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6일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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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천주교 공원묘지는 참 아름다웠다.

때맞춰서 철쭉이 그림처럼 피어있고 입구 쪽의 연록색 숲은 수채화였다.

비 그친 후의 정오무렵은 숲의 색깔을 더욱 선명히 해주었다.

언젠가 이 곳에서 아들을 잃고 머리를 쥐어 뜯은 모습의 박완서님도

보았고 내 좋아하는 고우영화백도 여기 어딘가에 묻혔단다.

외국여행시에 느꼈던 묘지의 평화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카톨릭식의 장례는 장례미사에서 고인의 관 주변을 둘러싸고 하는 촛불의식이

마음에 든다.

미사 시작 전 짧은 고해성사를 보았다.

젊고 합리적인 신부님은 보속을 주일미사 참례만을 주셨다.

예전에 노신부님은 약속하기 어려울만큼의 벌을 주셔서 고생했었는데…

나이들면 젊은 이들의 의견을 따르는 게 살기에 편하다던 시어머님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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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이 장관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서민적인 이들이 청와대 수석이나 비서관이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투기성이 있는 부를 모아서 부자가 되지 않으면 요새는 출세도 못하나 보다.

대단한 사람들은 역시 집 안도 좋기는 좋다.

집 안이 좋아야 부자가 되기도 쉽고 부자가 되어야 그 후손도 덩달아 좋은 교육을 받고

비슷한 집 안끼리 결혼을 해서 또 그런 생을 살아간다.

삶이란 것도 알고보면 그 사슬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정해진 영역 안에서 사는 기분이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도 났는데 요즘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면 억세게 재수가 좋아 재벌 2세의 친구가 되어 동생과 결혼하던지.

그러려면 거기에 준하는 학벌과 인간성과 매너와 외모를 갖추어야 한다.

청렴하게 살아봐야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알아줘봐야 득도 없다.

그렇다고 부를 쫒아 가봤자 그 부는 아무에게나 와주지 않는다.

일단 대한민국에서 인정 받으려면 아버지를 잘 만나야하고 가방이 커야한다.

그러지 않고는 그냥 독야청청하게 살며 모범적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야 한다.

뭐가 정답인지 무너지는 정체성과 사라지는 꿈들이다.

이렇게 보면 나 자신도 욕망의 늪에서 헤매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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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집과 작은 집에 각각 아들과 딸이 있다.

순서가큰 집은 아들, 딸이고 작은 집은 딸, 아들이다.

두 집 다 편애를 심하게 했는데 딸만을 지독히도 편애를 했다.(딸귀신이 붙었는지…)

두 며느리들은 다 시댁에 불만을 갖고 있다.

딸들은 그런 기류를 타고 엄청나게 부자가 되었다.

두 집의 아들들은 괜찮은 대학을 나와 괜찮은 직장을 다니지만 일반적이다.

두 집다 아들에 대한 사랑에 대한 회의도 없이 당연하게 여기다가 저 세상으로

일말의 가책도 없이 가셨다.

작은 집 며느리인 나는 별로 불만도 없어지고 웃으며 잊었다.

재산도 딸에 비하면 1/10도 못 받았다.

이미 주려고 할 땐 다 없어진 후였다.

큰 집의 며느리는나보다 불만이 100 배쯤 더 많다.

하지만 재산은 딸보다 두 배는 더 받는다.

큰 집의 아들은 불만이 많아 울지도 않는다.

큰 집 딸은 아버지의 재산에는 관심도 없다.

오로지 아버지만 중요하다.

작은 집 딸은 모든 걸 자신이 갖지 않으면 쓰러지고 돌아 버린다.

작은 집의 아들은 불만도 없고 오히려 부모를 감사하게 여기고 사랑한다.

아무도 그런 걸 알아주지도 않고 돌아오는 것도 없다.

가끔 남편이 바보같다…누나 건강만 걱정한다.

사람들은 복받을 거라고 말한다.

자식이 잘 될 거라고 말한다.

인과응보를 믿는다.

그러지 않고는 살아가기가 힘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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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J의 아버지는 마지막 말이 ‘콜라’ 였다.

큰아버지는 ‘삼원가든’ 이었다.

