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잊지못할 6.25피난길(5)

7월2일

조치원에들어왔다.기찻길(경부선)옆숲길을따라계속가고있었다,

피난민중몇가족은청주로가는사람들이있었고그들과같이가게되었다

청주는50리(20km)정도만더가면된다고한다.

우리는청주에서직접보은으로안가고피발령(피반령)고개를넘어회북면(회인면)으로

간다며어른들끼리말을통하며앞서거니뒤서거니하며길을재촉했다.

이제한나절만더가면그들의고향인청주또는보은,상주,미원으로뿔뿔히헤어지겠지

그러다공산당놈들이청주까지처들어오면또피난을가거나

아니면고향을지킨다고그곳에남아있을것이다.

여전히내오른쪽귀에서는투명한갈색진물이계속흘러나와엄마가까맣게바랜

이불솜을뜯어성냥개비만한막대로솜을감아닦아준후완두콩만하게

솜을뭉쳐막아주며그렇게버티며지나가고있었다.

"문규야귀가아프지는않지?"

"응귀가진물만나오구간지럽기만해~"

신기한것은귀에서진물이나올땐그전에몸살감기가들어참지못할통증이

있어야함에도피난길에아직그렇게아픈적이없었다,

나도엄마도그런생각을하고있었다.

우리의행렬은어느사이기찻길에서멀어지며큰신작로를통하여청주로부지런히

들어가며사방으로흩어지기시작했다.

청주는피난민도별로없고가끔군인들이우리가온길의반대방향으로줄을지어

올라가는모습도보이고장교인듯한군인들이먼지를날리며타고가는찌푸차도있었다.

나는그찌푸차를보면서힘센우리아버지는맘만먹으면군인몇명은단숨에때려주고

저차를뺏을수있을거라생각하고말했다.

"아버지저찌푸차빼서서우리가타고가면좋겠다,엄마그치?"

아버지가끝까지힘들게구르마를끌고가는것이나는정말로불만이었었다

뒤에따라오는다름사람들도웃고있었다,

참으로황당한꼬맹이가아니던가?

아버지와엄마도기가막힌다는표정이다.

"아버지이담에내가크면저런찌푸차두대를뺏어올거야그래서아버지한대

엄마한대줄께그때까지기다려"

지금은기억이없지만나는충분히이런말을하고도남았을정도로별났다고했다.

(국군은북진하고피난민은남으로남으로;자료사진)

시간은흘러가고우리의피난도시간이갈수록고향과가까워지고있다.

몸은지쳐서배는허기지고다리는힘이없고발바닥엔물집이여기저기

생겨아물지않고재발하고있었으나

고향이가까워올수록고난한피난길이지만살수있다는희망에묵묵히구르마를

끌고가는아버지와엄마의모습은이세상어떤모습보다믿음직하고장엄하였다.

나는그런부모의자식으로태어난것을행복해했고자랑스러워했다.

조금은큰냇가(지금의무심천)에도착했다,어느듯땅거미가지고있었고눈앞에는

멀리높다랗게여러겹으로겹쳐있는시커먼산등성이가가로막고있었다,저고개가

피발령이다,피발령저편회인이아버지의고향이라고했다.

이밤을쉴자리로무심천을건너서평평한자리를잡아거적을깔고앉아엄마가

저녁끼니를꺼내어놓았다,

오늘은주먹밥3개,감자3개그리고소금과아버지가지금막떠온시냇물이다.

나는엄마가깍아주는생감자만두개를먹고그자리에잠이들었다.

얼마나잤을까?

온몸이흔들리고무슨소리가나는것같아눈을떠보니아버지가엄마와

피발령(피반령)고개밑에까지와서그위에서자고있던나를네려놓는중이었다.

너무힘들어좀쉬고새벽에피발령을넘기로하고다시이곳에서멈춘것이었다.

피발령

피반령(皮盤嶺)이다,청주에서보은군회인면으로가는험한고개다.

