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BY t2star ON 6. 24, 2015
동아시아,해양과대륙이맞서다
임진왜란부터태평양전쟁까지동아시아오백년사
김시덕지음
우리근대사의큰치욕인한일합병.큰사건인만큼그뿌리도오래되었을텐데언제부터문제가시작되었을까?강의기원이야거슬러올라가면찾을수있지만역사의기원은눈에보이지않으니딱히지목하기는어렵다.그래도시작은있을것이다.
1800년대후반의대부분을다스렸던정조는개혁을위해노력한군주로서비춰지지만결과는무엇인지,19세기에대한설명은고종과대원군,그리고명성황후에집중되어있는데대원군의쇄국정치가주요원인처럼설명되어있지만임진왜란후대원군전까지는무슨문제를안고왔는지,주변국가들은어떠한상황에놓여있었으며변화해왔는지.
학교에서역사공부한것이대학교1학년때교양수업으로받은것이마지막이고,그후로는간혹역사에대한이책,저책을읽으면서도조선멸망의씨앗이어디서부터잉태되었는지에대한것이궁금했는데얼마전이책이눈에띄었다.책제목보다는부제목이더눈에띈다.부제‘임진왜란부터태평양전쟁까지동아시아오백년사’와같이동북아3국의역사를같이기술하고있어당시상황을이해하는데도움이된다.
이책에서는조선은중국과의조공관계를통해북쪽으로부터의안전이보장되고,남쪽은단하나의국가,일본이있지만임진왜란후어느정도의정보를가지고있다보니국제정세의변화에둔감해져가지만,사방이바다로둘러싸여항상국제정세의변화에민감할수밖에없는일본은쇄국정치를펼치면서도네덜란드의동인도회사를통해외부와의끈을이어가며필요한조치를취해나가면서동북아의주도세력으로자리잡아가는모습을보여준다.동북아의주인역할을하던청나라는모든서구세력의타겟이되고이러한점이일본으로서는일어설수있는시간을버는기회가되기도한다.
책의마지막부분에있는글은마음을무겁게한다.조선말기에중앙정부와지방관리의수탈로인해민심이황폐해질대로황폐해진상황에서근대화된일본의사법제도등이백성들로하여금일말의기대를가지게하였다는내용이.허구한날개인욕심을채우기위해두들겨패고굶기는부모보다그래도가려가며패는남의부모가나은상황이당시에전개되고있었다는이야기이다.
해방후우리는조선왕조의전통을복원하기위해노력했다는이야기를들어본적이없다.500년이어온조선왕조가한세대남짓한한일합병후사람들의기억에서없어진것이다.없애버리고싶은왕조가된것이다.조선후기,말기의상황이조선왕조로부터모두의등을돌려버리게만든결과가아닌가싶다.
<책내용중에서>
17세기초의정묘,병자호란때나1910년의강제병합때에도,조선은한반도를둘러싼여러대륙세력과해양세력사이에서균형을취하여독립과번영을유지하고자하는노력을그치지않았다.물론이러한시도는대개실패로끝났다.그러나이같은외교의역사적경험이야말로1945년의광복이후미국,일본등유라시아동부의해양세력과중국,러시아등여러대륙세력간의길항관계를효과적으로이용한대한민국의성장을가능케한것이라고생각한다.11쪽중에서
2015년현재,유라시아동해안에서는지난제2차세계대전이후수립되었던질서가재편되고했다.1945년의패전이후일본은군사적,정치적으로미국에종속하는대신경제력향상을국가의나아갈길로설정한바있다.그러나이제는군사적으로도미군을보조하여활동할것을요구받고있다.최근일본총리아베신조의각종움직임에대해한국일각에서는120년전일본의‘군국주의적’역사가반복되고있다는주장을펼치고있으나,이러한일본의움직임은미국의요청이먼저이며일본의호응은2차적이라는점을간과하고있다.한,미,일의남방해양삼각동맹을공고히하려는미국이한일갈등에일본을편드는듯한움직임을보이는것은이때문이다.11-12쪽중에서
한편,일본열도세력은임진왜란이전에도백제구원군이당나라와충돌하고왜구가명나라의해안지역을약탈하는등두차례에걸쳐중국세력과충돌했다.그러나원양항해기술이발달하지않았고대규모의군대를동원해서해외로보낼만큼정치적통일성이나원동력도없었기때문에,다른비한인집단과는달리한인국가를근본적으로위협하는일은없었다.
