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 할머니

이북 함경남도 영흥 출신.

올해 87세. 부산 거주.

성은 김씨요. 이름은 행지.

깔끔하기로 소문난 여자.

보통 소학교 출신.

이상이내 엄마의 간략한 소개다. 얼마전 호흡곤란으로 급히 실려 오다시피 서울로 상경, 곧바로 병원에 입원. 굳세게 그 나이에도 혼자서 버티더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하였다. 폐와 심장에 물이 차서 호흡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심장 판막의 한 쪽이 말이 안들어서 이런 지경까지 온 것이다. 며칠간 이뇨제를 통해서 고인 물들을 몸 밖으로 빼내고 나니 말하기랑 숨쉬기가 수월해졌다.

엄청나도록 명료한 정신과 독야청청 주변의 시시한 것에 휩쓸리지 않으며 굶어 죽어도 남에게 아뭇소리 안하고 꼿꼿하게 앉아 있을 여자. 자식이 주는 용돈 고스란히 모아 되돌려 주는 고집장이 할머니. 아직도 양말이나 내의는 깁고 또 기워 사용해서 성철스님 저리가라 이다. 아들이 입다 찢어지거나 구멍난 런닝을제복처럼 입고 있는 통에 젖꼭지는 맨날 바깥 구경이다.

서울역에서 엄마를 보는 순간 ‘호호 할머니’ 라는 만화의 주인공이 생각났다. 작아졌다, 커졌다 하는 그 할머니역 중에 작아진 주인공 같았다. 어찌나 귀여운지 "엄마 너무 귀엽다"를 연발했다. 조글조글해진 곶감 같기도 했고 잘 익은 홍시의 예쁜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퇴원을 앞두고 혼자 지내기엔 도저히 불가능해서 우리집에 모시기로 했지만 낮에 빈 집이라 마음이 영 불안했다. 노인들이란 항상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정부나 간병인을 두는 문제랑 겹쳐서 요양원(실버타운)이 좋은 대안으로 떠올랐다. 주변에몇 사람의 부모가 그런 곳에 가있는지라 익히 내용을 알고 있었다. 돈이 문제지 편하기 이를데 없는 곳이 많았다.

"엄마, 요양원이라는 곳이 편하고 좋다는데 ..외롭지도 않고 의사나 간호사도 있대. 어째? 가 있어 볼래요?"

대답이 없었다.

" 있다가 데리고 오면 다들 다시 가고 싶어 한다는데."

"가라면 가야지 어쩌겠니?"

"그래? 잘 생각했어. 낮에 텅 빈 집에 불안하고 외로울 건데 그러자. 내가 적당한 곳 알아볼께."

어째 일이 잘 풀리니다 싶었다.그러더니 다음날 울면서 그런데 가기 싫다는 거였다.

"어쩌면 네 입에서 그런 소릴하니? 너무 야속하다"

하시는 거였다. 나는 당황을 했다. 인식을 하는 게 완전히 우리 세대와는 달랐다.

"엄마 그래, 가기 싫으면 가지마. 안가도 돼."

그제서야 안심하는 눈치였다.

노인문제는 심각하다. 실버세대의 급격한 팽창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역삼각형 모양의 구조를 띄게 되었다. 65세 이상을 노인으로추정할 때 우리나라 총 인구의 5% 약 이백만이라 한다. 그것도 몇 년 뒤엔 삼백만, 사백만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선진국들도 노인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한다. 언젠가 우리도 노인이 된다. 누구나 다 늙어간다.

엄마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울증 증세가 조금씩 나타나서 별일 아닌 것에도 많이 섭섭해하고 화를 내거나 서러워한다. 자기만 소외 당하는 느낌이 자주 드는 모양이었다. 융통성도 없어지고 옹고집은 갈수록 더 세어진다. 그닥 무의미한 이야기에도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거나 슬퍼한다. 라면 상자 하나라도 안보이면 찾는다. 낯익은 것들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노인들은 자체적으로 자기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게다가 귀도 잘 안들리지만 이해력의 완전장애를 겪는단다. 그 결과로는 치매현상이 있을 수 있겠다. 특이한 것은 우리 김여사께서는 의식하나 만큼은 명료하다는 의사의 소견이 나왔다. 지금도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집안 구석구석까지도 세세하게 다 안다. 무슨 물건이 어디 놓여 있는지는 천재수준이다. 사회적인 문제도 모르는 게 없다. 요즘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줄기세포 사건도 다 알고 있다.

