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일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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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샘이 말했다.

"내가 리사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

여기서 버린다는 뜻은 좋게 해석해야한다.

"그건 내가 밥먹자해도 네—"

"내가 술마시자 해도 네—"

"내가 여행가자 해도 네—"

"이런 친구 있어?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그렇다.

나는 비교적 아니 거의 상대가 원하는대로 하는 형이다.

내 시간이 허락하면 다소 내 다른 부분이 손해를 보거나 미천해지더라도

또는 늦추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어주고픈 오지랍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내가 술마시고, 밥먹고, 여행가는 걸 즐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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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를 보다가 기억해둘만한 정보가 있으면 모아두거나 그 부분을 찢어서

모으거나 그러다보니 항상 주변에 엉클어진 잡동사니들이 많다.

수첩도 좋아해서 여러 개를 갖고 있는데얻다 쓸까…메모장으로 쓴다.

한 수첩을 꺼내어 모아 둔 잡지와 찢어둔 정보용을 다 한데 적는다.

이러면 간편할 걸 뭘 그리 모아둔다고…나도 참..하긴 그림도 봐야할 때가 있는 법.

어떤 건 사진이나 그림을 보지않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긴 했다.

쓰레기는 좀 나왔는데 그래도 한결 머리맡이 편해졌다.

애착이 가서 모아 둔 잡동사니들은 버리기도 그렇고 어찌나 많은지 정리가 안된다.

따져서 버리려고 해도 하나같이 아까운 것 투성이라 나도 갑갑하다.

박물관용도 아니고 누구 줄 용도도 아닌 이상한 것들이다.

안경닦개, 집개, 작은 거울인데 오래된 것, 아이들 사진이 담긴 열쇠고리,이상한 볼펜..

메모지도 하나 제대로 버리질 못하는 쫄장부다, 아니 쫄장녀다.

쓰고 버리려고 모아둔 메모지가 한바구니다.

거기엔 옛날공책 찢어진 여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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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체크무늬 남방을 사려는 걸 미국서 내가 막았다.

얼반이라고 순 후줄근한 걸 파는 집인데 뭐가 그리 비싸보이던지..

엄마가 한국가서 더 이쁘고 싼 것들 많이 보내줄께—한 지가 언젠데.

오늘 제법 콜록거리면서 나갔다.

길에 있는 로드#에서 사려고 마음먹었지만 파킹을 하다보니 백화점이다.

그냥 백화점에서 체크무늬 남방을 몇 개 샀다.

보는 족족 사려고 하자 남편이 무섭다는 듯이 나를 제지한다.

좀 둘러보고 사라질 않나, 색깔별로 두 개를 사려니 하나만 사라는 둥.

남자는 잔소리꾼이다.

저 쪽 좀 보고 사란다.

시방 저 쪽이라고 했나요?

거긴 비싼 것 밖에 없거든….

내 맘대로 4개나 샀다.

그래도 뭐…세일하는 걸로 저렴하게 샀다니까 밖에서 사면 더 싼 걸 구태여 백화점에서 산단다.

거의 비슷비슷하다니까..아침에 인터넷으로 우연히 가격을 보게되었거든~

절대 믿지않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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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시집을 샀다.

‘슬픔이 없는 십오 초’라는 제목의 시집이다.

-가끔 슬픔없이 십오 초가 지나간다.

-거기서 초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이제 막 슬픔없는 십오 초가 지나갔다.

긴 시 중에 내 눈에 들어오는 부분들이다.

그는 이 시집을 어머니와 고모님께 바친다고 했다.

고모님…

중앙일보에서 릴레이식으로 이어나가는 문인들 틈에서

그를 발견했다고 누가 내게 일러줬다.

그는 자기 다음으로 홍대 앞에서 기타를 치는 보컬리스트이자 시인인

사람을 소개했다고 한다.

갈수록 세상에는 멋진 사람들이 많아지려나 보다.

아니면 여태껏 내가 발견하지 못한 부분들인지도..

그런데 그는 대체적으로 많이 슬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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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미진한 느낌이다.

뭔가를 섬뜩하게도이루어 놓지 않은 그런 기분.

