽중에서
결혼후20년을착실히,아무회의없이,부친의조상숭배신념에틀어박힌안향선생의가르침을받들어모시던중에정말느닷없이사회학적반문이고개를들었다.이많은음식,투여한노동시간,숨가쁜친인척의출석,그리고총총히흩어진뒤의허망함은도대체뭐지?느긋한만족감으로조상의은덕을기리는부친의표정과는달리장남의지식창고에서는반란이싹트고있었다.반란은곧기획연구로이어졌고.기어이비밀을밝혀내고야말았다.조상숭배는지배전략의방편이라는것을.효응선생은하버드박사의반란을패륜행위대하듯망연자실했다.그러나어쩌랴,일단시작된연구를,그리고과학적결과를.나는추석대이동이시작되는어느날,마땅히제사상차림을위해여기저기장을보러다녀야했던어느날,이런글을쓰고있었다.
—중략—
불교로부터유교로전환한조선은민간신앙을일소한방법을주자학에서찾았다.제천(祭天)과제사(祭祀)가그것이다.경복궁우측에사직단을지어곡식신과토지신에게제례를올리고.좌측에종묘를지어제사의기원을마련했다.15세기말성종은아예<경국대전>을편찬해국법으로반포했다.예제(禮制)에이런조항이있다.“6품이상의문관이나무관은3대까지제사지내고,7품이하는2대까지,일반서민은부모에게만제사지낸다.”잡신을섬기는자는처벌되었다.빈곤한서민은위패를모시고,명절땐두어가지음식으로족했다.굶는판에더차릴것도없었다.그러던것이,양반이향촌을장악해가는과정에서봉제사는충군효친이규율수단이되었다.오늘날과같은엄격한격식과요란한상차림이강제됐다.조상숭배가통치이데올로기의중심에놓이자봉제사는곧가문의위세경쟁으로변했다.
유교는내세관이없는게특징이다.‘조상숭배의나라’에서불교와주술신앙이사라지지않은이유이다.미국선교사헐버트는<대한제국멸망기>에서“코레아인들은사회생활에서는유교에,사고방식은불교에속하며,곤경에빠지면귀신을믿는다”라고썼다.21세기대명천지에귀신을믿는사람은이제없어졌고,외래종교가유입되자한국은다종교사회로변했다.그런와중에유교는제천(제천)기능을다른종교에넘겨주고주로생활의례,특히제례(祭禮)로살아남았다.명절이라는축제의시간을제사로종종걸음을쳐야하는‘조상숭배의나라’가된역사적배경이다.—중략—58-59쪽중에서
생애처음찾아온경제적안정은달콤했다.그런데우리가흔히여말선초(麗末鮮初)로부르는인생주기,50대초중반의연령지대에이르자전혀예상치도않았던질문이단단히닫힌것만같았던맨홀뚜껑을열고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