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를 배우기 시작한 GE

4월 초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을 다녀왔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남한 면적 80% 정도 크기에 483만명이 산다. 미국 내에서 인구로 24위(캔사스, 캔터키, 루이지애나보다는 많고 앨라바마보다는 적다)에 해당하는 주(州)다.(1위는 캘리포니아 3880만명)

비교적 한적한 땅이지만 미쉐린타이어 미국 본부, BMW 생산공장, 보잉 조립공장과 더불어 브릿지스톤, 컨티넨탈타이어, 지티타이어(싱가포르) 등이 생산공장 등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비결은 나중에 다시) 유독 타이어업체들이 많아 ‘미국 타이어산업의 수도(首都)’라는 별칭도 얻었다. 월스트리트저널 관련 기사 http://www.wsj.com/articles/SB10001424052702304587704577335602200937084

그 중 가장 큰 공장은 GE(제너럴 일렉트릭)가 운영하는 세계 최대 발전기용 가스터빈 생산 공장이다. 공장 부지만 167만㎡. 축구장 160개 규모다. 가스터빈 연소 실험실, 기술센터, 신재생 에너지 사업부 등이 함께 있고 직원용 야구장과 축구장도 갖췄다. 공장 부지 안에 가스터빈(무게가 362t이다)을 외부로 나르기 위한 철로가 깔려 있다.

가스터빈 제조공장 전경

그린빌 가스터빈 제조공장 전경

가스터빈은 가스연료가 타면서 생기는 뜨거운 공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이 뜨거운 공기는 섭씨 1600도에 초속 491m라는 엄청난 압력으로 흐르기 때문에 터빈 날개가 이를 견디면서 발전량을 극대화하는 게 핵심 기술이다. 금속공학·물리학·기계공학 등에서 고도의 연구개발능력을 확보해야 뛰어들 수 있다.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가스터빈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은 미국 GE와 독일 지멘스, 일본 미쓰비시 등 손꼽힐 정도다.(프랑스에도 알스톰이 있었지만 지난해 GE에 합병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벌이지는 분야로 일본도 미쓰비시와 히타치가 지난해 합쳤다.) 

가스터빈은 1대당 최고 700억원이란 고가에 납품될 뿐 아니라 한번 납품하면 이후 보수 정비를 납품업체에서 수십년간 독점하기 때문에 수익성이 좋다. 이 보수 정비 등 유지 비용이 매년 터빈 값보다 더 든다고 한다. 가스터빈 세계 시장 규모(대형 터빈 기준)가 15조원에 달한다니 유지 비용까지 계산하면 연 30조~40조원 시장이 형성되는 산업인 셈이다. 

그린빌 공장에서 가스 터빈을 조립하는 노동자 모습

그린빌 공장에서 가스 터빈을 조립하는 노동자 모습

미래 주력 산업에 대해 고민 중인 우리도 새로이 육성 산업으로 키워보려 노력하고 있이지만 아직 이렇다할 성과는 없다. 기술 진입장벽이 높아서 그런지 정부도 별 의욕이 없다. 두산중공업이 국책 사업으로 정부 예산(총 1000억원)을 지원받아 개발에 애를 쓰고 있지만 어쩐지 힘겨워 보인다. 주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큰 관심은 없는 듯 담당자라곤 주무관 1명 뿐이다. 그나마 다른 업무와 병행하면서 맡고 있어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했다. “하나 뿐인 주무 공무원이 그리 모르면 어쩌냐”고 툴툴대자 예의 그 해명 레퍼토리가 흘러나왔다. “맡은 지 얼마 안돼서요…”(담당자가 얼마전 바뀌었다고 한다.)

사실 GE 그린빌 공장에서 더 주목했던 건 이런 생소한 가스터빈 산업 자체가 아니다. 그들이 최신 기종인 9HA(한국에서는 7HA로 통한다. 그냥 모델 이름이다) 가스 터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린스타트업(Lean Startup)’으로 요약되는 실리콘밸리식 조직 문화를 도입했다는 대목이었다. 

‘린스타트업’은 전에도 실리콘밸리 구루 스티븐 블랭크 인터뷰 때 접했던 용어. 엄밀한 시장 조사와 오랜 사전 연구를 거쳐 완제품을 생산하던 전통적 제조 방식에서 벗어나 신속한 외부 피드백(feedback)을 통해 빠르게 제품을 보완해가면서 점차 완성도를 높이는 전략을 가리킨다. 블랭크 제자였던 에릭 리스가 개념을 다듬어 전략으로 완성시켰다.  간략한 개념은 동아비즈니스리뷰 참고. http://www.dongabiz.com/GlobalReport/HBR/article_content.php?atno=1501017701&chap_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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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같은 유서 깊은 대기업은 솔직히 지들이 최고라는 생산자 중심  마인드가 강하다.(실제 그랬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이런 벤처기업식 사고를 이식하기란 쉽지 않다. 자기들이 고민하고 연구해서 최고 제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으면 소비자들이 환호해줄 것으로 착각하는 오만함이 깔려 있다.(삼성전자처럼)

그런데 ‘린스타트업’이라니. 

