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30일 우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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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30분에 ㅎ와 ㄱ을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다.

‘ㄱ’이 한 달간을 런던서 머물다가 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동안 문화광답게 많은 공연을 보고왔다.

뮤지컬’빌리 엘리어트”메리 포핀스”크리스마스 콘서트’

그리고 가장 좋았다는 태양의 서커스 中 새로운 공연인

VAREKAI 이다.

VAREKAI는 기억으로 더듬은 단어인데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無와 관계되는 단어란다.

만나자마자 불쑥 "선물 줘~’ 라고 내가 말하자 예의의 눈웃음으로

가방에서 얼 그레이와 블랙 퍼스트 티를 꺼낸다.

내일 아들 학교 최종발표가 있다는 ㅎ에게 당락에 관계없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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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호동 현대백화점의 12층에 있는 한식집에서

생불고기 3인분을 시켜 먹었다.

노란 구멍 뚫린 철판에 얹어 먹는 생불고기는 무엇보다

육수맛으로 먹는데 셋 다 육수만 먹고 고깃덩이는 그대로

있어서 내가 아까운 마음에 자꾸 젓가락이 갔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

‘ㄱ’ 의 의상이 검은 모직코트에 회색 니트모자와 검은 색과 회색이

합쳐진 이중컬러의 머플러를 하고 언제나 그렇듯 영판 유럽풍이었다.

셋 중에 젤 튀는 날더러 런던에 있으면 동물보호가들한테 몰매 맞았을 거란다.

연일 시위를 하는 통에 런던은 모피는 밖에 감히 입고 나오질 못한단다.

뭐–입을 날씨도 물론 아니지만…좀 부끄러웠다.

나 자신도 동물을 무지 사랑하기 때문이다.

‘ㅎ’는 베이지 색의 더플코트를 입어서 그러잖아도 학구파형인데

더욱 학생 분위기였다.

식사 후에 우리는 스위니 토드와 우생순 중에 시간이 맞는 영화를

보기로 하고 걸어서 길을 건넜다.

건너 편에는 한일시네마와 시네11이 있는데 내가 시네11으로 가자고 했다.

거기엔 우리를 반기는 커피집 아줌마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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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핸드볼 경기를 보면서 손에 땀을 쥐던 그 때.

경기가 동점골로 연장전으로 승부던지기로 갔을 때보다

그 뒤의 감독의 울먹임이 강하게 와닿던 게임이었다.

다시 영화로 보니 눈물이 절로 흘렀다.

후반전에 동점골을 넣는 장면에서는 우린 모르고 박수를 막 쳤다.

물론 아는 얘기지만 구성도 탄탄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실화에 재미를 첨가해 없는 얘기를 집어 넣어 감동을 더 만든..

가장 최고의 순간에 가장 불행한 순간을 맞을 수도 있는 인생.

경기장을 떠난 후의 선수들을 좀 더 알게 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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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는 물론이고 김지영을 좋아하는 나는 영화내내 김지영 때문에

엄청 웃었다.

눈은 어쩜 그리도 맑은지..문소리는 어쩜 그리도 똑순이 같은지.

김정은은 몸이 많이 좋아진 것도 같고 성형으로 얼굴은 자세히 보니

거북하기도 했다.

그래도 착하다는 소문이 있으니 예쁘게 보여지려고 했다.

엄태웅은 야심에 불타는 감독으로 모든 배역들의 연기 좋았다.

특히 협회장으로 나온 아저씨 배우가 제일 잘 된 캐스팅이라고 ‘ㄱ’이 말했다.

무지 핸드볼 연습했을 배우들의 노고가 아주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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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 하이몬드 제과점에서 모카빵을 샀다.

보통 12시만 되어도 다 팔리고 없는데 오늘은 3시가 넘어도 2개가 있었다.

내가 2개를 다 샀다.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내일 삼성 의료원에 갖고 갈 거다.

