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반도 기차종단여행 (2) 농카이-방콕

농카이는 라오스와 태국을 연결하는 경유지로 여행객으로 널리 알려진 관광명소가 있거나 큰 매력이 있는 곳은 아니다.  대부분 외국에서 온 여행객은 바로 방콕행 야간열차에 오른다. 타날렝에서 국제열차로 농카이역에 도착하면 태국입국수속은 간단하다.  출입국수속대도 국제열차트랙 옆에 있다.  창구는 두 개 뿐이지만 승객 자체가 많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입국수속대를 빠져 나오면 농카이역 트랙에 세 편의 방콕행 야간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오후 6시15분 출발하는 No.78 특급(Express)열차,  6시30분 출발하는 No.134 (Rapid)와 오후 7시10분 출발하는 No.26 특별특급(Special Express)열차가 있다. 그중 야간 장거리노선으로 적합한 것은 침대칸만 운영하는 No.26 Speical Express 이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경우라도 에어컨과 편안한 reclining 좌석이 있는 No.78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chobl-Nongkhai

* 농카이역, 멀리 라오스에서 도착한 국제열차가 보이고 옆에 방콕행 야간특급이 대기하고 있다. (2013년 촬영)

 

태국의 철도는 다소 시설이 노후된 느낌을 주었는데 작년 12월 장거리 야간열차에 큰 변화가 생겼다. 노후된 객차를 대신해서 새로운 객차가 등장했다. 기본적인 구조는  2인1실의 일등석 침대칸과 오픈형인 이등석 침대칸 등 구형객차와 비슷하지만 좌석의 쿠션이 개선되고 여러가지 편의장치를 갖추었다. 우선 일등석 침대칸의 경우 화장실을 크게 개선했다. 구형의 경우 별도 샤워실이 없이 냄새 나는 변기가 있는 화장실에 샤워꼭지를 마련한 정도였지만 신형객차에는 남자용 소변변기 1, 남여공용화장실 2, 그리고 샤워실을 따로 갖추었다.

chobl-1st-sleeper-new-toilet-shower

* 신형객차 일등석침대칸의 화장실 3개와 샤워실 1개.

chobl-1st-sleeper-toilet-shower

* 구형객차의 좌식변기화장실 겸용화장실

 

객실도 기본구조는 2인1실, 상단과 하단 2층 침대와 객실마다 작은 세면대와 수납장이 있는 등 구형과 같다. 붙어 있는 두 개의 객실은 가운데 문이 있어 두 객실의 승객이 동행인 경우 열어 놓아 공간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것도 같다. 그러나 단순히 새 차라는 것을 넘어 승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많아졌다.

낮 시간에는 2인용 좌석으로 사용하던 하단침대에는 가운데 사이드테이블을 설치하게 되어 통로쪽에 앉는 승객의 편의를 도모했다. 구형의 경우 아래 좌석 가운데 폭이 좁은 팔걸이만 펼치게 되고 객실 창문 바로 아래에만 사이드테이블이 있어 복도측 좌석에 앉는 승객은 노트북 등을 사용하는데 불편했다. 휴대용 전자제품의 충전을 위한 전원소켓도 두 개로 늘어 났다.  구형객차의 경우 상단 침대는 하단 좌석의 등받이를 위로 올려 사용하지만, 신형은 상단 침대가 객실 위 벽에 접힌 것을 내려서 사용하므로 아래 승객은 윗 승객의 침대사용에 관계없이 좌석 등받이를 사용할 수 있다.

chobl-1st-sleeper-cabin-old-new

* 야간특별열차 일등석 침대좌석, 왼쪽 위 사진은 구형좌석.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TV모니터의 등장이다. 모니터는 침대 마다 따로 설치되어 있다.  좌석 중간 벽에는 누워서도 쉽게 손이 닿는 곳에 TV 채널과 음량 등을 조절할 수 있는 콘트롤박스가 있다. 여기에는 USB 충전장치, 이어폰잭도 있다. 혹시나 해서 이어폰을 요청하니 음질 좋은 헤드폰을 대여해 준다. 모니터로는 TV 방송 뿐만 아니라 GPS가 설치되어 있어 기차의 실시간 운행정보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운행중인 노선의 지도와 함께 통과하는 역의 리스트와 실시간 통과지점 표시, 그리고 목적지 도착예정시간 까지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객차 끝에 있는 화장실의 사용상황도 모니터에 표시 되어 미리 상황을 파악하고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

chobl-TV-minitor

* 야간특급열차 신형객차는  침대마다 TV 모니터가 있어 TV방송수신, GPS통한 운항현황, 식음료주문이 가능하다.

