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표비행기표로 이리안자야에서 나오다

오랜 만에 시간여유를 가지고 인도네시아를 여행중이다. 그래도 항공요금의 특성이 사전예약이 필수이기 때문에 항공편이 관련된 일정은 마음대로 조절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지난 주 이리안자야를 여행하면서 해프닝을 겪게 되었다. 지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이렇게 글을 올릴 수 있었지만 아주 절박한 상황에 빠질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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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에서 만난 다니부족, 1993년 여행 때 촬영 >

– 20년전에는 공항이 있는 와메나 마을에도 코데카만 두른 다니족이 거의 절반 이상이었지만 이번에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으며 지금은 돈벌이나 옷가지를 외지인들한테 얻기 위하여 오는 다니족 뿐이다.  위 사진도 다니족 청년이 옷을 달라고 하도 졸라서 결국 빨래주머니에서 땀냄새가 밴 내의를 주었다.

 

 

< 자야푸라-와메나 보딩패스 >

좌석번호 숫자는 실제 좌석이 아니라 탑승정원에 따른 연속숫자일 뿐이다.

해프닝이 벌어진 곳은 뉴기니아 섬의 인도네시아영토인 이리안자야에 있는 다니부족 마을 와메나 이다. 이곳은 20년 전 두 번 여행을 하여 KBS-TV와 리빙TV를 통해 원시부족인 다니족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얼마 전 어느 방송국에서 다큐멘타리를 방송한 것을 보고 문득 달라졌을 그들의 모습이 궁금하여 시간을 내어 인도네시아여행일정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 20년 만에 재회한 다니족>

– 서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내가 건네준 사진 속에서 자신을 찾아내어 무척 반가이 대해주었다.

내가 와메나에 도착한 것은 지난 일요일 오전. 자카르타에서 야간항공편으로 자야푸라에 이른 새벽에 도착하여 곧바로 와메나까지 와서 이날은 아무런 일정없이 숙소에서 피로를 풀려고 했다. 그런데 마을을 산책중에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 다니족청년이 이곳에 어제 지진이 있었다는 얘기를 귀뜸해 준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우려가 될 만한 지진이 있었다면 자야푸라에서 와메나행 승객한테 경고라도 했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런 얘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급히 숙소로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와메나와 광산이 몰려있는 티미카 등 뉴기니아섬에 진도 7.1의 강진이 있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피해상황은 아직 보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인구밀집지역에서 이 정도의 지진이라면 피해가 컸을텐데 와메나에 연쇄적으로 건물이 파괴될만한 상황도 아니라서 순간 땅이 물결치는 순간에 감지 못하면 느끼지 못할 상황이었을 것 같지만 그 학생의 얘기에 의하면 건물 몇 채가 붕괴되고 인명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내가 지진소식을 와메나에서 빠져 나온 후에 집으로 전화할 때 까지 집사람은 모르고 있었던 것을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보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 항공권을 구하지 못한 승객들이 아직 서성대고 있다. >

– 철장 안은 보딩패스를 받은 승객들의 대기장소.

문제는 다음이다. 순간적으로 땅이 흔들리는 것을 감지한 외지인들이 2차 지진에 대비하여 급히 와메나를 빠져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하루 120명 정도의 좌석을 공급하는 항공편이 순식간에 동이난 것이다. 마침 숙소 주변에 여행사가 있어서 찾아가 보니 일요일이라 정식으로 근무하지 않지만 직원의 얘기에 의하면 앞으로 일주일 정도 매진된 상태라고 한다. 정말 큰일이다. 이번 여행은 조금 여유를 갖고 와메나일정을 잡았지만 일주일 까지 발이 묶이면 자야푸라에서 자카르타, 방콕을 경유하여 귀국하는 항공편이 모두 날라간다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막연한 2차 지진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당장 귀국할 항공권을 날리게 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더 걱정이 되었다.

< 와메나-자야푸라 보딩패스 >

– 보딩패스가 무기명이기 때문에 암표거래가 가능하다.

– 보딩패스까지 발급받았기 때문에 (가장 골치아픈 과정임) 단가가 더 비싸다.

– 예약확인서를 보면 현지인 여자승객의 이름이다.

그런데 다니족학생이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공항에 나와 second hand ticket을 사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식의 암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국내선이라도 여권이나 ID카드 등 신분을 확인하고 탑승수속을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국내선에서 여권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와메나로 들어가는 항공편은 하루 세 편 정도가 있지만 지정된 항공편에 관계없이 공항에서 탑승수속할 때의 선착순개념이다. 즉 하루 공급좌석만큼 항공권을 판매하면 탑승수속할 때는 순서대로 첫 번 비행, 두 번째 비행 등으로 항공편을 지정해 주는데 보딩패스에는 좌석표기 대신 우선순서를 뜻하는 숫자만 써 있다.

