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나의 여행기간은 대부분 일주일 안팎의 짧은 여행기간이라 항상 날씨가 나의 여행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특히 여행과 함께 사진촬영을 취미생활로 하기에 더우기 날씨가 중요하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수시로 체크한 티베트의 날씨는 기온도 생각보다 높았고 그외 별로 나쁜 징조는 없었다. 그동안 애를 태우던 티베트 여행허가서도 대한항공직원의 도움으로 사전에 신청하여 중국의 쳉두에 도착하는 다음날 티베트로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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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아시아나항공으로 중국 쓰쵠(四川)성 수도 성두(成都)에 도착하니 이 곳은 벌써 초여름이다. 이미 한번 얘기한대로 중국의 급성장과 그들의 저력에 놀라며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 필요도 없이 카메라 가방을 메고 시내관광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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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관광이라해도 사실 평소에도 중국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이번 여행은 중국이 경유지에 불과하였지만 이곳이 삼국지의 무대가 된 곳이라 유비,장비,제갈량 등 귀에 익은 위인들을 모신 무후사와 당대의 시인 두보의 초당 정도를 둘러보는것으로 마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침식사도 거른채 티베트 라싸(Lhasa)행 비행기를 타러 일찌감치 공항으로 나섰다. 이날 아침에 서두른 이유는 은둔의 땅 티베트로 간다는 설레임 때문은 아니었고, 다만 이왕이면 비행기에서 티베트고원의 히말라야산맥을 촬영하러 창가의 좋은 좌석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쳉두공항의 국내선 청사는 김포공항이나 부산, 제주공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규모가 크고 최식식시스템으로 무장하였다. 하지만 모든 check-in counter 의 모니터에는 영어안내가 없이 한자어로만 표기되어 그들의 내수시장의 위력을 알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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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라 별로 사람이 없을줄 알았는데 꽤 줄이 길었다. 30분 남짓 내 차례가 되어 짐을 붙치고 보딩패스를 받는데 항공권 cover 안에 보딩패스뿐만 아니라 몇 장의 쿠폰이 들어 있었다. 이게 무슨 낭패인가 !  전날의 티베트행 항공편이 결항되어서 오늘은 어제 항공권을 가진 승객이 출발한다며 나한테는 다음날 출발하는 보딩패스를 주고, 호텔 숙박권과 식권을 함께 준 것이었다. 아니 그러면 미리 얘기를 해야지 짐은 이미 붙쳐서 세면도구나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

참 이상한 시스템이다. 보통 항공편이 결항 되더라도 당일날 제 항공권을 가진 승객이 우선 인데 여기서는 결항이 생기면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그나마 좋은 좌석을 받으려고 일찍 나와서 내일 출발하는 보딩패스나마 받을 수 있었지 그렇지 않으면 며칠 묶일 뻔한 것 이었다. 중국항공사 직원의 안내로 공항근처의 호텔에 방을 배정 받았지만 이 날은 하루 종일 영어를 못하는 종업뿐인 호텔에서 방에서 잠이나 잘 수 밖에 없었다.

낮잠을 좀 자는데 점심식사를 하라고 깨우기에 식사를 하고 산책을 나갔다 왔다.  호텔방을 키로 여는데 웬걸, 방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는데 문을 여니 짧은 머리의 젊은이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너 누구냐 ? 뭐하는 놈야 ! (물론 영어로…) 나는 노트북이며, 새로산 Canon Dica, 그리고 새로 나온 Digital 6mm Camcorder 등 고가의 장비가 호텔방에 있는 터라 가슴부터 덜컥거려 그 친구를 다구치니 태연하게 화장실에서 나오던 그는 갑자기 당황하며 중국말로 쏴대다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그의 주머니에서 항공권과 보딩패스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 너도 비행기를 못타서 방을 배정 받았구나 … 하지만 나는 호텔에서 생전 처음 보는 친구를 내 방에 배정하리라는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하고 분했지만 별 도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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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낮의 일 때문에 서로 서먹 서먹해서, 내가 상점에서 맥주를 사와서 한 잔 권했다. 그도 마음이 풀어졌지만 외국인과 함께 있다는 것이 영 분위기를 맞추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나는 필담으로 이름을 묻고 직업을 물었는데 …… 웬걸 ! 이 친구는 티베트에서 근무하는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는 군인이란다. 그렇다면 중국공산당군인 다시말해 오랑캐 !

