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쓸쓸함의 끝은 어디인가?(5)

2002년,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라기엔 아직은 쌀쌀할 무렵에 아주 밝은 목소리의 그녀가 만나자며 약속을 스스로 정하였다. 나가지 않으면 찾아 올 정도로 바쁜 음성이었다. 인사동-우리는 항상 그 곳에서 만나곤 했다.

스타박스는 항상 손님이 들끓는 편이지만 그나마 인사동 스타박스만은 그런대로 조용한 곳이다. 길가로 나있는 창 앞의 높은 의자에 앉아서 날 기다린 그녀는 아직 날이 풀린 것도 아닌데 외투조차 없는 얇은 자켓 차림에 10대나 입음직한 힙합바지에 앞 뒤 창의 높이가 같은 키 높이 꺼멍구두를 신고는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엉망진창의 컨셉이나 얼굴엔 가득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유 없는 무서움마저 들었다. 배낭까지 맨 그녀의 피부는 기미를 감추느라 덕지덕지 바른 화운데이션이 뭉쳐서 들뜬, 편하게 보기엔 힘든 상황이었다. 눈 아래로는 흔히 말하는 다크 서클이 너구리 눈 모양을 하고 머리는 티나 터너를 연상시켰다. 선심이라도 쓰는지 커피를 사오더니 배낭서 부리나케 앨범을 꺼내는데 그 앨범이 모조리 J라는 가수의 사진이었다. 편집증-바로 떠오르는 단어. 자기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J의 모든 콘서트는 다 쫒아 다니고 J를 주려고 마련한 선물은 어떤 걸로 했으며 그가 자기랑 눈이라도 마주치면 기절할 거라는 둥 가관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앨범을 다 넘기며 멋지다고 잘 생겼다고 어색한 칭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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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부터 그 가수가 싫어졌다. 순전히 승주 때문에 좋아할 수 없었다. 그의 아기라도 가지고 싶다며 아들 하나가 기르고 싶었는데 J의 아이면 좋겠단다. 예전에 그녀의 집에 갔을 때 벽에 엄청 붙어있던 남자배우의 사진이 오버 랩 되면서 상황판단이 바로 되었다. 지금 집에는 누구 사진이 붙어 있느냐고 물었다. 당연 J의 사진이란다. 예전의 그 남자배우는 벌써 뜯겨져 나갔고 서너 번 상대가 바뀌었는데 이번은 영원할 거라고 말한다. “너 네 남편은 그런 사진보고 뭐라 그래?” 마지못해 내가 물었다. “어, 그냥 미쳤다고 작작하라고 하다가 이제는 암 말도 안 해, 내가 좋아하는데 지가 뭐라고 해” 내 눈 속에 놀라움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그녀는 연신 J의 얘기로 핏대를 올렸다. 자기 차림은 어떠냐면서.

한참을 침 튀기며 지방으로 콘서트 보러 간다는 둥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아이 올 시간이라며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늦는다면서 휙 하니 일어난다. 인사동의 거리는 쓸쓸했다. 간혹 지나가는 외국인들이나 미소를 지을 뿐 이상하게 모든 거리가 낯선 시간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주섬주섬 스타박스를 나온 나는 하이힐의 뒷 굽을 거리바닥의 돌 틈에 박히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몸의 균형을 잡기위해 비틀비틀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인사동의 길바닥은 뾰족한 굽을 가진 구두를 신고 나오기엔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이왕 나온 거 갤러리라도 가서 시간을 알차게 보내다 갈까 했지만 그날따라 구두가 편하지 않았다. 안국역에는 귀찮은 걸음으로 걷는 인간은 나밖에 없지 싶으리만치 다들 바삐 걷는다. 나도 바쁘게 걷고 싶다. 뭔가 일에 쫒기는 모양으로 커리어 우먼처럼 그렇게…

처음 고스톱을 배웠을 때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나 감은 눈 속에서 청단과 초단, 고도리가 붕붕 날아다니곤 했다. 승주를 만나고 온 날엔 가수 J의 사진들이 떠 다녔다. 가수들은 참 피곤하기도 하겠다. 인기도 좋지만 성격 장애자들에게도 사랑 아니 집착까지 죄 다 웃으며 받아들여야하니 말이다.


4 Comments

  1. 김진아

    2007년 12월 11일 at 11:47 오후

    점점 더 궁금해지는 이야기..

    내일인줄 알았는데..금새…

       

  2. Lisa♡

    2007년 12월 12일 at 1:40 오전

    진아님…ㅋㅋ

    궁금하나요?

    더 궁금하게 할까말까.   

  3. Beacon

    2007년 12월 12일 at 11:59 오전

    앗.. 리사온니 리자닷.. !! ㅎㅎ

       

  4. Lisa♡

    2007년 12월 12일 at 2:41 오후

    비컨님.

    진짜 맞나요?
    암만 봐도 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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