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4일 단촐함

보통 장례식장엔 시골서 올라 온 친척 할머니라든가

얼굴이 퉁퉁 부은 고모라든지, 대성통곡을 하는 이모라든지

한복을 입고 얼굴 허옇게 부어서 다 산 것처럼 하고있는 친지 몇은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세 가족..단촐하게.

큰 형네 부부와 아이 한 명(6학년..좀 늦다)

누나네 부부와 미국서 온 두 딸.

그리고 우리 부부….끝.

친척도, 누구도 더 이상은 없다.

손님은 제일 큰 영안실도 모자랄 판이다.

장례식장에 화환 이 거 낭비다.

없어져야 할 풍습이다.

화환은 들어 오지도 못하고 아예 리본만 잘라서 들어 온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자기 남편에게 미친듯 화환이 쇄도하면

내심 흐뭇하리라~

언제나 못 가진자의 한탄은 절약이나 내실 쪽으로 기우는 건지.

나는 정말 우리나라 혼례, 장례 문제 되짚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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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걔 장례식장에서는 현재 자기의 권위나 위치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조문객들의 수준이나 숫자, 그리고 화환의 숫자..등.

하지만 부조금을 일체 받지 않는 사람들도 봤다.(일반인)

화환사절 하시는 분들도 봤다.

심지어는 생전에 고인이 자기 육성으로 자기 친구들이나 조문객들에게 직접 인사를 하는

녹음 테잎을 담아 슬퍼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가 먼저 가서 기다리니까 친구들 이름 말하면서

너네들도 빨리 날 따라 오라고 우스개소릴 하는 분도 있었단다.

자기는 이 세상 잘 살다가 떠나니 울거나 불쌍하게 생각지 말라면서 자기한테 그동안

재미있던 추억담을 누군가를 향해 농담삼아 얘기하면서 웃음소리마저 남긴 사람은

한 때 얘깃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영안실에서도 나란히 있는 경우, 한 집은 조문객이 넘치는데 한 쪽은 조용한 경우가 있다.

뭐–신경 안 쓰면 되겠지만 은근히 바라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산다는 건 포기하고 살 게 많은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그런 마음공부를 살면서 해가야 한다.

서울숲_080.jpg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제법 국가적으로 권력좌에 있는 사람이 왔다.

웃기는 건 오면 그냥 오면되지….먼저 세 명의 비서가 왔다.

10분 뒤에 그 분이 도착한다며 두 명은 경직된 자세로 입구에 서 있었다.

잠시 후, 5분 뒤에 도착한다고 또 알려 주었다.

어쩌라구~

5분 후에 입구에 도착했단다, 어쩌라구우~~

그리고는 비서랑 빠른 걸음으로 들어오는 아저씨, 다르게 생기지도 않은 평범한 아저씨가

꼿꼿한 자세로 어색하게 웃으면서 까다롭지 않은 이름을 휘갈기며 쓰고는 들어왔다.

그 때 같이 경직된 비서처럼 서 있던 우리 형부-귀여웠다.

악수를 청하자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손을 내밀던 우리 형부…ㅎㅎㅎ

그 옆에서 멋 모르고 사이다를 더 마시려고 캔만 쳐다보던 우리 아들들….

그 비서들 장장 2시간 이상을 앉지 않고 서서 그 분을 기다렸다.

들어와서 식사도 하고 앉아서 쉬어라고 해도 로버트처럼 고개를 저었다.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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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귀염D 두 마리가 등장했다.

12시 넘어서 도착한 그녀들은 새벽 2시반까지 나의 말동무가 되어 다 돌아 간

상가에서 우리 셋만 낄낄깔깔 거리다가 돌아갔다.

범생이도 아니면서 범생이같이 안경까지 잡숫고 등장한 오공.

약국일로 바쁠텐데 야밤에 긴머리결 휘날리며 멀리서 와 준 파이.

그녀들은 위로차원으로 방문했는데 상을 당한 내가 되려 너무 웃기는

바람에 깔깔거리다가 "이 거 이래도 되는 거야?" 라며 예의를 차리는 척 했다.

우리의 만남에는 언제나 재미난 Example이 있어 각자의 의견을 전하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웃길 때가 많다.

새벽까지 헤어지기 싫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다가 언제나 그렇듯

내가 먼저 박차고 일어나야만 했다.

전부 새벽에 일어나야하는 처지였기에—-

하지만 오늘은 난 느긋하게 천천히 나가기로 결정했다.

별로 할 일도 없고 내 손님은 없기 때문에 빨리 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서다.

호상.

그래서 여유를 부린다.

서울숲_016.jpg

14 Comments

  1. 엘리시아

    2008년 4월 25일 at 12:09 오전

    저도 동감입니다. 화환 절대 사절…
    이건 정말 터무니 없는 낭비에요.

    라사님 그동안 애쓰셨어요.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겐 죽음은 그닥 슬픈 일이 아니지요.
    영원한 안식처에서 편안히 쉬시길 빕니다.    

