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일행들을 훓어 보니 각양각색이었다. 노인부터 초등학생인 내 아이들까지세대도 다양했다. 영판 울란바토르 쯤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두 남녀가 우스꽝스러웠다. 특히 시뻘건 볼 터치를 한 화장에 거북해 뵈는 여성의 옷차림이 처음부터 시선을 끄는 일행이었다.남자는 카우보이와 스키복이 절묘하게 조화가이뤄진 차림새였고 여자는 나팔 바지에 상의는 번쩍거리는 스키복에 머리엔 아주 여성스런 모자를쓴 썼다. 호락호락하지 않게 생긴 2:8 가르마의 아저씨는 예쁘장한 여자와 구두쇠 처럼 생긴 남자랑 세 명이한팀인 듯 했다. 제법 무서운 인상의 그아저씨는 이태원 등지에서 파는 흑인들이 즐겨 입는 무늬가 현란한 그림에 미끌미끌한 질감의 잠바를 입고 있어 연령에 비해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목소리도 탁음에다 경상도말투를 쓰는 게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대구 사투리를 쓰는 분당서 온 아저씨 부부는 여행 내내 나랑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사이가 되었다. 예쁜 부인은 연방 웃으며 어디서든 귀찮아 하지 않고 계속 안주를 챙겨 주었다. 그녀는 얼짱, 몸짱이었지만 마음도 짱이었다. 혼자 온 미술전공인 교수님은 첨부터여자들에게 ‘작업’ 비슷한 걸 하고 있었다. 시골서 농고 교장을 하다 퇴직한, 얼굴이 검게 타 건강해 보이는두 노인네는 잦은 외유로 인해 여권에 도장이빽뺵하게 찍혀 있었다. 가까운 데로 늘 다니다가 처음으로 먼 거리를 간다며 연신 눈 웃음을 웃는소박한모습이었다. 소일로 채소를 심었더니 남아 돈다면서 날더러 안성까지 가지러 오라 했다. 나중에 주소까지 적어서손에 꼬옥 쥐어주셨다. 장사를 오래 한 듯한 육십 대 아줌마는순하기만할 것같은 대학생 딸과 함께 였는데 시종일관 미스 마플(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 나오는 작가를 대신한 탐정역의 처녀 할머니)같은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염탐을 하였다. 나중에 이 여대생은 내 딸과 동무가 되어 조잘거리며 심심치 않게 지냈다. 여자 방송 작가 한 분과역시 따로 온 성질 꽤나 있어 뵈는 백발의 아저씨도 우리의 일행이었다. 그리고 나의 두 언니들. 조금만 돈이 모여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지 못해 몸살을 해대는천방지축인 나에 비해 그녀들은 외유가 처음이라 자못 설레는 듯도 해 보였다. 옆에선 고물고물한 나의 세 아이들이 콧물을 찔찔 흘리며 음료수나 마시려고 두리번거리며 서 있었다.이상이 동유럽으로의 겨울 나들이 멤버이다. 뮌헨에 도착, 하루를 보낸 후 모짜르트의 고향인 짤스부르크에이르니 온 도시가 하얗게 변해 이국서 맞는 설경이 한층 우리를 고무시켰다. 잠시도 쉬지 않고 조잘대는 작은 언니는 내가 어쩌다 한마디라도 할랴치면 어느새 내 이야기는 모든 일행이 오분 내로 다 알아 버리는 촌극 아닌 촌극이 벌어지곤 했다. 사건은 이틀째 되는 날 밤부터 벌어졌다. 깨끗하게 단장한 새로 지은 호텔에 여장을푼 뒤였다. 애들을 재운 뒤 욕실에 들어가 따뜻하게 샤워를 하고 나오다 그만 바닥에 꽈당 미끌어 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인대가 늘어났는지 아파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응급처치를 해서걷는데 지장이 없게 해보려 노력했지만허사였다. 다음 날 아침, 일행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 숨길까 했는데역부족이었다. 여기 저기서 "찬 찜질을 해라" "뜨거운 찜질을 해라" 며 처치법을 총동원했다. 무섭게 생긴데다 이틀간 가이드에게 심하게대해 분위기 다 깨던 어울리지 않는 잠바의아저씨가 관심을 보였다.