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에피소드-까르페디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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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첫손님..약국 할아버지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부인이 약사이고 할아버지는 S대 공대 출신이다.

매일 약국을 왔다갔다하면서 돈을 조금씩 빼내어(일명 훔치는 일)와서는

양주를 시켜놓고 스트레이트로 한 두 잔을 마시는 게 취미다.

그러면서 늘 아들이 용돈 100만원씩 준다고 뻥을 치곤했다.

고바우 만화에 나오는 고바우랑 비슷한데 얼굴은 넓은 얼굴을 가진

바둑이 인형의 모습을 닮았다.

72세이셨는데 늘 날더러 말하길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자를 아직도(?) 만족시켜 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곤 했는데

내가 볼 때는 여엉~ 가망성이 없는 만화같은 말이었다.

바지 지퍼나 제대로 올렸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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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곡을 늘 갖고 기분이 좋거나 잘난 척 하고 싶을 때는 사양않고

부르곤 했는데 ‘By the river of Babylon’이다.

신나거나 내가 신청하면 바로 부르곤 했는데 그만~! 이라고 해도

문제는 2절의 끝까지 부른다는 거다.

때로는 詩나 시조를 한 수 씩 읊곤 하셨는데 지적 수준이 상당했다.

시간이 갈수록 알콜릭에 대한 강도가 세어지면서 피폐해지는 모습이었다.

그의 아내 얼굴에는 수심이 깊어가고, 새로 생긴 상가의 가게들이

전부 뭔가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서서히 느낄 즈음이었다.

"이 가을에 한국의 시인들은 다 뭐하는 거야? 멋진 계절을 쓰지않고" 라든가

"여기는 이 동네에 맞지않고 청담동으로 가야맞다"라고 할 때는 이뻤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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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계절을 앞두고 가게 앞에 포인세티아를 줄지어 놨는데

어디선가 영감님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지나다 우리가게로

들어오려고 하더니그 화분 위에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영감님의 엉덩이 면적이 가로 60센티는 족히 넘는다.

바로 화분이 3개가 작파되었다.

놀래서 내가 나가서 일으키려고 해도 어찌나 무거운지 도통~~

그 뒤로 화분이 서너 번 더 깨지는 난리가 있었지만 화분값 못받았다는 거..

하지만 내가 몸살기운이 있다면 바로 어디선가 약을 구해다 주시고

알바를 하던 아줌마에게는 늘 붕어빵에 드링크에 파스를 몰래 갖다주곤 했다.

알게 모르게 약이랑 파스랑 없어지자 부인은 누굴 의심했을런지..

어느 날 필름 카메라를 들고는 느닷없이 문을 열자마자 나를 찍는 것이 아닌가.

두 장 찍혔다.

어디론가 가져가서는 자기애인이라고 자랑할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알지만 웃고 폼을 잡아줬다.

누가 믿던 말던 그 분이 행복하고 자랑거리라도 있으면 나도 좋다.

사진애인 한 번 되어드리는 거 그다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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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치즈를 드시다가 틀니가 치즈랑 엉겨서 빠져 버린 것이다.

그 때 선생님 출신의 아는 분이 곱게 단장하고 앉아있었는데 그분한테

잘 보이고 싶었던지 틀니를 혀로 어찌 잘 끼워보려고 표시내지 않을려고

혀부림을 치다가 틀니가 아예 밖으로 튀어 나와 버린 것이었다.

너무나 웃겨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입가에 묻은 치즈는 내가 휴지를 갖고와서 직접 다 닦아 드렸는데 아이처럼

얼굴을 맡기고 가만계셨다.

마음이 찡 할 적이 많았고 잘 해주고 싶었다.

우리가게에 온 모든 여성손님과 모든 알바아줌마들에게 관심이 엄청 많았던 할아버지.

나비넥타이를 하고 와선 오늘은 그 여선생님 안오시냐고 죽치던 모습.

험악한 형님들 두 분이 와서 하도 크게 떠드니 이 새끼들아..여기가 어딘데

수준도 안되는 것들이 와서 떠드냐고 나가라고 호통치던 모습.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시는지..보고싶다.