‘ㅎ’가 경영하는 던킨의 빵을 먹으라며 봉지를 가득 채워왔다.

나 살 더 찌라는 말이지?

어쨌든 빵복 터진 날이다.

청바지를 사서 간다는 ‘ㄱ’을 백화점 윗층으로 보내고 두 눈 딱 감고 차를 몰고 나와버렸다.

이래서 나의 쇼핑 생활은 이렇게 마감하나보다.

오는 길에 S상가에 가서 밑반찬 3가지를 사고 4000원하는 뚱뚱한 고등어를

한 마리 손질해서 집으로 들어왔다.

누군가 저녁 먹으러 시내로 나오란다.

깨끗하게 거절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갑자기 밤에 부산의 말수니가 전화 통화하잖다.

둘이서 킥킥거리면서 1시간동안 통화했다.

순수가 살아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행복하다.

6 Comments

  1. 오드리

    2008년 1월 30일 at 6:43 오후

    나 순수 그 자체. 아니, 푼수지.ㅎㅎ   

  2. Lisa♡

    2008년 1월 30일 at 10:51 오후

    오드리님.

    주변에 사람이 많이 따른다는 건
    분명 순수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니라구요?
    맞다구요?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아………..그리고 권력도 사람을 따르게 하지요.   

  3. 김진아

    2008년 1월 30일 at 11:52 오후

    아직도 결혼을 안한 친구가,
    아줌마들을 규합합니다.
    이번주 토요일 우생순 보자고..
    안나오면 죽음이야..이러면서요 ㅎㅎ

    친구란, 세월이 지나도 아주 작은것,소소한 것에서
    나눌수 있어서 좋은가보아요..
    그 친구 이름이 현정이예요..

    ^^   

  4. 블랙맨

    2008년 1월 31일 at 12:36 오전

    영국에 다녀오신 분은 화려한 싱글이시군요
    저녁에 친구를 불러서 외식을 하자는 분도
    싱글이거나 divorced 거나 seperate 이시구요
    미국이나 유럽 백인의 사고방식으로는 그래요
    백인들이 그런 거 보면 아주 보수적이예요
    family 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거나
    특히 부부라면 함께 여행가는 게
    서양 풍습이거든요
    삼강오륜은 아니지만 백인들 나름대로의 규칙은 있지요 … ^^
    보통 남자 pilot 이나 shipman 이 돈은 아주 잘 버는데
    백인 여자들의 남편 기피 대상이거든요
    참 풍습도 가지 가지~~~ ㅎㅎ   

  5. Lisa♡

    2008년 1월 31일 at 12:44 오전

    진아님.

    가끔 나가주는 센스…
    환기도 할 겸.
    그렇게 살아야 뒤에 후회 안합니다.
    아랐쬬?
    볼 것도 가끔은 보고 다녀야 애도 잘 키워요.
    후후후…   

  6. Lisa♡

    2008년 1월 31일 at 12:50 오전

    영국에 다녀온 내 친구 ‘ㄱ’은 절대 안 화려.
    딸이 런던대에 다니고 있고 남편은 CEO인데
    컴퓨터만 갖고 가면 몇 달이고 괜찮나봐요.
    뭐..곧 상암동에 건물 한 채 짓는다지요…아마!!
    부러버서 미치겠어요.
    저녁 먹자고 한 친구요?
    separate아니구요….직업을 갖고 있는 여성이지요.
    밤 늦게까지 일하는 엄청 고수익자에 속하는…부럽기만한.
    백인들의 규칙이건 한인들의 규칙이건
    난 그런 거 깡그리 무시하고 자유주의자로 살되
    다만 죄는 짓지 않고 남에게 해는 끼치지 않는다는
    그런 정신으로 살고 있쪄어요.
    블랙맨님.
    도덕교과서같은 풍습은 이미 식상되어버린 이야기예요.
    요새 그런 거 지키는 사람 별로 많치 않아요~~
    그렇다고 너무 방종스러운 건 오우 노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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