임진왜란은이러한상황에근본적인변화가생겼음을보여준전쟁이었다.16세기후기,일본에는100년간의전국시대를거치며풍부한실전(實戰)경험을지닌대규모병력과,유럽해양세력과의접촉을통해확보한해외정보가있었다.일본은이를바탕으로다른비한인집단과마찬가지로한인의명나라를정복할뿐아니라인도까지가려는계획을세운다.조선에보낸국서에서히데요시는자신의목표가명나라임을선언하고조선이그선봉에설것을요구했다.물론전쟁발발후1년도채지나지않아중국정복이불가능해지면서히데요시의야망은꺾였다.게다가애당초자신의심복인서일본세력을주력부대로동원하는바람에일본국내의정치적,군사적기반이약화돼도요토미정권은2대로단명했다.이때문에그가임진왜란을일으킨이유가‘늙음에서기인한오판’이라는주장이제기되는것이다.43-44쪽중에서
한국일부에서는여전히일본이대륙진출을노리며북한에접근하고있고,이를막기위해중국이북한을번병(藩屛)으로거느리고있다고해석한다.필자는이를‘역사가반복된다’는가설을지나치게기계론적으로해석한데에서비롯된오류이자,일본을세계사속에서불변하는절대악으로간주하는이원론적종교관의영향탓이고,기술문명의발달이이끌어낸인류사의비가역적(irreversible)변화를이해하지못한결과라고생각한다.한반도가유라시아동부의변경이었던16세기중기이전과,일본열도세력의대두로한반도가유라시아동해안의지정학적요충지가된임진왜란부터20세기전기에이어,오늘의한반도는지정학적으로세번째의미를부여받고있다.인류문명이현재의교통과통신기술을폐기하지않는한한반도의주민은이제까지의역사적경험과는전혀다른형태의상상력으로미래전략을구상해야할것이다.45-46쪽중에서
유라시아동부를지배하고자하는목표를내걸고임진왜란을일으킨도요토미히데요시가1598년여름에사망하자,전쟁을계속할명분을상실한일본군은열도로되돌아갔다.이로써일본열도세력이유라시아동부대륙부에대한지배를꾀한세번째시도도무위로돌아갔다.그러나이세번째시도가유라시아동부에미친영향은이전의두차례와는달랐다.중국에서는한인의명나라가만주인의청나라로교체됐고,일본에서는도요토미정권이몰락하고도쿠가와정권이들어섰다.이영향은타이완과동남아시아에까지미쳐서이들지역의정치적지형을바꿨다.한반도는분단의위험을피했지만잇따른쿠데타와반란,그리고만주인과의두차례전쟁과점령이라는일련의사태를겪으며왕조교체에준하는정치적위기를겪었다.그런의미에서임진왜란은유라시아동부의질서를재편한100년간의장기적변동기를연사건이었다.57쪽중에서
도쿠가와막부가VOC(네덜란드동인도회사,VerenigdeOost-IndiëCompagnie)에부과한의무가운데에는,일본어로‘카피탄’이라고부르는데지마의VOC상관장(VOC-opperhoofdeninJapan)이한해에한번씩막부가위치한에도를찾아가야한다는것이있었다.상관장이제공하는‘풍설서(風說書)’라불리는해외정보를통해막부는세계가어떻게돌아가는지파악했다.이책의후반부에서다시언급될테지만,상관장이제공한정보가운데에는1853년에미국의페리제독이일본에오리라는것을미리알려준1852년의풍설서가유명하다.149쪽중에서
소설속장면이지만,19세기초의일본일각에조선통신사일행을정치,군사적목적을띤스파이로보려는경향이있었음은확실하다.현대한국에서는통신사가근세한일양국간의문화사절로서활동한사실을부각시키려는경향이있다.그러나애초에조선이통신사를파견한것은정치적이고군사적인목적이컸다.임진왜란때일본으로끌려간조선인을되돌려오는것이그일차적인목적이었다.또한,임진왜란으로발생한힘의공백상태를이용하여누르하치가급속히여진인세력을통합하던만주지역의상황을감안해야했다.조선은남북에서동시에전쟁을치르지않도록일본을달래면서군사적움직임을감시하고자했다.일본도조선과의국교를정상화할필요를느끼고있었다.도요토미히데요시세력을꺾고일본의주인이된도쿠가와이에야스가,새롭게수립한정권을외국에인정받아정치적안정을꾀하고자한것이다.197쪽중에서
