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흑인인데도 그래요 ?

 

 

월드컵 열기가 점점 달아오고 있다.  조블을 통해서 알게 된 남아프리카의 교민 박건용님도 현지의 월드컵 열기가 뜨겁다는 안부인사를 전해 주셨다.  월드컵중계는 SBS독점 이지만 다른 방송국들도 월드컵과 관련된 내용이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은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월드컵 뿐 만 아니라 올림픽 등 대규모 스포츠 제전이 열리는 동안 개최지에 상관없이 일부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테러의 가능성에 철저한 보안대책을 세우게되지만 이번 월드컵 처럼 사회 전반적인 치안에 대해 거론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월드컵이 개최되기 전 이지만 이미 우리나라의 일부 취재진들도 현지에서 곤혹스런 일을 당한 뉴스가 이어지고 방송국은 취재진들한테 불안한 현지 치안에 대비한 근무수칙까지 마련할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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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죠하네스버그 시내중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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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죠하네스버그 공항 인근의 게스트하우스, 시내는 치안이 좋이 않아 이곳에서 체류하였다. >

 

내가 지구촌 70개국을 여행하면서 현지의 치안 때문에 대중교통수단을 포기한 것은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았다.  혼자 오지를 배낭여행하면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지만 모르는 얘기다.  여행객이 조심해야할 곳은 오지가 아니라 뉴욕이나 모스크바, 멕시코의 밤거리다.  뉴욕에서는 해가 떨어진 후에 카메라를 메고 야경을 촬영하려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가려다 호텔직원으로부터 경고(?)를 받아 불과 세 블록 떨어진 거리인데도 택시를 이용했고, 멕시코시티에서는 Lonely Planet을 비롯한 여행가이드북마다 택시를 조심하라는 경고 때문에 호텔에서 소개 받은 택시를 전세내었고, 러시아를 친구들과 여행할 때도 렌트카와 현지 유학생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도 치안문제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10년 전 남아프리카를 여행할 때였다.  불과 열흘 남짓한 기간에 Johannesburg와 CapeTown 지역을 중심으로 짐바브웨의 빅토리아폭포까지 들렀는데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 보다는 무척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중 가장 치안문제에 신경을 썼던 곳은 Johannesburg와 Capetown의 도심지역이었다.  Capetown만 해도 낮에는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고 밤에 인적이 드문 곳을 피하면 되었는데 Johannesburg의 일부 지역은 대낮에도 위험하다고하여 도심거리의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렌트카의 좌석에 앉아 시내를 둘러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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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죠하네스버그 교외의 흑인거주지역 Soweto >

Johannesburg 시내에 들른것은 남아프리카여행의 마지막 날 이었다.  Johannesburg 공항에 도착하여 렌트카를 알아보니 승용차와 승합차의 비용이 차이가 나지 않아 사진촬영에 유리한 조건을 지닌 승합차를 선택하고, 마침 시내로 들어가는 승객이 있어서 그들을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는 조건으로 요금을 할인 받으니 큰 돈이 들지는 않았다.  함께 동승한 승객은 흑인으로 커다란 보따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니 장사꾼으로 보이는데 그의 목적지는 Johannesburg의 도심 한복판의 흑인거주지역 이었다.  렌트카 운전기사는 중년의 흑인 이었다.  남아프리카의 인구분포는 백인이 10%, 흑인이 80% 절대다수라고 하지만 Johannesburg의 도심거리에서는 백인은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운전기사의 얘기로는 전에는 백인이 도심에 거주하고 흑인들이 시외에거주하였지만, 흑백차별이 철폐되고 난 후에 흑인들이 시내로대거 유입되면 서백인들은 교외의 신도시로 이주하여 도심거리에는 백인을 거의 볼 수 없다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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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전기사가 카메라를 노출시키지 말라고 하여 창문에 걸쳐 놓고 어림 짐작으로 구도를 잡아 촬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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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죠하네스버그 흑인밀집거주지역 Soweto의 공중화장실 >

 

동승한 흑인 승객의 목적지는 상가가 밀집한 좁은 거리였다.  기사는 골목까지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흑인 승객은 짐보따리가 있는데 큰 길에세 워주면 무엇하러 택시를 타느냐며 싸우듯 대들었다.  결국기사는 골목으로 들어가 승객을 내려 주었지만 운전기사가 내 목에 걸린 카메라를 내려 놓으라는 얘기에 관광객이 탑승한 차가 이 지역에 들어온 것이 흔치는 않은 일 이라는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그 승객을 내려주고 골목을 나오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흑인 기사의 말이 의외였다.

“아! 이 거리는 정말 들어오기 싫은 곳 인데……”
“왜요…당신은 흑인 인데도 그래요?”
“무슨 소리요? 내가 흑인인것과는 무슨상관에요!”

남아프리카의 흑백갈등……
남아프리카는 호주의 백호주의와 함께 오랫동안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 인종차별주의 정책)를 지켜온 나라였다.  호주는 훨씬 전에 백호주의를 철폐하고 아시아의 유색인종들의 이민을 받아 들여 이들이 사회 밑바닥의 이른바 3D업종을 맡아주어서인지 예전과 같은 차별정책은 없다고 한다. 남아프리카도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지켜온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고 1994년 흑인 민권운동가인 만델라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어 오랜 흑백갈등을 씻어낸듯 하지만 워낙 흑백간의 뿌리 깊은 갈등은 밑바닥에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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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죠하네스버그 외곽의 신도시 Sandtown >

 

흑인들에 의한 도난, 강도, 살인 등의 테러행위는 여전히 남아 있고 백인들은 여전히 흑인들을 꺼리지만 흑인 렌트카 운전사의 항변은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남아프리카의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흑인이 백인한테 저지르는 범행이 아니라 없는 자가 있는 자들한테 가해지는 것 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없는자는 흑인뿐이고 가진자들은 백인 뿐이란 것 이다.  그래서 자신이 흑인이라도 깨끗한 도요타 승합차를 몰고 카메라를 소지한 외국인 관광객을 태우고 있는 한 가진 자에 속하게 되니 그들의 강도 대상이 된다는 설명 이었다.  그의 얘기를 듣자니 얼굴이 화끈해지는것을 느꼈다. 내 자신이 지구촌 구석을 다니면서 인종차별의 편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마당에 나도 모르게 인종차별적인 얘기를 한 셈이 되었다.
어쨋거나 아직도 남아프리카의 치안은 불안한가보다.  세계인의 축제에 많은 외국인들이 남아프리카에 몰려들텐데 치안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소리가 여전하다.  남아프리카의 치안문제가 거리에만 국한되는것 만도 아닌 것 같다.  북한과 나이지리아 경기에 관중이 다쳤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한국축구선수단의 공개훈련일정이 취소 되었는데 그 이유가 같은 시간에 열린 영국팀의 연습경기에 경비인원을 집중시켜 한국팀 행사의 치안을 책임질 수가 없다는 통고를 받았기 때문 이라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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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이프타운 근교의 Boulders Beach 고급주택가, 남아프리카의 두 얼굴이다. >

이 정도라면 월드컵을 참관하러 남아프리카를 찾는 축구팬들은 무척 조심해야할 것 같다.  아무쪼록 세계인의 축제에 흠이 되지 않도록 큰 사고 없이 월드컵이 치뤄지기를 바랄 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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