울엄마의 마지막 말은 생각이 안 난다.

누구는 아들더러 ‘댁은 뉘시요?’ 했단다.

누나는 아버지가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며 웃는다.

그렇게 자상하던 사람도 그 말은 가슴 속으로만 생각했나보다.

남편과 사랑한다는 말을 한 게 10년은 넘은 것 같다.

지금은 진짜 사랑은 하지 않고 그냥 식구로 가족으로 편히 산다.

그 속에 끈끈한 유대관계의 사랑이 존재하지 남녀로서의 사랑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한다.

8 Comments

  1. 김현수

    2008년 4월 26일 at 1:45 오후

    요즈음은 개천에서 용나기는 커녕 미꾸라지도 없습니다.ㅎㅎ,
    사람은 각자의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걸맞게 살아가면 될테지요.
    가족사랑이 남녀의 사랑을 초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진으로 오랜만에 보는 하얀등잔과 검은 무쇠솥이 어린시절을
    되돌아 보게 하네요.
    초딩때는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다가 머리카락깨나 태워먹었었지요.
    Lisa 님, 좋은 주말 되세요 !   

  2. Lisa♡

    2008년 4월 26일 at 10:51 오후

    현수님.

    초딩 때 등잔불에 머리카락 태워잡순 분이 초딩이라 하니
    세태를 거스르기는 힘든가봐요^^*
    ㅋㅋㅋ…우리는 초딩, 중딩..이런 말 모르고 자랐지만 유행에는
    민감하게 되는 건 블로그 탓인가, 아님 방송이나 신문 탓인가…
    현수님.
    각자 주어진 운명대로 살지만 바로 옆에서 매번 눈에 보이게
    박탈감을 안겨 주면 삶에 대한 회의가 자주 드는 건 사실입니다.
    다아 욕심이 많은 탓이겠지요—-   

  3. 행복하라

    2008년 4월 27일 at 3:04 오전

    리사님.

    옛날옛적에 읽었던 셜리 맥클라인 의 책에 이런 글이 있었어요.
    (영화 애정의 조건 에 엄마로 나왔었지요)

    형제들 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말자 ,
    우주의 섭리로 각자 다른 영혼이
    어머니의 자궁을 빌어 태어날뿐 더이상의 의미는 없다.

    동양사상에 심취에 있던 셜리 맥클레인의
    주관적인 생각 이었겠지만
    가끔 위로받던 글이 였었죠.
       

  4. Lisa♡

    2008년 4월 27일 at 3:30 오전

    행복하라님.

    오랜만입니다.
    셀리 맥클레인은 한 때 참 매력적으로 생각했었지요.
    애정의 조건을 보고나서.
    그랬군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픈데 저를 사랑하고
    저 또한 그녀를 사랑하는 구석이 있다보니—
    알겠습니다.
    크나큰 위안이 저절로 됩니다.
    이래서 하고픈 말은 일단 내뱉고 봐야 위로라도 받네요.
    여기선 정말 뛰어난 위안들을 받을 수 있답니다.
    여러 분이 객관적으로 보시니까요.ㅎㅎ   

  5. 임부장

    2008년 4월 27일 at 11:38 오전

    가끔씩…술 취해서 홍여사에게 문자로 사랑해! 라고 보내는데…
    씹힙니다…다른 사람에게 보낸건 아닌지…^^
       

  6. Lisa♡

    2008년 4월 27일 at 12:33 오후

    임부장님.

    씹는 다고라???
    으흠….부끄럽고 쑥스러워서
    그러실 겝니다.
    자주, 더 많이 보내보세요.
    버룻되면 편해지실 겁니다.   

  7. 래퍼 金愛敬

    2008년 4월 27일 at 2:37 오후

    인과응보..믿습니다..
    그래서 살아집니다..ㅎ

    사랑..했던 적은 있었는지 기억이 안나구요..
    아들넘에게 언제 했는지 가물거니네요..^^   

  8. Lisa♡

    2008년 4월 27일 at 3:33 오후

    래퍼님.

    인과응보 있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힘이 없어질지 몰라요.
    사랑한다는 말을 아들한테 하지 않나요?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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