보은에서속리산법주사로가려면구비구비말티재를넘게되는데

이피반령도말티재수리티재와함께충청북도에서3대험한고갯길로꼽히는

길로이고개의전설이몇가지가있으나여기서는나의피난이야기만하고자한다.

칙칙한밤,

사실각종풀벌래소리와이상한산울림소리그리고젖어드는한기와적막한공포에

우리가족4명만이이고개를넘는다는것은너무무섭고힘들었기에할아버지할머니가

계시는늡실(회인면늘곡리)을약25여리앞두고발길을멈춰야했다.

저피반령고개깊은숲속에서우리가넘어오기를기다리는죽음의손길이있을것같았다.

그래서아버지는더나가지못하고여기민가의마당한편에멍석을깔고이불을폈다.

단숨에가면25리(10km)정도는아무리언덕이라도3~4시간이면갈수있는거리…..

같이가는일행이라도있기만했다면서로의지하며고개를넘어가

오늘밤에는이슬을맞지않고꿈에그리며힘들게달려온고향집에서잠을잘수있으련만

첩첩산중오지마을(회인면늘곡리)을향해험한피반령고개를넘어가는

사람들이하나도없었다.

그동안가족과살아남기위하여남으로남으로처저하게달려온8일간이었다.

아버지와엄마의발바닥은온통짖물러터져여기저기허물이벗겨졌고

만신창이가된그곳은누런진물과고름이맺혀흐르고있었다.

아버지는때때로붉고고운흙가루를한주먹씩주어다그상처에뿌리며딱지가빨리앉도록

고무신을벗고걷기도하고,또는도랑물에담그기도하며아픔을참고거의500리길,

인천에서회인을이렇게걸어서피난을내려온것이다.

이제날이밝으면저험한고개를무거운구르마를끌고단숨에넘어가실아버지와엄마.

엄마가이불에서뜯어낸솜으로내귀속에진물을닦아주는시간에나는동생이

물고있지않은엄마의한쪽젖꼭지를만지작거리며잠시후잠이들었다.

7월3일피난9일째날,

먼~산동녘이밝아오기도전에아버지의재촉에아침을끝내자마자

우리식구는급히피발령고개를오르기시작했다,

피발령을구비구비돌고돌며한구비가서한참쉬고또한구비돌아서한참쉬고하면서

구르마를힘있게쥐고묵묵히고개꼭대기를향하여위로위로끄는아버지의얼굴이

일그러지고부룹뜬두눈은빨갛게충혈되어밖으로튀어나올것처럼보였다.

메주콩만한땀방울은땅에떨어지며튀었고

엄마또한뒤에서헉헉거리며구르마를미는데버선도신지않은땀에젖은발이

자꾸신발에서쏙하고미끄러져나올것같았다.

큰길이긴하지만비가오거나눈이오면길이막힌다는길,움푹,움푹파이고

모나고뾰족한돌맹이들이무수히많았다,

그것들은얇디얇은고무신바닥을통하여짖물러터진발바닥을찌르고박히는

심한통증을이를악물고참으며얼굴을찡그리고앞으로나가고있었다.

(피반령;길가운데에서왼쪽으로정상으로오르는길)

날이많이밝아지고우리뒤로한가족인듯한무리들이등짐과머리짐을이고쉬엄쉬엄

우리들을따라올라오고있었다.

저들도밤에는쉬고날이밝기를기다려출발하는것같았다.

한참을그렇게나가다가잠시쉬는중에아버지가숲으로들어가더니몇가닥넝쿨을걷어와

아버지의양발에신발과함께감고엄마발에는동생의귀저기를한장찢어서감아주었다.

내가물었다.

"그거발에왜하는거야?"

"응~이거신발이얇아뾰족한돌맹이가자꾸발을콕콕찔러서아프지말라고감는거야"

"그거하면돌맹이가안찔러?"

"응돌맹이가안찔러,그리고찔러두안아파"

나는꼬치꼬치물으며나도해달라고졸르다가아버지한테꿀밤을한방얻어맞고는입을닫았다.

아직도산꼭대기는저기만치가까와지고있는데우리는중턱을넘어가고있었고우리의뒤에

따라오던사람들은안보이는것이어디앉아서쉬는것같았다.

