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의 대자연 ……

여행객들이 티벳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험한 지형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채 은둔의 땅으로 불렸던 티벳의 대자연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 대부분은 전문산악인이 아니라도 산악트래킹을 즐기는 사람들이며 흔히 우리들이 생각하는 외국여행하면 으레 따라 붙는 호화사치 관광여행하러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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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부터가 산악트래킹을 즐길 체형이 아니라 그런지 티벳에서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한국의 젊은 배낭족들은 “아저씨는 티벳에 무슨일로 오셨어요 ?” 라고 묻는다. 마치 무슨 사업차 온 사람처럼 대한다. 그러다 어깨에 맨 카메라가방을 보고는 “아 ! 사진작가세요 ?” 한다.

이곳은 평지라 해도 해발 3600m 이며 라싸를 벗어나 주변의 다른 마을로 가자면 보통 해발 4500m 가 넘는 산길을 넘어가야 하므로 보통 체력의 사람들이 다니기에는 힘든 지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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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티벳은 그리 쉽게,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나”의 의미는 호흡기질환, 심장질환 등을 앓고 있는 환자 정도다. 이들도 치명적인 증상이 나타날 빈도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호흡기질환과 순환계질환은 증세가 악화되면 치명적이므로 주의를 해야하는 것이다. 대부분 티벳여행 중 병원신세를 지거나 숙소에서 누워 고산병 때문에 고생을 한 사람들은 짧은 기간에 충분한 휴식 없이 무리한 일정을 잡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틈만 나면 배낭을 매고 지구촌순방에 나서지만 0.1톤이 좀 못미치는 체구에 동네 뒷산 오르기도 꺼려하며 아파트가 정전이 되면 11층까지 서너 번 쉬면서 헉헉거리며 오르는 정도의 체질인데 내가 고산병으로 고생한 것도 전날 중국에서 비행기가 결항되는 날 밤 늦게까지 룸메이트였던 젊은 중공군인 오랑캐와 차가운 밤 공기를 쏘여가며 무리를 해서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티벳에서의 첫 날 티벳여행의 첫 번째 철칙인 “충분한 휴식”을 무시하고 첫날부터 거리를 배회하였기 때문이었다.

 

티벳에서 고산병증세로 이틀 동안 휴식을 취하는 바람에 일정은 대폭 축소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장거리 여행인 시가체와 간체일정을 포기하고 티벳사원순례는 비교적 평지에 있어서 그리 체력소모가 많지 않은 세라사원을 들러 보기로 하고 티벳의 대자연은 남쵸호수방문으로 때우기로 하였다. 티벳에서의 나흘째,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오늘은 남쵸호수를 찾아가기로 랜드크루져를 예약했기 때문에 일찍 일어났다. 함께가기로 한 도미토리의 한국 청년들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다. 예약된 자동차가 이미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어서 혼자 출발할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저 청년들은 비싼 돈을 주고 차량을 빌려야 할 것 같아서 깨워 데리고 나섰다. 다들 눈이 잠이 덜 깬채로 자켓만 걸치고 차에 오르기에 세수는 해야할 것 아니냐고 하니 자기들은 이젠 티벳식으로 생활한다며 늦었으니 그냥 가자고 한다.

촉촉이 젖은 길에 마주 오는 자동차 헤트라이트의 빛이 반사되는 어두운 라싸시내를 벗어나 청장공로로 들어서니 서서히 산허리에 짙게 드리운 먹구름이 걷히면서 드디어 티벳의 맑은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평지라고 해도 해발 3600m 여서 웬만한 산들은 그리 높아 보이지도 않고 구름도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점차 고도를 높이며 산길로 접어드니 이곳은 비가 아닌 눈이 와서 길이 매우 미끄럽다. 왜 티벳에는 4륜구동 자동차만 시내외곽으로 나서는지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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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산밑으로 사람행렬이 보여 망원경으로 보니 학교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들이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주변에는 인가가 보이지 않는데도 수십 명의 아이들이 어디론지 가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목에 빨간 스카프를 걸친 것을 보니 이곳이 중국지배의 사회주의체제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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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미끄러운 산길을 지나는데 이번에는 야크 무리들이 길을 가로막는다. 야크는 고산지대에서만 사는 동물로서 육식을 금하는 불교의 일반적인 교리도 별다른 단백질 공급원이 없는 티벳에서만은 예외인지라 야크는 티베탄들의 주식이기도 하다. 외투라기 보다는 마치 이불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두툼한 옷차림으로 야크떼를 뒤쫓아가는 짙은 선글래스를 쓴 목동도 느릿느릿 거니는 야크떼 못지않게 여유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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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야크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차에서 내려 이리 저리 움직이며 앵글을 잡으니 곧 숨이 차 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촬영하면서 잠시 숨을 멈춰야하는 비디오촬영은 도저히 숨이 차서 할 수가 없을 정도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함께 간 젊은이들도 숨이 가쁜지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언덕 위 커브길에 돌덩어리를 쌓아 놓고 주변에 색색의 천들이 지저분하게 널려진 타르쵸 (티베탄사람들이 길거리 도처에 걸어놓은 깃발)가 보이는데 그 곳을 넘으면 남쵸호수라고 한다.