조선은일본의간청에따라국교를정상화했으므로시혜를베푼것이며,국교정상화의결과로파견하는통신사는임진왜란의포로를데리고오는김에일본의국정도엿보아후환을대비하는역할을한다고하여조선이우위에서있는것으로판단했다.근세일본의해석은정반대다.일본사회에서‘역사’로간주된‘진구코고의삼한정벌’전설에따라,한반도에있던국가는대대로일본의번국으로서조공을바쳐왔으나고려시대가되면그횟수가뜸해졌고,일본이전국시대의혼란기에접어들자완전히끊기고말았다고주장했다.따라서이에분노한도요토미히데요시가임진왜란을일으킨결과조선의조공사파견이재개된것이통신사라고간주했다.일본에서그극단적인사례로드는것이,도쿠가와막부의초대쇼군도쿠가와이에야스의무덤이있는닛코에조선종등의물품을기중한1643년의제5회통신사일행이다.일본의끈질긴요구로이루어진닛코방문과물품기증이,일본국내의정치적맥락에서는조선의복속을상징하는행위로서받아들여진것이다.199-200쪽중에서
16세기에유라시아동부에도달한가톨릭(크리스트교)은,한편으로는유럽열강이이지역을침략하기위한선봉대로간주되고또한편으로는이지역의종교적균형과계급질서를위협하는외래사상으로서탄압받았다.임진왜란때일본으로끌려간조선인포로가이오가일본의저명한가톨릭영주인다카야마우콘과진정한우정을나누고,빈궁했던일본인가톨릭교도야고보아함께순교한것은,유라시아동부의주민이가톨릭에서국가와계급을초월하는평등사상을발견했음을보여준다.이처럼가톨릭이단순한신앙이아니라유라시아동부의기존질서를흔들수있는민감한정치적,군사적위협임을간파한각국의지배계급은철저하게가톨릭교도를탄압했다.
그결과한때금방이라도가톨릭국가가될것처럼보였던일본에서는가톨릭교도가표면상완전히사라졌고,조선역시일본과긴밀하게연락을취하며가톨릭이처음부터뿌리내리지못하게하는정책을펼쳤다.그러나18세기말이되자이러한철통방어에균열이생기기시작했다.중국어로집필된크리스트교서적들이청나라에서흘러들어오자이승훈(세례명베드로)등남인(南人)계열의학자들이이들책을통해크리스트교를학문으로서연구하기시작했고,마침내크리스트교도가자생적으로발생했다.전세계역사에서선교사가파견되지않고자발적으로크리스트교가탄생한것은한반도가유일하다.225-226쪽중에서
이처럼지배체제에노골적으로저항하는크리스트교를조선조정에서가만히둘리없었다.현체제를유지하려는정부는당연히혹심한탄압을가했다.그런탄압에정당성을부여한것이,1801년에황사영(세례명알렉시오)이중국천주교회에보내려다압수된편지였다.<황사영백서(帛書)>라불리는이편지에서황사영은조선천주교(가톨릭)의초기역사를상세히서술한뒤,청나라황제가선교사와함께군대를조선에파견하여조선의가톨릭교도를구해달라고요청한다.
전선수백척과정병5,6만을얻어대포등날카로운무기를많이싣고겸하여글잘하고사리에밝은중국선비서너명을데리고바로이나라해변에이르러국왕에게글을보내어말하기를‘우리는서양의전교하는배요,자녀나재물때문에온것이아니라교황의명령을받아이지역의생령을구원하려는것입니다.귀국해서한사람의선교사를용납하여기꺼이받아들인다면우리는그이상더많은것을요구하지않을것이며한방의탄환이나한대의화살도쏘지않고,티끌하나풀한포기도건드리지않을것이며영원한우호조약만맺고는북치고춤추며돌아갈것이오.그러나만약천주님의사자를받아들이지않는다면,마땅히주님이주시는벌을받들어행하고죽어도발길을돌리지않을것입니다.
황사영은어디까지나조선조정의가톨릭탄압을막기위해청나라군대를보낸것처럼하라고제언한다.그러나청나라황제가순수하게가톨릭보호를위해서움직이지않을지도모른다고걱정했는지위험한제안도덧붙였다.
근년에중국은서쪽지방에도둑이자꾸일어나걷잡을수없는지경으로관군이여러번패하고국토가날로줄어든다고하니중국황제는틀림없이근심하고고민하는마음이있을것입니다.(중략)조선은영고탑에서다만강물하나를격해있을뿐으로인가가서로바라보이고부르면서로들리는데그땅이사방3천여리입니다.동남쪽지방은땅이기름지고서북쪽은군사와말이매우굳세고힘이있으며,산이천리나이어져있어목재는다쓸수가없을정도로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