잡히지 않는 실체처럼 늘 무형으로 내 주위를 맴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어쩌면 전화를 한다고 해놓고 하지 못한 약속일 수도 있다.

간혹 나몰래 새고 있는 수도관의 소리라도 들은 것일 수도 있고

나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텔레파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저 깊은 곳에서 숨어서 날 지켜보는 저금통장인지도.

하여간 늘 궁금하다.

알 수 없는 비밀처럼.

언젠가는 모든 걸 까 뒤집어서 햇볕에 말리고 싶다.

33 Comments

  1. 김진아

    2009년 3월 1일 at 3:16 오후

    TV문학관을 틀어주고 있어요..
    한동안 이 프로그램 참 좋아했는데..갑자기 사라지고..
    조금 섭했었는데..ㅎㅎ 그래도..재방이든, 신방이든..
    자주 보았으면 좋겠어요..음악 프로그램도..예전것이..느리지만,
    참 알뜰하게 잘 나왔는데..^^

    오후에 외출하면서..봄볕에 말려두었던..이불들을..
    펼치니까..햇빛 냄새가 났어요..
    기분 참 좋더라구요..

    ..미진한 느낌..긁어서 나오지 않는 느낌이라면..
    시간두고..언제고..나타날 느낌일터이니..
    그냥..놓아두셔요..

    흰머리 생기기전에..간질거림처럼..
    그렇게 생각하셔요..^^

    거제도..내려가시는길..꽃샘추위가 살짝 얹어지긴 하지만..
    날씨는 괜찮은것 같습니다.

    즐거운 시간..시선에서 머무는 봄소식..많이많이..담아오셔요..^^   

  2. Beacon

    2009년 3월 1일 at 3:17 오후

    수첩이나 볼펜 등등 모으기를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지 싶은데,,
    책장 한 켠에 수첩들이 한 가득,, 볼펜은 온 방에 굴러다니구..

    볼펜 모으는건 연우녀석까지 한몫을 거들어서 정말로 방바닥이고 책상위고간에 온데 데굴데굴,,

    포스트잇도,, 컴터 앞에, 책상 위에, 베갯머리에, 심지어 밥상 위에도,, ㅎㅎ   

  3. 초록정원

    2009년 3월 1일 at 10:17 오후

    아직 놓지 않고 사는 그리움일 거예요..
    시인이 15초만 이라도 잊었다 자랑하는 슬픔 같은 건지도 모르고요..
    감성이라해도 좋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이라 해도 좋을.. ^^

       

  4. Lisa♡

    2009년 3월 1일 at 10:53 오후

    진아님.

    TV문학관 좋지요..아이들한테도 좋을 겁니다.
    봄볕에 이불이라니 벌써 포근한 느낌이 옵니다.
    봄이네요—겨울이 아주 짧았다는 기분이 드네요.
    겨울동안 다른 겨울나라에 가 있어서일까?

    봄소식이 있겠지요.
    바다에도 봄은 올테니까—
    저 스스로도 기대하고 떠날 겁니다.

    몸도 괜찮아지구요.   

  5. Lisa♡

    2009년 3월 1일 at 10:55 오후

    비컨님.

    포스트 잇요—저 말고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데서
    약간의 편안한 동질성을 느낍니다.
    볼펜도 그렇구요…저의 딸도 한몫 단단히 해요.
    그러니 아무래도 피는 못속이나봐요.ㅎㅎ   

  6. Lisa♡

    2009년 3월 1일 at 10:56 오후

    초록정원님.

    그럴까요?
    아무래도 그런 그리움이 있는 게지요.
    생각날듯 말듯한 그런 거.
    항상 약간의 배고픔처럼….
    안 먹어도 되는 허기랑 비슷한.   

  7. 슈에

    2009년 3월 1일 at 10:59 오후

    서랍을 정리할때마다 느끼는것이 언제 요긴하게 쓸것같아

    모아둔 자자분한것이 너무 많지요..ㅎㅎ

    한편으로 버리기도 잘하지만 또 다시 같은속도로 모으는 잡지책 오려모아둔

    옷/실내장식/요리..등등..ㅎㅎ

    읽으면서 사람들은 거의 다 똑같네~~하며 미소를 짓게함^^*   

  8. Lisa♡

    2009년 3월 1일 at 11:30 오후

    슈에님도?

