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도 내 마음을 빼앗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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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느다란 난간에 기댄 채 우두커니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연못은 석양빛을 받고 녹슨 옛날의 銅鏡같은 거울에 킹가쿠의 그림자를

수직으로 떨구고 있었다.

물풀과 마름이 떠있는 저 아래쪽으로 서녘 하늘이 보였다.

그 하늘은 우리들 머리 위에 있는 하늘과는 달랐다. 그건 맑고도 고요한 빛으로

충만해있었고, 밑에서부터 혹은 안쪽에서부터 이 지상 세계를 감싸안은 듯했다.

킹가쿠는 그 속에 검게 녹슨 거대한 순금 닻처럼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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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비로운 금빛 새는 시간을 알려 주는 울음을 우는 것도 아니고 날개짓도 하지 않았다.

아마 자기가 날 수 있는 새라는 것을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날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다른 새가 공간을 날아다닌다고 한다면

이 황금빛 봉황은 눈부신 날개를 펼쳐서 영원한 시간 속을 날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날개를 때리고는 뒤쪽으로 흘러가 버린다.

날아다니기 위해서 봉황새는 움직이지 않은 채 눈을 부릅뜬다.

그리고 날개를 높이 펴들고 꼬리를 젖힌 채 위엄있는 금빛 두 다리로 힘껏 버티고 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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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일본 현대 문학의 귀재라고하는 그의 소설

‘금각사’를 읽었을 때 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감동같은 것이 일었다.

실제로 금각사를 마주하자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가 떠올라 괴로웠다.

철저한 우파로 자위대의 각성을 요구하며 죽었다는 미시마 유키오.

물 위에 우아한 자태로 떠있는 금각사는 얇고 가벼워 보였지만아주 아름다운

한 마리의 봉황새같았다.

일행과 잠시 떨어져서 혼자 감상하자니 지나간 많은 시간들이 하늘 위에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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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킹가쿠가 시간의 바다를 건너 온 한 척의 아름다운 배처럼 여겨졌다.

미술책에 적힌 대로 ‘벽이 적은 바람맞이 건축’은 마치 배의 건축법처럼 연상되면서

이 복잡한 3층 집 모양의 배가 떠 있는 곳은 바다처럼 생각되었다.

킹가쿠는 숱한 밤을 건너왔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끝없는 항해.

낮동안에 이 배는 닻을 내리고 사람들이 구경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가는 밤이 되면

주위의 어둠을 의지해서 그 지붕으로 돛을 삼아 또다시 출범하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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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정원의 극치.

이제 막 들기 시작한 단풍도 무색한 소나무.

고요함.

관광객들의 북적거림조차 무색한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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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헤엄치는 잉어떼.

가만히 바라보자니 내 있는 곳이 어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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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여다보니

멀리 해오라기인지 새 한 마리가

어딜보는지 혼자서 상념에 빠져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길다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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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어려운 문제는 ‘아름다움(美)’에 대해서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시골 태생의 소박한 중으로 말재간도 없어서

그저 "킹가쿠만큼 아름다운 건 이 세상에 결코 없다" 라고만 나에게 일러 주셨다.

따라서 나는 내가 모르는 곳에 미(美)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그러자 불만과

초조감이 더해져 갔다. 아름다움이 분명 거기 존재해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아름다움에서

소외된 셈이었다.

온갖 변모 가운데서도 불변의 킹가쿠만은 의연하게 존재해 있음을 나는 알고 또한 믿고

있었다.

34 Comments

  1. 김진아

    2007년 11월 4일 at 1:51 오후

    몰랐던 것의 뜻밖의 즐거움,고마움..

    블로그에서,
    이웃하게됨을 리사님..감사드려요..

    킹가쿠…아이들에게 제가 알게된 ..몰랐던 것에대한것을
    전달하여 알려줄수 있다는것에 감사합니다.

    *^^*   

  2. 오드리

    2007년 11월 4일 at 1:52 오후

    아름다운 문장이야.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베끼는 사람도 아름답네.
    메일보냈는데……………ㅎㅎ   

  3. Lisa♡

    2007년 11월 4일 at 2:02 오후

    진아님.