 

일등석차량은 객차 맨 끝, 아마 중간에 위치하면 다른 칸을 오가는 승객들로 붐빌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차량 한 가운데 있는 식당차를 이용하기에는 좀 불편한 위차다. 물론 식당칸 직원이 차량마다 돌아 다니며 주문을 받지만 그 때를 놓치면 식당칸 까지 멀리 가야만 된다. 그런데 모니터 구석에 스푼과 포크 모양의 단추가 보인다. 이를 터치하니 식당칸의 식사와 음료의 메뉴가 나온다. 일등석 승객은 좌석에서 모니터로 식사를 주문하면 객실로 배달해주는 시스템이다. 이쯤 되면 객실내 WiFi 서비스는 당연하다.

내가 선택한 침대는 하단 침대, 요금은 THB.1557 (약 54,000원). 상단침대는 약간 싼 THB.1357(46,000원). 아무래도 상단침대는 오르 내리는게 불편하지만 젊은 층은 상단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열린 공간이기는 하지만 상단 침대는 시야가 가려 프라이버시가 보호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등석 침대칸은 출입문을 안에서 잠글 수 있어 완전한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 편안하게 잠옷으로 갈아 입거나 내복만 입고 자도 된다. THB.2357 (81,000원)을 지불하면 2인용 객실을 혼자 사용할 수도 있다.

이등석 침대칸의 경우도 구형 객차와 기본 구조는 같지만 전원 소켓이 좌석마다 달린게 눈에 띈다. 구형객차에는 한 차량에 전원소켓이 몇 개 달려 전원소켓 쟁탈전이 벌어졌지만 이젠 그럴 염려가 없어졌다. 이등석 침대좌석에도 접이식 사이드테이블을 설치했다.  낮시간 대에는 테이블을 펼쳐 책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좌석을 침대형으로 펼쳤을 때 위치를 기준으로 개별 독서등이 새로 만들었고 벽에 그물로 만든 소지품 주머니가 비치되어 있다. 짐을 보관하는 장소도 구형은 좌석 옆 복도에 이층침대로 오르는 계단을 겸해 만들었지만 신형 객차의 경우 짐은 좌석 아래에 보관하도록 공간을 만들고 이층 침대로 오르는 계단은 칸막이 벽에 내장시켜 필요할 때 펼치는 방식이라 객실 분위기가 깨끗하고 공간이 넓어졌다.

chobl-2nd-sleeper-corridor

chobl-2nd-sleeper-seat

chobl-2nd-sleeper-cabin

* 태국 장거리 야간열차의 2등석 침대칸 구형(왼쪽)과 신형객차(오른쪽)의 비교.

 

이등석 좌석은 한 칸에 넓직한 좌석이 마주 보고 있는 구조다.  그리고 한쪽 좌석을 앞으로 끌어내면 등받이도 함께 내려와 침대로 전환 된다. 기본적으로 침대는 일인용이기 때문에 좌석 폭이 넓어 여유가 있다. 상단침대는 평소에는 객실벽에 접혀 있다. 이등석 침대칸은 개방형으로 취침시에는 커튼으로 가리게 된다. 이등석침대칸의 요금은 상단이 THB.898(30,600원), 하단침대가 THB.998 (33,700원) .  야간열차지만 상단은 유리창이 없어 갑갑한 기분이 들것 같다.

기차여행의 묘미 중의 하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심 나이가 엇 비슷한 태국승객을 만나기를 바랬지만 40대 중년 일본인이 상단 침대의 주인공이다. 그는 방콕에 체류하는 일본기업인으로 라오스에서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잠자리에 들기 전 까지 두어 시간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 속에는 요즘 한일 관계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일본의 부끄러운 과거를 비교적 솔직하게 내비친다. 그러면서도 한국이 일본의 신사참배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는 토를 달았다.  일본을 여행하면 일본의 신사는 그들 생활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한국에서 일본인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일본 정치인이 제2차세계대전의 전범을 기리는 신사참배를 반대할 뿐이라는 설명을 해 주었다.

 

chobl-food-drink-delivery

* 일등석 침대칸 객실에서 모니터로 주문한 저녁식사와 커피.