생태탕이라도 사드리고 싶은데 소식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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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이 폐업을 하고 아주 비참한 모습으로 그 부인은 가게를 접었다.

약국도 망하면 제약회사에 빚을 많이 진다고 했다.

약국이 망한데는 할아버지의 솔솔 빼내오는 약들과 돈들이 한 몫을 했을 거다.

소문에는 알콜 중독치료하러 어딜 들어갔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척 보기에 부인은 할아버지를 부담스러워 했고 취급도 안했다.

마음이 많이 아팠었는데 지금 다시 그 생각을 하니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지만

그 할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아프다.

나랑은 또 다르게 문을 닫으셨으니 참 힘들었겠구나 싶으다.

사람 일이라는 게 마음먹은대로 안되는 것이고 사업도 마찬가지이니

잘 되리라는 꿈을 안고 시작한 약국이 빚까지 지고 폐업을 했으니

오죽 상처를 받았을까.

어디서 사는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마음 편히 살고 계신다면 나도 좋겠다.

누가 언뜻 봤는데 상처난 얼굴로 슬픈 모습이더라고 전해준 적은 있다.

참…. 구여운 할아버지였는데 배는 좀 들어갔는지..보고싶다.

32 Comments

  1. 봉천댁

    2008년 12월 4일 at 4:22 오전

    나도 그할아버지 봤다는 거..

    바빌론 노래도 들었었다는 거.. ^^

       

  2. 래퍼

    2008년 12월 4일 at 4:29 오전

    모든 인생의 아름다운 말년을 위하여 ..

    기도하기를 게을리하지않겠습니다.~^^   

  3. 슈카

    2008년 12월 4일 at 6:19 오전

    내내 웃음 머금고 읽었는데 틀니 부분에서 펑 터져버렸어요.
    저도 할아버지가 지닌 멋 만큼만 생활도 어려움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예요..
       

  4. 광혀니꺼

    2008년 12월 4일 at 6:42 오전

    에쿵~~~
    할아버지
    건강하시길…
    그리고 모든 사물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리사하트님도
    건강하시길…

    비오네요~
       

  5. 슈에

    2008년 12월 4일 at 6:51 오전

    약국할아버지 생각나요..ㅎ

    50대 아주머니 소개시켜달라했던가?

    리사님 이렇게 재밌게 풀어내는지..

    청담동에 카페차리면 인기 있을텐데 .~~

    다시 고려해봐요..!!   

  6. 오를리

    2008년 12월 4일 at 7:46 오전

    나도 늙어서 저렇게 망녕을 부릴지 겁이납니다. ㅎㅎㅎ
    하지만 그건 그영감님 나이가 되여봐야 알것 같네요~~~
       

  7. Lisa♡

    2008년 12월 4일 at 8:08 오전

    맞다…봉천댁.

    자기도 들어봤찌?

    ㅋㅋㅋ….그 할아버지 귀여웠잖아.

    얼굴도 그치?   

  8. Lisa♡

    2008년 12월 4일 at 8:09 오전

    래퍼님.

    갑자기 이해인 수녀님 같으세요.
    저도 기도 좀 하려고 합니다.
    마음부터 정갈하게 다져서요.   

  9. Lisa♡

    2008년 12월 4일 at 8:10 오전

    슈카님.

    터졌어요?
    그 틀니 직접 봤어야 하는데..
    진짜 너무나너무나 웃겼거든요.
    왜–틀리보면 부섭거나 더럽거나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별로 그런 마음없이 웃음만
    폭발했었어요.
    한 멋 갖고 계시던 분이지요.   

  10. Lisa♡

    2008년 12월 4일 at 8:11 오전

    광여사.

    그 할아버지있잖아…
    가족들이 자주 알콜치료하는 장소에 보내곤 했나봐.
    어찌보면 참 안됐어.
    늘 외롭고 측은했거든….ㅎㅎ   

  11. Lisa♡

    2008년 12월 4일 at 8:12 오전

    슈에님.

