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에 눈을 떴다.
가을비는 촉촉하게 대지를 적시고 내 가슴에도 비가 반갑다.
간월암..
10월의 마지막 날에 간월암을 가기로 한 약속.
비온다고 밥을 안먹을 수는 없는 노릇, 비온다고 취소하기도 그렇고
약속시간에 임박해서야 준비하는 둥, 마는 둥하고 나선다.
그 와중에도 잊지않고 장화를 들고 나선다.
동행에게는 미안하지만 가는 길에 은행에 들러 환율이 만약 1200원대정도면
무조건 환전해 달라고 말한 뒤에 통장을 맡겨두고 떠났다.
어딜가나, 무얼하나..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건 순전히 경제 때문이다.
나머지 동행을 한 명 더 태운 뒤에야 느지막하게 출발하게 된 짧은 여행이다.
(오는 길엔 혼자서 병든 닭처럼 졸면서 왔다.)
간월암에 물이 차서 땅이 보이지 않을 찰나에 장화를 신고 저벅저벅거리며 나온다.
공연히 가운데 서서 망연자실하게 바닷물을 바라보기도 해본다.
사서 여태 제대로 신어보지도 못한 장화다.
오드리언니가 아직도 장화타령이냐고 하겠지만 그래도그래도…
사실 이번 대포항에 들른 길에 어느 노점에서 생선파는 아줌마가 신은 장화가 내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하긴 흔한 스타일이지만 아랫부분에 하얀 고무창부분도 크기나 뭐나 똑같은 것이었다.
나는 일본산이라고 비싸게 주고 샀는데 그 아줌마가 그런 걸 샀을리 만무하고해서
나가는 차 안에서 장화를 들고 뒤집어보니 Made in Japan 이라 써있긴하다.
뭐든 제대로 확인도 않고 사는 통에 늘 뒤에 알고 후회하기 일쑤이다.
올해는 비도 별로 오지않고 그나마 며칠 쏟아지는 비에는 외국에 나가있어 구경도 못했다.
덕분에 장화는 새 것 그대로..단풍은 누렇게만 든 모양이다.
배가 있었네.
파란 작은 배가 있었네.
아무도 오지않는 오전내내 작은 파란 배가 있었네.
오후에 주문한 가구가 3개월만에 도착한다고 전화가 왔다.
6시 이후에 도착할 것 같다길래 느긋했는데 나름대로 서둘러서 온 것이
금요일 오후라는 어쩔 수없는 운명적인 날의 교통흐름상 달막달막하게 왔다.
부산항으로 입고되자마자 올라왔는지 시간이 저녁이 될 수 밖에 없다니 어쩌랴~
집으로 도착하는 즉시 가구가 들어왔다.
커다란 3인용 소파는 현관이 꽤 넓은 집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심사숙고 끝에 들어왔다.
그래도 탈없이 들어왔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환율이 오르기 전이라 지금에 비하면 20~30%는 저렴하게 산 턱이다.
들여놓고보니 우리집에 딱이다.
인테리어 전문가가 와서 미리 예견하기로 소름끼칠 정도로 안성맞춤인
가구를 선택했다고해서 우리를 안심시키더니 정말 우리 것이다.
카페트를 깔면 분위기는 더 날텐데..워낙 먼지를 싫어해서 있던 실크카펫도
친한 회계사 아줌마 주고 다시는 안사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잔잔한 색감의 카페트있으면 분위기는 더 나겠다싶다.
오토만(발 올릴 수도 있는 넓은 탁자형)이 비싸서 사지않으려다가 샀는데
놓고보니 없었으면 다른 가구가 죽을 뻔 했다는 느낌이 단연 든다.
주로 깔끔하고 모던한 스타일을 즐기는데 이번에는 깔끔하기는 하지만
앤틱 풍의 브리티시 스타일을 선택했다.
