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종교 이야기
BY t2star ON 11. 16, 2014
세종교이야기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믿음과분쟁의역사
홍익희지음
IS에의한참수사건,이스라엘과팔레스타인의분쟁소식이계속되는가운데신문에소개된책이다.전에도이슬람교에대한책을읽은적이있었지만이제는가물가물해지던차에제목이시선을끌었다.세종교라고하면여러가지생각해볼수있지만이책에서다룬종교들은‘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다.불교는많은신도가있는종교이기는하지만종교간의분쟁과는거리가있어이런유의책에서는항상열외다.
이책은나같이종교에대해서문외한이면서,종교를종교로보지않는사람에게는최선의선택이었다.세종교에대한뿌리부터시작해서어떻게갈라졌는지,차이점은무엇인지등등.그동안궁금해하던내용들이대부분해소되었다.유대인들이왜옛날부터차별을받아왔으며,나치는이를어떻게이용했는지도알수있었다.
이책을포함해그동안종교와연관된몇권의책들을읽으면서종교의내용을알면알수록종교의의미는무엇인지,종교의역할은무엇인지더궁금해지는것은왜일까?종교에대해뭐라더할말은없고책내용중일부를소개하는것으로대신한다.
책내용중에서
이슬람교의주장에의하면알라와여호와하느님은같은신이다.이슬람교도들은유대인들과기독교도들이아브라함의종교를타락시키고하느님의경전인<성경>을변질시켰기때문에무함마드를통해하늘에있는경전원본을내려보내아브라함의종교를회복시킨것이이슬람교라는주장이다.58쪽중에서
이삭의아들야곱이광야에서돌베개를베고잠이들었다.이때꿈에하느님이나타났다.“나는야훼,네할아버지아브라함의하느님이요,네아버지이삭의하느님이다.나는네가지금누워있는이땅을너와네후손에게주리라.네후손은땅의티끌만큼불어나서동서남북으로멀리퍼질것이다.너에게약속한것을다이루어줄때까지나는네곁을떠나지않으리라…….너의이름은이제더이상야곱이아니라이스라엘이라불릴것이다.”(<창세기>28:13)<성경>에서‘이스라엘’이라는이름이최초로등장하는순간이다.야곱은하느님과씨름했다고‘이스라엘’이란이름을얻었다.이스라엘은‘하느님과씨름하다’는뜻이다.지금이스라엘의국호는여기서유래했다.63쪽중에서
유대교에서는종교를지키는일이기독교처럼신부등성직자의몫이라고생각하지않는다.성직자가없다보니모든사람이종교를지킬의무와책임이있었다.당연히랍비가일반신도들보다높은곳에서서예배를주도하지않는다.이것이바로핵심이다.
유대교에서는누구나종교를지켜야하는책임때문에열세살에성인식을치루고나면의무적으로<성경>을읽어야했다.가톨릭이나개신교에서는<성경>을읽고해석하는것은주로신부나목사의몫이다.신자들은성직자들이읽고해석한내용을그대로받아들이기만하면되는수동적입장이다.이점에서유대교와다르다.유대교에는성직자가없다보니유대인들은스스로<성경>을해석해야했다.단지랍비는더많이공부한사람으로옆에서도울뿐이었다.
같은아브라함을시조로모시는이슬람교에도성직자가따로없다.모든신자가설교자가될수있다.신자는모두신앞에평등하며종교적의무도마찬가지라고믿기때문이다.
기독교도들은오랜기간거의대부분이문맹이었다.성직자들만글을알았다.가톨릭은신자들이<성경>을읽지못하도록오랫동안법으로금했다.이를어기면종교재판에회부되어화형에처해졌다.한쪽은글조차읽을줄모르는문맹이었고다른한쪽은의무적으로열세살부터글을읽었다.십수세기간축적된교육의힘은엄청난에너지를내재한민족의힘이된다.121쪽중에서
그무렵(기원후66-73년무렵)팔레스타인밖의상업도시에서도경쟁관계인유대인과그리스인사이의갈등이커져갔다.복합인종으로구성된그리스인에게유대인은별종으로보였다.자신들을남들로부터유난히구별하는유대인은원래사람을싫어하는민족으로보였다.그리스인은그들문명이지배하는세계를보편적이라는뜻의‘오이쿠메네oecumene’라고불렀다.보편그저편에펼쳐져있는‘카오스’곧혼돈의세계와구별하기위해서였다.그리고보편적세계는많은인종과많은국가로구성되는세계시민사회로인식하고,이를거부하는자는인류공동의적이라고생각했다.
그리스사회는자신의문화를표준으로간주하고있었다.때문에그리스신들이‘부정하다’는이유로유대인들이그리스문화에동화되기를거절한다는사실은문화적모욕이었다.그로부터최초의반유대주의가시작되었다.유대인들이성전에서몰래인신공양제사를드린다는루머도나돌았다.그리스인들은소문만퍼뜨리는것이아니라로마제국에직접적으로반유대주의를부추기기도했다.167-168쪽중에서
베스파시아누스황제의맏아들인스물아홉살의티투스는작전의최종단계,즉예루살렘의포위와탈환을개시했다.이싸움은70년4월부터9월까지이어진다.예루살렘성전을지키는유대병력2만3천여명에비해8만명에달하는로마의월등한군사력에도불구하고전쟁은치열한항쟁으로치달았다.결국티투스는8월29일성전구역을점령한다음,9월에는예루살렘서북부고지대와해롯왕궁까지점령했다.3년간무더위와갖은어려움속에조롱당한로마군단은처참한살육과학살로앙갚음했다.
