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조선의 왕 이야기
BY t2star ON 10. 24, 2015
한국사에대한거의모든지식
조선의왕이야기
박문국지음
올리뷰를보다가[도서593탄]한국사에대한거의모든지식–조선의왕이야기(상)소개를보고응모하였는데당첨되었다.이제얼마안있어폐쇄되는사이트라그저그런기분으로응모하였는데그래도당첨되었다는통지를보니반갑다.
올리뷰에서이책에대해소개한내용이다.
단순해보이는하나의사건뒤에도수많은갈등,사건,인물등이얼기설기얽혀있다.그것들이흐름을이루고과거에서미래로이어지는단상을보여주게된다.이모든것을연관시켜과거의진실을파악하는논리적인과정을역사라한다.
즉,역사를알아가는가장좋은방법은총체적인흐름을파악하는것이다.이런흐름에대한이해가외는것으로가능할리없다.그래서주목하는것이‘이야기’이다.—중략—
카카오스토리채널<5분한국사이야기>에서그날그날의시의에맞는주제들을다뤘다면,[한국사에대한거의모든지식–조선의왕이야기]에서는‘흐름’을담으려고노력했다.
—중략—
누군가는통념이아닌연구의결과를전해줄필요가있겠다싶었다.이책을쓰면서조선왕조를연구한학자들의의견을최대한살폈다.그리고누구라도재미있게이해할수있도록재구성했다.‘작가의말’중에서
그렇지만‘박문국’작가는물론이고,카카오스토리채널<5분한국사이야기>라는것도처음이라책에대한기대는별로하지않은상태로이책을받게되었다.책을받고서두번실망을하였다.첫째는판형이생각보다작았고,둘째는책을펼쳐보니두껍지도않은책에‘태조이성계’부터14대‘선조이연’까지되어있는것이수박겉핥기식으로되어있는책이아닌가싶었다.그래도책을읽고독후감은써야하겠기에책을읽기시작하였다.
다음은이책의목차와책내용일부이다.
창업의군주–초대태조이성계
이성계를소개할때빠질수없는게바로그의무공입니다.특히활솜씨가대단하여신궁이라고불릴정도였지요.예를들면한번활을쏴서새다섯마리를동시에잡았다거나,백보밖에있는배나무의배를떨어뜨려손님에게대접했다거나하는이야기가기록되어있지요.물론이런이야기는대부분『조선왕조실록』,『고려사』와같은조선시대에쓰인책에실려있다는점을감안해야겠습니다.창업자의위대함을드높이기위해과장했을가능성을배제할수없지요.
다만이성계의활솜씨에대한이야기가중국이나일본의책에도기록되어있는점을감안한다면아예거짓말이라고할수는없을것같습니다.적어도당대동아시아에서최고의활잡이였던것만은분명하지요.
그의실력을알수있는유명한일화로왜구의장수아기발도와의싸움을예로들수있겠습니다.11-12쪽중에서
혼란의과도기를거치며-2대정종이방과
왕위즉위이후주도적인모습을보인일이없기에사극과같은대중매체에서는보통유약한이미지로그려집니다.그러나사실그는전형적인무골입니다.아버지이성계의무인기질을형제들중가장많이물려받아체구가곰처럼강건했다고전해지지요.그는용맹하고지략이뛰어나갓성년이된21세부터아버지를따라전투에참여하였습니다.이후조선초기까지20년이넘는동안왜구를토벌하는등전장에서활약했지요.35쪽중에서
이렇듯평안한말년을보냈지만그의사후대접은그리좋지못했습니다.정식왕으로인정받지못해묘호를받지못했고오랫동안공정왕으로불렸습니다.조선왕조의정당성을선전하는[용비어천가]의‘해동육룡’에도그의이름은실리지않았지요.종친대우를받지못한것은물론입니다.그가정종이란묘호를받은것은250년이지난숙종대의일입니다.41쪽중에서
조선의기반을닦다-3대태종이방원
앞에서살펴봤듯이이방원은왕위에오르기전매우공격적인행보를이어왔기에그를무인성향의인물로생각할수있겠습니다.하지만그는전형적인문인출신입니다.실록은태어날때부터그가유난히영특했다고기록하고있습니다.[동각잡기]와[연려실기술]에는이방원의계모인신덕왕후가그의영특함을높이사“왜이아이가내친자식이아닐까?”라고말했다는기록이남아있지요.왕자의난과같은악연을생각한다면흥미로운기록입니다.45쪽중에서
조선의황금시대를이끈성군-4대세종이도
많은세종관련위인전에서양녕대군의기행을미화합니다.양녕대군은일찍부터충녕대군의재능을알아봤기에동생을왕으로올리기위해일부러망나니짓을벌였다는이야기지요.그러나앞서살펴본바와같이양녕대군에게그런깊은뜻은없던것으로보입니다.