 

모니터로 주문한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아무리 새 객차라도 도입된지 일년이 가까워 오니 화장실 냄새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샤워실을 별도로 이용할 수 있으니 그만해도 어디인가. 잠시 운동 삼아 이등칸 객실을 산책하여 다녀왔다. 그런데 바로 옆 칸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묘하다. 아차 이곳은 여성전용 칸이라고 한다. 물론 남자 승객의 출입금지까지는 아니다. 이등석 침대칸은 원래 서열을 구분하지 않지만 여성전용칸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chobl-bedding

* 해가 지면 차장이 객실을 돌아다니며 직접 침구를 정리해 준다.

농카이역을 출발한지 한 시간, 이미 밖은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차장이 객실마다 돌아다니며 침대를 정리해 준다. 아래 침대의 경우는 좌석을 앞으로 조금 끌어 당겨 누울 수 있는 면적을 넓히고 그 위에 객실 천정의 수납장에 보관된 매트리스를 꺼내 깔아주고 하얀 시트로 덮어준다.  50대 넘어 보이는 차장의 솜씨가 아주 능숙하여 손놀림이 빠르다. 이불도 비닐백에 포장되어 제공된다.  동승한 일본인 승객이 잠옷으로 갈아 입어도 되겠냐며 양해를 구한다.   나는 짐을 줄이기 위해 잠옷을 따로 가지고 다니지 않으니 내복만 입고 자면 된다. 구형 객차의 경우 출입문은 있지만 복도를 향해 유리창이 있는데 신형객차는 객실출입문에 유리창이 없어 문을 닫고 안에서 문고리를 잠그면 완벽한 독립된 객실이 된다.

 

chobl-lotus-lake

* 농카이에서 1시간 떨어진 우돈타니 외곽에 있는 Lotus Lake, 겨울철에 연꽃이 활짝핀다.

농카이에서 방콕까지 주목할만한 경유지는 농카이에서 가까운 우돈타니 Udon Thani와 방콕에서 가까운 아유타야 Ayutthaya가 있다. 우돈타니는 겨울철에 만개 되는 연꽃호수가 유명하고 아유타야는 우리나라 경주에 비유되는 태국의 유적도시 이다. 두 도시 모두 농카이발 방콕행 야간열차로 이용하기에는 시간대가 좋지 않다.  그러나 방콕에서 농카이로 가는 경우 방콕에서 아유타야까지 오전에 출발하는 디젤열차를 이용하여 아유타야를 둘러 본 후 방콕발 농카이행 야간특급열차가 아유타야에 오후 9시41분 통과하니 그때 이용하면 되고 같은 기차로 우돈타니에서 아침 6시 도착하니 우돈타니를 둘러 보고 농카이로 이동해도 좋다. 특히 겨울철 우돈타니에서는 농카이나 라오스의 브엥챤으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다.

윗 침대로 올라간 일본 승객이 술을 좋아하냐며 묻는다. 태국에서는 기차에서 승객들의 음주 시비를 대비해서 얼마 전 부터 차내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 승객은 태국에서 기차여행에 나설 때 마다 위스키를 작은 병에 담아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가져간 타블릿PC로 영화 한 편을 보려니 취기가 돌아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와 침구는 모두 편안하지만 기차 노선은 곡선 구간이 많은듯 우리나라 보다 흔들림이 심한편이다. 다소 피곤했는지 밤새 한 번도 중간에 깨지 않고  새벽 5시 정도 눈이 떴다. 전에 두 차례 이 노선을 이용했을 때는 거의 1 시간 이상 연착했는데 이번에는 운행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거의 정시운행을 하고 있다. 동이 트면서 선로 옆에 빨개가 널려진 낡은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부르던 노래 ‘기차길 옆 오막살이’가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철로변 정리를 말끔히 했지만 방콕만 해도 역 주변의 철로에 빈민가가 남아 있다.

서둘러 샤워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내릴 준비를 하였다. 객차에 표시된 최고속도는 120km/h 이지만 총연장 621km를 11시간에 주파하니 평균시속이 60km/h 도 채 안 되어 Express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나름 편안한 여행이었다. 농카이에서 빌렸던 헤드폰을 차장한테 반납하고 배낭을 메고 기차가 완전히 정차되기를 기다렸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작은 표시판 하나가 즐거웠던 기차여행의 뒷 끝을 씁쓸하게 해 준다. 전에 사용하던 구형객차는 대우중공업에서 제작한 차량들인데 이번에는 중국에서 도입한 것이다. 물론 기사를 통해 태국에 중국제 객차가 도입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중국제작소 명패를 보게 되니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