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하더니 "이거 보름은 가겠는데…" 하며 얼음 주머니를 만들어 와서 대어 주었다. 그리고는이것 저것 알아서 간호사처럼 해 주더니 출발하자니까 갑자기 자기 등에 업히라는거였다. 눈길에다 추워서 옷은 덕지덕지 껴 입어야 하는 한 겨울에 설상가상이었다. 육십은 넘긴 듯 한데 나의 몸무게를 감당이나 할까 싶어 사양하니말을 듣지않으면 안고 가야겠다며 멋진 터프가이처럼 구는 것 아닌가? 모른 척하며 슬쩍 업히니 아예 팍 업히라며 엉덩이를 툭 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돌아오는 십여일의 여정 동안 매일 같이 날 업고 여자 화장실로, 식당으로, 침실까지 종회무진 기사도를 발휘했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인간을 만난 것이다. 큰 아들 녀석은 뒤꽁무니에 졸졸 따라다니며 혹시나 있을지 모를 불상사라도 생길까봐 감시의 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우슈비츠에선 애들에게 장황한 영어설명까지 해석해 주며 은근히 유식함을 보이는 것이었다. 첨부터 입고 온 잠바가 눈에 거슬려 보기 싫다 하자 그 뒤로 한 번도 입지 않는 소년같은 면도 있었다. 언니들은 나의 부상은 뒷전으로 여행의 기분을 만끽하느라 소녀같은 표정으로 노래까지 불렀다. 호텔 아침부페의 빵과 요플레가 이상하게 모자라더니 차 속에서열심히 먹고 있는 나의 언니들. 도저히 제어 할 수 없는 한국의 촌스런 아줌마 그 자체였다. 그 와중에 머리에 피도 안마른 아들 녀석이백 포도주를 물인줄 알고 한컵을 원샷 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말이다. 애가 좀 이상하게 횡설수설하더니 어지럽다는 거였다.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다시 그 기사도의 아저씨가 완전히 우리 식구가 된 듯이 나서서 애를 침실로 데려가서 물을 먹이며주물러 해결을 다 해버리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국가대표 골프선수 출신으로 운동 꽤나 한 체력의 소유자였다. 어지간한 부상 정도는 다 해결 가능한 처치법도 꿰고 있는 사람이었다. 현재는 프로 골퍼들을길러 데뷔시키는 운동전문가였다. 계단 많은 소금광산에서도 날 거뜬히 업고 다니며 가이드 역할까지 다 해주었다.같이 온 일행은 동생 부부라 했다. 눈치는 보였지만 여러 사람에게 폐를 안 끼치려면 순응하는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오빠들과 같은 부산고등학교 출신이라 다행이 친근감이 들었다. 일정이 끝날 때가되니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닐 정도가 되었다.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나의 안위가 궁금한지 계속 왔다갔다하면서 친절을 표했다. 묘한 여행이었다. 왠지보디가드 한 명 둔 것같은 기분이 들면서그렇게 보호받는사람은 참 편하겠다 싶었다. 언니들은 뭐가 우스운지 줄곧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많은 이들이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우를 얼마나 많이 범하는가. 나 역시 그런 사고는 금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금새 잊고는 멀쩡한 사람을 외양만으로 싫다 좋다 결정해 버릴 때가 종종 있다. 같이 여행을 다녀와봐야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지 않나. 일정내내 개인적인 즐거움을 버린 채 나를 위해 애써준 그 분이 진정으로 우러러 보였다. 남을 배려해서 자기의 시간을 버리기가 쉬운 일은 아닐텐데 말이다. 좌중을 압도하는 큰 목소리와 할렘가에서나 볼 만한 잠바로 인해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해 버린 내가 부끄러웠다. 