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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김동길의「3金 낚시론」

5공정권이 한창이던 1985 4 4, 연세대 김동길(金東吉) 교수는 한국일보 목요칼럼’ <동창(東窓) 열며> 코너에「나의 때는 이미 끝났다」라는 기명칼럼을 실어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신문에 실린기명칼럼 한꼭지의 무게와 파급력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것 같다. 암울한 5공정권 아래에서 민주화투쟁이 한창이던 때 발표된 칼럼은이른바 ‘3 낚시론으로 인구에 회자되며 세간에 파장과 격론을 불러 일으켰다.

에서 김교수는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등 이른바 ‘3씨에게 이제 당신들의 시대는 끝났으니 정치는 40대에게 맡기고산좋고 물맑은 곳에서 고기나 낚으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라" 권유하며 ‘3金 퇴진론 주장하고 나섰다. 80년초 ‘3씨가 서로 자기가 대통령이 되려고 싸우는 바람에기회였던 서울의 (1980)’ 허망하게 산시켜 국민들에게 깊은 절망감 안겨 줬고, 또앞으로도 그 가능성이 없을테니, 이제그만‘3金’씨는퇴장해야 한다는 주장였다. 당시만 해도 민주화투쟁의 지도자로서 양金 지지하고 따르던 국민들이 상당수였고, 당연히 컬럼은 3 지지자들로부터 엄청난 반격’받았고, 뒤에모종의 배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러 일으켰다.

당시 김대중씨는 칼럼을 접한 소감에 대해 어디 낚시 하기 좋은 장소를 가르쳐 주면 그렇게 하겠다라고 웃어 넘겼고, 김영삼씨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라면 나올 있는 하나의 얘기’ 받아 넘겼다고 한다. 2004 10 오늘이미 그때의 3金중 양金(YS,DJ) 대통령까지 지냈고, 끝내 서산을 붉게 물들이겠다고 호언’까지 했 나머지 1 (JP)마저도 홀연히 정계를 떠난 마당에, 19 전에 쓰여져 큰 파문을 던져줬던 ‘3 낚시론’’ 제 블로그 명문감상’코너 통해 다시한번 읽어보고자 한다.

<1985.4.4.(한국일보) ><김동길 前연세대 교수>

나의 때는 이미 지났다” (3金 낚시론)

김동길(金東吉)

10.26이후 5.17 이르기까지의 반년 남짓한 세월, 이나라의 신문과 잡지에는 ‘3김씨라는 낱말이 곧잘 사용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세사람의 김씨가 누구 누구라고 구태어 이름을 들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중에 분은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하여, 소련의 관영 타스통신이 분의 동정을 언급할 정도가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눈으로 통신의 기사를 직접 읽은 것은 아니니 틀림없다고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마는.

분은 명색이 야당이라는 나라의 정치집단에사꾸라 만발하였을 이럴 수는 없다 과감하게 일어나 몽둥이와 각목, 돈과 돌맹이가 난무하던 어지러운 판국에 그래도 야심과 양식과 용기를 가지고 싸워 드디어 승리의 면류관을 차지하기에 이른 한시대의 영웅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김씨는 5.16 군사 혁명의 실질적 주역이었다고 하지요. 30대에 이미 나라 정치의넘버 으로 각광을 받았을 때는 그에게 과거에 별을 4개나 달았던 어느 퇴역장군이 정초에 식구들을 모두 거느리고 세배를 일도 있었다지요.

김씨를 내가 개인적으로 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점심이건 저녁이건 한끼 같이 하지 않은 분은 없으니 서로 모르는 사이는 결코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월츠에 붙인 옛노래에는,

어느날

우리가 젊었던 어느날

화려한 5월의 어느날 아침

그대 향해 사랑한다 하였지

화려한 5월의 어느날 아침

이라 했으나 세분 김씨에게 있어서는 1980 5월은 4 보다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분은 재판을 받고 마침내 사형이 언도되었고, 한분은 정계를 은퇴한다는 성명을 발표해야만 했고, 분은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몰려 이름이 신문에 나기도 습니다. 정치의 내막을 나는 모르는 사람입니다마는 분의 심정이 각가 얼마나 어둡고 답답하였겠습니까?

그리고 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분은 사형을 면했으나 부자유의 . 낯선 땅에서 고향하늘만 바라보면서 돌아갈날만 손꼽아 기다렸을 것입니다. 분은 등산과 서예로 답답한 심사를 달래다 못해 오죽하면 인도의 간디처럼 여러날 단식투쟁을 감행하기 까지에 이르렀겠습니까? 그리고 분의 근황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분의자의 타의 허송세월 5년을 과연 누가 보상해 있을 것입니까!

