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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이승복 판결’에 접하여… - Media Gaze…
‘이승복 판결’에 접하여…

오늘 이승복사건에 대한6년간의 지루한 법정 ‘진실공방’이 마침내 그 매듭을 지었다. 이로써 1968년 12월 9일 울진 삼척지구에 침투한 무장공비의 손에 참혹하게 살해당한 이승복군은다시 부활했고, 조선일보 또한 ‘조작보도’라는 ‘오명’을 벗었다.

애초부터 이 사건은 법정에 오를 사안은 아니었다.산골마을 일가족이 무장공비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된 사실 하나만으로’공산당은 싫어요!’ 의 당위는 충분했다.그러나 조선일보를 비난할 ‘꺼리’를 찾아 해메던 사람들은 처참하게 죽어간 ‘이승복’의 주검 마저도조선일보 공격의빌미로삼으려했다.

참으로 매정하고 궁색한 일이 아닐 수 없다.강원도 산골마을 어린아이의 참혹한 죽음마저도 ‘이념공격’의수단으로 삼아야 하는 그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조선일보에 대한매도 공세는 비단 이것 뿐만은아니었다.이승복 사건이 터진 뒤 2년이 지난 1970년 11월.청계피복 전태일 봉재사의 분신자살 건도이들은 가만두고 보지않았다. 당시’전태일 분신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던 유일한 신문은 조선일보뿐’ 이라는 공세가조선일보를 반대하는 사이트들을통해 한동안 흘러다녔다.

아니나 다를까…확인한 결과역시 그들의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달랐다. ‘전태일 분신사건’은 당시 여느신문과 똑같이 조선일보에도 실렸고 사설로도 다뤄졌다.그것뿐이던가? 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당시 조선일보의 이상현 기자는’전태일 친필 일기장’을 단독입수해 자매지 ‘주간조선’에보도함으로써 특종보도까지 했던 사실도확인되었다. 이런 사실이제시되자역시 그들은 인터넷에 간단한 사과문 하나만 달랑 올려놓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엊그제 조선 블로그에는평소 조선일보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모 블로거가 ’37년 ‘중일전쟁’ 이전의조선일보 대표적 ‘친일기사’의 예시로1930년 1월 12일자에 게재된 <동요중인 학생제군, 책상 앞으로 돌아가라!>란사설제목을불쑥 드밀었다. 그 블로거가 제시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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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30년 1월 12일 <동요중인 학생제군, 책상 앞으로 돌아가라!> 사설의 본문은 이런식으로 되어 있읍니다.
<광주학생사건에서 발단이 된 학생시위사건이 전 조선에 확대된 오늘날에 있어 제군이 비상을 버리고 평상에 돌아와 고요한 책상앞에 용기있게 돌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중략) 허다한 불만과 실망속에 이토록 확대된 것은 학생들의 불행이자 조선의 불행이었다 >
저는 이 사설이 군사정권 시절 운동권 학생들을 질타하며 학업으로 돌아가라고 떠들던 조선일보의
논조나 이번 탄핵때 촛불시위에 대해서 헌법재판소 판결에 맞기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자고 떠들
었던 조선일보의 주장과 비견된다고 봅니다. 그것이 학생들의 항일 시위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서가
아니고 학생들을 위해서 썼다고 하는 것은 오현기님의 해석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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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블로거는 처음 그 사설의 제목만을 제시했다가, 반론을 제기하자 재차 사설속의 두 문장까지예시하며 ‘중일전쟁’ 이전에도 조선일보는 이런식으로 ‘친일’에 앞장선 신문이라는 반론을 제기했다.이 블로거가사설의 전체내용을 알고있지못하는 것으로 보면아마도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모 사이트의자료를 그대로 옮겨왔던 것 같다.

그러나 1930년이라면 일제시대 최대 항일조직인 ‘신간회’의 ‘총본산’을 자임했던 조선일보가아니었던가?의심을 갖지 않을수 없었다.아니나 다를까깨알같이 쓰여진 사설을 읽어본 결과, 사설의 속 내용은그 블로거가인용한 것과는 전혀다른 내용이었다.곳곳에 뭉그러진 한자들이 많은 1930년 지면이므로 여기에 전 내용을 옮길 수는 없고, 그사설내용중큰 맥락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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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광주학생사건에서 발단이 된 학생시위사건이 전 조선에 확대된 오늘날에 있어 제군이 비상을 버리고 평상에 돌아와 고요한 책상앞에 용기있게 돌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불평을 하소하고 비상(非常) 태도를 가지는 것은 원래 부득이에서 나오는 인생행로에 있서서의 불행이니 선배와 장상(長上) () 있어서 그러하거니와 본래가 수양과 연습의 시기에 있는 청소년의 학생제군으로 책상을 버리고 3 방면으로 나선다는 것은 실로 만부득이 함에서 나옴이었음일 것이요, 평상적(平常的) 일이 아니었다.