육남매중에 다른 자식 다 놔두고 어찌 나랑 인연이 더 깊어 같이 살아야 하는지 늦둥인 하나 잘 둔 것같다. 식구가 많아도 다양한 삶들을 사느라 각자 자기 몫 다하기 힘들다. 올케들도 다 바빠 시어머니는 안중에도 없다. 단 한 번도 섭섭함을 내색않던 그녀가 요즘은슬슬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같아 보인다. 남의 자식 데려와 어디 성에 찰까만은 사위나 며느리나 다 데면데면하게 구니 영 마뜩찮은 모양이다.

그간 일이년씩와서 머물다가는 적도 많았지만 이제 노인 문제는 내게 현실적으로 닥쳤다. 낙천적인 성격이라지만 가끔 짜증날까 두렵다. 푸념을 아무데서나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죽을 때까지 같이 살자고 큰 소리는 쳤다.애도 셋이나 키우지 일까지 하는데 염려가 이만 저만 아니다. 제발 깨끗하게 살다가 고통스럽지 않게 가는 것이 나의 엄마에 대한 소원이다.

호호 할머니 우리엄마, 어릴땐 비오는 날 우산 가져오는 것도 창피했다. 나이가워낙 차이가 나서 괜스레 부끄러웠다. 병원을 가도 항상 할머니 모시고 왔냐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제 다 쪼그라들어 한 줌밖에 안되는 몸이 되었다. 갈수록 작아지는 모양이 애처롭다. 날개 잃은 새같기도 하다. 아직도 쪽을 진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며 긴 머리를 아침마다 빗는 여자.

바로 그녀가 어린 자식 넷을 앞세우고 1.4 후퇴 때 남으로 이미 와있던 아버지를 찾아 오던 억척스런 사람이다. 언강을 걸어서 건너며 "누구야, 누구야" 이름을 계속 확인하느라 목이 쉰 여자다. 다시 못볼지도 모르는 금강산이라며 꼭 눈에 넣어 두라며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게 하던 엄마였단다. 그래서 같이 내려온 자식들과는 더 살갑게 군다.

꿈에 그리는 고향땅을 밟아 보지도 못한 한을 가슴에 품고서 이제 세상 하직하게 됐다고 서러워 하신다. 산을 바라보면 저기 저런 곳에 내가 묻히겠지 하며 말 끝을 흐린다. 시간만 나면 기억을 더듬어 옛날을 이야기하는 울엄마,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나훈아의 ‘녹슬은 기찻길’이다. 내가 어릴 때 엄마가 방을 닦으며 혼자 부르던 유행가이다.

절약정신의 결정체, 환경보호의 산증인, 신문 네귀퉁이를 일미리도 어긋나지 않게 접어서 몇십년을 보관하는 절대적 알뜰함. 아침마다 안경도 없이 신문을 사설까지 죄다 읽어 버리는 막강한 똑순이. 이제 그런 그녀도 인생의 막바지에서 의탁하러 막내에게 온 것이다. 어디까지 내가 잘 모시고 갈지 의문이지만 굳세게 밀어 부쳐볼랍니다. 화이팅. 호호 할머니.아자.

23 Comments

  1. Hansa

    2006년 1월 18일 at 3:41 오전

    호호 할머니 우리엄마..
    어머님의 건강하심을 기원합니다.

       

  2. Lisa

    2006년 1월 18일 at 4:53 오전

    Hansa님, 감사합니다.
    엄마이긴 한데 할머니같기도 한 엄마죠.   

  3. Old Barn

    2006년 1월 18일 at 5:00 오전

    우리도 할머니 할아버지 다되어 가는중아닌가요?
    아 님은 멀었겠지만요.ㅎㅎ
    곱게 늙어야 하는데 하며 부러워해 봅니다.
       

