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렇게 살았다 최종회 박문규의 정원
BY 노당큰형부 ON 8. 4, 2010
생각해보면생각할수록강제로수용당한억울함에울분이쌓이고속이터졌지만
두아이의앞길이창창하고또한직업군인으로서
국록을먹고살기에청와대로찾아가려던생각을버리고다시한번보란듯이오똑이처럼
일어서기로했다.
그리고국민을기만하는자들이가난하고힘없는국민에게지은죄에따른엄중한
심판을받고처절하게울부짖는末路(말로),그모습을꼭보리라하고마음을먹었다,
이천하에비러먹을개만도못한xx들~~~.
(진돗개덕실이우,족보없는백구좌)
2000년9월말경,
안사람과여기저기돌아다닌끝에드디어눈에뜨인곳
동네에서도신경안쓰고내버려둔폐가가있었다.
이토지를평당35만원씩총359평의토지를사는데도돈이부족해텃밭150평중
대지가있는75평을팔고75평은텃밭으로쓰고209평에토목공사를시작하면서
건축비5,000만원을대출신청을했다.
전국의지방을돌아다니며다세대주택과빌라를건설하고있는처남의친구광현이에게
공사를맡기기로한것은그가처남으로부터모든이야기를듣고나의마음을이해하고
있었기에가능했다,
그가이모든공사의설계에서부터토목공사와건물,그리고전기와수도등모든것을끝내주는
조건으로하면서평당건축비150만원으로32평을짖기로했다.
"나는인천에서38평을억울하게수용당하며보상금은얼마를받았고,집은무슨무슨
돈으로지으며입주할때는냄비와숫가락그리고이불만갖고입주해도무리없이
살수있게만해주면된다"
"알았어매형집을지을때자재가어쨌다거나뭐그런걸쓰느냐고묻거나
따지지만마그러면150만원에적벽돌과스라브기와집으로건축비를마춰줄께"
"아또하나보일러는심야전기로해주고시작할때와끝날때가다르게
별이상한방법으로추가비용발생은인정안한다,
그러면그자리서공사중지한다알았지?"
"알았어형~"
구두계약은이렇게대충했지만토목공사가시작되는날공사현장에서광현이와마주앉아
계약서를쓰자고했다가이내포기하고말았다.
그럴것이법으로보호되어야할사유재산이등기권리증이있어도보호받지못하는
더러운세상인데계약서가무슨소용이있겠는가?
광현이와처남,그리고나는서로믿기로했다.
옹벽과심야전기보일러가설계이후에변경되었으므로너무비용이많이드니
고려해달라고했고나도꽉막힌사람이아니므로추가비용을인정해주기로했다.
집을짖는동안어머니와동생,그리고가족들이찾아와참관하며즐거워하는
모습을보면서느끼는기쁨을누가알까?
오래전에전원주택과가든을지어본경험이있는키가6척인매부가천정이너무얕다며
"천정을아파트처럼얕게하지말고벽돌두장정도더높이라"
고하는등조언을아끼지않았고
또한동창이며절친인준모는인천서路線(로선)버쓰를타고자주찾아와벽돌한장,
기와한장까지같이들어주며자기집일처럼구석구석신경을써주었다.
신청한대출금이나오기전이라공사가진척되면서자재비가바닥이났었을땐정말
남감하기도했었다.
돈이없어서공사가중단될위기에처하자,광현이의독촉에난감해하다가
어렵게말을꺼낸곳이인천의자동차용품거래처인시트카바업소엑센트였다.
김광천대표와그부인에게어려운부탁을했더니
"박소장님같은분안빌려주면누굴빌려줍니까?"
하며바로은행에서500만원을꺼내다주며대출금이나오면갚으라며무이자로빌려주었기
얼마나고마웠던지대출금이나오자마자찾아가바로갚았고이자를한사코고사하기에
좋아하는담배한보르만선물하고말았다.
가끔찾아가점심으로식사를주문해주면그마저도돈을못내게하였던
그부부는나에게는이시대에보기어려운휴머니스트부부였다.
"김광천사장그리고사모님그때정말고마웠어요~^^"
돈을너무부족하게시작한공사지만이렇게음으로양으로도와주셨던분들이있었기에
이제박문규의정원은서서히만들어지고있었다.
2000년12월4일
드디어입주하는날,
무쏘로흰둥이덕실이를실어다수돗가에묶어놓고다시검둥이(깜상)도실어와매어놨다.
아내는마티즈로인천김포를왔다갔다하며바쁘게이사짐을정리하고
나는나대로보일러손보기전기손보기를했고
그리고광현이와공사미불금을계산하고지급해야했다.
실평수35평/평당/150만원=5,250만원여기엔옹벽비용,심야전기보일러비등이포함된
가격이었다.너무싸게잘지었다,
광현이가손해는보지않았을까걱정하는중인데200만원만노력의댓가로달라고하기에쾌히
수락하고후일그돈을지급했다..
집을다지어놨더니사람들이우리집을전원주택이라고이름을붙여주면서부러워한다.
그리고내손으로나무,잔듸,돌등을정리하며조경을가꾸고2~3년이지난후부터나의집은정말
작은전원주택이되었다.
(사진현재의박문규의정원)
좌상;마당에주차된차와잔듸밭,우상;손녀와며느리,그리고제수씨가대추를줍고있다.
좌하;장차투스타(小將)장군이앉게될장군바위에서가족들과삼겹살오찬,
우하;가족형제들과밴댕이파티중.
(상;주차장과잔듸밭,하;대문에서본전경)
2002년12월15일
이집에서큰아이를장가보내고알뜰하고예쁜며느리를맞아손녀와손자를얻었고
2010년6월5일
둘째아이도아버지끼리만나친하게지내다가그댁의예쁜규수와결혼을했다.
나는이두형제가딸아들구별말고손주를그저대여섯명만낳아준다면좋겠다는생각이다,
왜냐하면박문규의정원은내손주들뿐이아니라모든아이들이마음놓고즐기며뛰어놀수있는
곳이기때문이다.
(작은며느리)
(신랑신부작은아이부부)
이제아내와나두식구는이세상을하직하는그날까지의
여생을어디에누구에게도기대살지않고살아가고자노력중인데아이들을포함한
많은이들이필자가모아둔재산이있는줄잘못알고
그동안애많이썼으니이제는편하게(?)쉬라는말들을자주한다,
사실은그게아닌데….ㅎ
한동안나는대우중공업에서자동차영업으로파견될때절망과번뇌속에서그렸던계획,
내인생목표인박문규의정원을향하여앞으로나가는중이다.
그것은대충1,000여평의연못과300여평의텃밭그리고700여평의정원엔마굿간과
양지바른뒷뜰에10평정도의가족납골당을만들고
마당엔우리가족들차20대쯤주차하고
(지금은좁아서승용차7~8대밖에주차못하고어떤땐두세대정도를외부에주차하는일이있다)
지하엔손주들을위한
4평정도의노래방도있는아담한30여평의집을다시한번더짛는것,
이것이내평생그리던
박문규의정원인것이다.
전편에서말했드시
나의이계획은아내와아이들이반대만하지않으면현재실현가능하다고믿고있으며
아내에게내계획을자주이야기하고있다.
박문규의정원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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