지금은 미국에 체류중이라지만 유신체제의 핵심분자들로 구성된미주중흥동지회 조직된 마당에 귀국을 서두를 밖에 없으리라 믿습니다.

정치의 판도가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는 때에 이들 김씨의 재등장을 바라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씨의 시대는 이미 갔습니다. 그러나 말에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나는 세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친근감을 가지고 사랑과 존경을 아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머니에 여유가 있는 날이면 세분께 점심을 용의도 있음을 밝히고 싶습니다. 내가 세분을 아끼기 때문에 이런 말을 감히하는 것입니다. 세분의 시대는 이미 갔습니다. 내가 시간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없는 것도 있고, 해서는 안될 것도 있습니다. ‘ 없는 심사 부디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1980 선거에서 세분 중에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어도 나는 충성으로 받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때는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정치에도 문외한입니다. 그러나 역사학도로서는 일가견을 가졌다고 자부합니다. 역사에는 반복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됩니다. 김씨의 시대는 영영 가고 다시 오지 않습니다. 세분을 놓고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그중의 한분을 대통령으로 뽑거나 세분이 합의하여 혹은 두분이 합의하여 사람의 후보자만을 내세워 그가 나라 대통령이 되거나 하는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화 되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렵겠다는 말입니다.

1960년대 , 월남전쟁을 반대하는 미국 젊은이들의 반전운동이 민권운동과 뒤엉켜 미국의 대학들이 한창 소란하고 혼란하던 , 하버드 대학의 행정관을 일부 과격한 학생들이 점거하였으므로 학교 행정이 마비되고 말았다. 당시 총장으로 있던 퓨지(Nathan M. Pusey) 교무위원회를 소집하고 대책을 강구 하지 않을 없었다.

토론의 주제는경찰을 부를 것인가? 부르지 것인가?’ 하는 매우 간단한 이었다. 학교장이 부르지 않으면 캠퍼스에 경찰이 발도 들어서지 못하는 것이 미국의 전통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의견은 둘로 갈라져서, 쪽은 경찰을 불러야 한다 하고(과격파 학생들이 교수의 철수 권유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고 있었으니까). 쪽은 지금은 그럴 아니다 하고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다. 퓨지 총장은 경찰을 부를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법과대학의 학장직에 있던 바크라는 젊은 교수는 경찰을 불러서 해결하는 것은 반드시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학교 행정의 궁극적 책임이 총장에게 있는 터이라 그는 소신대로 경찰을 불러 행정관을 점거한 학생들을 끌어내 행정관은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고 행정은 다시 정상화가 되었다.

그러나 임기를 아직 1-2 남겨놓고 있던 퓨지총장은 돌연 이사회에 사표를 제출하면서 "나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유명한 한마디를 남기고 임기 전에 물러났으며, 후임에는 자기와 전혀 반대되는 의견을 내세었던 법과대학의 바크학장을 지명하였다. 바크는 덕에 총장이외어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으므로 하버드는 계속 세계의 명문대학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때는 이미 지났다" 퓨니 총장의 한마디는 과연 훌륭한 교훈입니다. 하루도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일도 없는 분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라고 권하는 마음도 괴롭습니다. 그러나 그것 밖에 길이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처럼 백의종군하는 것도 위대합니다. 그러나 아예 종군조차 안하는 것이 민족을 위하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결코 누구나가 있는 일이 아닌줄도 압니다. 그러나 십자가 조차도 사양하므로 조국을 빛낼 수도 있는 일입니다.

나라 민주주의의 기수는 이제 40대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들에게 길을 열어 주고 기회를 주기 위해서 동교동파니 상도동파니 하는 따위의 낱말도 이상 듣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리고 김씨가, 가능하면 김씨가우리는 간다 내용의 성명서나 하나 발표하고 나라의 어느 시골로 낙향을 한다면 얼마나 멋진 정경이 되겠습니까!

좋고 좋아 은퇴하여 낚시질하기 알맞는 곳을 소개해 드릴수는 있습니다.

김씨여, 김씨여, 아직 빛이 있는 동안에 서울을 떠나세요. 어서 떠나세요. 어둡기 전에, 어서

내게도 말은 있다(낚시론을 쓰고 나서)

김동길(金東吉)

한편을 써서 세상에 이렇게 소동을 일으키는 일도 드물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릴 정도의 칼럼이란 읽고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아침신문인 경우 조반을 끝내고 일어설 쯤에는 기사의 내용을 말끔히 잊어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지난 44일자 한국일보의 목요칼럼동창을 열고 실렸던 짧은 "나의 때는 이미 끝났다"(속칭 낚시론) 대한 반응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어떤 젊은이는 직접 나를 찾아와 하는 말이 자기는 글을 읽었을 때에는 하도 놀라고 흥분하여 가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면서 쉰번 읽고 나니 비로소 마음의 안정이 생기더라고 하였다.