    금각사라는 소설 괜찮아요.
    아주 오래 전에 읽었는데
    수준이 괜찮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답니다.
    ^^*   

  4. Lisa♡

    2007년 11월 4일 at 2:05 오후

    오드리님.

    후후후…
    아름다운 문장이죠?
    어릴 때부터 아름답고 수려한 문장구사에
    뛰어났다고 하네요.
    금각사를 불지르고 산 속으로 숨은 스님을
    쫒아가 인터뷰를 한 끝에 소설을 완성했다고 하네요.
    오드리님.
    메일 볼께요.
    이상하게 시간이 모자라요.
    일요일엔 언제나 큰 아버지께 가거든요.   

  5. cecilia

    2007년 11월 4일 at 8:29 오후

    정말 아름답군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비원을 모방한 것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6. Lisa♡

    2007년 11월 4일 at 11:18 오후

    세실리아님.

    비원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비원은 귀족적이고 깊고
    금각사는 일본의 특유한 느낌.
    내가 책에서 받은 감명 때문에
    좋아하는지도..
    같이 간 시인께선 가볍다고 그러시더라구요.
    하긴 그 분은 반일 감정이 대단한 분이라~
    저는 반일감정같은 게 좀 약하거든요.
    그러나 저러나 비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일 소공동에서 동창회모임이 있는데
    갔다가 북촌을 갈 예정이었는데 비원도 돌아봐야 할 듯..
    고마워요.
    문득 비원이야기를 꺼내 주어서—^^   

  7. 데레사

    2007년 11월 4일 at 11:44 오후

    교또를 다녀오셨군요.
    금각사나 은각사는 다 정갈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다시 한번 교또에 다녀온듯한 기분을 느끼며 잘봤습니다.

    서울의 북촌 구경 , 즐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8. Beacon

    2007년 11월 4일 at 11:57 오후

    비원, ,지금은 고궁이라 하나요?
    나도 비원을 첨 들렀을 때 그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리사님은 아름다움을 제대로 아시는 분,, 너무 주관적이라 가끔은 조금 낯설기도 하지만서두.. ㅎㅎ   

  9. Lisa♡

    2007년 11월 5일 at 12:08 오전

    데레사님.

    반가웠죠?
    나름 느끼는 바가 달라서 새로웠답니다.
    뭐든 자기에게 의미있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보니.
    알고 본다는 의미도 되구요.
    ^^*   

  10. Lisa♡

    2007년 11월 5일 at 12:09 오전

    비컨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고파요.
    그게 얼마나 행복할지를 아니까요.
    행복과 어떤 가치판단은 통하는 거 같거든요.
    아름다운 한 주 보내시길~~   

  11. 수홍 박찬석

    2007년 11월 5일 at 1:35 오전

    아담한 황금절 금각사가 아름답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제일 아니면 두어번째 가는 황금절이 있는데 아담한 맛은 없고 우장함이 멋있습니다.   

  12. 호수

    2007년 11월 5일 at 10:57 오전

    너무 고요해
    모든 소리들을 삼켜 버린듯
    적막했던 금각사였는데…!

    책은
    아직 못 만났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13. Elliot

    2007년 11월 5일 at 12:23 오후

    추천부터 드리고 기립, 짝짝짝 박수에 앙콜까지 트리플 플레이… ㅋㅋ

    흥미 진진한 내용에 글도 쉬이 읽히는 거이 음악까정…. 이런 글 자주 올려주삼!@

    피에쑤: 나가 잔인하고 끔찍하며 너무했단 소리까정 들으며 이를 악물고 링크 달아 올렸던 비디오가 유튜브에서 저작권 문제가 있는지 그만 삭제 당했쑴다. 그럴 줄 미리 알았다면 다운로드 해 놓을 걸……. 인터넷을 디벼도 찾을 수가 없군요. 후회막심. 그 비디오 빠진 내 포스트는 앙꼬 없는 찜빵, 조만간 리사님의 주옥같은 댓글과 함께 지워야 할 운명의 시간이 곧 다가올 겁니다. 저벅저벅거리는 저승사자 발자국소리에 쿵쿵거리는 내 가슴을 조용히 쓸어 안으며 눈을 지긋이 감고 그렇게 떠나보낼 겁니다. ㅠ.ㅠ

       

  14. 천왕

    2007년 11월 5일 at 1:50 오후

    금각사를 그저 멋진 일본 정원으로만 구경했었는데….