소파는 한 번 사면 어지간해서는 바꾸기 어렵고 마음에 쏙 드는 게 없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서 산 것이다.
다른 모던한 가구들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20년을 쓴 헌 소파를 버리는 일은 쉽지가 않다.
감정정리가 안된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그 위에서 태어나자부터 뛰고 오르고 놀던 추억이 그대로 스민 소파이다.
오줌도 싸서 혼도 나고, 소파 구석구석에 연필 쪼가리나 휴지, 양말 쪽 등이
나온다.
다 정다운 지난 날의 편린들이다.
낡아서해어지고 떨어져서 속의 솜이 튀어 나와도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던 소파인지
그 소파는 알까…소파를 내어가는데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난다.
16년간의 아이들 냄새와 우리가족의 소음을 몽땅 안고있던 물건을 내보는 일이 어찌 이리도 간단한지.
오호 통재라~~이다.
안녕~낡은 소파여.
이젠 이 새 소파가 아이들이 결혼하고 우리부부가 늙어가는 걸 지켜 볼 것이다.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보다가 잠이 들어도 다 보담아 줄 함께 살아야 할 소파이다.
가구에도 이리 세월이 묻는데 하물며 같이 살아가는 인간들과는 어떨까.
헤어진다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김진아
2008년 11월 1일 at 1:40 오전
헤어진다는것..어려워요..
근데, 그 어려운 헤어짐도 너무나 잘해내는 사람과,
함께있는 고통이 더 힘드네요..
..장화..
..소파..
이유묻지 않고, 고스란히 나를 다 담아주는..
좋은것..그죠..
바닷물에 잠겨있는 모습이..휴식같아요..
Lisa♡
2008년 11월 1일 at 1:43 오전
그 잘해내는 사람….남자네요.
남자들은 가슴 안에 담고 표시를 잘 않지요.
하지만 진아님집의 그 분은 모르겠네요.
진아님이 더 잘 아시니까..에휴~~
진아님.
휴식같은 바다.
휴식같은 친구.
휴식같은 댓글?ㅎㅎ
장화가 너무 무난하지요?
Marie
2008년 11월 1일 at 1:47 오전
오랜 세월 함께 해 온 것들에는
온갖 추억의 감정이 녹아들어있어서
버리기가 참 어려운 거.. 공감합니다.
열 두 번도 더 생각하고
내놨다가 다시 들여놨다가.. 이러다가 결국은 버리지만요..
Elliot
2008년 11월 1일 at 1:50 오전
오토만 빼면 앙꼬 없는 찐빵@!
Lisa♡
2008년 11월 1일 at 1:52 오전
마리님.
토요일 아침이자 11월의 첫날입니다.
우선 11월 행복하시구요..
정말 정이 든 걸 버리는 일은 쉽지가 않아요.
마음이 허전합니다.
세월을 같이 살아왔기에 그 속에 우리의 희노애락이
다 들어있으니 미안하기만 하네요.
에구…가죽이 하얗게 변하지만 않았어도
속이 혀처럼 나오지만 않았어도..
사실 가죽갈이를 한 번은 했었거든요.
ㅎㅎ..11월 같이 즐길까요?
레디…………………..?
Lisa♡
2008년 11월 1일 at 1:53 오전
진짜 오토만 빼면 앙코없는 찐빵이더라구요.
저 오토만이 사실 아주 마음에 들긴 했어요.
그런데 세계 100대 가구에 뽑혔다나, 어쨌대나..
부타빵빵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만…그러나 잘 샀다는 후문이~~ㅋㅋ
오를리
2008년 11월 1일 at 2:28 오전
잘어울리는 가수 밎에
페르시안 카펫이 받처주면
아주 기가막힌 매치가 될텐데
카펫을 싫어 하신다니 ㅎㅎㅎ
Lisa♡
2008년 11월 1일 at 2:46 오전
제가 카펫을 싫어하게 된 동기는 아들이 비염이 있었고
남편과 제가 먼지 알레르기가 심해요.