아버지의걸음은엄청빨랐다,경사가조금가파른곳에서는내가구르마를밀지않아도

엄청잘가고있었다.

얼마간을그렇게힘들게올라가며조금쉬며물한모금마시고,

또잠시올라간후물한모금마시기를몇번이나했던가?

아버지의목구멍에서는헉헉거리며숨쉴때마다쇳소리가나고있었고나와함께

뒤에서말없이영차영차하며구르마를밀던엄마도이제는힘에부쳤는지..

헉헉거리는숨소리를내며매마른목안으로있지도입안의침을힘들게넘기고

"문규아버지~너무힘들어~좀쉬었다가요~더못가겠어요~"

하고들리지도않는작은소리를낸다…

잠시구르마에서나온아버지가뒤로와물을한바가지퍼서엄마에게마시게하고

아버지도마시고나도마셨다.

"정말고생많았어자기,고향이가까우니이제조금만쉬고

내리막길이니까자기는구르마를타이제부터는내가혼자끌고갈께,

이제한시간이면아버지(할아버지)와점심을먹을수있다구"

9일간의피난길이여자인엄마에게얼마나힘든여정이었는가젖먹이하나는업고

4살박이큰놈은병약한몸으로신경써서보살피지않으면쓸어지고말아이를다독이며

지금까지피난구르마를혼자끌고간적도있었고쉼없이끈질기게밀고왔다.

밤낯을가리지않고한데잠을자며보리죽끼니라도한번도제데로배불리

차려먹지도못하고묵묵히남편하나믿고따라온500여리길이었다.

아니이리돌아가고저리피해가고꼬불꼬불600리길은되었으리라…

얼마나힘이들었으면중간에이런생각도했었다고했다.

차라리여기아무데서나편한곳에서발붙이고살자,

그리고인민군이오면시키는데로하면죽이지는않을것이고

잠도집안에서편히잘수있을것이며하루따듯한죽이라도한끼는먹고

살수있지않을까?

어찌보면이런피난고생은안해도되는것인데공연히사서고생하는것은아닐까?

등등참으로피난을하는것자체가막심한후회로느껴질때가있었다고했다.

드디어피반령꼭대기다.

(현재의피반령표지석)

시원한바람이골짜기에서불어올라오는듯얼굴과목주위를시원하게어루만져주었다.

아버지와엄마의말라터진입술은입언저리에침과피가말라붙어말을하거나움직일때마다

터져서피가나고있었고그것이말라붙어까만딱지가붙어있었다.

아버지는다시한번물을마시고감자를하나씩먹고는산아래를내려다보며말했다.

"이제부터는할아버지집까지계속내리막길이야15리(6km)정도남았어빨리가면

10시면도착하겠다^^*문규야얼마안남았다다시한번힘내자"

하며말하는아버지의눈에는뜨거운눈물이맺혀있었다,

그눈물은아직까지견뎌온9일간의감회의눈물이었고한가정가장으로서책임을다하고

난감격의눈물이었다,

또한엄마도지난9일간남몰래가슴으로흐느꼈던고된피난길에어찌할말이없었을까?

죽을정도로힘들어도남편이약해질까두려워말한마디도내색않고우는모습을

누가볼까봐동생을업은포대기허리띠로몰래닦아낸눈물이얼마나많았을까?

포대기띠가지금도마르지않고축축했다.

지금그포대기허리띠로엄마의눈물을닦고있는것을보고있던내가한마디했다.

"아버지~엄마~다왔다면서왜울어?이젠힘들지도않대잔아~울지마~응?"

4살배기나로서는그렇게눈물흘리던아버지와엄마의모습을이상하게생각했지만

61년이지난지금까지도가끔그때피반령고개를넘었던생각을하면눈물을흘린다.

가족을진정으로사랑하고책임을지셨고자식에게한없이헌신적이셨던

아버지와엄마가계셨기오늘의내가있을수있었다,

나는지금그것을고맙게여기며자랑하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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