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8월1일(토)
아버님께서운명하신후6개월이되어오고,
회사에서는내일부터하기휴가간다고모두가들떠있는데본부장실에서구매본부장과
기획부장이난처해하며오전내내내눈치를보는것이아무래도내신상에관한일이있는것같더니
아니나다를까?
"무슨안좋은일있으세요?"
하고묻는나에게잠간들어오라고하여들어가본즉두분이어렵게입을열어설명을한다.
그룹사직원1,000명을여러개의회사에서무작위로추천에서대우자동차영업으로
파견명령을냈는데내이름이그곳에포함이되었다.
(서인천지점판매과장재임중)
영업직이라하면모두들寒職으로생각하며직장을그만둬야좋을사람들을모아발령내는곳
쯤으로생각했고"이제그만두어야하는구나"하고자포자기하고사표를던지기도
할정도로기피하는직무였다.
그도그럴것이영업으로발령나는사람들은대부분현장부적격자,노조활동하다퇴출된자,
다툼이나업무상과실로징계를받는사람들이어느날갑자기가는곳이기때문이었다.
나역시이게웬청천벽력인가?이제올것이왔구나,이제그만두라는것이구나,
하며휴가기간내내많은고민을했지만무조건그만둘수도없는일이었기에
마음을추스리고일단부디쳐보기로마음먹고이를악물고버틸수밖에없었다
휴가를끝내고용인연수원으로5박6일영업사원교육에입소를했다.
대우자동차를살리기위한김우중회장의의도는그룹사에서관리직사원1,000명이각자능력을
발휘하면하반기에승용차10,000대를더판매하고업계2위를탈환하기위한방침이었고
그계획(업계매출순위H,K,D를H,D,K로전환)은성공했던것이다.
또한파견자가12월말까지10대를판매하고원하면원직복직을해준다고공언했기에
모두들열심히영업을했다.
또한다른영업사원들은회사에서주는견적서를복사해썼지만나는구태에서탈피나만의
견적서를거금을들여인쇄소에서독자인쇄하여사용하는등적극적인영업을해나갔다.
그러나교육이끝나고9월1일부터영업활동을개시해보았지만역시나계속절망의나날이었다,
실적안잡는티코를필규가9월4일출고하여첯차를팔았고10월16일까지
가평이정호씨에게르망한대만팔았을뿐실적이부진하여아침마다지점장의성토에움츠리며
영업에회의를느끼고자포자기하고있던어느날,
10월17일할일도없고오라는데도없어대우중공업낚시회총무로활동시한번출조했었던김포시
대곶면덕포수로의작은목로집을세일즈가방을들고찾아갔다.
노랗게변한들판과작은수로를끼고있는조용한시골마을의초가집목로식당.
오늘은여기서시간을보내기로작정하고르망,에스페로,티코의카다로그를주인아줌마에게
건네주고소주한병과안주로두부찌개를시켜놓고그곳에홀로앉아한잔,또한잔마시면서
술잔을비워나갔다.참으로황량한세상을원망하면서행여나한대라도팔수있을까하며
아줌마의눈치를살피면서생각해보니처지가말이아니게처량해진내인생이다
내처지의궁색함을곱씹으며오만가지잡다한생각을정리하던중…
언듯창문에있는초록색뚜껑의갈색농약병이눈에띄었다,
아~농약이구나,하며소주한병을더주문하여홀작홀짝마시다가자꾸창문의농약병으로
시선이가는것을느끼며애써고개를돌려보지만,쥔아줌마는뭐가그리바쁜지주방에서
자기할일만하고있었다.
저농약을마시면어찌될까?속이뒤틀릴까?피를토할까?아마도무척괴로워서뒹굴겠지?
내가저걸먹으면아내와두아이는어찌되지?아내와두아이가나없어도잘살아갈까?
제기랄소주두병이간에기별도안오는군…
제기랄…능력이없어차도못파는나같은넘이살아서무슨일을한다는말인가?
