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6일 히우라와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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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다시 깨었는데 영 잠이 연결이 안되었다.

어제 사 온 사과를 깨물어 먹는 이른 아침은 낮설지만 편했다.

나이를 모르겠다.

어딘지 국적조차 모르겠다.

온통 부유하는 노란 꽃향기 안에서 떠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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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ia가 출근 후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종일 커피를 들이켰다.

여전히 글이 올라가지 않는 늙은 노트북은 자주 꺼졌다.

Ivy가 찍어 현상해둔 사진들을 보는 재미는 경이롭기도 한 시간이었다.

랙시와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잤다.

내 다리 위에 자기 얼굴을 얹고 자는 랙시는 보는 건 평화였다.

오래도록 얼굴을 들여다 봐도 지겹지가 않은 매력이 있었다.

오래도록 얼굴을 마주해도 지겹지 않던 누군가가 떠오르며

뜨거운 가슴이 울컥 되어본다.

내게 그런 마음을 안겨 준 이들이 여태 몇이나 되는 걸까?

영원하지 않을 것에 이리 우리는 조바심인지.

ivy를 보면서 나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떠올렸다.

물론 그녀 주변의 인물얘기를 들은 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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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 까다로운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무료함을 자주 평화와 바꾼다.

난 평화를 원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자유와 문화와 더불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한 때 내 아이들의 이름을 자유, 문화, 평화라고 지을 뻔 했다.

아쉬운대로 별명이라고 붙여주긴 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의 가훈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써서 붙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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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엔 Sonia와 Ivy랑 남자친구, 즉 내게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 준표와 함께 우리는 애지워러 근처의 ‘히우라’라는

일식집으로 마지막 만찬을 하러갔다.

굳이 내가 내겠다는 음식값을 그녀들이 지불했다.

히우라는 그 식당 남자주인의 이름이다.

맥주를 즐겨서 하루에 10캔도 넘게 마시는데 그래서인지 거기서는

술을 안판다.

우리는 가는 길에 청주와 삿뽀로를 박스로 사서 들고갔다.

본래 만쥬라는 술을 마시려고 했는데 거기선 안 파니 포기할 밖에.

재미있었다.

준표는 엄청나게 웃는 시골이 생각나는 남자였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시골과 천진함이 배여있었다.

웃으면 실눈으로 변하는데 Ivy도 실눈되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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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우라에서는 금연이다.

다 먹고 나오는데 밖에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물웅덩이와 비..그리고 고무장화를 신은 준표가 후드 티를 뒤집어 쓰고

녹슨 배수통 아래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뭔지 참을 수없을 때가 있었다.

담배를 한 가치를 달라고 했다.

우리는 서서 거기서 담배를 비맞으며 피웠다.

길에서 담배를 피워보는게 하나의 소원이기도 했었다.

난 담배가 체질에 안맞다.

그렇지만 피우고 싶었다.

기회는 자주 오는게 아니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꽁초를 그냥 길에 빗물 위에 버렸다.

것두 멋있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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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ia가 만든 눈사람이다.

아니 눈돼지다.

아주 잘 만들어서 깜짝 놀랬다.

첨이다.

눈으로 만든 돼지는…

그렇게 내가 떠날 시간이 되었다.

Sonia가 일찍 자지말고 자기랑 더 이야기하잔다.

난 이상하게 어지럽고 목구멍도 아프고 피곤했다.

술탓이라 돌리며 허그도 없이 자버렸다.

그리곤 아침엔 떠날 것이다.

6 Comments

  1. Beacon

    2008년 3월 1일 at 5:40 오전

    꽁초..흐흐~ 리사님 다움.. 억쑤로..   

  2. Lisa♡

    2008년 3월 1일 at 7:09 오전

    비컨님.

    분명 담배 피시죠?
    꽁초 절대 길에 버리면 안됩니다.   

  3. 래퍼

    2008년 3월 1일 at 7:37 오전

    와우~~
    넘 귀여운 눈돼지..sonia양 재간꾼예요..ㅎㅎ
       

  4. Lisa♡

    2008년 3월 1일 at 7:59 오전

    래퍼님.

    그러니까 패션의 일번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겠지요?
    재간꾼이 만든 재간댕이 돼지~~   

  5. 박산

    2008년 3월 3일 at 7:32 오전

    ‘길에서 담배 피워 보는 게 …’

    참 별게 다 소원이고 멋있어 보이네요
    아 참!
    그게 리사님 답지,
    리사틱!    

  6. Lisa♡

    2008년 3월 3일 at 8:57 오후

    박산님.

    리사틱…

    근데 담배를 피우면 왜 귀랑 목이 아플까요?
    어지럽기도 하구요?
    다른 건 다 이해가 되는데 귀는 왜그리 아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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