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7일 좌충우돌 뉴욕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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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반에 일어났다.

김밥을 준비해서 차곡차곡 도시락에 담고 김치와 단무지도 담았다.

오늘의 컨셉은 사냥군의 모자로 정했다.

나는 너구리 모자를, 그녀는 호피무늬 모자를 각각 쓰기로 합의했다고 하니

아이비가 제발–이라면서 못말린단다.

엄마하고 외숙모는 집에 있는 게 어떻게냐고 권유한다.

아랑곳하지 않는 우리는 못들은 척하고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아이들을 픽업했다.

미안한 건 같이 지내는 아이들이 엄마따라 나가는 우리 아이들을 몹시 부러워 한다는 거다.

괜히 마음이 짠하다.

하지만 자라는 과정에 그런 섭섭함도 겪어봐야 더욱 성장한다고 믿는다.

부모와 떨어져서 사는 게 어디 편할 리가 있겠냐만은 다 자라는 과정이다.

물론 선택으로 멀리 와 있지만…

추울 줄 알고 덕지덕지 껴입은 두 아줌마는 뒤뚱맞게 걷고 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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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3 마리와 뉴저지 주의 메인도로인 Palisades Pkwy 의 19번 도로로 빠져나오면 있는

Bear Mt으로 산책을 갔다.

개들도 실컷 뛰어놀고 우리들도 운동겸 좋은 공기를 마시니 일석이조는 이런 경우다.

조그만 파킹자리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아직 녹지않은 눈과 반사되는 하얀 햇살은 고요한 정적을 한층 더 하게 만든다.

나의 둘째가 아프단다.

아침부터 실실 감기기운이 있더니 인상이 어둡고 몹시 힘들어 한다.

하필이면…

오랜만에 엄마가 와서 맛있는 것이라도 먹이려고 할 때 아프면 얄밉다.

짜증도 나고, 쟤는 왜 그런지 나랑 궁합이 안맞나…하는생각도 든다.

먹는 일로 부단하게 내 속을 썩이던 아이다.

아기 때 말라 비틀어져도 먹질 않아서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지.

엄마는 아이가 잘 먹어 주는 게 효도이다.

배실배실해서는 먹는 걸 세상의 종말 쯤으로 아는 아이였다.

야쿠르트를 주면 몰래 화장실에 통째 빠뜨려서 변기를 두 번이나 들어냈던 아이다.

지금은 아주 잘 먹는 편인데 이런 기회에 아프니 속이 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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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잘난 척 하다가 길을 일었다.

베어 마운틴에 환한 아이비와 아이비친구를 산정상으로 보내고 둘째가 아프다보니

우리는 먼저 하산했던 것.

거의 다 내려와서 엉뚱한 곳을 차분하게 가고 있는 우리는 어느 순간 화들짝 놀랬다.

길에 눈이 하얗게 덮여 그 길이 그 길같고 그러다보니 우린 나있는 다른 길과 자연스레

연결된 길로 가고 있었다.

중간에 우리에게 친절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할머니를 만나서 안내를 받았다.

끝까지 가는 길을 같이 가겠다는 그녀를 정중하게 사양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진을 찍게 만드는 그녀는 바로바로 못말려 사진관 아줌마.

친절함은 고래도 즐겁게 만들까?

내성적인 사람들은 간혹 자기의 친절이 타인에게 되려 부담을 줄까봐 한도 이상 진전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있다.

친절위의 친절이라고나 할까.

지나치게 과한 친절이 아니라면 정도껏 친절하고 볼 일이다.

뽀얀 피부에 약간 붉게 그을린 친절한 할머니와 헤어지고 바로 길을 찾았다.

LA쪽으로 갔을 때 사촌과 밤에 나가서 칵테일 한 잔 하려다가 길을 잘못들어 무시무시한 곳으로

지나가게 되었는데 흑인 밖에 안보이고 영화 속에서나 보던 할렘의 뒷골목 같은 장소였다.

여기서 내 인생을 마감하는구나….여권도 안 갖고 나왔는데 신원을 어떻게 파악시키나

하는 쓰잘데기없는 고민도 한 적이 있던 기억이 난다.

깊은 산에서 길을 잃으면 방향감각을 상실한다는데 그 말의 이해가 오늘 되었다.

