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WP_Widget에서 호출한 생성자 함수는 4.3.0 버전부터 폐지예정입니다. 대신
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고엽제’ 관련 키워드로 과거기사를 찾아 봤더니… - Media Gaze…
‘고엽제’ 관련 키워드로 과거기사를 찾아 봤더니…

왜관 미군기지 캠프 캐럴의 고엽제 매몰 증언을 시작으로 고엽제와 관련하여 새로운 증언들이 계속하여 터져 나오고 있다.왜관의 캠프 캐럴 미군기지에서 시작하여, 부천의 미군기지로 옮겨가더니 DMZ,전국 각지의 미군기지까지 연일 새로운 증언들이 올라오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70년대 고엽제의 위험성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위독성을 알고서도 고엽제를 함부로 처리한 것과, 그 위독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살포나 매몰처리 한 것은 그 책임성, 도덕성과 관련하여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엽제 관련 키워드를 가지고 국내 신문의 과거기사 아카이브를 샅샅히 뒤져 보기로 했다.
검색소스는 국내의 3개 일간지(동아, 경향, 매경)다.
과거 신문의 기사를 이 잡듯이 검색해내는 네이버의 ‘뉴스 라이브러리’를 이용하기로 했다.
과거의 신문에는 한문표기가 많이 섞여 있어 검색키워드를 놓칠 우려가 있지만, 네이버는 한문과 한글을 병기하여 기사에 등장한 키워드를 놓치는 경우는 지극히 낮을 것으로 판단 된다.
또한 시기별로 키워드 등장의 횟수를 그래프로 표시하여 줌으로써 언제 사회적 이슈가 되었는지 여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자.. 그럼 먼저 이번 캠프 캐롤에서 문제가 된 ‘고엽제’란키워드로 검색해보자.

아래와 같은 검색결과가 나타난다.

111.jpg

고엽제란 키워드가 가장 먼저 신문기사에 등장한 시점은 1967년 5월이고, 1970년대, 80년대전반에 걸쳐 간헐적으로 신문기사에 고엽제란 단어가 등장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반부터 급작스럽게 빈도수가 확 늘어난다.

즉 국내에서 고엽제가 사회적 잇슈로 본격 등장한 것은 1990년 초반에 들어서라는 것을 알수 있다.

1990년대부터 고엽제 피해 환자들이피해사례를 들고 나와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112.jpg

1967년 5월, 신문지상에 맨 처음 등장한 고엽제 관련기사를 찾아보았더니 위와같다.

베트남전에서 ‘고엽제를 충분히 뿌려서 마침내 초토 작전은 끝난다’라고 기사는 적고 있다.

아마도 이때까지만 해도 고엽제가 풀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데 탁월한 성능을 갖고 있을 뿐,인체에 해롭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그럼 국내에서는 언제 최초로 고엽제의 위독성을 알리는 기사가 처음 등장했을까?

113.jpg

위의 2건의 기사에서 보듯이 고엽제가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은 1969년 11월 이후에 등장한다.

경향신문과 매일경제는 1969년 11월, 12월에 고엽제의 위독성을 알리는 기사를 외국의 경우를 인용하여 보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때만해도 국내에서는 먼나라 얘기로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보다 2년 뒤인 1971년에는 아래와 같은 고엽제 무독성의 기사도 싣고 있기도 하다.

114.jpg

이번에는 ‘에이전트 오린지'(당시에는 ‘오렌지’를 ‘오린지’로 표기)로 검색해보자.

1970년대까지는 단 1건의 기사도 발견할 수 없다. 1980년대 들어 3건의 기사가 검색되지만, 실제 ‘에이전트 오렌지’ 관련기사는1982년과 1989년 단 2건의 기사만 해당 된다,다른 1건은 고엽제와 무관한 기사다.

‘에이전트 오렌지’ 키워드는 90년대 이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까지도 고엽제의 다른 이름인’에이전트 오렌지’는 국내신문에 등장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15.jpg

110.jpg

116.jpg

이번에는 ‘다이옥신’으로 검색해 보자.

‘다이옥신’이란 표기는 1985년 이후에나 신문기사에 등장하고 그 이전엔 ‘디옥신’으로 표기하였기때문에 ‘디옥신’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다.

역시 ‘디옥신’이란 용어는 1975년 이후로 잠깐 등장했다가 고엽제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 이후 그 빈도수가 급증한다. 고엽제 문제가 잇슈화 되었을 때 ‘디옥신’ 키워드의빈도수도 동반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17.jpg

이번에는 고엽제의 직접적인 위독성 문제가 언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고엽제+환자’ , ‘고엽제+피해’혹은 ‘고엽제+기형아’로 각각 검색해보자.

111.jpg

112.jpg

113.jpg

역시 1990년대 이전에는 고엽제의 폐해가 아주 간헐적으로 등장하다가, 1990년대 이후에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적어도 국내신문을 통해서 고엽제가 위험하다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고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 된 것은 1990년대 부터라는 것을알 수 있다.

70년대나 80년대에도 아주 간헐적으로 고엽제의 위독성, 다이옥신의 맹독성에 관한 해외사례들이보도되고는 있지만,적어도고엽제나 다이옥신의 위독성이 국내 언론을 통해 사회적 이슈로 본격 대두되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 이후부터라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기사에서 보듯이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는이미 고엽제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 10년 뒤인 1978년이라면 그 위독성을 깊이 인식하고 적절한 폐기조치를 했어야 하는 것은 너무당연한 일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