    ^^*   

  9. 흙둔지

    2009년 3월 2일 at 12:06 오전

    깃털처럼 가벼워져 나비처럼 자유로워질려면
    비우는 연습을 많이 해야겠지요…
       

  10. 겨울비

    2009년 3월 2일 at 12:09 오전

    3월의 첫날을 보내며 리사님을 스쳐간 사념들을 읽어보는
    이 시간이 좋으네요.
    슬픔이 없는 십오 초라…

    Geteau madekeine…
    과자도 잘 만드실테니
    마들렌느 과자 만들어 실체를 알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밀려올 때
    홍차에 적셔 드셔요.   

  11. Lisa♡

    2009년 3월 2일 at 12:17 오전

    흙둔지님.

    깃털처럼 가벼워지면 안돼요.
    아무데나 날려갈테니..
    나바처럼 자유로워지는 건 지금도
    그런 상태라고 할만큼 자유롭긴 합니다.
    내 스스로가 자유롭지 못하면 배겨나질 못하거든요.
    그래서 성격이 좋은가봐요.   

  12. Lisa♡

    2009년 3월 2일 at 12:18 오전

    겨울비님.

    지금은 과자틀도 다 귀찮아요.
    모든 게 사는 것보다 공이나 돈이 더 들구
    해도 먹을 사람도 없구 저는 제가 만든 걸
    잘 안먹기도 하지만 살 엄청 찌거든요.
    그 순수한 버터의 량만 생각해도 ~~오 노우~~
    이제 정말 3월 따스한 봄날기운이 마구 스며듭니다.   

  13. 광혀니꺼

    2009년 3월 2일 at 12:42 오전

    못읽고 ~
    갑자기 나가게~

    이따 오후에
    다시 읽을께요~

    오늘도 좋은 하루~
       

  14. 슈카

    2009년 3월 2일 at 2:17 오전

    그래도 남편분께서는 쇼핑하러 함께 가시네요.
    저희 신랑은 시장 보러는 함께 가는데 옷 사러는 가기 싫어해요.
    이것저것 꺼내보고 대 보고 입어보면 사지도 않을 거 뭐 그리 꺼내보고 입어보냐고…
    그냥 딱 살 것만 사고 나가자,는 식어거든요;;;;
    사려면 입어보고 내보는 거 당연한건데 말이죠.ㅎㅎ

    붉은 체크 남방을 사고 싶어져요. 후후..
       

  15. 봉쥬르

    2009년 3월 2일 at 8:32 오전

    리사님은 절대로 늙지않을것 같아요.
    스트레스 안받는 성격!
    복이 많아요오~
    언제 술한잔 해얄텐데..   

  16. 무무

    2009년 3월 2일 at 10:01 오전

    제 맘을
    햇볕에 빠삭 말리고 싶은
    나날들입니다.^^

       

  17. 광혀니꺼

    2009년 3월 3일 at 1:41 오전

    어제 저녁
    댓글이 안달리더니…

    이제사
    천천히
    느긋이
    다시
    비가 와서
    점심 약속한거 취소 하고픈데…^^;;

    신정이 셔츠
    이뻐요?
    저도 눈으로 안보면 못사는 성질인지라…

    앙마녀석 A6 세일하길래
    나는 죽어도 못입는 옷들(작아서)
    한벌 샀어요.
    세일을 마니 해주드라구요.
    도리우찌까지…세트로.
    다행히 좋아하네요.

    비와요~
    우산 잘 챙기세요~

       

  18. 화창

    2009년 3월 3일 at 2:07 오전

    늘 미진해 보이는 2%쯤은 가슴에 묻고 사는게 좋아요!

    여운이 남을 때 사람이 신비스러워 보여요!

