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힘내세요.

잡지사에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는 K가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주변이 온통충격이었다. 아직 40대 초반의 그녀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과 1학년인 두 아들이 제일 먼저 눈에 밟혔을 게다. 엄청난 혼란과 주체할 길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는지 처음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요즘은 그런 병명들이나 사고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40대에 들어서니 남편을 잃는 친구도 있으며 갑자기 배가 아파 병원에 갔다 일주일 만에 떠난 친구의 올케언니도 있다. 60세를 갓 넘어서자 암 선고를 받고 곧 세상을 하직한 친한 오빠도 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이다.

뒷집의 경수엄마도 얼마 전 유방암 수술을 했다. 그녀의 경우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유언까지 남기는 침착함을 보였다. 그랬지만 결과가 예상외로 좋아 지금도 건강하게 지내는 편이다. 또 아는 언니도 같은 암으로 가벼운 수술을 했다. 동일한 병이라도 천차만별인지 유방을 절개하는 경우도 있고 주사기로 흡입해 내는 수술도 있다는 거다.

K의 경우는 절제수술을 했다. 한쪽 가슴 없이 어찌 사나 했더니 보형물로 성형을 예쁘게 했다는 것이다. 본래의 가슴보다 쳐지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아주 멋져서 오히려원래의 제것이 보기에 안됐다며 웃었다. 그런 여유를병 중에도 잃지 않는 모습이 정말 다행이었다.

K는 우선 수술을 받은 뒤 항암치료를 하는 중이다. 머리카락이 몇 올 씩 빠지다 이젠 한 움큼씩 빠져서 아예 삭발해 버렸다. 머리모양은 외모중에 70%를 차지할 만큼 커다란 부분이다. 숱이 적은 나도 늘 그 게 고민이다. 평소에 멋이 라고는 모르던그녀가 머리카락을 밀고 나더니 패션 감각을 발휘해서 여러 색의 스카프, 모자 등을 잔뜩 사서는 옷 색깔에 맞춰 입기 시작했다.

그녀의 홈피에는 매일 같이 위로나 격려의 글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활기를 띄는 생활이 엿보였다. 갑자기 삶이 소중해진 것이다. 가족과 생활에 대한 애정 어린 글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그렇게 살자’ 라는진부하나 결코가볍지 않은마음가짐의 글도 눈에 들어왔다.

힘이 다 빠져 나가는 K에게 에너지를 불어 넣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물어 보았다. 같은 병원에 항암 치료를 다니는 50세의 한 여자였다. 누구도 그녀를 환자로 보지 않는단다. 명랑할 뿐 아니라 만나는 모든 이에게 상냥함과 웃음을 잃지 않는 희망의 천사라 했다. 패션 감각도 뛰어나 아무도 머리 숱이 없는 암환자인지 모를 정도이고 매일 화장을 예쁘게 해서 화사함과 생기 발랄함을 가진 여인이란다. 게다가 현재 암 말기로 언제 생명이 위태로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했다.

그녀에게는 중학생인 막내딸이 있단다. 얼마 전 가을의 햇살이 화창한 날에 딸의 운동회가 열린 학교의 운동장에서 감격적인 장면이 있었단다. 그 후로는 온 힘을 다 내어 즐겁고 기쁜 날들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란다.

운동회가 다 끝날 무렵 방송으로 “ㅇㅇ, 어머니 잠깐 나오세요.” 하는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에 엉겁결에 앞으로 나간 그녀. 팡파르가 울려 퍼지면서 일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이 되었다. 그때, 높은 학교의 옥상 건물 위에서 하얗고 큰 현수막이 쫙 펼쳐지듯 내려오더니 ‘ㅇㅇ어머니, 힘내세요, 사랑해요.’ 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커다랗게 눈에 가득 찼단다. 순간 감전된 듯 얼어붙은 몸과 눈물로시야가 가려 더 이상 눈을 뜰 수가 없었다는 그녀.

따스한 감성을 소유한 담임교사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는 일화였다. 인생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혼연일체로 박수를 치던 모든 이들의 가슴에 숭고한 인간애를 키워 주었음은 물론이다. 생활속에서 별 것 아닌 조그만 정성이 큰 감동을 줄 때가 종종 있다.

본인이 병을 얻어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면 그간 신경도 안쓰던 다른이들의 고통도 눈에 보이나 보다. 그녀의 홈피에는다른 환자를 걱정하는 글도 있다. 의사들의 섬세하지 못한 무책임을 꼬집은 글도 보인다. 어렵고 빠른항암의 설명에 그저 알아 듣는 것만 알고 넘어 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마음이 갑갑했다.

인도 관광지의 어느 방명록에 ‘어제 죽은 자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오늘’ 이라는 글귀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는 한다. 진짜 온 힘을 다 내어그리워 할 그 날을살아야 한다. 누구나 느닷없이 힘든 일에 부닥치면 있던 힘마저 방전되어 버린다.충전이 필요할 때 무엇이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가를 생각하자.