베어 마운틴은 깊지는 않아도 길을 잃기 쉽상인 산이다.

할머니의 설명을 듣고보니 나무에 색깔로 구분된 길표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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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엄청나게 빠른 딸내미.

늘 용돈이 부족하고, 뭔가를 사고파하는 구매욕구가 강하다.

키도 별로 크지않고, 짜증을 잘 내는가 하면 ‘뎁따’ 라는 말도 곧잘 쓴다.

멍하게 만드는 소리도 잘 하곤 하는데 오늘 남자 아이들과 뜀박질을 같이 했는데

(약 20명 중에 여자로는 첫째 번으로)

3등을 했다고 날더러 들어달라는데 그 때마다 다른 말을 시작한 직후였다.

속으로 좀 놀랬다.

여자라고는 다섯손가락 안에드는 숫자로 열세인데달리기에서 3등이라니.

놀랍다.

푹푹 빠지는 눈이 처녀성을 간직한 그 무엇처럼 아주 뽀드득거린다.

보통 산에 올라가면 내려올 때가 항상 문제였는데 오늘은녹지않은 눈으로 인해

편했다.

더구나 큰놈이 일일이 손을 다 잡아주었다.

므훗!!

베어마운틴에서는 곰을 만나지도 못했고, 오는 길에 사슴만 한두마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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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서브웨이에서 사 온 샌드위치를 저녁으로 떼우고 둘째만 빼고는아이비누나랑

벤자민 버튼의 영화를 보러갔다.

디파이언스와 벤자민 중에 벤자민을내가 권했다.

늦게 들어오겠다.

아직 방학을 하지 않았고 공부할 숙제가 많아서 오늘 보내려다가 영화로 인해 내일

들어가야 할 판이다.

말이 없는 아이들이다.

세 명이 있어도 한 명보다 더 조용하다.

제발 까불기라도 한다면 야단이나 치지…

부모들은 항상 못갖춘 부분들을 원한다.

나 자신도 자라면서 하기싫었던 것들도 강요를 하는 게 부모인가.

문득문득 나를 뉘우쳐본다.

아이들을 너무 몰아부치는 건 아닌지..

둘째는 겨우 사골에 김치를 해서 밥을 먹고 앓고있다.

난 지금 무지하게 졸린다.

개밥을 시간을 지켜 주느라 눈도 못부치겠다.

나랑 똑같은 홈웨어를 입은 그녀는 졸음을 못견디고 자고있는 시방이다.

여기만 그런지 조블이 고장이다.

글은 올라가는데 다른 부분들이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26 Comments

  1. 김진아

    2009년 2월 8일 at 2:43 오전

    조블이 요몇일 ..투레짓을 하네요..ㅎㅎ

    하나보다 더 조용한..
    세쌍둥이..

    먹는것 때문에 힘들어해서 더 많은 걱정을 남겨두는 작은아드님..
    아파서 어떡하나요..엄마 만나서..얼른 나으기를요..

    ^^   

  2. 왕소금

    2009년 2월 8일 at 2:48 오전

    뙈지와 너구리…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전혀 뙈지가 아니라서…ㅎ

    남의 나라에 가면 먼저 알게 모르게 긴장도 되고,
    처음 가는 산길이라서 길을 잠시 잃은 것 같네요.

    리사님이 연말 미국여행에서 아주 즐거운 한 때를 보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훨~ 어리게 보이네요^^   

  3. 김삿갓

    2009년 2월 8일 at 3:14 오전

    저는 요즘은 조불 이상무!! (얼마전엔 노굿)

    말이야 쉽지만… 태양의 위치나 나무 둘레 껍데기를 보면 동서 남북 이 나오는데…
    (남쪽이 조금 껍데기가 크고 북쪽이 작고 이끼 흔적이 북쪽으로… 있다는 소릴 데레비
    에서 본 기억이 남) 그 맘 좋은 할머니를 만나서 다행이네요. 아이들… 너무 풀어줘도
    않된다 생각 합니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좋을 것 이라 생각 합니다. 저의 막내딸은
    큰딸 고생을 바탕으로 대학 진학을 느긋하게 하랬더니… 아예 1년 쉴랴고 했다가
    다행히 제가 그 의도를 알아내곤 마감 이틀 남겨놓고 부랴 부랴 원서를 냈었습니다.
    이궁 사는게 몬지!!! ^_______^

    리사님 자녀분들과 재미난 시간 보내시고 좋은 시간 되십시요. 구~우벅!! ^_______^   

  4. 광혀니꺼

    2009년 2월 8일 at 5:58 오전

    와~
    스무명중에 세번째라구요?

