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회장과 나(복구파일)

대우그룹김우중회장을상기하며

어린시절어려운집안살림을돕기위해신문과냉차를팔때도어떻게하면1등이될수있을까를고민했다.경기고와연세대를졸업했다.꿈과도전,전문성,희생,근면,승부근성은’대우신화’를만든김우중을상징하는단어들이었다.

시간을아껴잘시간에비행기를타고1년에200일을해외에서보내던일벌레최고경영자는’세계경영’의주창자였다.1970년대부터월남과동유럽,아프리카에진출해외화를벌어들인앞서가는기업인이기도했다.

<100억불수출의날수출유공표창받는김회장>

세계경영`깃발’..화려했던지난날=지난67년김우중전회장의대우실업설립으로`태동’한대우그룹은82년㈜대우로사명을변경하고그룹회장제를도입,본격적으로그룹의모습을갖췄다.

사훈:도전,희생,창조

육대주오대양은우리들의일터다

1992년북한정무원김달현부총리의인천대우중공업시찰좌로부터당시김호철(상무)본부장,김우중회장,

수행비서,필자노당큰형부(김부총리는김우중회장의에스코트를받으며문에서나오는중)

지난88년동베를린에국내최초의동구권지사를세웠던대우그룹은93년3월22일`세계경영’을선언,과거사회주의권국가였던폴란드,헝가리,루마니아,우즈베키스탄등지에서자동차공장을인수하는등본격적인영토확장에나섰다.

93년말185곳에불과했던해외네트워크는98년말에는모두589곳으로늘어나그야말로세계곳곳에대우가흔적을남기지않은곳이없을정도였고95년에는첫남북한합작투자회사인민족사업총회사를북한남포에설립했다.

98년에는쌍용차를인수,자동차부문의사업확대를꿈꿨다.

98년연말대우는계열사41개,국내종업원10만여명,해외사업장외국인종업원21만9천명,해외법인396개사의공룡재벌로성장했으며자산기준으로삼성,LG를제치고현대에이어재계2위로올라섰다.

당시대우중공업협력회사협우회정기총회모습(장소:호텔송도비치인천)멀리우측이필자

대우그룹은2000년께총650곳의해외사업기지를구축하고해외현지매출57조원을포함,매출액138조원을달성하겠다는야심찬중.장기비전도수립해놨었다.

대우그룹의몰락과해체=그러나대우그룹의이런외형적성장세속에서도그룹내실에대해서는회의적인시각이많았다.

아울러주로외부차입에의존해설립했던해외사업장중제대로이익을내는곳이별로없었다는것도이런우려를뒷받침했다.

`외화내빈’,이것이한국경제의압축성장의영욕을함께한뒤그룹해체암운의`서막’이서서히드리워지기시작한대우그룹의현주소였다.

110억여달러에달하는대우그룹의해외투자는외환위기를맞으면서엄청난부담으로`부메랑’이돼돌아왔지만대우그룹은`세계경영’을포기하지않고국.내외사업장들의운영자금조달을위해차입금을계속늘려갔으며결국심각한유동성위기에직면하게됐다.

대우그룹은98년12월8일41개계열사를10개사로감축하는구조조정세부계획,99년1월21일㈜대우의수영만부지매각등의재무구조개선계획,4월19일대우중공업조선부문매각,김우중회장보유주식매각대금3천억원출연등의강도높은구조조정안을잇따라발표,위기탈출을모색했지만시장의신뢰는회복불능상태였다.

사회적분위기가이미불신임으로가시화되었던김회장에겐어떠한몸부림도재기에도움이되지않았고김대중정권에선모든것이축출로결정이난상태였다왜그랬을까?

에~~없애버려뿌러야된다고생각해버려요

삼성과진행했던삼성자동차인수빅딜협상도6월말결국무산됐다.

6월말대우사장단전원의사표제출에이어7월19일대우그룹은10조1천억원에이르는김회장의전재산담보라는극약처방을제시했으며곧이어채권단이대우에신규자금4조원지원을결의,대우사태는`찻잔속태풍’으로그치는듯했다.

그러나정부가직접나서대우사태종합대책을내놓은데이어채권단이8월26일12개주력계열사에대한7억달러지원과함께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전격단행방침을발표,대우그룹은그룹해체라는운명의순간을맞게됐다.

이미25곳으로줄어든전체계열사가운데㈜대우,대우통신,대우중공업,대우자동차,대우자동차판매,대우전자,대우전자부품,쌍용자동차,대우캐피탈,경남기업,오리온전기,다이너스클럽코리아등12곳이워크아웃대상에포함됐다.

대우증권등나머지13개계열사는독자적회생의운명에처하게됐다.

같은해9월6일㈜대우,대우자동차를제외한10개사가은행관리에돌입,그룹회장으로서의김우중회장의`파워’는유명무실해지고워크아웃에서제외된곳들은계열분리를통해속속떨어져나가는등그룹`공중분해’의긴박한나날들이이어졌다.

99년11월김회장의사표가정식수리되고남대문대우본사집무실도폐쇄돼김회장은대우와는완전히인연을끊게됐고연말대우구조조정본부의해체와2000년초`대우계열구조조정추진협의회’가발족하기에이르렀다.

필자는1974년당시한국기계공업(주)임시공으로입사,6개월뒤사원으로발령근무하였고

41세때의필자

그리고57세때

1976년대우중공업으로개명하고1999년11월까지그리고2007년4월까지는대우자동차판매영업일선에서34년반평생을대우그룹에서김우중회장과회사생활을해왔다

물론그는그룹총수로필자는일개간부로서있는위치는달랐지만회사의운영을위해기울인노력은서로다르지않았을것이다

60년대초자본금500만원의조그만봉재가공품수출회사를시작으로1967년사명을대우실업으로바꾸고탁월한경영능력을인정받아정부는은행에서거액의돈을빌려주며꺼져사그러져가는대기업여러개를인수하게하였다이것이김회장이책임져야할계속누적되는엄청난채무의시작이되었다

그러고당시의사회분위기는심각한노사갈등의해결을위하여기하급수적인운영자금(거의근로자임금인상및복지후생에필요자금)을투입을하였고정부의주도하에앞뒤없이오로지노사무분규와수출만이살길로인정하고있었기때문에

무분규타협을위하여인건비로퍼부었던관치주도하에지원받은차관금액은도저히청산이어려운쪽으로깊이깊이빠져들었고

사진은필자가원가절감방안에대하여설명하고있는모습

비례하여생산성은임금을따라가지못하고

그룹내몇개회사는노사분규로인하여이미회생불가도태되는현상을예지할수있었다

지금김우중회장이안고있는수십조원이라는막대한빛은과연그가사욕을위하여숨겨놓은것일까?

그것을나는이렇게생각한다그돈의과반수는이미이십여년간수십만근로자들의뱃속에…

그리고나머지는김회장의"세계는넓고할일은많다"는경영의글로벌화로인한해외투자비의미회수분이라고생각된다

김우중회장이사면되었다는이야기가들려왔다

어서복권되어자의던타의던국민에게물의를일으킨것에속죄하는마음으로힘차게재기하고세계를품안에넣고일하는그의정렬적인모습을다시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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