    청담동에서요?
    청담동이라는데는 더 무서운 곳입니다.
    이 동네는 그나마 따스함이라도 있지요.
    카페는 내 몫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오드리님 말대로 어디 붙어있어야 뭘 하지요.   

  12. Lisa♡

    2008년 12월 4일 at 8:14 오전

    오를리님.

    걱정 마세요.

    망녕을 부려도 귀여운 사람이 있답니다.
    저 할아버지 귀여웠어요.
    늘 붕어빵 사서 갖다주고 따뜻한 사람이예요.
    오를리님은 더 그럴지도…따뜻함.   

  13. 뽈송

    2008년 12월 4일 at 9:01 오전

    재미있습니다. 나도 늙어서 그 할아버지 같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알 수 없네요.
    그렇지만 난 술을 잘 먹지 못하니 망녕은 덜 부리게
    될런지 그 것 하나 기대해야 겠습니다.   

  14. 오현기

    2008년 12월 4일 at 9:28 오전

    재밌네요. 역시 보배인 것이 확실해요..    

  15. Lisa♡

    2008년 12월 4일 at 9:51 오전

    뽈송님.

    술을 안드시니…당연 훨 낫겠지요?
    지금 쓰시는 글폼새로 봐서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실 분
    아닌 것 같을 걸요?   

  16. Lisa♡

    2008년 12월 4일 at 9:53 오전

    현기님.

    내가 힘이 없거나 서글플 때 느닷없이
    미소와 기쁨을 살짝 던져 주시네요.
    내 생애 듣기 어려운 말로서~~   

  17. hannah▒

    2008년 12월 4일 at 11:58 오전

    울적한 때에 들어와서..
    리사님 글 읽고 조금은 좋아졌군요.

    본격적으로 글을 써서 책을 냈으면 좋겠어요.
    예쁘고 착한 리사님 같아요..
       

  18. Lisa♡

    2008년 12월 4일 at 12:29 오후

    한나님.

    그럴까요?
    부끄럽네요.
    울적하셨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왜요?
    가볼께요…남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어요//제가.
    저는 착하다기 보다는 바보같아요.
    한나님 왜 울적하세요?
    가까우면 소주라도 한 잔 땡길건데..   

  19. Elliot

    2008년 12월 5일 at 4:34 오전

    구여븐 넝감탱이군여 ㅋㅋ
    집에선 웬수였을 것 같은 기분이…. ^^

       

  20. Lisa♡

    2008년 12월 5일 at 7:24 오전

    엘님.

    맞아요.

    당연 집에선 웬수지요.   

  21. 도토리

    2008년 12월 5일 at 10:29 오전

    연세 많으신 여약사님이 측은하네요.
    의약분업이 된 이후로 연륜과 실력과는 무관하게 경영되는 약국이 많아졌어요.
    …그 할아버지도 한 땐 잘 나가던 젊은이였겠지요?
    나이 먹음에 대한 안스러운 생각도 들고… 그렇네요…
       

  22. 하라그랜

    2008년 12월 5일 at 1:37 오후

    이 댓글을 위 새론 글에 댈까 여기 댈까 망설이다 여기다 제 자리에^^
    이런 댓글로 감동할 수야 없겠지만 그보다 ^^했으면 좋겠네.
    그 노틀이 이 포스트에 처음 등장했을 때 이 노틀은
    아, 내 라이벌이 떴다! 약국을 경영하고 옆집 카페에도 드나들 수 있다면 나는 상대도 안 되겠구나 했거든 ㅋㅋㅋ
    그리고 유심히 관찰했지. 그런데 소식이 없더니 그렇게 됐군.
    라이벌이 사라진 마당에 까르페 디엠이 사라졌으니 萬事休矣(만사휴의)라!^^
    Lisa의 우울한 얼굴이 좀 웃었나? ^^   

  23. 테러

    2008년 12월 5일 at 2:58 오후

    쩝… 남자가 나이 먹어서도 대접받으려면… 정말 관리가 중요할 듯….
    그거 포기하려면 낳아준 죄인인 엄니품에서 걍 버티든지…ㅎㅎㅎ   

  24. 데레사

    2008년 12월 5일 at 9:06 오후

    ㅎㅎㅎ 리사님.
    사진애인 되어 드렸다구요? 그것 참 잘했네요.
    누구에게는 위로가 될수 있다면 행복이라고 나는 생각하거든요.