  4. Lisa

    2006년 1월 18일 at 5:50 오전

    저는 남매가 많다보니 막내라서 조카가 저랑 나이가 비슷해요.
    그래서 그 애들이 아이들을 기르는 중이라…어찌보면
    전 벌써 할머니긴 합니다.
    젊은 할머니.
    참고로 제 아이들은 중학생입니다.
    좀 늦었어요.   

  5. 지기자

    2006년 1월 18일 at 2:44 오후

    이뿐이님의 글에 카랑카랑하신 어머니의 성격이 묻어나는 듯 합니다. 여든일곱 연세에 그정도 기억력에 그정도 시력이시면, 대단하신 어머니십니다. 잘 모실거로 생각됩니다.   

  6. Lisa

    2006년 1월 18일 at 3:01 오후

    하하하..저의 엄마 대단한 호호 할머니예요. 흐트러짐이 아직 없거든요. 어떨 땐 얄미웁기까지 할 정도구요. 그런데 요즘 귀가 좀 잘 안들리시나봐요/ 지기자님 덕분에 잘 모실께요. 천재 할머니 비스무리해요.   

  7. ariel

    2006년 1월 18일 at 11:01 오후

    흐트러짐이 없으셔서 지금까지 잘 계시는 것 같아요.
    저의 어머니께서도 무척 흐트러짐이 없으세요.
    Lisa 어머니 같이 오래오래 건강하시면 좋겠네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8. Lisa

    2006년 1월 19일 at 12:23 오전

    하우 올드 아 유어-ㄹ 맘?
    오래 사실 거예요.   

  9. 최신자

    2006년 1월 20일 at 4:11 오전

    글을 읽으면서 어쩜 저의 친정 어머니를 보는 느낌으로,
    연세도 똑 같고 종일 본 tv속 이야기 빠짐 없이 들려 주시는 총명함
    행여 방바닥에 먼지 있을까봐 연신 손바닥으로 쓸어 닥으며
    빨아 입으시는 옷은 눈이 부시죠
    저도 할머니가 되었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항상 어린애랍니다   

  10. Lisa

    2006년 1월 20일 at 5:32 오전

    어머..어머..방의 먼지 쓸어 담는 거 진짜 똑같다. 소개시켜 줄까요?
    집이 어다신지–가까우면 소개팅이라도.
    우리 엄마는 자유롭게는 못 걸으세요.   

  11. 한신자

    2006년 1월 20일 at 9:33 오후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멋지게 늙고 싶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당연히 늙지요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으며 주름펴지는 화장품이 있다지만 …호호할머니 언제나 건강하세요    

  12. Lisa♡

    2006년 1월 20일 at 11:01 오후

    요즘 저는 늙어가는 것에 대한 어떤 미학이랄까..그런 것에 빠져 있지요.
    오래된 것에서만 느낄 수있는 그런 거. 골동품이 가치가 잇는 것처럼 말이죠.
    우아하게 톡톡튀게 늙어 봅시다. 옛날엔 늙는 게 싫었는데 요즘은 즐기고 있죠.   

  13. 조각구름

    2006년 1월 20일 at 11:27 오후

    Lisa 님은 효녀시군요~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계시니
    꼭 축복 받으실거예요….   

  14. Lisa♡

    2006년 1월 21일 at 5:10 오전

    조각구름님 감사함니다. 글쎄 효녀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마음은 좀 아름다운 거 같기도 하고..ㅋㅋ
    조각구름 이름이 너무 예뻐요. 아까도 그 집에 깄었어요   

  15. 최혜자

    2006년 1월 21일 at 12:31 오후

    Lisa님 글은 늘 재미있습니다. 묘사도 뛰어나고요.
    또 짜증날 수도 있는데 즐겁게 생각하는 님에게서 배웁니다. 난 1년전에 돌아가신 어머님께 잘 못한 것들이 많아 아주 맘에 걸린답니다.
    복 많이 받으소서~~~   

  16. Lisa♡

    2006년 1월 21일 at 1:23 오후

    혜자님 감사감사합니다.
    하여간 부지런하셔요.
    반갑습니다.   