—-광주학생사건이 양교간의 학생 문제로서 정당하게 끝을 짓게되지 못하고 허다한 불만(不滿) 실망(失望)속에 이토록 확대되게 된 것은 청소년의 학생제군의 불행이요, 조선(朝鮮)의 불행이었섰다.

——-어찌하였든 배우고 알고 깨닫는 것이 우리의 힘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청년들의 배우고 알고 생각하며 나아가는 전도(前途)에는 확실히 역사적으로 광명(光明)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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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설의 기본내용은<우리 차별받는 조선의 어린 학생들이일제의 차별적 처사로 부당하게 투옥되고가혹하게 처벌받는 것을 우려,조선인의차별과 억울함을 벗기 위해 미래를 위해 힘을 길러야 한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이런 내용을대표적인 ‘친일사설’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욱이 이 사설과 함께바로 옆에 게재된 <엄벌주의(嚴罰主義는 불가(不可)하다> 라는사설이 실린 것을 보면 그 사설의 취지는 더욱 뚜렷해진다.

이를두고 모 사이트에서 축적해놓은 자료를 그대로 옮겨온 이 블로거만탓할 일은 아니다.다만이 사설의 전문(全文)을 모두 읽고도, 그 중에서공세의 ‘빌미’로 삼을만한 제목과 두 문장만 꼭 찝어낸 누군가가 어디에 있을 것이고, 그 누군가는당연히사설의 기본취지는 물론, 함께 게재된 <엄벌주의는 불가하다!>란 사설도 함께 읽어보았을 터였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이후, 일본제국주의의 조선탄압이 극에 달했던일제말기의 그때….조선일보도눈물을 삼키며 일부 ‘굴필’을 할수 밖에 없었던것은 일제치하 암울했던 시대의 ‘아픔’일 것이다.그렇지만 조선일보는 1920년 창간된 후, 1937년 ‘중일전쟁’ 까지의 십수년 동안, 숱한정간-압수기사와 기사삭제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버텨온 일제하 ‘민족기관’ 였음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재야 언론인 송건호 선생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었던가? 이런 시대상황을 이해하고 있기에 조선일보가 복간되었을 때,그 누구보다도 독립운동에 앞장섰던백범 김구선생이’친필휘호’까지 적어 보내며맨먼저 조선일보 ‘복간’을 축하해 줬던 것이다.

일제치하 조선일보는항일운동의 최대조직인 ‘신간회 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던 ‘총본산’였고, 그밖의 이상재, 안재홍, 조만식, 신석우, 홍명희, 한용운 선생과 같은 민족 애국지사들이참여하며, 문자보급운동, 억센조선 만들기, 물산장려운동, 조선특산품 장려운동, 3남 수해민 구제운동, 조선인 차별철폐운동, 조선의 문화예술 체육활동의 고양 등등…식민치하에서도 수많은’민족운동’을 펼쳐왔던 것이다.이런 연유로 조선일보 폐간때까지 본지에 <삼국지>를 연재하던 만해 한용운 선생은 조선일보 폐간의 분노를 <신문이 폐간되다!>라는 절절한 싯구 속에담아냈던 것이리라….

김구 주석이 조선일보 복간을 축하하며

보내온 친필 휘호, <1945.11.26 1면>

<신문 폐간되다> -한용운-

붓이 꺾이어 모든일이 끝나니

이제는 재갈물린 사람들 뿔뿔이 흩어지고

아, 쓸쓸키도 쓸쓸한 망국의 서울의 가을날.

한강의 물도 흐느끼나니 울름 삼켜 흐느끼면

연지(硯池)를 외면한 채 바다 향해 흐르느니!

<폐간호 마지막 八面鋒> -45.8.10-

비 바람 겪어서 二十春 二十秋, 一日에 一喝,

이 몸의 使命도 이날로 終焉.

豆太는 두들겨 荒皮를 벗고, 山葵는 찧어서 辛味를 내고,

麥粒은 썩고 죽어 吐芽를 하나니,

이 몸의 죽음도 또 그러리라.