제가 먼지를 상당히 혐오하거든요.
그런데 실크카페트도 그냥 남 줄 정도니 아시겠지요?
제가 우너하는 카펫은 요즘 유행하는 모던한 게 있긴해요.
그런데 그것도 먼지가 나니 생각해봐야지요
광혀니꺼
2008년 11월 1일 at 2:48 오전
새 가구가 들어오는날…
그리고 오늘은
한달의 새날이 시작되는 날.
한나절 내내 잠만 자리라고 마음 먹엇는데
안되서 나왓어요.
간월암 이야기 기다렸거든요.
이쁘네요.
간월암의 금빛바다도
맘에 든다는 소파도.
행복한 주말…되삼.
Lisa♡
2008년 11월 1일 at 2:51 오전
간월암…다시 포ㅡ팅 할꺼야.
기다렷~지금 나갔다가 밤에 할께.
미리
2008년 11월 1일 at 4:00 오전
저는 카펫이 좋아요. 겨울에 맨발로 밟을때 촉감이요
제방들어올땐 실내슬리퍼 벗고 ㅋ 맨발이에요. 제방만 카펫이거든요.
4월달엔 걷어내고..또 가을쯤에 다시깔고 그래요..벌써 바꿨네요.ㅎㅎ
결혼하면 저는 다 온집안에 카펫을 깔고 싶은데…어떻게될지 모르겠어요.
저 쇼파 엄 비싸보여요..탐나는 쇼파요..리사님, 위에 사진 침실모습인가요?@@
조명톤도 맘에 들고 아늑하니 참 좋아요, 분위기잡고 술마시면 좋은 분위기 ㅋㅋ
오드리
2008년 11월 1일 at 7:50 오전
초코렛 색이네요. 색갈에 대한 더 멋진 표현이 있을텐데……..나두 맘에 들어요.
Lisa♡
2008년 11월 1일 at 10:43 오전
미리님.
침실요?
다 거실인데요?
다 소파인데요.
윗사진의 오른쪽 평평한 건 오토만이라고
다리도 올리고, 탁자로 사용해도 되구요.
누워서 침대로 사용해도 되는 거랍니다.
비싼 거 맞아요~~호호호.
그런데 카페트는 결혼 후 아이 생기면 무조건 안됩니다.
아이들한테는 천적입니다.
저는 그냥 맨 마루바닥이 좋아요.
카펫도 아주 고급으로 얄팍한 것은 괜찮은 것 많아요.
그쵸?
Lisa♡
2008년 11월 1일 at 10:44 오전
오드리님.
색깔…음…다크초코렛색?
또는 짙은 밤색 브라운톤?
다크 브라운?
ㅋㅋ—-마음에 든다니 저도 흐뭇~~
호수
2008년 11월 1일 at 11:59 오전
간월암에 다녀 오셨네요
얼마전
나두 다녀 왔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구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답니다.
새로 들여놓은 소파
이제 리사님 할머니 될때까지는
바꾸기 힘들듯….!
그만큼 멋지다는 표현입니다.
요즈음
환율때문에 마음 써이겠지만
소파는
환율이 오르기전이라
좋도록 계산하면서 위로 받으시길^^
Lisa♡
2008년 11월 1일 at 12:10 오후
호수님.
그러게요.
소파를 게약할 때만해도 환율이 괜찮았답니다.
할머니될 때까지 써야지요.
지난 번 소파도 20년 가까이 썼거든요.
바꾸기 힘들 겁니다.
간월암가셨을 때 저런 모습을 못보셨나요?
왜 그랬을까요?
시간이 맞춰지질 않았군요.
호수님의 위로 감사합니다.
그래도 환율은 내려야 한다에 변함이 없지요..ㅎㅎ
지안(智安)
2008년 11월 2일 at 6:38 오전
간월암 사진 좋~고..장화 좋~고..