    미시마 유끼오의 소설과..그런 일이 있었군요….
    진작에 알앗다면 의미가 달랐을텐데요…..   

  15. Lisa♡

    2007년 11월 5일 at 2:22 오후

    수홍님.

    수홍님의 금로 된 절의 사진을
    접했었구요.
    금각사를 보면서 그 절 생각도 했답니다.
    후후후….
    좀 화려하긴 했지요.
    어디더라~~한 번 가봐야할텐데.   

  16. Lisa♡

    2007년 11월 5일 at 2:23 오후

    호수님.

    꼭 읽어보세길 바래요.
    기생을 좋아한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실제 방화와는 약간 다른 이야기인데
    방화는 잇었던 절이지요.   

  17. Lisa♡

    2007년 11월 5일 at 2:24 오후

    엘리오뜨님.

    푸하하하~~
    아고 속이 시원하여라.
    아주 찜찜한 비디오였는데 꼬십니더~~
    우헤헤헤….잘 됐다.
    이런 글 자주 올리면 나 지적이라고 찍히는데..
    괜찮을까여???   

  18. Lisa♡

    2007년 11월 5일 at 2:25 오후

    천왕님.

    알고 보는 것과 그냥 멋지다고 구경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요.
    그러니 뭐든 알고 있으면 손해는 아니겠찌요.
    ^^*
    어쩌다 읽은 소설 많이 우려먹지요?   

  19. 색연필

    2007년 11월 5일 at 2:30 오후

    오늘 새벽에 일어나 리사님 글도 다 못읽고
    음악만 들으며, 화장을 하다가.

    너무 낮이 익어서 생각해 보니
    언젠가 보았던 일본의 에니메이션 주제곡 이더군요…^^
    <모노노케 히메: 원령공주>

    아름다운 쿄토와 참 어울린다…그런 생각…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거대한 일본 목욕탕 건물과
    너무 대조적인 마치 일본 문화의 엑기스와 같은 느낌이 듭니다.^^

       

  20. Lisa♡

    2007년 11월 5일 at 3:07 오후

    색연필님도…ㅊㅊ

    빙고~~

    금각사가보셨나요?
    원령공주도 참 재미있게 보았답니다.
    미국서 아들이 이웃집 토토로를 DVD로 사서
    보내달라고 하네요.
    구해야하는데…안 보입니다.
    움직이는 하울의 성이랑 두 가지를 상당히 좋아하네요.   

  21. Elliot

    2007년 11월 5일 at 7:52 오후

    아~ 이 비보를 리사님께 어찌 전할꺼나? 그 비됴 다른데서 찾아가꼬 다시 링크했서라. 땡길 때 언제든지 다시 오셔서 보시라구여. ㅋㅋㅋ

    남덜은 지적이고 싶어도 그게 맘대로 잘 안되는 세상에 참 별 걱정도 다하시네.^^*

       

  22. 김현수

    2007년 11월 5일 at 11:18 오후

    일본 정원들은 대 부분이 한국정원을 모방 변형시킨 것들이 많지요.
    깔끔한 느낌은 좋습니다.   

  23. 雨淵

    2007년 11월 6일 at 12:07 오전

    금각사군요. 어릴 때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오래전에 팩키지 여행을 갔었는데 아쉽게도 금각사는 못가봤네요.
    교또를 다시 가야하나?   

  24. Lisa♡

    2007년 11월 6일 at 12:15 오전

    엘리오뜨……………..니…………………임.

