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3일 할아버지를 낚은 단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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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작을 연주하는 피아노 트리오 삼중주를

바로 1미터도 안되는 코 앞에서 생생하게 느끼는 일이 그리 흔한 건 아니다.

팽팽히 당겨져서 연주되던 활의 끈들이 팅겨져 나가는 모습.

첼로주자의들이쉬고 내쉬는 숨소리.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마에 흐르는 땀.

같이 호흡하고 같이 열광하고 긴장하며 연주를 즐기는 시간을

감동으로나누는 밤이었다.

느낌…말없이 소통되는 감각적인 눈빛, 그녀가 좋다.

엄의경..그녀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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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가 끝나고 좀 걸었다.

청계천이 그리 회자되어도 그 길을 걸어보는 건 처음이다.

부유하는 밤의 공기는 비온 뒤라 부드럽고 감길만큼 산뜻했다.

간간이 물가에 앉아서 타인을 의식않고 나누는 연인들의 키쓰조차

거부감없이 보이는 건 밤공기 탓일까?

광화문의 밤거리를 걷는 다는 건 아직 이 사회에 발딛고 있다는 소속감마저 준다.

높은 빌딩들을 바라보니 현재 처해진 경제난은 뒤로 물러나고 그저

좋구나..라는 비현실적인 해몽으로만 보인다.

낡은 일민미술관의 일층 커피숖에 애정을 느끼고 들어선다.

조금 걷자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기분이다.

새 신발도 아닌데 아직도?

5년은 세월이 하향조정된 착각을 하면서 발걸음도 사랑스레 지하철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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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켓에 달린 허리뒷부분의 단추에 지하철 안의 할아버지가 걸렸다.

엮을려고 한 건 아닌데 나이드신 분이 엮였다.ㅎㅎ

일행들이 걸린 단추와 옷을 떼느라 분주하고 그 와중에 술에 거나하게 취한

할아버지가 넘어질 듯 나를 걸고 넘어질 모양새다.

옆의 키 큰 양복남자의몸에 내가 떠 밀리면서 엉긴다.

ㅋㅋ….겨우 친구 할아버지가 붙잡아 위기를 모면한다.

아직도 엮인 단추…

제일 나중에 지나가던 친구할아버지가 내게 사과한다.

아니예요~ 제 옷의 잘못인 걸요.

귀여운 할아버지들이다.

소주 냄새가 지하철 한 칸을 메우고도 남는다.

오늘 저녁상의 안주거리는 무슨 얘기였을까?

그래도그들에게 이 시간까지 즐길 친구가 있다는 건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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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 꿩 한 마리가 뒤뚱거리면 방황한다.

가까이가서 놀래킬 수도 없고 답답하고 아리다.

산과 바로 접한 부분에 도랑을 팠는데 거기를 건너야 산으로 간다.

가엾은 꿩이 그 도랑으로 내려가더니 올라가지를 못하고 도랑 안을 헤맨다.

부엌 창에서 보자니 마음만 굴뚝같다.

아무도 없는 빈 놀이터라 안심은 되었지만 빗방울은 후둑거리는데

길잃은 꿩 한마리가 시선을 잡고 놓질 않는다.

나가면서 길찾았나 봐야지 한다는 게허둥거리며 나가다 그만 잊고만다.

지하철 안에서 기억하곤 애가 탄다.

설마 누가 잡아가진 않았겠지?

빛깔 고운 숫놈이던데…

10년 전에 뱃가죽이 찰싹 달라붙은 오소리가 놀이터로 내려와서 죽은 사건을 목격했다.

그날 미안해서 잠도 못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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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가는 E 반찬집은독주하는 독점상권의 반찬집이었다.

게다가 맛있기까지해서 연일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바로 붙은 집에 더 큰 반찬가게가 들어왔다.

가짓수도 더 많고 자리도 더 넓고 슬쩍 보니 가족끼리 힘모아 하는

당당한 가게가 들어선 것이다.

소비자들은 그저 자기입맛과 자기실속을 차리면 되는 것.

난 새로 생긴 가게 앞을 못지나간다.

E가게 아줌마가 섭섭해 할까봐.

배반을 못하겠다는 게 나의 심리이다.

E 가게에 찾는 반찬이 떨어져서 새 반찬가게 걸 샀다.

뒤로 빙 돌아서 나왔다.

죄를 지은 기분이라 영~찝찝한 게 걸린다.

이렇게 사는 내가 가끔은 싫다.

잘 가는 과일가게를 못지나오는 건 지하수퍼에서 저렴하게 토마토를 산 날이다.

이층으로 빙 둘러서 차로 가자고하니 남편이 기가 막혀 웃는다.

나—이렇게 산다.

8 Comments

  1. 김진아

    2008년 10월 23일 at 11:52 오후

    빙 둘러서 지나쳐 들어오는 발길..

    그러다 마주치게 될때, 상대쪽은 전혀 모르는데..
    지레 얼굴 빨개지고..얼른 그자리를 뜨고 싶고..ㅎㅎ

    그게..참 잘 안되요..

    아름답게, 리사님다웁게 사시는 모습이..제일이예요..^^

       

  2. Lisa♡

    2008년 10월 24일 at 12:53 오전

    아이고…나는 그런 일에 왜 이렇게 서툰지.

    상대는 모르는데 나만 죄지은 사람처럼 얼굴

    빨개지고 혼자 꿍꿍거린다니까요.

    나 참….아마 죽을 때까지 그럴 게예요.   

  3. 지안(智安)

    2008년 10월 24일 at 9:38 오전

    걍 생긴대로 지내세요.
    억지로 되지도 않던데요.
    그 착한 마음 남두 주면 을매나 좋을꼬?

    고운 맘은 날개 달려서 돌고 돌아 제자리로..
    세상 살이 공짜 읎구 결국 제할탓대루 세상 돌아 가자나요?

    Lisa님 복 받을껴~암 글쿠 말구..   

  4. Lisa♡

    2008년 10월 24일 at 10:34 오전

    복 받을까요?

    다들 복받는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하긴 지금도 복받고 살고있다고 늘 생각 중입니다.

    지안님.
    유쾌하신 분?   

  5. 오현기

    2008년 10월 24일 at 1:11 오후

    너무 착하게 사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 착하게 살아서 남는 것 없는 세상…    

  6. Lisa♡

    2008년 10월 24일 at 2:33 오후

    어라~~

    우리아들하고 같은 생각하시네요.
    피곤한 일 맞긴 합니다.
    착한건지 바보같은 건지 구분이 안가요.
    솔직하게 말하면요~~   

  7. 오현기

    2008년 10월 24일 at 2:44 오후

    체질적으로 착한 사람은 어쩔수 없더군요. 독하고 야물딱지게 사는 법을 학교에서 교과목으로 가르켜 줄 필요가 있다고 봐요. 착하게 사는 것이 미덕이 아닌 풍진 세상이라서…    

  8. Lisa♡

    2008년 10월 24일 at 3:11 오후

    그러니까요.

    제가보면 자신도 가끔은 엉뚱하게 모질다고
    대체적으로 주로 장사하시는 분들과 과외선생님과
    파출부 아줌마들한테 엄청 약해요.
    아무래도 모지라나봐요.
    집 내놓을 때 부동산도 잘 못가요.
    참 이상해요—-나 그런 약한 스타일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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