잠시고개를떨구고깊은시름에잠겨있다가가까이가서약병에붙은표시라벨을궁굼하여
보려고일어서는데삐삐의진동이울려왔다,
삐삐삐삐~~삐삐삐삐~
032-422-4688누구며웬전화일까?설마자동차산다는전화일까?하면서주인아줌마에게
200원을주고수화기를다이얼을돌려통화를했다.
"여보자기어디야?여기로빨리와"
처갓집에서아내가보내온삐삐였다,그리고처외숙부의목소리로바뀌며
"여보게사위어딘가?빨리처갓집으로오게"
"무슨일이신데요?"
"아이사람아좋은일있으니까어서와봐"하며전화를끊는다.
한참걸어나가택시를타고인천십정동으로달려가며제발하느님이도와서차를계약하는
것이길은근히기대하며집으로올라갔다,모두모여있는처갓댁거실에서
전화하신큰외숙부님의배려로르망GTI를견적을내는중에외숙부께서한마디하신다,
"이사람아떨지말고천천히써,나다른대로안가"
계약서를쓰면서내가그렇게떨고있었다,그러나손만심하게떨고있는것이아니었다,
감격에겨워내눈이뜨거워지고있었기에그것을숨기고자엄청애를썼던것이다.
(눈물을참으며썼던18년지난외숙님의르망견적서)
실적을올려주시었다,
나는친지분들중에서특히처외숙부의큰도움을받았던것을영원히잊지않는다고
지금도이야기한다.
그렇게판매한르망을필두로12월31일까지4개월간티코6대를포함총18대를판매했다.
이실적은영업초보자로서는꽤괜찮은실적이라고했다.
나는티코던슈퍼싸롱이던고객에게차를인도할때마다"안전운전"또는
"새차구입을축하합니다"
라고쓴리본을단꽃다발을선물하며고객의신차앞에서기념사진을찍어나눠드리는
영업방식을끝까지지켜나갔고
이소문은대우자동차판매본부까지도퍼져나갔다.
(그동안고객에게판매하고인도하며찍은앨범)
(2007년환갑은퇴시까지판매한견적서및계약서모음,약1,000여장쯤되는것같다)
(앨범속의사진들,좌상;첯차르망을가평에인도,좌하,우상;모든고객이꽃다발을받았다,
우하;진도산업에5대의차를판매하고고사를차려주었다)
인생은유한한건가?
아니면살아가는방법이무궁무진한것인가?
10대를팔면원직복직을할수있었지만일언지하에고사하고자동차영업에남아
2007년4월61세까지쎄일즈맨으로서숨가쁘게뛰었고열심히살았다.
내생전백화점을가본적이없고,메이커제품은아무리좋아도비싸기에멀리했고속칭길거리표
의상이나구두를싼맛에이용했고,당구와고스톱을안배웠으며두아이학원을보낸적이없다.
30여년간누구나즐기던바캉스는간적이없고,그야말로집에서休家하며받은휴가비는
아내에게주며그돈으로한여름집에서배뚜드리며편안하게쉬는것이
글자그대로진정한休家였다.
그냥그렇게평범했지만가치관하나는확고하게
나라가있기내가있고,
회사가있기에내가편히살아나왔고,
이순신장군과박정희대통령의애국애족정신을기본으로정해아이들을가르켰으며
나또한그렇게몸으로보여주며살아왔다.
복잡한서울은잘생긴내코를눈감으면베어갈까봐가기를꺼렸으며,
생전에아버님의가르침대로길이아니면가지안았고,배고프거나춥거나당장꼭필요하지
않으면아무리값이싸도사거나낭비하지않았다.
그렇게살면서
나에겐현명한아내의내조가있었고,그덕에남들이부러워할만큼멎진인생을살아왔다.
대우중공업사격단창설하며크레이사격도했고,국궁김포시대표선수도했고,
승마도배워시내의국도를타고다니기도했다.
또한여가선용으로민물낚시도즐겨했다.
이제는나와아내가노후에몸담아쉬며손자손녀들이와서놀고싶어하는청정자연의
푸른숲속,
박문규의정원(휴게농장및낚시터)을만들고자생각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