    진짜 끈질기시네요..못살아..
    하지말래니까~~ㅎㅎ

    남자들의 취향은 정말 무시하기 어려워~

    여기선 너무 지적이면 재미없어하는 분위기던데.
    대중적이고 유머스런 거 좋아하시는 취향이 저부터도 그렇고
    많아요.
    지적이지 않은 사람이 지적인 척하면 꼴불견이구요..
    진짜 지적인 사람이 지적인 척하면 지루하구요.
    제 생각은 그래요.
    저는 전자에 속합니다만.   

  25. Lisa♡

    2007년 11월 6일 at 12:17 오전

    현수님.

    같이 간 형님들이 그런 말씀을 하더라구요.
    일본의 대부분의 문화가 다 우리의 문화에서
    파생된 것들이 많다구요.
    통일신라의 문화나 백제의 문화가 그대로 답습되었다구요.
    그런데
    왜 김치까지 저들한테 침범 당하는지 우리도 웃겨요.
    먹물김치까지 만들어 기무치로 수출하잖아요.
    문화를 지켜내는 것도 몫인데 자꾸 뒤쳐지는 느낌이랍니다.   

  26. Lisa♡

    2007년 11월 6일 at 12:20 오전

    우연님.

    와……………금각사 읽으셨군요.
    저도 아주 예전에 한 번 읽고 몇 년 전에 한 번 읽고 그랬답니다.
    교또에 팩키지가면 반드시 금각사로 가는데..은각사도 있구요.
    은각사는 저는 못가봤지만.
    교또는 며칠 머물러도 볼 거리가 많다고 하니 언제 다시
    개인여행으로 갈까합니다.
    도쿄에서 신간센 타도 되구요.
    교토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장소들도 가볼만 하다고
    그러던데 책사서 훑어보고 자유여행 갈까봐요.
    우연님도 꼭 그러시길…가깝잖아요.
    요새 엔화가치도 낮고 말입니다.   

  27. Hansa

    2007년 11월 6일 at 1:57 오전

    미(아름다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하고는
    할 말이 없던데요. 리사님. 하하

       

  28. Lisa♡

    2007년 11월 6일 at 12:29 오후

    한사님.

    맞아요.
    뜨문뜨문 만나도
    뜨문뜨문 찾아와도
    통할려면 미를 이해해야지요?
    ㅋㅋ.   

  29. ariel

    2007년 11월 6일 at 12:39 오후

    일본 고전 건축은 거이 신비스러워요.
    선 하나 하나가 완벽해요. 다 있을 곳에
    있어요.. 선 하나도 뺄 것, 더할 것 없네요.
    일본은 신이 무척 사랑한 나라같네요..
    우리도 좀 더 사랑해주시지.. 우리는 아직
    NOT THERE..^^   

  30. Lisa♡

    2007년 11월 6일 at 10:55 오후

    아리엘님.

    교토의 오랜 된 주택들이 아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음에 놀라울 뿐이었지요.
    게다가 옆의 높게 올라간 현대식 건물에도
    꿈쩍않는 그 기백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많이 부러웠답니다.
    어디로 여행하든 우리랑 많이 비교가 되니까
    발전적이거나 전통이 잘 지켜지거나 하면
    아주 부럽기만 하더라구요.   

  31. 뽈송

    2007년 11월 7일 at 1:41 오전

    책과 현지를 왕래하며 즐기는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Lisa님은 참 좋았겠다. 부럽기도 하고.
    그러고도 아름다음에서는 스스로가 소외되었다고 말하는 심보는 뭘까…?    

  32. 박산

    2007년 11월 8일 at 5:55 오전

    연못 금붕어보다
    몰래 찍은(도망 가지 않은 걸로 보아서 새 한테는)
    새 그림이 좋습니다    

  33. Lisa♡

    2007년 11월 8일 at 6:24 오전

    뽈송님.

    어지러워요.
    비행기 그만 태우세요.
    어젯밤에 그러잖아도 술 많이
    마셔서 아직도 어지럽단 말이예요.
       

  34. Lisa♡

    2007년 11월 8일 at 6:25 오전

    박산님.

    카메라나 사진찍는 솜씨가 별로라서
    아직은 실력은 없지만 찰나를 잡거나
    구도를 잘 살려보려고는 노력 중입니다,
    사진의 기술은 슬슬 배워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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