    전 아직껏 100m를
    20초 안에 들어온적이 없는데…
    이쁘기고 한게
    달리기도 잘한단 말씀?

    에고~부러버라.

       

  5. e-기원

    2009년 2월 8일 at 6:02 오전


    신나시네요.
       

  6. 수홍 박찬석

    2009년 2월 8일 at 8:41 오전

    참 글 맛깔나게 쓰시네요^^
    즐거운 나날..   

  7. 순이

    2009년 2월 8일 at 11:33 오전

    리사님 !
    따끈따끈한 소식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남은 여정도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다 오십시요.
       

  8. 벤조

    2009년 2월 8일 at 12:40 오후

    진짜 귀여운 엄마.
    아픈 아들 지켜보는것도 귀엽네요.
    엄마를 보면 긴장이 풀려 아파지는 애들이 있어요, 가끔.
    빨리 회복되기를.   

  9. Lisa♡

    2009년 2월 8일 at 3:03 오후

    진아님.

    일요일 아침입니다.
    기온이 많이 올라갔네요.
    아이는 밤새앓더니 아침엔 샤워를 하기도 합니다.
    뭔가 차도가 있기를 바래요.
    저러면서 크는 거지요.
    조블이 쨈이 걸렸나?
    첨에 저는 여기 컴이 이상해서 그런가 했답니다.   

  10. Lisa♡

    2009년 2월 8일 at 3:05 오후

    소금님.

    저 본래 그러커덩여…..칫.

    연말이라하심은 마위?
    그럴지도 모르지요.

    여자는 꾸미기나름이라잖아요.
    ㅎㅎㅎ…
    더 베이비처럼 꾸미고 다닐까보다.   

  11. Lisa♡

    2009년 2월 8일 at 3:07 오후

    삿갓님.

    시오리라고 산에서 길을 잃을 때
    표식을 하는 천이나 장치 따위를
    그렇게 부른다는 일본어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식당이름으로 쓰구요.
    그런 조각천들을 매어 놓고는 하는
    등산로를 많이 봤답니다.
    우리가 잃은 길을 위험한 곳은 아니고
    조금만 가면 근처라는 느낌은 있었답니다.
    아이들은….저는 그렇게 다독거리지 않는 편이지요.
    다만 다들하는 걸 이 엄마가 알지못해 권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까봐..두려운 것이지요.   

  12. Lisa♡

    2009년 2월 8일 at 3:09 오후

    광여사.

    다리도 짧은데
    오빠들보다 잘 뛰었다고 자랑하는 거지.
    암튼 다들 운동신경은 별로인데 말야.
    아들이 축구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주전이 안되는 이유가 달리기 때문인 듯…   

  13. Lisa♡

    2009년 2월 8일 at 3:09 오후

    기원님.

    네—-저 쫌 신나지요?
    혼자 신나서 쏘리!!   

  14. Lisa♡

    2009년 2월 8일 at 3:10 오후

    수홍님.

    칭찬 감사합니다.
    어제는 어찌나 졸리던지
    꾸벅거리면서 ….ㅎㅎ   

  15. Lisa♡

    2009년 2월 8일 at 3:11 오후

    순이님.

    따끈따끈한 이야기.
    소곤소곤…
    오늘은 소호로 나갑니다.
    뭔가 일이 생기겠지요?   

  16. Lisa♡

    2009년 2월 8일 at 3:13 오후

    벤조님.

    뉴욕에 온 이유를 아셨나요?

    너구리 모자를 보고 그 할머니도 귀엽다고 하더군요.
    미국인들은 그런 걸 보면 꼭 그렇게 말하고 넘어가는
    여유가 있어요.

    아픈 아들도 아침이 되니 조금 나아지네요.   

  17. 청산靑山 기자

    2009년 2월 8일 at 8:46 오후

    눈밭에서 러브스토리 사진, 드러누워 팔다리로 요동치는 장면, 만들어보시지…
    너무 젊은 이들 같은 발상인가요?
    겨울 뉴욕여행기 읽으니 마음이 어려져서요.    