  2. Lisa♡

    2008년 4월 25일 at 12:22 오전

    엘리시아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생각하면 슬퍼한다는 게
    되려 신에게 위배되는 짓이지요.
    하느님 나라에 가는데 왜 슬퍼하나..이런 거죠.
    하지만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니까 당장 눈 앞에는
    이별이라는 게 슬프지요.
    화환없애기 운동이라도 할까요?
    하지만 파이는 국화냄새가 너무 좋다고 하더라구요.
    건…그렇죠?
    수의도 관도 터무니없는 가격들이랍니다.   

  3. 한들가든

    2008년 4월 25일 at 1:10 오전

    쪼매 있다가 올께,^^

       

  4. Lisa♡

    2008년 4월 25일 at 1:42 오전

    한들오빠…ㅋㅋㅋ
    웃음을 주네—–   

  5. shlee

    2008년 4월 25일 at 5:32 오전

    러브 액추얼리 속에
    리암 리슨의 마누라 장례식
    인상적…
    나도 저렇게 할까..
    그런 생각도 들던데…
    죽은 사람이
    산 사람들을 위로하고 웃기는..
    좋은 계절에 돌아 가신것 같아요.
    우리 시아버님
    장마철에 돌아 가셔서
    두고 두고

    ^^

       

  6. Lisa♡

    2008년 4월 25일 at 6:03 오전

    쉬리님.

    러브 액츄얼리속의 장레식
    생각나려다가 마네요.
    다시 볼 수도 없구요.
    장마철…고생 좀 하셨겠네요,   

  7. 풀잎사랑

    2008년 4월 25일 at 6:56 오전

    그래도 힘 드시죠?
    손바닥, 발바닥을 많이 주물러 주시면
    피로가 훨씬 덜 할건데…

    화환 안 받기는 저도 동감입니다.
    나중엔 쓰레기… 진짜 낭비예요.
    화분이라면 모르지만…ㅎㅎ   

  8. 래퍼 金愛敬

    2008년 4월 25일 at 7:18 오전

    의리의 귀염D들이 한 자리에..^^

    호상의 여유..리사님의 여유..^^   

  9. 데레사

    2008년 4월 25일 at 10:09 오전

    장례식에서의 화환은 꽃집에서 도로 사가기도 하고
    웃기는 일도 많아요. 그저 그런 허례없이 조촐했으면
    좋겠는데 사람사는 이치가 그건 아닌가 봐요.
    들어 온 화환으로 신분이 진단되기도 하고….

    리사님.
    고생하셨어요.
    주말에는 푹 쉬시고 새롭게 ~~   

  10. 참나무.

    2008년 4월 25일 at 3:12 오후

    수고많으셨어요…리사님^^

    그 와중에도 다이어리를…여튼 대단대단…
    그 와중에도 문상객을 웃기다니 것도 대단…

    호상이라하니 잠시 옆길…
    박민규 소설 중에 후손들에게 5억 이상 남겨두고가야 호상이라 한다는 …
    요즘 세태틀 시니컬하게 표현한 귀절이 생각나서요.

    제가 어릴 때 시골 장례식 풍경 하나만…

    친하지도 않는 사돈 팔촌네 아줌마가 와서
    울외할머니 귀중품들 열거하며 (그리 값나가는 건 아니고…)
    " 생전에 xx도 xxx도 날 주신다더니이… 아이고오 아이고오 ~~" 이러데요?
    그러면 그 물건을 자기가 찜하는 거라고…
    이해안되지요?
    관 앞에서 그러면 법 비슷한 효력을 발휘한다고…ㅎㅎㅎ
    어릴때지만 별 희안한 일이 다있네 그랬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늦게와서 애교떠는겁니다…;;   

  11. Lisa♡

    2008년 4월 25일 at 3:37 오후

    풀잎사랑님.

    별로 힘들진 않은데 그저 잠이
    좀 왔어요.
    빈 방에 문 닫고 들어가서 좀 자려니
    되려 정신이 맑아지더라구요.
    그냥 참고 커피(믹스)도 마시고 소주도 한두어 잔 하고
    맥주도 조금 마시고 그랬더니 지금 잠이 오질 않네요.
    마음이 다른 사유로 꿀꿀합니다.   

  12. Lisa♡

    2008년 4월 25일 at 3:38 오후

    래퍼님.

    호상입니다.
    편안하게 이야기하시다가
    한 시간만에 돌아가셨으니까요.
    물론 병실에 계신지는 쫌 되었지만요.
    그 정도면 한 세상 풍미하다가 가신 거지요.   

  13. Lisa♡

    2008년 4월 25일 at 3:40 오후

    데레사님.

    사람사는 이치요?
    뭐—되는대로 살지요, 뭐!
    이치대로 살자면 정말 발라야겠지요.
    저는 모자람이 있어서인지
    별로 그렇게 격식은 안 따지는 편이랍니다.
    하지만 우리 아들이나 남편이 대단한 지위라면
    그런 걸 즐길지도 모르겠습니다.
       

  14. Lisa♡

    2008년 4월 25일 at 3:42 오후

    참나무님.

    잠이 오질 않습니다.
    커피 탓인지.
    술탓인지.
    갑자기 올라와 내 마음을 헤집고 간 시누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올라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시누이가 야속하기도 합니다.
    병원을 문닫고 왔다며 바로 가긴 했는데 저를 완전히
    비참하게 하고 갔거든요.
    누난지, 동생인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그러려니 하고 웃어야지요.
    우리 아이들이라도 복받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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