  17. 최신자

    2006년 1월 21일 at 11:46 오후

    Lisa 님 감동입니다
    모든 댓글에 답을 주시니..
    지금 어머니 조카분(나에게는 외사춘 언니)이 놀러 오셨는데
    그분도 똑 같은 연세에 쪽 찌시고 언제나 색갈 잘 맞춰 한복을 즐기시는분
    이모님이 한분 계시는데(95세)
    이 세분들 모여 화투 놀이를 할때 보면
    한 10년전에는 일원짜리 가지고 했었는데
    지금은 십원짜리가 주머니마다 가득들 하지요
    서로 니가 많이 딴느니 하면서 말입니다
    저희들이 옆에서 보기 즐겁습니다
    작년까지 혼자들 뻐스 타고 이리 저리 다니셨는데
    이제는 모두들 모시고 가고 오고 해야 합니다
    고향은 강릉들입니다
    이모님 저희 어머니는 서울에서 사시고
    언니분은 혼자 강릉 초당 큰 살림 때문에 본인이 있어야 한다면서 고집스레
    명절 세러 서울 올라 오신거지요
    소게팅 이야기를 했더니 즐거워라 하면서 한참 웃었습니다.
    Lisa 님 고맙습니다.
       

  18. Lisa♡

    2006년 1월 22일 at 2:37 오전

    후후후…그래도 이모님도 게시고 부럽기만 합니다.’
    저의 엄마는 무남독녀거든요.
    아직도 쪽지신 분들이 있다는 거 아름답죠?
    우리 엄마의 쪽 진 머리도 그렇지만….
    우리 엄마도 종일 혼자 화투패를 뜨는 게 일과랍니다.
    참고로 저는 강릉 유가랍니다.   

  19. 최신자

    2006년 1월 23일 at 3:28 오전

    전 앉아 오는 글만 받아 읽었는데
    왠지 리사님의 글들이 읽고 싶어 블러그홈에 들렀더니
    제가 감동 받은게 머슷 해 졌습니다
    오늘은 못다 읽고 가지만 시간 나는대로 읽으러 들어 오고 싶어 졌습니다
    리사님의 어머님 무남독녀란 소리에
    마음이 짠 했습니다
    물론 좋은 친구분들 옆에 계셨겠지만
    피가 섞인 형제의 정은 또한 남다르지 않겠습니까?
    어머님을 모시는 리사님께
    왠지 제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어른을 모시는 일은
    타고 난 인간미가 있었야지만
    정을 주는이나 받는이의 여유러움이 상통 된다고 봅니다
    어른을 모시는 모든분들은 이미 효를 한것이 아닐까요
    이것보다 더 큰 효가 어디 있겠습니까?
    옛적에는 당연한 일이였거늘..
    저의 어머니도 아직 혼자 사십니다.
    강릉 자만 들어도 반갑습니다
    어머니는 한양 조씨입니다
    저는 강릉 최가입니다
    어머님을 모시는 리사님 가정에 항상 행복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20. Lisa♡

    2006년 1월 23일 at 7:30 오전

    제 엄마는 무남독녀에 3살 때 엄마를 잃고 팥쥐엄마 아래서 자랐어요. 그레서인지 마음 쓰는 게 좀 인색하고 차갑답니다. 그 게 다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그런가봐요. 그래서 저의 형제들도 다 찬 편입니다. 그런데 유독 저만 좀 달라요. 천방지축이죠. 헤헤.. 디지털 조선에 가입하셔서 오는 글만 보시는군요. 저도 처음에 그랬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글쓰는 재미에 빠져 있어요. 저는 강동구에 살고 청담동에서 명품멀티샵을 로데오에서 하고 있어요. 바쁘게 살아요. 애도 셋이구요. 매일 어디로 흘러가는지 몰라요.   

  21. brightmoon

    2006년 3월 7일 at 4:22 오후

    가라면 가야지 어쩌겠니? -엄마 가슴이 쿵 하셨겠네요
    엉엉- 날 울리지 말아요~
    이거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읍시다 – 오늘의 제안
       

  22. Lisa♡

    2006년 3월 8일 at 12:39 오전

    울지 마세요…인간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
    오늘도 열심히 봉양하고 있답니다.
    늙는다는 거 그거 침 편한 건 아니죠.   

  23. ★白帆

    2007년 8월 16일 at 8:11 오후

    눈시울이…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