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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명중 400등’의 함정…

요즘의 최고 ‘잇슈메이커’황우석 교수님이 알고보니 저와 동향인 충남 부여 출생 이시더군요. 괜히 저까지 덩달아 자랑스러워지는 요즘입니다.오늘 조선닷컴이 동아일보 보도를 인용하여 기사화한 <황우석교수, 고교시절엔 480명중 400등> 기사를읽자하면,마치 황우석 교수님이고교1년생 때는지금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했는데, 그의 부단한 노력으로 졸업때는 우등생의 반열에 올랐고, 오늘같이 세계적인 과학자가 된 것 처럼 묘사되는 듯한느낌을 얼핏 받게 되더군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저와 황교수님과는 십 수년의 시간차는 있지만, 제가 그쪽동네 상황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황우석 교수님은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 잘하신 우등생 중의 우등생였음이 틀림없습니다.황교수님의 고향인 충남의 ‘은산’이라하면 시쳇말로 거의 깡촌중의 ‘깡촌’ 입니다. 부여 읍내로부터백마강 건너편쪽에 위치한 전형적인작은 농촌마을로써,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읍내에서툴툴거리는 시내버스가자갈길 먼지 풀풀 날리며 몇십 분을 달려들어가야 될작은 마을 입니다.

아마 황우석 교수님이 중학교 다닐 때에는동네전체에 전깃불도 들어가지 않아등잔불 아래서 ‘형설지공’의 면학을 했을 것이틀림없을 거구요. 당시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여여느 대도시의 우등생도 넘보기 어려운명문 ‘대전고’에 합격할 정도였다면 아마군내에서는거의 ‘수재’란 소리를들었을 것이 틀림없어요.모르긴 몰라도 황교수님이 ‘대전고’ 합격했을 때마을에서는 경사났다고 ‘영롱이’ 닮은 황소 한마리쯤 희생당했을 것이 틀림없었을 거구요.

저 또한 훨씬 뒤에 대전고에 시험쳤다가몇 점의 차이로 고배를 마시고, 이듬해 바로 연합고사로 바뀌는 바람에 ‘촌놈’의 큰 꿈을 접었던 젊은날의 아픔이 있긴 하지만, 당시 저희 동네에서도 한참을 더들어가는 촌동네’은산’에서 도내의 수재들만 모인다던 ‘대전고’에 들어갈 정도로 실력였다면,황교수님은 일견 <480명중 400등>이 주는 표피적 느낌처럼대충했던 공부가아니고 공부하나는끝내주게 잘했던 것입니다.

황교수님이 고1때 첫 성적이 ‘480명중 400등’으로 후미에 뒤처졌던 것은 처음 당하는 대도시의 환경적응이 덜 된 탓도 있을 터이고, 또시골 중학교에서는일등만 독차지하다가도내의 ‘공부벌레’들만우글우글 모인곳에서초반 ‘전력탐색’이 덜된 탓도 있을 것이구……. 아무튼 <황교수, 480명중에 400등> 이라는 기사제목만 보고는 황교수님이 애초 학업성적은그저 그랬는데, 지금은 ‘입지전적’ 과학자가 되었다라는틀에 끼워지는듯한느낌을 받게 되던데, 제가 그쪽동네사정을 조금 알고있는입장에서 말하면 "황교수님은 ‘공부’ 가지고는 더 이상 말할 건덕지가 없을만큼처음부터 아주 잘했다" 라는 것입니다. 뭐 ‘학업성적’이 중요하다고 말하자는 뜻은 아니고 그게 그렇다는 것입니다.

황우석교수 고교시절엔 480명중 400등

입력 : 2005.05.24 09:10 44′



▲ 황우석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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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고등학교 시절 첫 시험 성적이 전교생 480명 중 400등이었다고 동아일보가 24일 보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1969년 대전고등학교에 입학한 황 교수는 1학년 중간고사에서 400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충남 부여의 은산초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3년 장학생으로 중학교를 마친 황 교수로서는 충격적인 성적이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황 교수는 이후 ‘방바닥에 등을 대지 않겠다는 각오’로 친구들과 ‘등안대기 클럽’을 만들어 공부에 매진했고 2학년 때는 전교 200등, 3학년 때는 상위 10% 안에 드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동아일보는 “중학생 때부터 대전의 친척집에서 기거한 황 교수는 차비가 없어 1년에 두 번밖에 고향집을 찾지 못했고, 이발비가 없어 생활지도 담당교사로부터 머리를 깎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고등학교 때는 도서관 사서 보조로 일하며 학교에서 학비를 지원받았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특히 특별활동으로 3년 내내 원예반에서 활동했던 황 교수는 고등학교 때 장래 희망을 ‘축산’이라고 적었다”며 “고교 3학년 때 서울대 의대에 진학하라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수의대를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소를 키웠던 어머니를 도우며 소에 대한 최고 전문가가 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덧붙였다.