萬死를 渡涉後야 一生을 얻을지요,

一生에 執着은 萬死를 부를지니,

이 몸의 生死觀은 이 한마디.

凡衆은 死로써 ‘結論’을 삼되,

이 몸은 死로써 ‘前提’를 삼으리라.

結論의 뒤에는 寂滅이 기다리되,

前提의 앞에는 生生永劫이 있음에랴.

維摩의 一默은 百雷도 敢不當!

이 몸의 歸默 또 그러리니…

그래도 가노라, 이 몸은 가노라.
前後劫 億萬讀者여, 萬福康寧하시라

8 Comments

  1. 오현기

    2004년 10월 29일 at 2:30 오전

    코스모스님… 어제 님이 먼저 제안했던 ‘댓글’로 대신에 ‘엮인글’로 하자는 제안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위에 올려놓은 ‘댓글’ 하나하나에 대한 나의 생각도 이미 충분히 전달 드렸었죠. 그런데 지금 여기서 이미 나눴던 공허한 얘기를 똑같이 반복하는 이유는 뭐지요? 스스로 제안했던 ‘기본약속’도 못지키려면 왜 어제 그런 ‘제안’을 했던 거지요?   

  2. 오현기

    2004년 10월 29일 at 2:33 오전

    코스모스님… 똑같은 ‘공허한 주장’를 반복하려거든 차라리 가슴에 ‘한(恨)’을 메달고 투혼을 불사르며 달렸던 ‘손기정’ 선수의 뺨을 치십시요. 허기진 배를 움켜지면서 ‘배급’ 타먹으려 ‘창씨개명’을 하고 아침마다 ‘황국신민서사’를 줄줄외던 이땅의 90%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돌을 던지십시요. 교정에 ‘일장기’ 휘날렸던 ‘민족사학’ 연희전문과 보성전문의 ‘폐교’를 주장하십시요. ‘일장기’ 2개를 나란히 교차하여 내걸었던   

  3. 오현기

    2004년 10월 29일 at 2:35 오전

    덕수궁앞 ‘대한문’ 정문을 당장 ‘도끼’로 내려 치십시요. 60년전 교실에 일장기를 걸었던 전국의 수많은 ‘초등학교’를 찾아다니며 코스모스님의 ‘공허한 주장’을 적어 ‘피켓시위’를 벌이십시요. 불과 하루전에 한 ‘약속’마저 헌신짝으로 내던져버리는 님의 ‘가슴’을 치면서 ‘나는 왜 이래야만 할까’ 하고 스스로 ‘자문’을 해보십시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은 날이 되길 바라면서 이만….    

  4. 태사공

    2004년 10월 29일 at 11:52 오전

    아우 거 뭐, 있잖아요!
    "한넘만 팬다!" "팬데를 또 팬다!" 뭐 그런거죠..
    점점 사실이 드러날 겁니다.
    역사란 그런 겁니다…
    암튼 홧팅하시고~~!!!!   

  5. 무대포아줌마 Mua

    2004년 10월 29일 at 8:13 오후

    오현기님.화이팅입니다!!!
    님이 이토록 묵직한(?) 분이시라 가벼운 제글을 좋아해 주셨군요….^^   

  6. 李起元/기원

    2004년 10월 29일 at 9:39 오후

    깊이 있는 내용들 감사…
    이데올로기에 젖어 잇는 사람이 진정 누구인지 판단케해주시네요.
       

  7. noonoo

    2004년 10월 29일 at 9:51 오후

    전 내막을 잘몰르고..
    또 조선일보만 무조건옳다고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만..
    오현기님의 본문이나 덧글에 쓰신 거는 정말 추천 드리고 싶어지네요..

    왜 이러케 사람들이 단세포적이 되어가는지..누구 탓인건지 진짜 몰르겄씁니다여..ㅠ.ㅠ   

  8. 칸제국

    2004년 11월 2일 at 11:59 오후

    오현기님의 댓글에서 솔직한 표현이 드러나는데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기에 공감합니다. 일장기를 달았다고, 천황에 충성하는 글을 썼다고 해서 친일부역신문으로 매도하고 죽이려 든다면 당시 누가 살아남겠으며 한글과 한국민의 문화는 누가 그나마 챙겼을까요? 이념만 앞세운 단순한 탈레반 원리주의자, 정명을 앞세운 수구 유교꼴통들이나 하는 짓거리를 덜 떨어지게 세계화시대에 딴축걸고 태클거는 좌익개구리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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