티투스는유대인들의폭동을무력으로가혹하게진압하면서도부하들에게는예루살렘성전은파괴하지말라고했다.그러나전쟁중방화되어성전이완전히파괴되었다.함락된예루살렘성안에서는무차별살육과약탈이자행되었다.성전수장고에숨어있던여자들과어린이6천명은산채로불태워졌다.유대인은국가를잃고흩어져세계곳곳에유대인공동체디아스포라시대가본격적으로시작되었다.
전쟁이끝난뒤로마제국은숭자의관용을베풀어유대인들이그들땅에서살며유대교를믿을수있도록허용했다.이때티투스장군이로마의힘을당시유대인들과후대에보이려고교훈적으로남겨둔것이바로‘통곡의벽TheWailingWall’이다.—중략—전쟁의참상은처절하고도비참했다.팔레스타인에살던유대인240만명가운데절반가까운110만명이살육되거나굶어죽었다.엄청난살상이었다.로마인은항복하는자는용서하지만저항하는자는적으로간주한다는원칙을엄격하게실행했다.당시잡혀간전쟁포로노예만도10만명이었다.이때잡혀간유대인노예들이8년간건설한게그유명한콜로세움이다.175-177쪽중에서
유대민족에게고난의역사첫번째가기원전6세기바빌론으로의강제집단이주였다면두번째는로마제국에의해민족이아예사방으로뿔뿔이흩어지게된것이다.이후유대민족은세계각지에서랍비를중심으로하는신앙공동체로살아갔다.이를‘디아스포라Diaspora’라한다.디아스포라는‘흩어진사람’곧이산이라는뜻이다.2천년이넘는기가긴인고의세월동안민족과신앙공동체의정체성을잃지않고시공을초월해단결해살아갈수있다는그자체가한마디로기적이아닐까?192쪽중에서
유대교는태고때부터메시아가출현해모든인류를구제한다고하는사상을갖고있었다.그런데다세례자요한이나타나멀지않은장래에메시아가출현할것이라고예언했고,그의세례를받은나사렛사람예수가복음을전파하자많은민중이그를따랐다.
하지만바리새파가보기에예수는위험인물이었다.유대인들이생각하기에유대인과이방인의가장큰차이점은하느님으로부터‘선택을받았는지의여부’다.바로이구분과증거가율법과할례였다.유대인에게율법과할례는그들의정체성이자종교요목숨이었다.하지만예수는율법과할례없이도그를통해하느님을믿고회개하면누구나하느님의백성이될수있다는새로운복음을전파했다.유대인과이방인의벽을허물고기독교가세계보편의종교가될수있었던원동력을마련한셈이다.이로써하느님이유대인만의하느님이아닌모든인류의하느님이되신것이다.216-217쪽중에서
초기기독교인들이박해를받은원인은예배의식에대한로마인들의오해때문이었다.그들이비밀리에모여예배보는모습에서‘식인풍습과근친상간그리고무신론’이의심된다는이유였다.신자들이서로를향해형제,자매라부르는초대교회관습은로마인들에게기독교인들이성적으로문란하다는인상을주었다.예배후‘평안의키스’를나눈다는표현은상황을더욱악화시켰다.‘예수의몸과피를마신다’는성찬식표현은말그대로기독교인들이식인풍습을지난것으로와전되었다.—중략—무엇보다도기독교인들이핍박받은가장큰이유는황제숭배를거부했기때문이다.로마인들에게는눈에안보이는신을믿는기독교인들이무신론자로보였다.게다가로마제국의수호신인황제에대한숭배를거부하는것은곧제국의안녕을위협하는반국가적행위였다.자연히로마에재난이발생할때마다기독교인은비난의대상이되어사자밥이되었다.이와같은박해는네로황제때부터313년콘스탄티누스황제에의해기독교가공인되기까지계속되었다.251-252쪽중에서
1184년교황은발도(프랑스리용의부호)파를파문했다.그런데도발도파는많은세력을유지했는데주로중산계급과농민의평신도들로이루어졌다.발도파의득세로<성경>주석에능한평신도가사제들과<성경>을토대로한교리적인마찰을불러일으키자교황청은당황했다.
1229년그레고리우스9세에의해소집된툴루즈공의회에서평신도의<성경>읽기,번역,소지금지조항을채택했다.더나아가그간비공식적이었던종교재판을공식화해서마녀곧이단색출에나섰다.이단심판기준의하나가<성경>을소유하거나번역해서읽은자였다.이들을화형에처했다.
그뒤가톨릭은문맹을권하는종교가되었다.가톨릭신자의90퍼센트이상이문맹이었다.가톨릭의평신도<성경>읽기금지가무려5백년가까이지속되었다.이통에덕본것은유대인들이었다.대부분이문맹이었던중세사회에서글을아는유대인들이상업과교역을주도할수있었던이유였다.280-281쪽중에서
<구약성경>은세종교모두의경전이다.이슬람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