18 Comments

  1. 인생컨설팅

    2005년 5월 25일 at 10:59 오전

    본시 …건수 잡기식으로 기사를 쓰는 버릇은…동서 고금을 막논하고…이바그꾼들의 기본 자세이니…괘념치 마시기를….그래서 기자선생과 논객과 신문쟁이가..다양항 각도로 조명을 받는 것이니..다 인간사 그러려니 생각하시고…지내시기를 빕니다…언제 또 좋은 이바구로 읊어 줄… 기자 양반들이 아니겠습니까?…..감사..   

  2. 김성덕

    2005년 5월 25일 at 11:06 오전

    요즘 기자들 클릭수 올리기 위해서는 조작에 왜곡 거짓까지도 마구하는 사냥하는 굶주린 하이에나 같지요.    

  3. noonoo

    2005년 5월 25일 at 11:09 오전

    앗! 대전고?? 대흥동 대고 오거리?? ㅋㅋㅋㅋ

    에궁~ 방가워유~ 몰랐꾸만뉴….ㅋ.ㅋ

    음~ 역쒸 멍청도 따봉! ~ 이라니께유~..~ ^0^

    절라도… 갱상도… 지럴들 말라구혀유~
    밖에서 사고치는 건 우리 멍청도니께~~ 마찌유?? ㅋㅋ

    차노박, 팍쒜리~ 류관순…기타등등~ 흠냐~ ㅋㅋㅋ

    오랜만임돠~ 연합고사 선배님~ 헤헤 ~꾸벅 (..)~   

  4. 공간사랑

    2005년 5월 25일 at 11:14 오전

    제가 알기로 당시 한강이남에서는 최고명문으로 알고있었는데요. 끝에서 20등 했어도 고대에서 과를 골라갔다는 …    

  5. 노바

    2005년 5월 25일 at 12:18 오후

    제 블로그 ( blog.chosun.com/lutec2000 ) 에 올린 글 입니다.

    "무식한 조선일보기자에게"

    책 좀 읽고 기사나 쓰기 바란다.
    정말로 쪽팔리는줄 알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미국에 사는 나도 황우석박사의 워싱턴 강연 소식에 인터넷을 검색해서 황교수의 자서전격인 "나의 생명이야기" 양장판을 27불주고 사서 황박사의 자필사인을 강연회에서 받았고 감명깊게 읽고 있는중이다.
    그 책속에 황교수가 대전중이 아닌 서대전중을 3년 장학생으로 가게 된 경위와 대전고 첫 시험결과가 400등이였다는 일화가 앞쪽에 나온다. 200등만하면 서울대학교에 입학할수 있는 수준의 400등이다.
    대 조선일보의 기자란 작자들이 어떻게 동아일보의 기사를 베껴서 (인용해서) 버젓이 신문에 낸단 말인가?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505/200505240049.html
    책내용중에 있는것을 인용하면 인용료를 내야되니까 그 돈이 아까워서 그러는 짓인가?
    황우석 황우석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황우석 후원회에 가입해서 후원금을 내든지, 아니면 황교수의 책이라도 사서 작은 정성이라도 표하는 기자가 되기를 바란다.
    작년말 조선일보의 박해현기자가 황박사의 책에 대한 서평을 올렸다면, 조선일보에서도 이 책을 읽은 기자들이 숟하게 있다는 뜻인데, 동아일보의 기사를 인용 보도한다는것은 무슨 꿍꿍이 속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제발 쪽팔리는 짓거리는 그만 두기를 바란다.

    맑고 향기롭게
    노바   

  6. 해돌이

    2005년 5월 25일 at 1:10 오후

    아, 나도 대전고 갈 수 있었는디,,, 그 놈의 평준화가 다 망쳐버렸다..   

  7. 참새

    2005년 5월 25일 at 2:11 오후

    글을 이해하는 부분이 좀 모자르시군요. 신문에 난대로 은산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에 졸업하고 3년장학생인데다 촌학교에서 대전고등학교를 들어갔다면 당연히 공부 잘하는 수재로 이해되는데 …다른 독자들도 마찬가지겠죠.다만 전설적 인물인 황우석교수님이 480명중 400등 한적도 있다는 그저 단순히 독자들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 바램을 기사에 담고 싶었던거겠죠. 어쨋든 동아나 조선이나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신문입니다.   

  8. noonoo

    2005년 5월 25일 at 2:39 오후

    헤헤~ 해돋이니임~

    저는 어려서부텀 대전고 맨날 가서 놀았능디유…ㅠ.ㅠ…별 거 없써유~

    사는덴 별 도움 안됨…저를 보세유.

       

  9. 옴부즈맨

    2005년 5월 25일 at 2:41 오후

    위에 ‘참새’ "동아나 조선이나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신문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희망사항이져.   