< 40인승 ATR42. 한서항공이 보유한 기종의 자매기로 탑승인원이 40명 이다. >

와메나에서 자야푸라 까지의 항공요금은 IDR.700,000 (약 8만원). 암표값은 IDR.1,500,000 부터 IDR.2,000,000까지 2-3배 비싸다. 특히 탑승수속까지 이미 마친 보딩패스의 거래가격은 좀 더 비싸다. 항공권이 있다고 출발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이 노선은 보딩패스를 받아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야푸라에서는 보딩패스에 승객이름이나만 수기로 표시하지만 와메나에서는 그 것도 없이 극장표와 마찬가지로 누가 사용해도 되는 것이다. 전날 항공권걱정을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외국인승객들은 항공권에 표기된 출발시간에 맞춰 여유 있게 나와 탑승수속을 마치고 아직 표를 구하지 못한 나를 걱정해 준다. 와메나-자야푸라 구간에는 인도네시아의 군용기가 부정기로 운항하는데 병력수송이나 다른 화물이 없으면 민간인도 태워준다고 한다. 이날 운항일정이 있다고 하여 표를 구하지 못한 현지주민들이 군부대사무실로 몰려간다. 멋 모르고 나도 휩쓸려 가서 탑승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적으면서 이것은 요금이 얼마냐고 묻자 관리가 내 이름을 지우면 군용기는 현지인만 탈 수 있다고 한다.

< 이리안자야지방의 지진소식을 전한 외신 캡쳐화면 >

이제는 비싸도 할 수 없이 불안하지만 암표를 사기로 마음을 굳혔다. 2차 지진 보다도 귀국일정에 차질을 빚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암표장사들은 외지인한테 비싸게 팔 수 있으므로 현지인과의 거래는 외국인과의 거래가 끝나야 성사된다. IDR.3,000,000에서 시작하여 IDR.2,000,000으로 내려갈 때 구입하려고 했지만 다니족 학생은 시간을 더 끌자고 버텨 마침내 탑승시간 직전에 IDR.1,500,000으로 합의를 보았다. 인도네시아 루피가 부족하여 IDR.1,200,000과 USD.30을 주고 첫 번째 항공편의 보딩패스를 구입했다. 이정도의 거래가 공공연하게 이루어 지는 것은 공항관리들의 묵인하에 이루어지는 일종의 부패현상이지만 당하는 승객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와메나 뿐만 아니라 자야푸라의 와메나행 체크인카운터의 줄이 줄어들지 않는 것도 현지인과 포터들의 대리수속 새치기 때문인데 역시 항공사와 공항관리의 묵인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 자야푸라공항의 와메나행 탑승수속장면 >

– 포터가 대리수속하는 것은 양반이고 현지인이 뒷돈을 요구하면 승객의 항공권을 받아 체크인 수속중인

항공사직원한테 다가가서 오랜 만에 만나 악수하는 것처럼 하고 항공권을 건네준다.

역시 다니족 학생의 설명대로 보딩패스가 실명이 아니고 무기명으로 되어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것은 탑승수속이 이미 된 것이니 배낭은 직접 매고 들어가면 된다. 드디어 보딩패스를 쥐고 탑승객대기실로 들어가닌 안타깝게 지켜보던 외국인들과 아침부터 함께 있었던 현지인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해 준다. 이제 자야푸라를 떠난 Trigana ATR72 항공기가 굉음을 내고 와메나에 도착했다. 보딩을 시작하는데 앞에 서 있던 외국인들은 뒷전으로 물러나라고 한다. 그들은 첫번째 항공권을 갖고 있었지만 여유있게 공항에 도착하는 바람에 탑승순서가 Second Flight로 밀린 것이다. 그들은 예약프린터를 흔들며 항의하였지만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고……

< 암표를 알선 해준 다니족 학생 >

– 이날 암표를 구하는 외국인은 나 뿐으로 보이니 여유를 갖고 거래하라고 귀뜸해준다.

지금은 자야푸라에서 나와 공항부근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우중판당으로 나와 술라웨시 지방의 명소인 타나토라자를 둘러 보고 지금은 수라바야로 나왔다. 암표라고는 극장표도 사 본 경험이 없는데, 외국에서 암표항공권을 사서 무사히 예정된 일정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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