저녁 무렵 잠깐 뉴스 말미에 서강대의 장영희 교수가 나왔다. ‘내 힘들다’라는 글을 거꾸로 읽어 보란다. 그러면 ‘다들 힘내’ 라는 글이 되니 한 번쯤은 거꾸로의 인생을 살아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였다. 살아가는 게 힘에 부치는 이들이 많은 요즘이다. 장교수도 어릴 적부터 소아마비인 장애인에다 지금도 암과 투병중이다.

K가 현재의 상황을 잘 이겨 내리라 확신한다. 그녀는 현명하니까. 거꾸로 다른 친구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아마 어른스럽고 진지하게 희망을 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세워 놓은 질서에 순응하기보다 자신의 질서를 발견하는 것, 그것을 나는 자유라 부른다.’ 라는 그녀의 글을 보았다. 그 내용처럼 그녀만의 순응방법을 잘 터득해서 자신만의 암시로 고난을 잘 이겨내기를 바란다. 훗날 우리가 지금을 이야기하며 늙어 갈수만 있다면 무얼 바라겠는가.

이 겨울, 갑자기 멋을 내는K를 위해 좀 더 세련된 스카프라도 하나 준비해야 하겠다.추위를 이겨 낼보온성이 뛰어난 걸로.

12 Comments

  1. 베드로

    2006년 1월 22일 at 11:09 오후

    저도 그분의 건강회복을 기원합니다. 할수만 있다면 스카프에 어울릴만한 따뜻한 색상의 모자라도 더해 드리고 싶군요. 아름다운 우정을 보았습니다.   

  2. Lisa♡

    2006년 1월 22일 at 11:12 오후

    베드로님..올리지마자 글을 읽으셨군요. 아직 항암주사 맞는 중이라 얼굴색이 좋지 못하더군요. 같이 건강을 빌어 볼까요? 감사합니다.   

  3. ○ minuette.○

    2006년 1월 22일 at 11:37 오후

    Enchantee..Lisa♡..
    Thanks for visiting..
    Have a good day..
    A bien tot..

       

  4. Lisa♡

    2006년 1월 23일 at 12:00 오전

    후후..역쉬 인사도 신선함..그 자체네요.
    미누엩님..방가방가워요.
    당신도 좋은 날 함께 하시길~   

  5. Hansa

    2006년 1월 23일 at 8:59 오전

    친구분..
    못된 병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대단히 용기있는 분이군요.

       

  6. Lisa♡

    2006년 1월 23일 at 9:05 오전

    Hansa님..감사합니다. 항암이 끝나면 곧 이어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한대요.
    정말 힘들거 같아서 가슴이 아려요.
    젊은 나이인데—-용기는 좀 있어요. 되따 똑똑하구요.   

  7. 방효석

    2006년 1월 23일 at 12:05 오후

    조블의 여인들은~~ 정치카페(시대유감)엔 관심없나봐용~~블로그에서만 종알종알 하네용~~유방암 글자만 보고가네용~~암 조심하세용~~믿읍네다~~ 하면서 치료받으면~~ 더욱 좋아용~~   

  8. Lisa♡

    2006년 1월 23일 at 12:11 오후

    후후…저 정치에 관심 엄청 많은데 너무 잘 아시는 분들이 많은지라 글만 읽지요.
    분노해서 이민가고프다..한 사람 중에 한 명이기도 하구요.
    선거 때는 입에 거품을 물고 지지자를 내세우기도 하는 열혈여아입니다.   

  9. butcher

    2006년 1월 23일 at 2:55 오후

    방문은 처음이 아닌것 같은데..글남기기는 처음인것 같습니다.
    제가 잘 가는 싸이트에도 님의 카페랑 같은 별명을 사용중인 분이 계시더군요 (영어로? 불어로?)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요…

    저도 글에 나타난 K님의 완쾌를 빌겠습니다.   

  10. 김의순

    2006년 1월 23일 at 9:03 오후

    흐음. 내 진작에 이럴줄 알았지요. 내방에 들어와선 우스개 소리만 잔뜩 써놓고…
    저도 하나뿐인 남동생을 작년에 잃었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지요.

    친구분 K! 아자 아자 화이팅!
    정열적인 빨간색 스카프로 한껒 멋내고, 용기백배!!!   

  11. Lisa♡

    2006년 1월 24일 at 3:04 오전

    butcher님, 반갑습니다. 아…그 분요?
    리사님 말이죠? 그래서 저는 뒤에 ♡ 표시 하나 붙였어요.
    그냥 영어로 리사이죠. 저의 경우엔 세례명입니다.
    자주 놀러 오세요. K님 왼쾌하시겠죠?   

  12. Lisa♡

    2006년 1월 24일 at 3:06 오전

    으순님….제가 본디 우스개소녀입니다.
    지금은 우습네!! 이구요. 동생분 이야긴 진즉 글에서 읽었구요.
    어제 모든 글 독파하느라 시력을 조금 잃었지요.
    이제 모든 내용 훤합니다. 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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