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에서의 7일 (5) – 동토의 왕국

여행객들이 티벳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험한 지형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채 은둔의 땅으로 불렸던 티벳의 오염되지 않은 대자연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 대부분은 전문산악인까지는 아니라도 산악트래킹을 즐기는 사람들이며 흔히 우리들이 생각하는 외국여행하면 으레 따라 붙는 <호화사치> 관광과는 거리가 먼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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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를 벗어나면 아무리 Luxury한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이런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해야한다. >

 

저 부터가 산악트래킹을 즐길 체형이 아니라 그런지 티벳에서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한국의 젊은 배낭족들은 “아저씨는 티벳에 무슨일로 오셨어요 ?” 라고 묻습니다. 마치 무슨 사업차 온 사람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이곳은 평지라 해도 해발 3600m 이며 라싸를 벗어나 주변의 다른 마을로 가자면 보통 해발 4500m 가 넘는 산길을 넘어가야 하므로 보통 체력의 사람들이 다니기에는 힘든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제 어깨에 맨 카메라가방을 보고는 “아! 사진작가세요 ?”합니다. 그래서 우쭐해서 그렇다고 해버렸습니다. 프로사진작가는 아니더라도 사진을 촬영하러 온 것만은 확실하니 아마추어라는 전제로 하면 그정도는 과장해도 괜찮을듯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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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최첨단 캠코더였던 Digital 6mm Camcorder SONY DVR-VX1000을 사용하였다.  >

사실 티벳은 그리 쉽게,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나”의 의미는 호흡기질환, 심장질환 등을 앓고 있는 환자 정도입니다. 이들도 치명적인 증상이 나타날 빈도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호흡기질환과 순환계질환은 증세가 악화되면 치명적이므로 주의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티벳여행 중 병원신세를 지거나 숙소에서 누워 고산병 때문에 고생을 한 사람들은 짧은 기간에 충분한 휴식 없이 무리한 일정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틈만 나면 배낭을 매고 지구촌순방에 나서지만 0.1톤이 좀 못미치는 체구에 동네 뒷산 오르기도 꺼려하며 아파트가 정전이 되면 11층까지 서너 번 쉬면서 헉헉거리며 오르는 정도의 체질인데 제가 고산병으로 고생한 것은 전날 중국에서 비행기가 결항되는 날 밤 늦게까지 룸메이트였던 젊은 중공군인 오랑캐와 차가운 밤 공기를 쏘여가며 무리를 했고, 감기기운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티벳에서의 첫 날 티벳여행의 첫 번째 철칙인 “충분한 휴식”을 무시하고 첫날부터 거리를 배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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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에서 고산병증세로 이틀 동안 휴식을 취하는 바람에 일정은 대폭 축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장거리 여행인 시가체와 간체일정을 포기하고 티벳사원순례는 비교적 평지에 있어서 그리 체력소모가 많지 않은 세라사원을 들러 보기로 하였으며 티벳의 대자연은 남쵸호수방문으로 만족하기로 하였습니다.

단 한가지 고민을 하였던 것은 티벳의 독특한 장례문화인 천장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난히 새로은 풍습에 호기심이 많은지라 마음 한 구석에는 꼭 찾아가 보고 싶었지만, 티베탄들이 외지인들에 의해 자신들 가족의 장례식이 방해를 받는 것을 꺼린다는 것을 많은 여행객들로부터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망설여지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결정은 그런 고차원적 이유가 아니라 이른 아침에 찬 공기를 마셔가며 산 중턱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체력적인 문제로 간단히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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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에서의 나흘째 전날 미리 예약한 랜드크루져 기사가 아침 일찌기 찾아왔습니다. 여전히 일기는 좋지 않아 이른 새벽부터 비가 뿌리고 있었지만 귀국하는 날짜가 이미 결정되어 있기에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함께 가기로 한 아랫층 도미토리에 투숙한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예약된 자동차가 이미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어서 혼자 출발할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저 청년들은 비싼 돈을 주고 차량을 빌려야 할 것 같아서 깨워 데리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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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탄 운전기사, 남쵸호수(편도 4시간거리)를 왕복하는데 하루 900위안으로 전세내었다. >

 

