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8일 스리나가르? Oh~No~쓰리나가리!(북인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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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에서 스리나가르까지는 버스로 24시간이 걸리므로 주로 잠무에서

일박을 하고 버스로 12시간동안 긴 여행을 한다.

우리일행은 6대의 짚차에 나누어 타고 스리나가르를 향했다.

아침일찍 출발한 짚차는 최악의 예측불허를 연출하고만다.

16시간을 걸려서 야밤 10시에 스리나가르에 도착한다.

총기 판매도 왕왕 이루어진다는 스리나가르는 지상의 낙원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우며 달호수로 주변의 경관은 정말 장관이긴하다.

파키스탄과 인도와의 국경마찰로 분쟁이 잦은 지역으로 도로변에는 무장한

군인들과 초소가 즐비해있다.

어찌보면 생명을 건 여행이라고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이드는 이제부터가 이번 여행의 백미에 속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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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매연을 마셔 본 건 처음이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썬글라스를 걸친 채 에어콘도 나오지 않는 땡볕에서

꼬리에 꼬리를 부는 차량행렬 속에서 섰다가다를 반복하는 긴 길은 끔찍했다.

그렇게 많은 먼지와 수없이 울려대는 경적은 일생동안 들을 경적소리와 먼지를

다 몽땅 모아서 그날 하루에 다 내 폐 안으로, 귀 안으로 몰아 넣었다.

대부분의 차량에 BLOW HORN 이라는 글자가 써있어서 엄청 빵빵거린다.

한 쪽길만 오가게 한 곳에서는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다.

우리 차에는 천하부부와 오빠와 나랑 우리의 드라이버 사딕이 탔는데

처음엔 갖고 간 간식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며 경쾌하게 시작했었다.

삼천포에서 올라 온 죽방멸치는 정말 깔삼하게 맛이 좋았다.

밀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불쾌지수는 높아가고 온몸이 비틀렸다.

어디 쉴만한 장소도 없이 두세시간은 기본으로 땡볕 길에 서있어야했다.

사이사이에 인도인들과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99%의 질문은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로 스리나가르로 간다면

아름답지만 위험을 감수하라고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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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진과 같이 우리를 데리고 출발하는 여행사 사장은 자기가 브래드 피트와 친구이며

티벳에서의 7년을 찍을 때 자기가 가이드를 했는데 다음에 다시 브래드가 인디아에

왔을 때 다시그를 찾아서 둘이 친해졌고 메일과 전화를 하기도 한다고 자랑했다.

그 사장은 몽고인의 후손으로 라다크지방에서는 제법 성공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37살로 약간의 카리스마와 부티가 나고 편안한 인상이었다.

라다키들의 영어발음은 딱딱한 편으로 알아듣기가 거북한 면이 있었다.

고산으로 점점 차가 올라갈수록 오빠는 조바심을 내며 고산증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지난 번 식구들과 구채구 황룡사갔을 때 비행기에서 바로 고지대에 내리는 바람에

심하게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보니 미리걱정이었다.

고산병은 면역이 생기면 다음부터는 괜찮고 건강상태와는 다른, 일반적으로 타는 사람이

자주타는 편이란다.

주로 이뇨제를 먹고 물을 많이 마셔서 몸속의 독소를 많이 배출해 버리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여행의 일반 높이는 1700인 다람샬라부터 4-5000을 오가는 곳을 다녔는데 평균 3500에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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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들어 노곤한 밤에도 기사인 사딕이 졸까봐 나는 일초도 쉬지 않았다.

게다가 차들이 정말 위험하게 비켜가는 통에노심초사하느라 눈하나 까닥않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들은 거의가 매력이 없는 풍경들로 볼 것조차없는 무미함이었다.

가끔 원숭이 떼들이 산길 도로에 앉아서 뭔가를 기대하며 귀엽게 앉아있었다.

아기를 데리고 젖을 먹이던 원숭이가 인상적이었다.

밤이 깊어가면서 두시간을 남겨두었을 때는 야시장에 가서 짜이도 사 마시고,

앵두도 한박스에 2500원 정도 주고 사서 먹으며 나름대로 지루함을 달랬다.

드디어 도착한 스리나가르는 비가 흩뿌리는 밤이었고 밋밋한 물냄새가 피곤하게 풍겼다.

밤인데도 물아래의 수초가 언뜻언뜻 보이는 것이 혹시 맑은 물이련가 기대를 했다.

시카라라는 양 끝이 뾰죽한 배를 타고 하우스 보트로 들어갔다.

땅을 차지할 수없는 영국군들이 호수에 집을 짓고 살은데서 유래한 하우스보트는 보기엔

그럴 듯 했으나 치렁치렁 늘어진 커텐과 눅진한 카페트는 나로선 불쾌했다.

하우스보트가 무섭기까지 한 나는 방에 있기조차 싫었다.

룸메는 날더러 어릴 때 커텐에 대해 좋지않은 기억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소리울언니랑 다른 여자분도 무서웠다고 한다.

룸메가 샤워를 하고나니 나는 뜨거운 물이 나오질 않아 그냥 자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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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피곤한 우리일행들은 바로 꼬꾸라져서 잠이 들었다.

하우스보트는 한칸의 집에 룸이 세 개정도이고 거기에 거실과 키친이 딸려있다.

룸과 룸 사이는 얇은 합판 한 장 차이로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다 들렸다.

한 하우스당 한 명의 남자집사같은 이가 붙어있으면서 모든 시중을 다 해준다.

밥 차리는 것부터 청소…등등.

밤에는 카페나 야채가게, 옷가게등이 불을 켜놓고 물 위에서 어릿대고 있었다.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들인 스리나가르에는 맥주 한잔 마시기도 편하진 않았다.

하우스보트에서 시키면 되는데 한 병당 150루피/그러니까 우리돈으로 4000원 정도였다.

시카라없이는 나가기도 힘든 물위에서 오빠의 룸메는 아침마다가는 근처의 산을

어떻게 가나..하는 의문이 생겼다.

호수의 중간중간에 랜드가 있어서 평범한 집들도 있고 화단도 있다.

다음 날 아침 5시에 수상야채시장을 가야했던 우리는 일부러라도 푸욱 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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