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을 향해 걷는 동안 내게 커피를 타주고는 자기는 맹물을 좋아한다며 차가운 물을 따라서 마시던 그녀의 야윈 손가락과 슬프게 웃던 눈빛이 자꾸 떠오르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만족하며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하는 건지 모른다. 내게 있어서의 만족은 어쩌면 내게 가장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물질적인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녀에게는 낭만적이고 따뜻한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이사한 아파트를 핑계로 나를 보자고한 건 남편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남편에게 걸려왔다는 여자의 전화에 대한 고통을 얘기하는 그녀의 모습이 아주 추워보였다. 따져보지도 않고 남편에게 아는 척도 않고, 혼자서 별의별 상상을 다하며 힘들어하는 그녀가 미련하게도 보였다. 하긴 언제나 냉정한 태도를 잃지 않는 깔끔한 그녀의 남편도 알 수없는 속을 가진 남자였다.
대학에서 같은 서클에 있던 남편의 선배를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그 선배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자 낙심해있을 무렵, 생각지도 않던 그가 느닷없이 구혼을 했던 것. 아무런 감정도 없이 낭만이라고는 상실한 무미건조함과 일시적인 얄팍한 계산만으로 승낙했던 그녀. 신혼여행을 갔다 오면서 바로 비전을 상실해버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의 결혼생활이 행복했는지 아닌지 모르나 얼굴의 기미는 시댁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나의 시어머니와 대학동창인 그녀의 시어머니는 내 듣기에도 대단히 고집이 세고 편견에 사로잡힌 여성이라는 것, 또 아들 둘을 휘어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여자였다.
시댁서 잠시 살다 천하에 둘도 없이 살벌한 사이가 되어 나올 때는 아들이 자기의 부모는 이제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나왔단다. 부인은 하나님이 정해준 짝이고 자기는 그 짝을 버릴 수 없다고 말이다.
시댁과 아무 잡음이 없는 나로서는 아주 냉랭한 그들의 언어가 아주 희귀하게만 들렸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기만 손해보고 자기만 잘한 줄 안다.
내가 남들의 잘잘못이 잘 보이는 것처럼 나 또한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체 행동하고 남의 눈에는 내 허물이 불 보듯이 잘 보이겠지.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닌 일들이 그 당시에는 어쩌면 그렇게도 심각하기만 한지.
그날따라 지하철엔 술 냄새를 풍기는 취기가 오른 영감님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빌려 입은 내 밍크코트를 유심히 쳐다보는 한 할아버지는 유난히도 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눈으로 간섭이다. 옆에서 막걸리인지 동동주인지 모를 냄새를 김치냄새와 함께 푸욱 내뿜으며 내 목덜미로 숨을 훅훅 내쉰다.
베이지 빛으로 변한 하얀 양복을 회색 울 코트 안으로 감추고 머리엔 여름에나 써야 할 하얀 중절모를 쓰고는 코트 깃에는 닭털인지 공작털인지 털 하나를 폼으로 꼽고 손에는 검정색 가죽장갑을 두 짝을 한데모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쥐고 있었다.
여전히 시선은 나를 향한 채…갑자기 아주 피곤해진다.
이럴 때 자리를 옮기지 않는 건 내가 순전히 마음이 착하기 때문이다. 내가 싫은 표정으로 자리를 옮기면 조금이나마 자존심을 상하게 될지 모를 그 영감님을 위해서이다.
나는 이런 나의 행동을 가끔 자선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이은우
2007년 12월 9일 at 9:08 오전
보통 글과 함께 삽입하는 사진은 글의 내용과
연관성이 있기 마련이어서 1편에서 중간에 삽입된 사진을 유심히 살펴 보았습니다.
보아하니 치마를 쓰~윽 걷어 올리는 사진이 아니고
스웨터를 아래로 끌어 내리며 뽀샤시한 젖무덤의 한 켠을 등장시키는 걸로 봐서
처음부터 급전직한 볼장(?)으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향후 전개과정에서
그녀가 그 누군가를 유혹하겠다는 심리를 리사님이 그려내려고
암시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였는데
2편을 읽어보니 그녀의 과거 일부분이 드러나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행동할까
자못 궁금해 집니다.
공작털을 모자에 꽂은 할아버지를 전철에서 보았다면
아마 그 할아버지는 종로 3가 탑골공원에서 놀다 오신 듯 합니다.
어쩌면 공원에서 커피파는 아줌마(?)와 술을 한 잔했을지도…
2편에 삽입된 사진의 내용을 음미해 보니
지금 전철을 타고가면서 자리를 양보하신 착하신 분의 마음속 일면이 읽혀지는 것 같아
괜시리 꽃이라도 한송이 쥐어주고 싶습니다.