  10. opo

    2005년 5월 25일 at 5:46 오후

    위 블로그의 내용에 동의합니다. 약 30년전 경기 광주군의 촌(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움)에서 인천의 고등학교로 유학을 했는데 첫시험의 성적이 반에서 42등 했는데 3학년 마지막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한 경험이 있거든요.   

  11. 모루와 해머

    2005년 5월 25일 at 6:21 오후

    참새님 말씀이 옳습니다. 비록 지금 학업성적이 떨어지더라도 자기 꿈을 향해 노력하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꿈을 포기하지말라는 차원에서의 기사로 보는 것이 상식인듯 싶습니다.    

  12. 김종해

    2005년 5월 26일 at 12:54 오전

    지금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교훈으로 삼으라고 쓴 글을 가지고 뭘 따지냐?
    그래서 황교수는 중고등학생시절부터 엄청 공부를 잘 했으므로 오늘날의 황교수가 되었으니 지금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딴 거 알아봐라,너희들은 죽었다 깨어 나도 황교수같이 될 수는 없다.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그러니 대전고등학교도 못 갔지,어유 열 받아.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욕은 할 수가 없고
    욕 이야!!!!!!!!!!   

  13. 홍학표

    2005년 5월 26일 at 7:49 오전

    황교수의 노력을 무시하는건 아니지만,,한강이남 최고 명문은 부산고/경남고/경북고/광주일고/전주고/광주고 다음쯤 대전고이고(당시 서울대 입학순으로) 황교수는 졸업시 이과에서 20-30등 수준이므로 서울의대는 갈수준이 못되었고 수의과로 간것이고,,대전고 밑에서 20등하믐 고대두 마음대루 간다?어떤 미친놈이 그따위 헛소리를,,,당시 이과에서는 공대가 상당히 좋았고 아마 수의과는 바닥수준이 아니었을까? 물론 황교수가 나름대루 노력한 것은 인정하지만 아직 좀더 두고 봐야하는건 아닌지?   

  14. 처복

    2005년 5월 26일 at 1:59 오후

    각자의 소질과 능력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습니까?
    황박사가 로또 1등 당첨자도 아니고, 정상적인 루트를 따라 연구활동을 하여
    오늘의 성과를 낸 사람이므로… 오현기님의 글을 추천합니다.
       

  15. 2005년 5월 26일 at 6:53 오후

    오기자님, 블로그에서 실로 오랜만에 기자님의 글을 대하는군요.
    맞습니다.
    대전고라 하면 전국에서 손꼽히던 학교였습니다.
    그 학교에 입학 한 것 자체만으로도 각 지역의 수재라는 것을 입증하거늘
    400등이라는 숫자로 누구에게 스트레스가 전해질지가 뻔한 이야기이군요.

    그래도 역시 희망을 안겨주는 일면이 없지는 않겠다 싶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자주 뵐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16. 오현기

    2005년 5월 26일 at 7:10 오후

    많은 분들께서 답글과 추천, 스크랩을 주셨습니다. 사실 이 글은 황우석 교수님이 저와 같은 고장에서 출생한 것을 알고는 그냥 손가는대로 가볍게 터치했던 글인데, 제 의도와는 달리 너무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본의아닌 오해와 논란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제 블로그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알고 좋은 평가를 내리신 분들과 그리고 거친표현을 하신분들 공히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황우석 교수님의 기사를 쓰신 분의 의도를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행여라도 ‘480명중 400등’이라는 부각된 제목만 보고 혹시나 해서 ‘황교수님’ 공부 못했다’ 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극히 드믈게 있을 지도 모를 일이고 하니…. 아무튼 심각하게 ‘고뇌’하며 읽을 글은 아니었는데, 너무 좋은 자리에 박혀있다보니 불필요한 오해도 하시고 그런 모양입니다. 제 블로그 문패가 ‘데블스 어드버킷’ 인데 ‘데블스 어드버킷’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해하시는 분들이라면 ‘뭐 그럴수 있네’ 하는 이해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블로그 글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글을 보시는 분들도 좀 더 아량을 가지고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비판은 자유롭게 하되, 싸우려는 자세는 아니었으면 한다는 거지요. ^^    

  17. 종이등불

    2005년 5월 30일 at 9:21 오후

    황우석 교수님.
    참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
    조국을 빛내주고, 인류에게 희망을 안겨준
    황우석 교수님이 고맙고, 고맙습니다.

    아침에 이기원 기자님의 블로그에서
    오기자님의 성함을 발견했지만
    출근준비를 해야 하였기에 오지 못하였습니다.

    이제야 방문하여 차분히 오기자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18. 971

    2005년 6월 12일 at 11:43 오후

    400등의 본뜻은 대전고 공부더 잘했던 분들과 다른고등학교 황교수님 보다 더 성적좋앗던분들이 지금 더 세계적인 일을 하고있었으면 하는 갈망의 뜻도 담고 있는 거지요…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 들어가는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마한 업적을 이루느냐를 따지는 내용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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