그런데 도미토리객실은 안에서 문을 잠그지는 않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난방이 안되는 방에서 파커까지 껴 입은채 이불을 머리까지 둘러싸고 자는 사람들 중에서 어제 함께 가기로 약속한 한국젊은이들을 찾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한국말로 “남쵸호수 가실분 일어나세요 !’ 하니 그제서야 두 사람이 잠을 깨었습니다. 다들 잠이 덜 깬채로 자켓만 걸치고 차에 오르기에 세수는 해야할 것 아니냐고 하자 자기들은 이젠 티벳식으로 생활한다며 늦어서 미안하니 그냥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한때 우리가 농담으로 하던 말이 기억이 났습니다. “검둥이 세수하나 마나…” 요즘에야 이런 말을 하면 인종편견으로 지탄을 받을 얘기였지만 우리들이 어렸을 때세 쉽게 하던 농담이었습니다. 정말 티베탄들을 보면 목욕이나 이발은 그들한테 사치인것 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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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초호수 여행에 동반한 한국 젊은이들, 렌트카비용을 분담하면서 여행한다. >

촉촉이 젖은 길에 마주 오는 자동차 헤트라이트의 빛을 마주치며 어두운 라싸시내를 벗어나 청장공로로 들어서니 서서히 산허리에 짙게 드리운 먹구름이 걷히면서 다행히도 티벳의 맑은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평지라고 해도 해발 4000m 여서 웬만한 산들은 그리 높아 보이지도 않고 구름도 손에 잡힐 듯이 보였습니다. 점차 고도를 높이며 산길로 접어들자 이곳은 비가 아닌 눈이 와서 길이 매우 미끄러운 것을 느끼게 됩니다. 왜 티벳에는 4륜구동 자동차만 시내외곽으로 나서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라싸시내를 벗어나 담슝으로가는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성수기도 아직은 멀었는지 랜드크루져도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중국본토와 연결된다는 도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자동차는 의외로 중국 군대의 군용트럭이었습니다. 그것도 한 두대가 아닌 수십대가 줄지어 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트럭 뒤에는 두텁게 누빈 군복이 어울리는 중공군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60년대 전쟁영화를 회상해보면 항상 중공군은 한 겨울에 두툼하게 누빈 외투를 입고 나타난 것이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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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장공로(靑藏公路)를 달리는 중국군용트럭대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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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본토와 라싸를 운행하는 장거리 2층침대버스 >

 

도로 옆에는 토목공사 장면이 보입니다. 마무리 과정에 있는 중국본토인 청두와 라싸를 잇는 티벳철도공사 현장입니다. 대부분의 배낭여행족들은 청두에서 장거리 야간침대버스로 여행하지만 몇 년 뒤에는 기차로 여행할 수 있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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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산밑으로 사람행렬이 보여 망원경으로 보니 학교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주변에는 인가가 보이지 않는데도 수십 명의 아이들이 어디론지 가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들 목에 빨간 스카프를 걸친 것을 보자 이곳이 중국지배의 사회주의체제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청장공로를 따라 막바지 단계에 이른 철도공사가 완공되면 이젠 티벳의 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 같습니다만 그 변화가 티벳인의 가슴에 안겨주는 것이 기쁨이 될지 상처가 될지는 한 마디로 단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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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도 가도 끝이 없는 … 인생이란 무엇인지 …… >

티벳과 중국본토를 연결하는 청장공로를 벗어나 남슝에서 비포장 산길로 접어들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곳의 평균 해발이 4500m 인데 남초호로 가려면 해발 5240m나 되는 산 길을 하나 넘어가야 합니다.  점차 눈발이 굵어지자 눈보라 수준으로 변하더니 고개를 하나 넘어서자 다행히도 눈이 멎고 설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차가 미끄러운 눈덮힌 산길을 지나는데 이번에는 야크 무리들이 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야크는 고산지대에서만 사는 동물로서 육식을 금하는 불교의 일반적인 교리도 별다른 단백질 공급원이 없는 티벳에서만은 예외인지라 야크는 티베탄들의 주식이기도 합니다. 외투라기 보다는 마치 이불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두툼한 옷차림으로 야크떼를 뒤쫓아가는 짙은 선글래스를 쓴 목동도 느릿느릿 거니는 야크떼 못지 않게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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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되어 저 멀리 앞서가던 마이크로 버스가 방향을 돌려 되돌아 오는 모습을 보니 불안해 지기 시작하였지만 우리 티베탄 기사는 걱정말라는 시늉을 하면서 우리 일행을 안심시키며 핸들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잠시 야크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차에서 내려 이리 저리 움직이며 앵글을 잡으니 곧 숨이 차 오르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촬영하면서 잠시 숨을 멈춰야하는 비디오촬영은 도저히 숨이 차서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함께 간 젊은이들도 숨이 가쁜지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산 길을 넘어 가는 좌측의 낮게(?) 보이는 산들은 무려 해발 7,000m가 넘는다고 합니다. 하긴 우리가 지나는 곳이 해발 5,000m가 넘으니 . . .