3편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 올려주세요.^^
김진아
2007년 12월 9일 at 9:08 오전
기다림….*^^*
리사님 소설…시간이 행복해 집니다.
Lisa♡
2007년 12월 9일 at 11:01 오전
은우님.
쓰러집니다.
그림 삽입에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냐면 아무 관계가 없고 그냥 그림의 분위기로…
난 눈이 나빠서 잘 안보입니다.
은우님 그나저나 탑골공원의 할아버지가 커피파는 할머니랑
술을 한 잔 했을까요?
그 할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답니다.
언젠가 내 옆에서 꼭 그런 모습으로 앉아서 날 뚫어지게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있었으니까요—-
3편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때요?
무엇이든지라니…머리 나쁜 내가 어케 알아요?
글쎄 그녀는 무엇이든지 하고말 캐릭터는 아닌데..
Lisa♡
2007년 12월 9일 at 11:01 오전
진아님.
진아님을 위해서라도 10편까지는 써 볼
게획이예요.
나의 연습도 있지만 한 분이라도 보시는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ㅎㅎ
화창
2007년 12월 9일 at 11:42 오전
나를 바라보는 피곤한 시선을 불쾌해 하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
그거 ‘자선’ 맞나요?
하기는 자리를 피하면 분명 그 남자는 불쾌해 할 것이며 이유없이 시비를 걸어 올지도 모르지요?
팍 시어버린 김치처럼 형편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 그래도 내가 보내는 작은 자선에 감읍해 할지도 모르는 ‘민초’들입니다!
그 민초를 어여삐 여기시고 자선을 베풀수 있는 여유를 가지신 태평양처럼 마음이 넓은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Lisa♡
2007년 12월 9일 at 11:53 오전
화창님께서 신트림하며 옆에 앉으셔도 절대로;피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시어버린 김치도 그런대로 맛이 있어서 신김치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본래 노인들을 싫어하지 않구요.
그 할아버지 귀엽잖아요..깃털까지 꼽은 폼새가 얼마나 귀여워요.
후후후….화창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랙맨
2007년 12월 9일 at 11:24 오후
‘나의 행동을 자선이란 이름으로 위장을 한다’
음………….
요즘 신 여성치곤 반미 의식에 따른 자주 독립 정신이 약하시군요
좋게 말하면 많이 보수적이시고요
자유 분방 liberal하고 개인적인 사상을 이용하시어 돈을 많이 버는 거보다는
기득권 층에서 활동 conservative하시는 거시 보기에 유~해 보이고
이왕 똑같이 사는 거
지적이고 지혜롭게 보일 거같습니다
Lisa♡
2007년 12월 10일 at 12:39 오전
블랙맨님.
소설이예요.
리버럴해도 돈을 못 벌고 진취적이고
진보적이라도 저는 돈을 버는덴 아직
젬병이예요.ㅎㅎ
기득권층도 좋구 나쁘지 않아요.
편하다는 잇점이 있으니까요.
어찌보면
제 경우에는 사는건 보수파에 속하는 기득권층이고
사고는 좌파는 아니지만 그래도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진보보수주의라고 규정지을 순 있겠지요.
굳이 따지려고 든다면 말이지요..하지만 구태여
그렇게 자로 선을 그어가며 살지는 않아용~
님프
2007년 12월 10일 at 5:59 오전
하이 리사님~
저도 리사님 이야기는 길어도 지루하지 않아요.
다음편도 기대합니다.
Lisa♡
2007년 12월 10일 at 8:22 오전
님프님.
아랐쪄요.
기대되네…저도요.
천왕
2007년 12월 11일 at 3:14 오전
저도 모자를 좋아하거든요…
요즘 금주 한지가 두달정도 되는데…
중절모 쓰려면 영원히 금주를?….
리사님의 착한 마음을 봅니다..오늘도..
3편으로 가자~~
Lisa♡
2007년 12월 11일 at 10:47 오후
천왕님.
금주, 중절모…
무슨 말씀의 연관성이신가…했쪄요.
ㅎㅎㅎ—-금주는 계속 하실 거잖아요.
중절모라고 해서 다 막걸리의 냄새와
관련이 있다고 보지 마시길~~
이러다 중절모 연대에서 혼날라…ㅋ
고운새깔(Gose)
2010년 4월 19일 at 11:24 오후
점점 재밋어 짐니다
이크 그고약한냄새 저도 그냄새 맡은적 있어요 지하철에서
건너뛸수가 없네요
나 그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