  18. 데레사

    2009년 2월 9일 at 12:31 오전

    달리기 얘기만 나오면 나는 기죽는다 !!!
    언제든지 꼴찌였으니까. ㅎㅎㅎ

    그런데 리사님 너구리 모자쓰고 따님과 함께 찍은 사진
    너무 예쁘다 ~~~

    재미있게 놀다 오길 바래요.   

  19. 화창

    2009년 2월 9일 at 1:19 오전

    뉴욕이 시골인가? 하여튼 재미있네요!   

  20. Lisa♡

    2009년 2월 9일 at 1:45 오전

    청산님.

    눈밭에서 러브스토리요?
    저…..추워요.
    그리고 조카들이 무서워요.
    우리 아이들도 절더러 늘 유치하대요.   

  21. Lisa♡

    2009년 2월 9일 at 1:46 오전

    데레사님.

    달리기를 못하셨구나,
    저는 달리기 잘하는 편인데..

    너구리모자요?
    재밌으라고 잘 쓰고 다녀요,
    저 저럼 모자에 장화신고 다녀요.
    여기오면요—-   

  22. Lisa♡

    2009년 2월 9일 at 1:46 오전

    화창님.

    통틀어 뉴욕인데 저기는 엄밀히 말하자면

    뉴저지 쪽이지요.

    아마 주는 뉴욕주쪽일 갑니다.   

  23. 김영기

    2009년 2월 9일 at 5:15 오전

    재밌는 좌충우돌 뉴욕기가 이어지고 있네…ㅎㅎ
    커플궁합이 최고야! ㅋㅋ

    둘째가 그랬구나…
    이젠 좀 괜찮아졌어?…
    엄마없이 세쌍둥이가 참 잘 지내는구만…

    우리애들이 늦게 유학을 가서 어학쪽으로는 고생을 하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 떨어져 지내니만큼 영어 걱정은 덜하겠어…
    도나말처럼 다 자기에게 펼쳐진 인생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야지…
    그걸 다 깨달은거 보면 도나는 자유인이야…

    3월 초에 준희가 예술의 전당에서 친구 귀국 바이얼린 독주회에 반주하거던…
    반주라서 진기랑만 갈려했는데 지은이랑 올수 있으면 와…
    티켓 미리 받아둘께…ㅎㅎ

    보름밥도 못해 먹었겠네…ㅎㅎ
    참 지은이는 찰밥 좋아하지 않지…

    그대가 있어 메이플우드가 가깝게 느껴지네…안뇽~~~~~~~~    

  24. 산성

    2009년 2월 9일 at 8:52 오전

    하얀 눈밭에서 저런 모자 만나면 깜짝 놀랄 것 같은데요…

    미국에도 보름 달이 뜨는지…잘 살펴 보소서…^^
    여행기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   

  25. Lisa♡

    2009년 2월 9일 at 12:28 오후

    영기언니.

    그러잖아도 어제 맨하탄으로 나가면서
    영기언니 얘기했어.
    보름이라는데 분명히 별 거 하는 방식대로 다 해서
    먹을 거야…대단해.
    늘 정통방식으로 살고 있어….뭐 이런 얘기지.
    언니–준희 반주하는 건 보러 꼭 갈께요.
    그리고 지은언니랑 저야 뭐 시올사이지만
    언니는 피를 나눈 친자매인 진기가 있으니
    우리보다야 더더더더 짙은 관계가 있잖아요.
    우리누나야–저 밖에 더 있어요?
    그러니 제가 잘해야지요–생활은 그 반대지만–
    ㅋㅋㅋ….언니, 댓글까지 고마워요.   

  26. Lisa♡

    2009년 2월 9일 at 12:30 오후

    후후후—-푸후후후.

    산성님.

    산 속 깊은 곳에서 저런 모자쓰고 만나면
    혹시 정신병자인가..할런지도 모르지요.
    여러 명 같이 있으니까 쓰고 다나지요.
    그런데저는 가끔 재미난 차림하고 다니는 것 좋아요.
    어제 보니 보름달이 약간 찌그러진 채 허드슨 강 위로
    보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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