    그 할아버지 알콜중독 치료 잘 받고 건강하게 살고 계셨으면
    좋을것 같은데….

    즐겁게 웃을수 있는 새벽 열어주어서 고마워요. 리사님.   

  25. Lisa♡

    2008년 12월 5일 at 11:38 오후

    도토리님.

    나이 듦이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알콜중독기가 아쉽고 나름대로 술없이는
    못 견딜 그 무엇이 있었겠지만 참으로
    아쉬운 노년이지요?
    저는 그 할아버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그 부인이
    갈수록 마음에 찡합니다.
    나둥에 저희집에 오셨을 때 (손님들과) 차라도
    그냥 드릴 걸 하는 마음이 생기네요.   

  26. Lisa♡

    2008년 12월 5일 at 11:40 오후

    하라그랜님.

    라이벌의식을….?
    ㅋㅋㅋ.
    만사휴의 좋은 말입니다.
    정말 만사가 내 뜻대로도 안 되고
    세상 일이라는 게 참으로 아쉬운 점이 많으네요.
    그 할아버지 참 귀여웠어요.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옛날 자랑하신다고 수고 좀 했을 거예요.
    그래도 제대로 먹히는데는 없었을 겁니다.
    아마 제가 그래도 제일 나은 대접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27. Lisa♡

    2008년 12월 5일 at 11:42 오후

    테러님.

    인생 뭐 별 겁니까.
    대접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어깨에 힘줄라~
    그냥 그 때 대접 못 받으면 못 받는대로 살면 되고
    넘어지지나 말고 화분이라도 안 깨고 마누라한테나
    자식한테나 형제자매한테 폐나 안 끼치고 잘 마무리
    한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아도 어쩌겠습니까?ㅎㅎ
    엄마품에 걍?
    캥거루?   

  28. Lisa♡

    2008년 12월 5일 at 11:44 오후

    데레사님.

    사진으로나마 애인이 하루이틀 되어줄 수 있고
    그래서 그 분이 할라도 즐거웠다면 되었지요.
    어쩌면 그 필름 그대로 집의 어딘가에 파묻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알콜치료가 힘든가봐요.
    그래도 늘 멜빵바지에 나비 넥타이를 자주 하고 나타나셨지요.
    그 노래가 듣고 싶어지네요.   

  29. 수홍 박찬석

    2008년 12월 6일 at 1:35 오전

    술좋아하는 저는???
    어이쿠~   

  30. Lisa♡

    2008년 12월 6일 at 2:11 오전

    수홍님은 용서해줍니다.

    뭔 짓을 하던..다아.

    세심한 눈과 인내심으로 그런 초접사

    사진을 찍는 분이라시라면 절대로 절대로

    자기를 무너뜨리는 일은 안 하실 거니까요.   

  31. 왕소금

    2008년 12월 7일 at 6:04 오전

    ㅎㅎㅎ
    이상한 손님 2탄?ㅎ
    제 선배도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데 어려운 시절을 겪는 바람에 신불이 되었지요.
    부인이 약국을 하고 있는데 일 도와준다고 갔다가 조금씩 빼먹다가 걸려서 그 후로는
    원천봉쇄당했지요.
    그래도 번역일을 해줘가며 용돈은 벌고 있으니 다행…
    잘 만나지는 못하지만 만나면 놀방에서 만난다우…네 명이.ㅋㅋ
    요즘 뭐하는 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할아버지 궁금해 하시는 리사님처럼^^
       

  32. Lisa♡

    2008년 12월 7일 at 8:22 오전

    소금님.

    놀방도 궁금하고
    신불도 궁금하네요.
    생불은 알아도, 신불은 모예요?
    원천봉쇄—–으하하하….
    일단은 박사학위도 소용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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