언덕 위 커브길에 돌덩어리를 쌓아 놓고 주변에 색색의 천들이 지저분하게 널려진 타르쵸(티베탄사람들이 길거리 도처에 걸어놓은 오색깃발)가 보이는데 그 곳을 넘으면 남쵸호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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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르쵸 : 티벳사람들이 기도하는 오색깃발, 길의 언덕 등에 모아 놓는다. >

 

조금 더 올라 고갯길 정상에 이르러 지도를 찾아보니 우리가 있는 곳이 탕글라산맥을 넘어가는 콩라언덕이었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산높이가 무려 해발 5240m 에 이른다니 두통이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자동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고 하지만 내 자신이 대견하다는 환상에도 잠시 젖어 보았습니다만 바로 눈 앞에 펼쳐진 산맥을 보고 영화 <티벳에서의 7년>에서 하인리히 하러가 영국군의 포로로 잡혀 탈출하여 티벳으로 넘어갔던 장면이 떠 올라 그런 생각을 한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콩라언덕에서 바라본 남쵸호수는 오염되지 않은 맑고 투명한 호수를 기대하였지만 빙원으로 둔갑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사월중순이면 우리나라에서는 완연한 봄인데 호수는 꽁꽁 얼어붙은 채 그대로였습니다. 호수의 수면이 해발 4,718m, 폭이 30km, 길이가 70km…호수라기 보다는 마치 한 겨울 북극권의 바닷가에 온 것 같았습니다. 이제 진정한 티벳의 대자연을 보게 된 것입니다. 티벳이란 뜻이 눈 아래의 땅이라고 하니 티벳에와서 눈을 보지 않고 갈 수는 없었던일! 그야말로 티벳의 진정한 모습을 본 것입니다. 반바지에 반팔셔츠를 입고 티벳을 여행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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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중순의 날씨에도 꽁꽁 얼어붙은 해발 4,718m의 남쵸호수, 2004년 4월15일 촬영 >

 

오염되지 않은 거대한 호수를 멀리 보면 뒤에 펼친 산맥을 배경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탁 틔게 하는 절경을 뽐내고 있습니다. 티벳고원 하늘 아래의 호수라는 뜻의 남쵸호수는 신성한 호수로 과연 성지다운 분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태초에 지각운동으로 바닷물이 담겨진 염호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주변 탕글라산맥에서 매년 여름 어름과 눈이 녹아 흘러 들어서 염분농도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돌려도, 뒤로 돌아서면 호숫가의 거대한 암벽바위에는 코라(순례길)를 도는 티베탄들이 뿌리고 간 까닥(하얀 천)이 마치 쓰레기장에 버려진 종이조각처럼 지저분하게 보입니다. 곳곳에 보이는 타르쵸도 순백의 풍광에 흠을 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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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쵸호수 주변 암벽바위모습 – 티베탄들의 성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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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쵸호수 주변에 널려진 타르쵸, 쓰레기가 아니다. >

 

숨을 들이킬 때마다 콧속이 얼어붙는 차가운 날씨에, 바람에 몸을 쉽게 가누지 못하며 숨쉬기도 힘든 우리들을 비웃듯이 누더기를 걸친 티베탄 꼬마가 다가옵니다. 코를 흘리고 닦기도 전에 말라 붙은 가꾸지 않은 얼굴이 영락없이 거리의 걸인에 비유되는 모양새이지만 티벳의 하늘처럼 티 없이 맑은 그의 눈과 천진난만한 모습에 주저 없이 땟국물이 밴 얼굴에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티베탄들한테 성지로서의 의미를 주는 것은 남쵸호숫가의 절경이 아니었습니다. 쓰레기로만 보였던 까닥과 내버려진 옷가지로 보였던 오색의 타르쵸가 그들의 성지로서의 의미를 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세계를 우리의 잣대로 들여다 본 제가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다섯가지 색깔의 천에 새겨진 불경의 말씀이 바람에 날리며 온 천지에 펴지게 하는 오색룽다와 타르쵸의 존재를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한테 성지가 되는 기준을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갑자기 까닥과 타르쵸를 쓰레기에 비유한것이, 그들의 남루한 옷차림을 걸인에 비유한 것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들의 기준에서 힘든 세상살이를 신앙심에 의지하며 우리의 잣대가 소용없는 또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옴마니반메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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