    모든거 까 뒤집어서 햇볕에 말리면 너무 드라이한 인간이 될지도 몰라~~~~   

  19. 김영기

    2009년 3월 3일 at 2:53 오전

    털털하면서도 세심함이 매력이지…동생은!
    글이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고…ㅎㅎ

    구로동에 W몰이라는데 알아?…
    나도 소개받고 가 보았는데 아울렛 몰인데 아이들 옷 장만할 때 괜찮은 곳 같아…
    약간 지난 거지만 구색이 골고루 있고 애들 것으로는 명품도 꽤 있었어…
    준희가 좋아하더라구…
    주말엔 세일가에 20%정도를 더 깎아주고
    주차도 쉽고 롯데카드로 결제하면 3개월 무이자이고..

    봄비가 내리더니 그쳤나?…
    그리고 참~ 꽃다발 준비 안해도 돼…ㅎㅎ
    메인의 그 친구를 돋보이게 해 주어야잖아…
    나도 진기랑만 갈거야…
    얼굴도 보고프고 제법 잘 하는 애들이니 음악감상이나 하라구…ㅎㅎ
    씨유 쑤운~~~~~   

  20. 칸토르-이상화

    2009년 3월 3일 at 3:04 오후

    제가 좋아하는 물결무늬 아이스크림 그릇이 선반위에 포개져 있네요^^   

  21. 뽈송

    2009년 3월 4일 at 5:02 오전

    Lisa님이 그렇게 네, 네 잘하는 순종형인지는 정말 몰랐네요.
    그렇다면 버릴 구석이 없지요.
    쇼핑을 너무 열심히 하는 것 빼놓고는 말입니다…ㅎㅎ    

  22. Lisa♡

    2009년 3월 4일 at 2:06 오후

    광여사.

    남방—이뻐서 산 건 없고
    어찌어찌 사려니 대충 산 거지.

    A6없어졌잖아.
    아직도 있나….?
    아무튼 거기 옷 여러 번 샀었는데.
    모자되게 좋아하는 군..
    암튼 봄이네요~~   

  23. Lisa♡

    2009년 3월 4일 at 2:08 오후

    슈카님.

    요즘 붉은 체크남방이 유행인가봐요.
    많이들 입고 저도 눈에 띄더라구요.
    남편들 그런 사람 많아요.
    대부분 쇼핑하는 거 싫어하지요.
       

  24. Lisa♡

    2009년 3월 4일 at 2:09 오후

    봉쥬르님.

    스트레스 안 받는 거 제가 좀 모자라서 그런 거 아닌지..
    늘 저는 너무 안받아서 문제있는 건 아닌지..고민해요.
    술요?
    합시다.^^*   

  25. Lisa♡

    2009년 3월 4일 at 2:09 오후

    무무님.

    지나치게 말리진 마세요.
    부서져요.
    너무 우셨나요?   

  26. Lisa♡

    2009년 3월 4일 at 2:10 오후

    화창님.

    알겠습니다.
    2 % 정도는 부족하게요?
    여운이 남게 말이죠?
    노력할께요.
       

  27. Lisa♡

    2009년 3월 4일 at 2:12 오후

    언니.

    그렇군요.
    앞으로 딸 옷 살일있으면 그리로.
    상도동에서는 가깝나요?
    준희야..워낙 야무지니까.

    꽃다발.
    메인이 아니라 사가기도 그렇고..ㅎㅎ
    준기씨랑요?
    그 날 뵈어요.   

  28. Lisa♡

    2009년 3월 4일 at 2:12 오후

    상화님이 물결무늬 그릇을
    좋아하시는군요.
    아이스크림도?   

  29. Lisa♡

    2009년 3월 4일 at 2:13 오후

    뽈송님.

    맞네요—–ㅎㅎ   

  30. 광혀니꺼

    2009년 3월 5일 at 10:42 오전

    욕심부려서 도리우찌를 두개 샀는데
    앙마녀석과 세트로 써볼려고…

    근데 모자가 찢어지게 생겼어요.
    ㅠㅠ;;

       

  31. Lisa♡

    2009년 3월 5일 at 1:49 오후

    광여사….크크크.   

  32. 벤조

    2009년 3월 5일 at 2:08 오후

    맨 마지막 패러그랍, 리사의 시.
    음…리사가 드디어 시인으로 등단하다.   

  33. Lisa♡

    2009년 3월 5일 at 2:48 오후

    벤조님.

    써놓고보니 그럴 듯 하네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그런 듯.
    너무 넘치죠?
    아무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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