파란 작은배가 있었네..시한수 좋~고..
더 좋은건 소파 한세트..
삼개월 기다려야 합니까?
기다릴만 하군요.
체스터필드보다 간결하고 색갈 더 좋고 무지 부럽네요!
어디 상표드래요?
Lisa♡
2008년 11월 2일 at 7:46 오전
지안님.
R.P 입니다.
알아 맞춰보세요.
색깔이 마음에 들고 귀티가 나고
뭣보다도 우리집에 안성맞춤이라는 겁니다.
ㅎㅎㅎ….
간월암은 아직 포스팅도 안했는데.
오늘해야지..
오현기
2008년 11월 2일 at 11:06 오전
16년 사용했으면 많이 사용했네요. 지난 8월달 우리집도 11년된 소파 갈아치웠습니다. 허벅지 닿는 곳이 닳아서 보기싫은 것 빼고는 아직 7-8년 더 사용가능한데 하두 옆에서 바꾸자고 하는 통에 갈아버렸습니다. 나투찌 제품이 좋던데, 값이 비싸서 포기하고 이탈소파란 브랜드의 중국 oem 제품으로 샀습니다. 가죽이 저것처럼 윤기는 안나지만 내츄럴 한 느낌이 괜찮습니다. 초콜릿 색이라서 집안 인테리어와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소파가 굉장히 럭셔리해 보입니다. 이탈소파는 3+1 200여만원이면 살 수 있던데요.
Lisa♡
2008년 11월 2일 at 11:29 오전
현기님.
럭셔리한 겁니다..아니라고는 못해요..ㅎㅎ
지난번 건 16년 썼으니 이건 20년 이상 쓰려고 합니다.
차도 6년 썼더니 그간 고장 한 번 없더니
어제 시동이 안켜져서 깜짝 놀랐답니다.
차도 사람도 제 수명이 있나봐요.
밧데리갈고 센서 하나갈았는데 다음에 와서
몇 개 더 갈아야한다네요.
견적이 어제 19만원 나오고 다음엔 60만원 나온대요.
에궁~~
저 소파는 진짜 큰맘먹고 산 겁니다.
몇 년을 고민고민하다가 정한 것이지요.
ㅎㅎ——–할부로~~
Lisa♡
2008년 11월 2일 at 1:41 오후
어라….현기님 따라 16년이라고 했네요.
20년 썼습니다.
애들이 그 후에 태어나서 16년간 애들이 사용했다는 거구요.
아이들이 그 소파에 오줌싸고..양말 숨기면서 커왔지요.
ㅎㅎㅎ—-
좋은 소파는 한 20년 써야지요.
박산
2008년 11월 3일 at 4:56 오전
간월암이란 본래 뜻은
아마도 ‘암자에 뜬 달을 본다’로 짐작 되는데
달보고 새 소파 들여 놓으시고
무슨 연관이있나요~~~
Lisa♡
2008년 11월 3일 at 6:12 오전
아니요–
아무 연관없어요.
그냥——–자랑할려구요.
네잎클로버
2008년 11월 3일 at 6:55 오전
새로 들여놓으신 소파 너무 멋져요.
자랑하실 만하네요, 리사님~ ^^
사실은 저희 집도 얼마전 소파 바꿨답니다.
모던한 스타일에서
약간 앤틱 스타일이 가미된 와글와글(?) 장식이 쬐금 있는 걸루요.
그것도 다크 쵸코렛 색…
리사님과 뭔가 이심전심, 일맥상통(?)~ ^^
Lisa♡
2008년 11월 3일 at 8:42 오전
네클님.
진짜 이심전심입니다.
와글와글….ㅋㅋ
저는 볼록볼록 파인…
앤틱 스타일도 마음이 통했네요.
저희도 전통 브리티시스타일이잖아요.
후후후——일맥상통합니다.
통하였느니라….(배용준 폼으로)
소파 바꾸기 힘든 거 아시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