그리고위의통념과더불어당시단순한왕자였던충녕대군역시양녕대군의간곡한뜻을받아들여어쩔수없이왕위에올랐다는시각이있습니다.하지만충녕대군이정말왕위에아무런관심이없었을까요?여러기록을살펴보면꼭그런것만도아닙니다.67-68쪽중에서
학문을게을리하지않은세종의최고결과물이바로훈민정음입니다.흔히세종이새로운글자를개발하라고어명을내리고집현전학자들이밤을새워가면서만든것이훈민정음이라고알고있지만이건사실과다릅니다.현재까지의연구결과에따르면훈민정음은세종혼자서개발한글자입니다.많이양보하더라도세종의친족정도만관여했을뿐집현전신하들은조금도참여하지않았지요.그나마공이있다면세종의요청으로중국의음운학관련책을전해주었다는것정도겠네요.이때도신하들이왜그런책을보느냐고의아해하자,세종은중국사신들과원활히소통하기위해서라고둘러댑니다.즉,훈민정음개발을비밀리에진행했음을알수있습니다.71-72쪽중에서
저평가된명군-5대문종이향
흔히문종을단명한임금으로보는일이많습니다.그의치세가2년정도밖에되지않기때문이지요.하지만문종이승하한때의나이는39세로,당시기준에서그렇게단명한편은아닙니다.문종보다짧게산임금도여럿존재하지요.다만세종이좋지않은건강에도불구하고장수하였기에문종은국왕의자리에늦게오른것뿐입니다.
위의통념과연계하여흔히하는말이문종이문약했다는것입니다.즉,학문에만빠져병약했다는것이지요.하지만문종은결코글공부에만빠져있던인물이아닙니다.그가가장관심을가지고발전시켰던것이바로군사부문이지요.93쪽중에서
결국딸이지만세자의아이를낳은경험이있는후궁권씨가세번째세자빈으로책봉됩니다.그녀가바로현덕왕후지요.그녀는기대에부응하여아들을낳으니이아이가바로훗날단종이됩니다.문종의나이28세때의일이지요.하지만현덕왕후는산후후유증으로아이를낳은지이틀만에사망합니다.이후문종은왕비를들이지않고평생을홀아비로지내지요.이것이훗날의비극을불러올것이라고는당시로서는아무도예상하지못했습니다.96-97쪽중에서
가장귀하게태어나가장비극적으로죽다-6대단종이홍위
단종은조선의모든국왕가운데가장완벽한정통성을가진임금입니다물론최초의적장자출신임금은문종이지만그가태어났을때는양녕대군이세자였기에단종만큼귀하게여겨지지는않았지요.적장손으로태어나왕위에오른사람은이전에도이후에도단종이유일합니다.그야말로가장귀하게태어난인물이지요.101쪽중에서
잔혹한찬탈자-7대세조이유
세종이승하한뒤수양대군이병약한문종을종종위협한것으로많은매체에서묘사하고있지만이것은사실과다릅니다.수양대군은문종이살아있던기간동안완전히눌려지냈지요.간혹죄가있는승려를방면한것처럼자기멋대로일을처리하는경우도있었지만문종의권위에대놓고도전한일은단한번도없었습니다.오히려열심히문종의비위를맞추기바빴지요.문종역시이런수양대군을미워하지는않았지만전적으로신뢰한것으로보이지는않습니다.만약수양대군을누구보다신뢰했다면고명대신들이아닌그에게단종의안위를부탁했겠지요.116쪽중에서
일반적으로단종모살외에는세조의잔혹성이잘드러나지않지만,실상은알려진것보다더욱심각합니다.당시세조의패륜행위는비슷한과정으로집권한태종과비교하기힘들정도지요.
우선단종의어머니인현덕왕후일가가단종복위운동에가담하자이미죽고없는현덕왕후를폐서인한것을들수있습니다.문서상으로폐서인한것으로그치지않고그녀의무덤을파헤치기까지했지요.문제는현덕왕후의능은문종과합장이되어있었다는점입니다.즉,자신의형수는물론친형에게까지불경을저지른셈이지요.
이것으로그치지않고수많은친족들을참살하기도했습니다.여기에는동복형제도예외가없어금성대군의경우반란혐의가있다는이유만으로처형합니다.이외에도안평대군,숙모인성녕대군부인,세종의후궁혜빈양씨등도가차없이살해하지요.이토록많은친족을죽인임금은조선역사상세조가유일합니다.폭군으로유명한연산군조차이정도는아니었지요.118-119쪽중에서
조선시대이야기를듣다보면자주나오는것이바로사약입니다.여기서‘사’는줄사(賜)입니다.즉,왕이하사하는약이라는뜻이지요.결코죽을사(死)자가아닙니다.이런형집행의정식명칭이사사(賜死)입니다.죽음을명한다는뜻이지요.
—중략—
사약을받은사람은마시기전에무조건왕이있는방향을향해절을해야만했습니다.그리고사약을마시면바로피를토하며죽는모습이떠오르겠지만그렇게금방죽는것은아니고,약효가잘들게하기위해뜨거운방에앉아서천천히죽어갔다고합니다.129-131쪽중에서
옥사만을남긴임금-8대예종이황
예종은아버지인세조의기질을강하게물려받은임금입니다.그역시부지런하게직무를수행했고,세자시절의모습을봤을때재능면에서도부족함이없어보이지요.강력한왕권을꿈꾸었던점도세조와비슷합니다.하지만아버지의건강한몸을물려받지는못해그의치세는남이나민수와같은옥사로만평가받을수밖에없지요.조선역사에있어서그는지나가는인물이상이되기힘듭니다.이것또한천명이지요.141쪽중에서
수성의군주-9대성종이혈
성종은조선왕조내내성군으로추앙받았습니다.후대의신하들이왕에게자주하던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