조금 더 올라 고갯길 정상에 이르러 지도를 찾아보니 이곳이 팅글라산맥을 넘어가는 콩라언덕인데 그 높이가 무려 해발 5240m 에 이른다니 두통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바로 영화 <티벳에서의 7년>에서 하인리히 하러가 영국군의 포로로 잡혀 탈출하여 티벳으로 넘어갔던 그 길이 팅글라산맥이라고 한다. 아무리 자동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고 하지만 내 자신이 대견하다는 환상에도 잠시 젖어 본다.

콩라언덕에서 바라본 남쵸호수는 오염되지 않은 맑고 투명한 호수를 기대하였지만 설원으로 둔갑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사월중순이면 우리나라에서는 완연한 봄인데 호수는 꽁꽁 얼어붙은 채 그대로다. 호수 수면 4718m, 폭이 30km, 길이가 70km…호수라기 보다는 마치 한 겨울 북극권의 바닷가에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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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고원 하늘 아래의 호수라는 뜻의 남쵸호수는 티벳에서 신성한 호수로 티베탄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태초에 지각운동으로 바닷물이 담겨진 염호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주변 탕글라산맥에서 매년 여름 어름과 눈이 녹아 흘러 들어서 염분농도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호숫가의 거대한 암벽바위에는 코라 (순례길)를 도는 티베탄들이 뿌리고 간 까닥 (하얀 천)이 마치 쓰레기장에 버려진 종이조각처럼 지저분하게 보인다. 곳곳에 보이는 타르쵸도 순백의 풍광에 흠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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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들이킬 때마다 콧속이 얼어붙는 차가운 날씨에, 바람에 몸을 쉽게 가누지 못하며 숨쉬기도 힘든 우리들을 비웃듯이 누더기를 걸친 티베탄 꼬마가 다가온다. 코를 흘리고 닦기도 전에 말라 붙은 가꾸지 않은 얼굴이 우리의 수준으로 보면 거리의 걸인에 비유되는 모양새이지만 티벳의 하늘처럼 티 없이 맑은 그의 눈과 천진난만한 모습에 애들을 모델로 사진촬영을 하고 주저 없이 땟국물이 밴 얼굴에 뽀뽀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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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되지 않은 거대한 호수가 뒤에 펼친 산맥을 배경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탁 틔게 하는 절경을 뽐내지만 이곳이 무슨 성지라고 티베탄들은 오체투지를 하며 코라를 돈단 말인가… 하지만 이는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그들한테 성지가 되는 기준을 우리들이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의 영적인 세계를 우리가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갑자기 까닥과 타르쵸를 쓰레기에 비유한것이 그들의 남루한 옷차림을 걸인에 비유한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들의 기준에서 힘든 세상살이를 신앙심에 의지하며 우리의 잣대가 통용되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을 살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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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라싸시내 외곽에 있는 세라사원에 들렀다. 티벳에서는 한 가정에 한 두명 정도는 불가로 출가할 정도로 승려인구가 많다고 하는데 이런 문제로 인구증가는 커녕 인구가 점점 감소되었다고도 한다.티벳의 사원들은 단순한 불교사원이라기 보다는 라마승들을 양성하는 대학의 구실도 하는 것 같다. 사원과 수도원은 엄밀히 그 의미가 구분될 수 있겠지만 티벳의 웬만한 사원은 영어로는 Monastery로 불려지는 것을보면 라마승들의 교육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다. 세라사원은 약 600년 역사를 지닌 수도원으로 본당 외에 3개의 불경학원, 그리고 32개의 승려숙소인 캉첸이 있으며 전성기에는 무려 5000명이 넘는 승려들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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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아직 얼굴에 장난기가 채 가시지 않은 어린 스님들부터 나이를 추정할 수 없는 다양한 연령층을 볼 수있지만 대체로 보면 우리나라사찰에서 보아온 근엄하고 깔끔한 자태의 스님들과는 사뭇 다르다. 또 한번 그들이 외모만을 가지고 잘못된 잣대로 평가하기 쉬운 유혹에 들 뻔하였다. 빨간 가사를 두른 학승들은 옆구리에 두꺼운 책들을 끼고 서너명씩 무리를 지어 여기 저기서 얘기를 나누는데 우리나라 대학가의 모습 그대로이다. 세라사원에서 빼놓지 않아야 할 곳은 세라제 불경학원의 옆에 있는 토론의 정원이다. 이곳에서 수도하고 있는 학승들이 정원에 모여서 얼핏 춤추는 것 같기도 하며 손뼉을 치며 독특한 몸짓으로 토론을 벌이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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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도 모자라 그 위에 설악산을 얹어 놓은 것과 같은 평균해발 4000 미터의 고원에서, 뚜렷한 자원도 없이 인간이 쉽게 적응할 만한 기후도 못되는 티벳고원에서 그 나마 나라의 주권도 빼앗긴 티베탄들의 삶의 원천은 그들의 신앙심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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