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승주는 시들시들 말라빠진 고들빼기처럼 비틀려갔다. 나는 그녀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마냥 들어주고 응대해주기엔 시간도 모자랐고 지겹기도 했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마치 자기에게만 일어나는 에피소드인양 들어줘야 하는 건 고역이다. 그즈음 나는 대학선배들과 함께 몇 명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임을 가지며 시라든가 글을 주제로 이야기하며 즐거운 대화방을 하고 있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모임이었다. 뭐가 건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마는 우리는 꽤 건전했다. 토론도 하고 서로 카피한 글들을 바꿔가며 읽어보고 밥도 먹고 -주로 계산은 남자선배들이 했다-술도 한 잔씩하고 가끔은 가라오케도 갔다. 그리고는 늦지 않게 각자 헤어져 서둘러 귀가하고는 했다. 친구들과 모이면 당연히 그날의 주제는 그 모임 이야기였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그만한 오아시스가 어디에 있을까.
은근한 자부심마저 우리에겐 있었다. 선배들도 룸살롱에 가서 술을 마시는 것보다 훨씬 즐겁고 재미있다며 아주 반기는 눈치였다. 돈도 덜 들지 대화가 수준급이지, 시간도 별로 안 들지, 게다가 술을 많이 먹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골고루 그들을 즐겁게 했나보다. 우리 멤버들은 매달 그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였다. 승주가 언제 한 번 자기도 같이 데려가면 안 되겠냐며 넌지시 물어봤다. 나는 단호하다싶을 정도로 차갑게 거절을 했다. 이유는 기미가 잔뜩 낀 얼굴도 그렇지만 어두운 얼굴로 분위기 망칠게 훤히 보였다. 게다가 그녀의 옷차림에까지 신경이 미치자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형들을 만나면 분명 그녀는 나이 운운하다가 나중에는 그 중 한 사람에게 꽂혀 나름대로 집착에 해당하는 짝사랑으로 괴로워할 게 상상이 되었다. 많이 섭섭했나보다, 그 후로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다. 나도 그녀도.
색연필
2007년 12월 15일 at 2:42 오전
그녀를 보면 알 수 있는 것…
그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잘 읽었어요…
그래서 그녀 얘기는 여기서 끝인가여?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는 알겠는데..
고들빼기(?)생선이예여?
Lisa♡
2007년 12월 15일 at 2:59 오전
색연필님.
끝은 아직도 한 두 편 정도?
고들빼기 — 김치종류입니다.
아니 고들빼기를 모르신다는 말쌈?
ㅋㅋㅋ…
눈이 녹고 있네요.
잘 지내시지요?
김진아
2007년 12월 15일 at 3:17 오전
그녀는…짝사랑으로 품으면서도 여전한 집착은,
소리 지를곳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네요..
^^
Lisa♡
2007년 12월 15일 at 3:25 오전
진아님.
어쩌면 그녀는 우리들 속에 조금씩 존재하는
유형을 담고 잇는지도 모르지요.
요즘 사람들을 보니 다들 참 많이 외로뤄하고
참 많이 호탈해하고 잡힐 곳을 찾는
사람처럼 헤매는 숫자가 많더라구요.
애들 키울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랍니다.
그러니 그 행복에 안주하고 더 즐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