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논을 사랑했다.
시골과 인연이 없는 나로서는 생소하달 수도 있겠으나 논만보면
흡족해지고, 눈빛이 부드러워지면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일찍 집을 나섰다.
태양은 10월의 가운데 빛났고 거칠 것 하나없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걷는 걸음걸이는 느리나 가을들녁은 사랑스러웠고군데군데 자연처럼 앉아있거나
놓여있는 듯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 속에 짱박혀 있는 천연스러움, 그대로였다.
짙은 숲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귀여운 도마뱀들은 인기척만 있으면
미동조차않는 모습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스스륵 소리에 놀라서 쳐다보면 어느 새 꼬리를 감추는 뱀.
난리를 치는 친구들 틈에서 나만 왜그리 뱀도 안무서운걸까?
뱀도 5마리는 만난 것 같다.
콩을 다듬는 키작은 할머니.
앉으나 서나 같은 키의 할머니..우리를 보더니 작게 웃는다.
콩과 고추, 들깨, 수수가 가는 곳마다 말리거나 타작 중이었다.
얕은 담넘어 마당 안이 다 보이고 우리를 보면 물마시고 가라거나
시레기국이라도 한사발 들고 가라는 인심.
마을마다 온통 나이 든 노인들 뿐~ 젊은 이라고는 씨도 안 보인다.
나라가 잘 살려면 농촌이 잘 되어야 한다는데 누가 농촌에 남아있을 것인가..
학교, 결혼, 각종시설, 자녀교육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난제이다.
지리산 길은 지리산 둘레를 끼고 돌아가는 산책길인데
본래 나있는 길을 연결해서 자연스레 조성되는 둘레길로 등산도 하다가
원하면 마을로도 들어가다가 각종 체험도 할 수 있는 한국적인 길이다.
가장 한국적인 산책길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막 모든 정리가 끝난 쵸콜릿색 다랑이 논.
언젠가 이런 농촌풍경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다.
다랑이(다랭이)논이 펼쳐진 언덕들의 푸근한 풍경들은 감탄사를 자아낸다.
단풍은 꼭대기부터 곱게 물들어가는 중이었다.
마을어귀들엔 하나같이 나이 든 고목이 아름드리 자리를 턱하니 차지한 채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쉬게 한다.
쉴새없이 종알거리는 까치들과 이름모를 새들의 합창이 들리고
익어가는 감나무엔 유난히 까치가 사랑하는 더 빨갛게 보이는 감이 힘겹게 달려있다.
침을 꼴깍 삼켜보지만 키가 닿질 않는 걸 어찌 맛을 보누~
감 떨어지길 기다릴 순 없는 것…아쉽지만 못본 척 가슴만 졸이며 지나친다.
시골에 감나무가 그리도 많은 줄 몰랐다.
비닐하우스 안이라면 거의가 태양초가 익어가는 중이었다.
"할머니가 지은 고추농사에요?"
"그럼~~내가 다 지어서 다 따서 이렇게 말리는거여~"
하우스 안이 매운 내가 진동이다.
한쪽에선 먼저 말리는 고추가 다 말라가고 옆으로는 시간별로
새로 말리는 고추가 이제 마르기 시작한다.
까만 할머니의 얼굴엔 오래된 주름이 깊게 세월을 말해준다.
70세는 기본으로 다 넘은 할머니들.
어쩌면 그리도 건강들하신지…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엄마생각이 간절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다 엄마라면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시골의 품은 엄마같다.
매동마을 부녀회장님 댁에서 주워 둔 홍시다.
그야말로 작은 홍시지만 맛만큼은 따봉이다.
먹다 만 큰 홍시를 풀어 드미는H의 제일 큰 홍시.
저기 있는 홍시는 다 우리의 몫으로 염체불구하고 다 먹어버렸다.
자연이 익은 맛이다.
중황마을 어귀의 나무를 자르는 할아버지.
다리를 다친지 오래라 한쪽 다리는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하셨다.
전기톱도 사용하고 손톱도 사용하는 할아버지는 72세시다.
근처에 근사한 민박집을 한옥식으로 짓는 중이라 이 동네 사람이 짓는거냐
물었더니 서울사람이 짓는 중이란다.
쓸만한 땅은 서울사람이 다 샀단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나보다.
서울쥐, 시골쥐가 생각난다.
우리는 얄밉기도 한 그 서울양반을 씹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약삭빠름이
부럽기도 하고 땅을 사라고해도 망설이다 못살거면서 마음만 굴뚝이다.
땅이 주는 묘한 감정을 이내 죽일 수 있는 건 바로 옆의 아름다운 논들이다.
금새 우리는 꿀물을 1000원주고 사서 마신다.
꿀물파는 할머니다.
한잔에 1000원인데 마시고싶은만큼 계속준다.
작은페트병에(500원하는 생수병) 든꿀은12000원이란다.
비싸다고하자 토종꿀은 비쌀 수 밖에 없단다.
조금밖에 나질 않는단다.
앉아서 막걸리에 파전을 먹고가라시는 할머니.
아침에 그득하게 먹은 밥상에 쉬이 먹지도 못하겠거니와
주변의 광경들이 먹고픈 마음을 싹 가시게하기도 한다.
난전에 펼쳐 둔 그릇들은 어쩐지 마음에 안든다.
탁탁–
콩을 터느라 정신없는아줌마.
콩 뭐하시게요?
자식들도 주고 갖다 팔기도 한단다.
튕겨나오는 콩들에 메주콩이다~~하고 내가 소리치자메주콩 맞단다.
대꾸하기에 귀찮을까봐 오히려 머쓱해진 우리는 얼른 자리를 비운다.