글에 대한 반응도 매우 다양하였다. "감격했다" 시작하여 "분통이 터진다" 이르기까지 천차만별, 심기가 약한 사람 같으면 정신과 의사를 찾아야 할만큼 충격이었다. 서대문과 안양의 인생대학을 마친 경력이 그래도 번에 크게 도움이 되었던 같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 XX"하고 끊어버리는 돌격대원, 특공대원도 없지 않았으니까.

글을 읽고 얼마나 화가 났던지 나더러 아예 지구촌을 떠나 달라고 협박인지 공갈인지 마구 갈기다, "장가도 못간 주제에 무슨 소리냐" 식의 욕설로 끝낸 자도 있었으니! 심지어 정부와 여당에서 도대체 돈을 얼마나 받아 먹었느냐고 대담한 질문을 던지는 대담한 한국인도 사람은 있었으니!

어찌하여 짧은 편이 화창한 봄날에 이토록 폭풍을 몰고온 것일까? 변변치 않은 때문에 자신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아니라 사방에서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고, 어느 직장에서는 격론 끝에 서로 주먹질을 하는 싸움판이 벌어져 마침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일도 있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사실은 칼럼이 목요일에 나갈 것이 아니었다. 주의 목요 칼럼으로 정성스레 써서 신문사에 보냈던 전혀 다른 내용의 글이 있었다. 나는 글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었다.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당인 민정당이 원내 분과위원장을 내정했다는데 열네 사람 위원장의 경력을 살펴보니 반수나 되는 7명이 출신이고, 셋은 신문기자, 나머지 넷은 법조계, 실업계, 노총 등으로 골고루 널려 있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느냐? 어찌하여 정치의 일선은 국방을 전공한 군인 출신들에 죄다 떠맡기고 "바람과 함께 사라졌느냐" 따진 내용의 글이었다.

그런데 글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신문사 편집자가 목요일에 싣지 않았다. 기사가 폭주하여 싣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쓰고 그런 서러움을 처음 당한 것은 아니다. 글을 몽땅 내지 않은 것은 그래도 참을 만하다. 그러나 하기 위하여 하면, ‘ 내고 도려내므로 어지간히 난처하게 적도 여러 있었다.

언론 자유의 폭을 넓히기 위하여 딴에 결심을 단단히 하고 글도 더러는 있었다. 그러나 언론을 맡은 사람들이 부분을 깎아버리고 대패질하여 매끈하게 만들어 세상에 내놓으니 독자들에게 미안한 뿐이다. 책임이란 어디서나 서로 나누어져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안일 무사주의로만 나가면 언론의 고지는 영영 점령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번씩 붓을 꺾으려 한다 그래도 꺾을 없는 붓이 있어서 붓을 들고 비장한 각오로 예까지 왔다.

그런데 내가 지나간 30 동안 써서 세상에 내놓은 수천 수백편의 가운데 이번의 처럼 파문을 일으킨 예는 일찍이 없었던 같다. 까닭은 첫째 3김씨의 비중이 나라 정계에 매우 크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동시에 그것이 논쟁의 불씨가 되는 까닭은 현실을 보는 국민의 안목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믿어진다.

글에 대한 반론의 9할은 20 가까이 권력의 횡포에 시달려온천하의 아무개가 이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존경했지만 앞으로는존경못하겠다는 것이다. 돼가는 밥솥의 솥뚜껑을 열고 찬물을 끼얹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덧붙이는 말은 이번에 한마디로 정부와 여당이 크게 유리하게 됐다고 통탄해 마지않는 것이다.

견해의 차이는 있을 있다. 그것이 민주사회가 아니겠는가? 만약 야당의 당수가 " 대통령은 임기 전에 물러날 채비를 해야 한다" 말을 없었다면 말이 이간신문 그것도 1면에 당당히 실리지가 않았더라면 나는 ‘3김씨의 퇴진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여당권에 대한 공정한 비판이 자유로우려면 반드시 야당권의 인사들도 기탄없는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발언이 "정부와 여당을 크게 유리하게 헸다" 비난에는 시대를 사는 지성인의 사람으로 참을 없는 모욕감을 느낀다. 나를 뭘로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대학교수의 입장에서 때에는 여당과 야당이 어떻게 다른가 하면, 여당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가 쉽고, 야당은 권력 밖에 있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드문 것뿐이다. 그러면 정부와 여당은 잘한 일이 있어도 얻어 터져야 하고 야당은 잘못 하는 일이 있어도 칭찬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도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시간까지 살아온 사람이다. 내세울만한 업적은 없지만 생각과 태도만은 한결같았다. 다시 사회가 혼란해지고 1985년의 봄이 오다 말고 되돌아가면 나의 신세가 또다시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자신이 누구보다도 알고 있다.

