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쓸쓸함의 끝은 어디인가?(10)

아이들이 커 갈수록 매일매일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만 갔다. 머리는 가만있으면 녹슨다지만 바삐 움직여도 어쩐지 그 녹은 더욱 짙어지는 느낌이 들기만 했다. 어제의 일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점점 늘어만 갔다. 아이들의 장래에 대한 문제도 뭐 딱히 결정지을 수가 없는 게 어른인 나 자신조차 갈팡질팡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무엇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느냐 하는 것은 나의 불안정한 머리로는 판단도 가늠도 하기 힘들었다. 그냥 주어진 대로 하루하루 보내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래도 그 속에 뭔가 오아시스를 발견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었다. 사람은 자주 만나지 않으면 금방 잊어지고 뒤돌아보면 세월은 어느 새 5년, 10년이 순식간이다. 엊그제인가 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일, 이 년은 잠깐이다. 숙희가 캐나다로 이민간지도 10년이 넘었나보다. 그래도 한 해에 한 번은 꼭 한국에 나오는 그녀가 이번엔 2년 만에 전화가 왔다. 승주랑 같이 인사동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삼총사다. 셋 다 아이도 적당히 늦게 애태우다 낳았고, 지방서 올라와 서울에 정착해 사는 경우였는데 숙희가 주재원으로 캐나다에 나갔다가 주저앉기로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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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인사동을 나갔다. 의상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나였지만 그 날은 제법 신경도 쓰고 머리에도- 평소에는 돈이 아까워 미용실가서 드라이하는 법이 없었는데 -조금 투자까지 했다. 무더운 여름방학 철이라 땀이 절로 났지만 애써 태연한 척 온 몸에 힘을 빼고 더위를 외면하며 약속장소로 갔다. 둘은 이미 와서 얘기 중이었다. 내가 들어가자 숙희는 선물이라며 예의의 그녀다운 조그만 거울을 준다. 까만 안나수이 거울로 비행기 안에서 샀다는 것 같았다. 이미 내게 있는 거울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능청을 떨며 고맙고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오랜만에 보는 승주는 정말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말라있었다. 말라깽이라는 말은 그녀를 두고 지은 말 같다. 반팔에 반바지를 입은 그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의 허벅지로 시선이 갔다. 흠칫 놀란다는 표현이 딱 맞다. 그녀의 허벅지는 움푹 패어져 둥그렇게 함몰되어 있었다. 일어서면 표시가 나지 않는데 앉으니 바지가 위로 당겨지면서 보여지는 부분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 옷을 입고 나올리가 없는 그녀다. 그냥 지나쳐야 했는데 호기심 많은 나는 멋도 모르고 “어머, 너 다리 왜 그래?” 그건 나의 실수였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아냐, 모른 척 해줘~본래 그래” 그러는 것이었다. 한 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느낌이 이상해서 나의 눈길은 계속 다리로만 갔다. 그녀가 내 시선을 결국 이기지 못해 조용히 이야기한다.

“나 너무 살이 찌는 통에 지방 흡입을 했는데 내가 관리를 소홀하게 해서 이렇게 돼버렸어”

“…”

“다시 해볼까 생각 중이야, 균형이 안 맞아서 아래나 위로 조금 더 빼면 될지도 몰라”

이 건 아니다 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 나오려고 발버둥 쳤다. 숙희는 모든 걸 눈치 챘는지 멍한 표정으로 말없이 웃는다. 나보다는 둘이서 더 깊은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다. 어깨가 말라서 위로 불쑥 솟아 오른 모양으로 앉아있는 승주를 쳐다본다는 게 나에게는 고통이었다. 나보고 재밌는 일 없냐고 묻는 그녀에게 난 손사래를 친다. “없어, 없어” 언제까지 그녀를 보담아주고 수긍해주고 칭찬하고 격려해야 하나? 머릿속이 온통 질서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하나 뿐인 딸이 집에 오면 먹을 간식 챙겨줘야 한다며 가겠단다. 겨우 한 시간 있었을까. TV에서 만화영화를 볼지 모른다며 조바심을 냈다. 숙희와 나는 둘이 동시에 “얘, 다 큰애를 뭘 그리 가둬서 키우니? 간식은 지가 먹으라고 해” 뭔가 참기 힘든 표정을 짓는 승주였다. 밥이나 먹고 가지? 우리는 편하게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 승주는 자기는 밥을 먹으면 안 된다고 아침을 먹어서 굶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짜 할 말이 없어진 숙희와 내가 그래도 조금만 먹자고 했다.

2 Comments

  1. 김진아

    2007년 12월 15일 at 3:20 오전

    자신을 …징그러울정도로 매몰차게 괴롭히는 이유가…
    나오는 건가요?

       

  2. Lisa♡

    2007년 12월 15일 at 3:26 오전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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