서울아줌마들이 잘났다고 산책길을 도는 게 미안타.
누구는 열심히 농사짓고, 누구는 한량처럼 놀러 다니니–
어쩔 수없는 다양한 현실이지만 어쨌든 부끄럽다.
빨리가자~~
K는 계속 콩터는 모습을 보느라 발을 옮기지 않는다.
야~~빨리가자, 우리도 할일 많잖아.
어거지스런 말을 때 아니게 내뱉으며 자리를 뜬다.
아줌마 죄송해요~~~조용히나 지나가주지….
평상에서 다리를실컷 쉬고 누웠다가 가려는데 평상주인 할머니가 오셨다.
더 쉬다가 점심 싸온 것 있으면 여기서 먹고가란다.
빨리 출발했네..사람들 많이 오냐고 물으니 TV에 나간 뒤로 좀 오다가 한산하단다.
10m 아래 샘물있음-이라는 표시에 물으니 바로 아래 이 가뭄에도 물이 졸졸 흐르는
파이프가 연결된 곳이 있다.
거기에 고무다라이에 거꾸로 동동뜨는 음료수와 맥주캔들.
오미자차를 꿀병에 넣어서 2만원, 3만원에 판단다.
오미자는 작은 것이 토종이고 큰것은 토종아니란다.
밤이 되면 그대로 오픈한 채 두고 내려가서 창원마을 집까지 가서 자고 아침이면
올라오는데 지나가는 등산객들은 마음대로 먹고 돈통에 돈을 넣고 간단다.
안줘도 그만이라는 할머니.
구엽고 씩씩한 할머니다.
사진찍는 거예요?
네——
잘 찍어줘요.
네——
에헤라 대야~~노래소리가 흥겨운 아줌마들이다.
같이 들어가서 가까이서 사진도 찍고싶지만 우리가 철없는 소리를 해댈까봐
가까이 가질 못하고만다.
계속 열심히 하세요——-갈께요——
80세가 조금 넘었다던데…
작고 강단있어뵈는 할머니다.
자기몸보다 2배는될만한 짐을 지고 언덕을 그림처럼 넘어온다.
뭐예요?
이거—수수랑 들깨랑 섞였어.
안무거워요?
무겁지..그래도 이제는 개안여~~하도 지고다니니까 개안여~어디서 왔다냐?
서울요–할머니—-브라우스 이쁘네요.
이 거 오랜건데 딸년이 입던 거 아무꺼나 입는겨~~조아?
할머니 세동까지 멀어요?
이—–계속가봐, 금계말 나오고 강건너 계속가면 세동이여~~
감사합니다. 할머니….
손에 쥐고있던 오이를 건네며 숫자에는 모자라지만 가다 목마르면 무거~~라신다.
오드리
2008년 10월 18일 at 7:57 오전
추천 내가 눌렀당! ㅎㅎ
Lisa♡
2008년 10월 18일 at 7:59 오전
알았당!!
할머니들 좋치?
언니 빠르기도 하다.
두번도 못읽어본 걸..
김진아
2008년 10월 18일 at 1:19 오후
도리깨로 콩터는것 장단맞추면서 하다보면, 정말 재밌는데..
그땐, 힘들다는 생각도 못하고, 그냥..생활이니 하였던것 같아요..
할머님들..그 굽은 등에 묶인 짐이..왜그리..아프게 다가오는지요..
손풍금님 뵈러 옥천갔을때, 동백기름 사러 오시던 할머님들..
그냥요..손이 먼저 나가서, 할머님들 손잡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절로 나오고..그러는거예요..눈물날 만큼 할머님들 뵈면..그렇게..
뭉클해집니다.
^^
Lisa♡
2008년 10월 18일 at 2:21 오후
저도 그래요.
할머님들만 보면 나도 모르게 손부터 잡고보는..
가끔 그런 나의 면이 내가 따스해서인가?? 하다가
엄마생각에 그러나 했다가..공연히 마음을 뺏는 건
아닌가 싶다가 하여간 싱숭생숭하지만 어쩄든 꼬부랑
할머니 귀엽고 정이 가는 건 사실입니다.
광혀니꺼
2008년 10월 19일 at 4:18 오전
그립다…
우리 모동할매…
어제 쌀한가마니랑
단감 몇개
그리고 1년먹을 고춧가루랑
참깨 한봉지…부쳐왔던데.
남도에 가고싶어요.
Lisa♡
2008년 10월 19일 at 4:38 오전
나도..
담에 같이가자.
나 데꼬…해남에 그 절있잖수.
거기 가고파서.
오현기
2008년 10월 19일 at 1:55 오후
감성이면 감성..휴매니티면 휴매니티.. 디테일이면 디테일… 좋은 가을입니다..
Lisa♡
2008년 10월 19일 at 2:28 오후
현기님.
짧으면 짧은대로 깊은 찬사를~~ㅠ.ㅠ
이번 가을 참 좋으네요.^^*
오를리
2008년 10월 20일 at 6:50 오전
내가 그곳에 가서 집사고 땅조금
사면 동네 사람들이 나를 택사즈 쥐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네요~~~~
Lisa♡
2008년 10월 20일 at 7:56 오전
오를리님.
텍사즈쥐–넘 귀여워요.
제발 땅사서 집지으세요.
놀러가게요.
찜방도 하나만드시고요, 황토로,,,
나무와 달
2009년 11월 8일 at 1:38 오전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들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좋은 곳으로 여행을 많이 다니시네요..부러워요…^^*
Lisa♡
2009년 11월 8일 at 1:56 오전
어머나………………..갑짜기………….
여기 추천요~~둘레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