야당과 여당을 가리지 말고 이것이 민주주의냐 민주주의가 아니냐를 따지기로 하자. 민주주의가 아닌 것은 여당에서 해도 잘못이고 야당에서 해도 잘못이다. ‘이사람 아니면 안된다 사고방식은 여당 사람이 가져도 잘못이고 야당 사람이 가져도 잘못이다.

나는 강자의 편에 서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죽는 날까지 약자의 편에 서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교만한 사람은 치고 겸손한 사람은 밀어지고 싶은 것이 내가 지니고 사는 종교에 가까운 일종의 신념이기도 하다.

"대통령 물러가라" 말을 하고도 밥을 먹고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는 "야당 지도자도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어떻겠느냐" 개인의 의사가 자유롭게 발표될 있어야 한다. 집권자를 향해 "물러가라" 해서 순순히 물러가는 집권자를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한마디에 순순히 물러갈 야당 지도자는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말을 있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날이 밝아오게 하기 위해서 여간 절실한 노력이 아닌 것이다. 여당 지도자에게 있는 말을 야당 지도자에게는 비칠 수도 없는 사회라면 어쩔 없이 나라는 독재국가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더러 여당에서 돈을 얼마나 받았느냐고 물었으니 사실대로 대답하겠다. 떨어진 동전 받은 것이 없다. 어서 지구촌을 떠나달라고간청 했지만 나의 하느님이 나를 부르실 때까지는 내가 여기 눌러 살면서 야당과 여당에 대해 공평한 비판을 가할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가 실어주지 않는 것은 책임은 아니다. 언론의 책임은 언론인에게 있어야 마땅하다.

끝으로, 이번 일로 하여 나에게 격려의 말과 글을 보내준 수천, 수백의평범한 시민들에게 고마운 뜻을 전하고 싶다. <원문인용: 김동길 홈페이지 Freedom Watch>

*Notice: 여기서의 [명문]은 잘 알려졌다는 의미에서의 [명문]입니다.

6 Comments

  1. 오지웅

    2004년 10월 15일 at 1:43 오전

    지금 읽어봐도 명문입니다. 김동길교수님의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이 돋보이는군요.
    양김이 대통령이 안돼었다면 이 나라는 훨씬 더 앞에나가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2. JeeJeon

    2004년 10월 15일 at 12:58 오후

    무엇인가 남기고 싶어 들어왔습니다. 김동길 선생님의 명문을 다시 꺼내어 볼수있게
    해 주시는 구요,, 이글은 휴머니즘이 근본이 되는 글인거 같습니다.
    휴머니즘,,이 우선이 되는것 잊지않도룩 하겠습니다    

  3. 오현기

    2004년 10월 15일 at 1:04 오후

    여기 [명문]은 꼭 명문만을 골라서 올리는 것이 아니고요..일종의 ‘필화’에 얽힌 글들이라고 해야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질곡의 역사에서 사회적 파장이나 화제를 불러 일으킨 컬럼이나 논설을 모아보는 작업니다. ‘정치적 편견’을 배제하고 읽어주시면 될 것이고요… 한국은 너무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고약한 버릇들이 있습니다. ‘정치과잉’ 사회라고 칭하는 것도 그래서지요. ‘정치’가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큰    

  4. 오현기

    2004년 10월 15일 at 1:07 오후

    ‘무엇’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거든요…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에 대해 열린 사회가 되어야 한국의 문화과 사회에 ‘고상함(Decent)’이 스며들 수 있을 것으로 봐요…제가 너무 ‘공자님’ 같은 말만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5. 1004

    2004년 10월 15일 at 2:36 오후

    ‘공자님’ 같은 것이 아니고 이미 ‘오현기’ 公 의 등극입니다. 연일 대박 축하합니다. ^^    

  6. 김남교칼럼

    2004년 10월 15일 at 3:33 오후

    오현기님 옛날 기사만 가지고 훈구학을 하시고 계시니 시절을 낚는것인가요 허허 김동길씨가 그렇게 싫어하시는 빨갱이 잡으로 나가셔야지요~~ 좋은 노력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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