남도 나를 경우에 따라 그리 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공항에 내려서 수속을 밟는데 까만 양복을 입은 그야말로 진짜경호원 두 사람이 휠체어를 갖고 날기다리고 있었다.잘못 찾은 사람이 아닌가 몇 번을 물어 봤다. 애들까지 들먹이는 모양이맞는 듯 했다. 어리둥절 했지만 보호를 받으면서 편하게 입국하는데 멀리서 그 아저씨가 공항에서 꽤나 서열이 있어 보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잘 아는 사이인 듯 헀다. 날 위해 인맥까지 동원해서 끝까지돌보아 주는 거였다. 어쨌든 대접 한 번 잘 받았다. 다리를 다쳐도 나 정도의 행운은 있어야된다. 그래야 외간 남자의 등에 업혀 보기도 하지. 대구 아저씨는 날더러 일부러 넘어진 거 아닌지 의심스럽다 했다. 처음부터 둘만 따로 놀던 울란바토르에서 온것처럼 보이는 부부는 올 때까지 사람들과의 얘기에 한 번도 끼지 않았다. 진짜 몽고에서 온 건지 그것은 아직 미지수다. 다니는 동안 줄곧 평양사람이 멋부린듯한 옷을 입고 다녔다. 그 두 사람은 다른 이들의 시선따위는 안중에도없는 태연자약한 자유인이었다. 나의 부상에 미동도 않던 그들이었다. 모임에 나가서이이야기를 하니 다음에 자기들도 일부러넘어져야겠다고 해서 다같이 웃었다. 다리는 불편해서 걷질 못했어도 정말특별한 여행을 한 것 같았다. 늘 업혀 다녀서미안한 마음에 웃음밖에 안나오는 추억이다. |
Beacon
2006년 2월 20일 at 7:50 오전
정말 특별한 여행을 하셨군요,,생면부지의 그나마 우락부락한 남자의 등에 업혀서 여행하기..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쉽잖은 행운인가요?,,ㅋㅋ
무사히 여행 마치시고 즐겁기까지 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저도 유럽 한 번 다녀오고 싶은데,,,언제나 가 볼 수 있을런지..
Lisa♡
2006년 2월 20일 at 2:14 오후
언제 시간내서 돈 꽁꽁 모아서 다녀 오세요.
늦게 갈수록 다리에 힘은 좀 빠집니다.
먼거리일수록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ㅋㅋ
ariel
2006년 2월 22일 at 2:26 오후
안녕하세요.. 저 아직도 메일 보내야할 께 많아서
글 도 못읽고 가요.
직장 생활 평생하니 때로는 너무 피곤해요..
때로는 넘 좋고..^^
인생은 다 그런 것 인가봐요.
butcher
2006년 2월 23일 at 1:07 오전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여행이란 늘 부러운 것이고 즐거운 것일것 같습니다…
다시 여권을 꺼내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Lisa♡
2006년 2월 23일 at 7:48 오전
인어공주님..천천히 시간을 낼 수 있을 때..그 때–
어쨌든 바쁜 건 좋은 것이죠.
저도 넘넘 바빠서 잠이 부족했던지 연신 눈이 따가워서
내리 3일을 일찍 잤더니 많이 완화되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는데 등이 욱신거리더라구요.
닷새는 푹 자야 할까봐요.
Lisa♡
2006년 2월 23일 at 7:50 오전
butcher님.
저는 88년도부터 내리 10년을 미친듯이 여행을 했지요.
위의 글은 한참후에 애들 땜에 갔던 거구요..
여행은 많은 걸 잊게도 하고 생각나게도 하지요.
어쨌든 객관적인 인간으로 변화될 수 있는 기회지요.
저는 요즘은 긴 여행이 싫어요.
비행기 타는게 너무 싫어서요.
먼 곳은 미리미리 다녀 오세요.
푸른비
2006년 2월 23일 at 3:00 오후
여행중 얻은 부상으로 업혀 다니는 부상을 받았군요.
그분이 끝까지 베푸는 친절이 아름답군요.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좋은밤 되십시요. !^^!
Lisa♡
2006년 2월 23일 at 3:08 오후
정각 0시에 푸른비가 내렸군요.
반갑습니다. 부상으로…업혀 다니는 행운을~
즐거운 하루가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