GE 임원들 앞에서 강의하는 에릭 리스.

GE 임원들 앞에서 강의하는 에릭 리스.

3년전 GE는 그룹 전체 차원에서 에릭 리스를 초청, 강연을 듣고 반응이 좋자 이후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린스타업’ 교육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처음엔 80명으로 시작했는데 점차 대상을 늘려 1000명, 앞으론 5000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도 단단히 매료된 듯 “모든 관리자(manager)는 ‘린스타트업’을 읽길 바란다”고 말했다. GE 내부 보고서 참조.  http://www.gereports.com/post/82723688100/the-biggest-startup-eric-ries-and-ge-team-up-to

리스가 이렇듯 ‘공룡’ GE에까지 영향력을 넓힐 수 있었던 데는 이멜트 회장 측근 그룹 중 하나이자 최고마케팅책임자(CMO)인 베스 콤스톡(전에는 NBC·CBS 등 유수 방송사에서 마케팅 책임자로 일했다고 한다)이 리스의 철학에 동감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GE 내부에서 혁신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물론 리더가 전폭적으로 신뢰를 보내기 때문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다.

베스 콤스택 GE CMO

베스 콤스톡  GE CMO

가스터빈 개발 과정에서는 이미 당시 부문장이었던 제프 슈니처가 소통과 협력을 중시하는 연구팀 문화를 조성하면서 뭔가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린스타트업’까지 더해지면서 혁신 속도가 빨라졌다.

그 결과, 보통 5년 이상 걸리던 가스터빈 신제품 개발 기간이 2년6개월로 단축됐을 뿐 아니라 연구비도 이전과 비교해 절반에 지나지 않는 2억5000만달러만 쓴 것으로 조사됐다. 고객 만족도도 높았다.

전에는 다 만든 다음, 고객들(가스터빈의 경우는 발전소) 반응이 시큰둥하면 그제서야 개선한다고 법석을 떨었는데(이미 완제품이라 비용과 시간이 더 걸릴 수 밖에 없다) 이번에는 불완전하지만 빠르게 일단 시제품을 만든 뒤 수시로 고객들에게 의견을 물어 보완하는 방식으로 개발을 진행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가스 터빈 뿐 아니라 항공기용 엔진 등 GE 내 다른 사업 분야에도 이 같은 ‘린스타트업’ 문화가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GE는 ‘세계 최대 벤처기업'(농담처럼 사내에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와이어드 http://www.wired.com/2014/04/how-ge-plans-to-act-like-a-startup-and-crowdsource-great-ideas/ 와 블룸버그에서도 주목했으며 http://www.bloomberg.com/bw/articles/2014-08-07/ge-taps-lean-startup-ideas-for-faster-cheaper-product-rollout 하버드비지니스리뷰에서도 이를 소개했다.  https://hbr.org/2014/04/how-ge-applies-lean-startup-practices/

이 같은 실리콘밸리 문화를 접목하려는 노력은 GE 내부에서 ‘패스트워크(Fastwork)’라는 새로운 구호로 진화했다. ‘더 날렵하게(leaner) 더 빠르게(faster) 고객과 더 가까이(closer)’ 조직을 개선(改善·일본어로 개선을 뜻하는 ‘kaizen’이란 단어를 벽에 써붙인 사무실도 봤다)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2의 식스 시그마’ 운동으로 불린다. 

이번에 만나본 상당수 GE 임원들은 이런 ‘패스트워크’식 혁신이 GE 미래를 바꿀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세상은 이제 그런 식(소통과 협업을 통한 민첩한 변화를 중시하는 실리콘밸리식 문화)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GE는 실리콘밸리에 소프트웨어 센터를 만들어 현지 인력을 중심으로 3000명을 배치하기도 했다. GE같은 초 거대기업도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업을 재창조하려고(Reinvent itself) 안간힘을 쓰는 점은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노력은 누구나 한다. 문제는 방향이다.

폴 엘뤼아르와 김현, U2를 좋아하고 저널리즘에 대해 성찰하는 자세를 유지하려 합니다. 사회학자가 되려다 어쩌다 기자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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