문득 국민학교때 습관적으로 불렀던 노래가 생각난다. “무찌르자 오랑캐…몇 백만 이냐 ..??? …나아 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  그럼 오늘은 오랑캐와 한 방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

맥주 한 잔 권하여 그의 마음도 풀어지자 이제는 그 친구가 내 옷소매를 끈다. 자기가 한 잔 살테니 호텔은 비싸고 나가자는 눈치다. 어차피 그날은 오랑캐와 동침할 수 밖에 없는 날이니… 이왕이면 그 친구들이 노는 대로 따라 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겨 카메라 하나만 챙겨서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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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포장마차였다. 주변에는 근무를 마친 제복입은 직장인들이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 그런지 제복입은 근로자들이 참 많다.) 저녁은 이미 먹었지만  이 친구는 포장마차에서 중국맥주를 세병 시키더니 닭튀김, 꼬치, 죽 등을 나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잔뜩시켰다. 나는 속으로 한국에서 온 치과의사니 나한테 바가지를 씌울려고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큰 액수는 아닐 것 같아서 그가 하는대로 내버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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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중국에서도 남쪽으로 치우쳐 있고, 서남아시아와 왕래가 잦은 지역인지 이곳의 양념들은 마치 인도나 파키스탄에서 식사를 하듯 좀 독특하였다. 몇 잔 걸치자 피곤하여 들어가려고 내가 계산을 하려니 이 친구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중국말로 뭐라 뭐라 하고,  포장마차 주인한테 자기가 낼 거라는 듯한 얘기를 하며 맥주 몇 병을 더 시킨다.  이 오랑캐가 군관동무인지 사병인지 …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그 한테는 꽤 부담이 될 것 같지만 별 도리는 없었다.

이번에는 나보고 발바닥이 아프지 않냐는 표정을 지으며 길건너 足浴保健 이란 간판이 켜진 가게를 가리키고 그리로 끌고 간다. 아 이곳이 중국 발맛사지해주는 곳이구나 ! 나도 좀 호기심도 생기고 그 친구한테 얻어 먹은 것도 미안해서 함께 발 맛사지하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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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이나 중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발맛사지 간판을 보기는 했지만 냄새나는 발을 남한테 내민다는 것이 그리 점잖은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  이용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직접 체험하기로 하였다.  나무로 만든 물통에다 뜨거운 물을 채우고 그 안에 이름모를 꽃잎을 띄워 발을 넣고 불리는 동안 발 맛사지를 해 주는데 ……  별것은 아니었지만 발냄새를 없애는 것은 효과가 있는듯 하였다.  요금인 일인당 30元 (한국돈으로 4500원), 이것을 내가 내자 이 친구가 또 자기것은 자기가
내겠다고 우기다가 결국은 잔돈 때문에 내가 두 사람 요금을 지불했더니 이 친구가 또 다른 곳에서 한 잔 더 하잖다. 웬만한 체험은 했고 해서 내빼려는데 도대체 이 오랑캐를 당할 수가 없어 다시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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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네발 달린것은 책상다리 빼놓고는 모두 음식재료라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음식종류와 조리법이 다양한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맥주와 함께 오댕같은 것을 시키는데 갑자기 눈이 확 띄는것이 나오게 되었다. 그와 말이 통하지 않았고 주변에도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은 그 이름을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머리가 사람 주먹 만한 크기의 뇌가 접시에 담겨져 나온 것이다. 개의 뇌라고 하기에는 크기가 작고 중국에서 원숭이 뇌 요리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길거리의 식당에서 원숭이 뇌 요리를 할 정도의 싸구려음식은 아닌것 같았다.

어쨋든 이날 오랑캐와의 하루는 그리 싫지만은 않은채 새로운 체험으로 마감을 하였지만… 여행에서 돌아 온 지금까지 그 친구가 먹은 뇌가 어느 동물의 것인지 궁금하기만 한다.

< * 뒤에 중국의 교민께서 답변을 남겨 주셨는데 돼지 뇌 요리라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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