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여행 뒤엔 그렇게 피곤한 줄을 모른다.
물론 즐거운 술자리도 다음 날 피곤과는 거리가 멀다.
자고로 편하고 재미있고 인간적이고 한 모든 것들이 으뜸이다.
살아가면서 부쩍 느끼게 되는 건 그런 진리들이다.
몸에 부딪치고, 와닿고 생생하게 소화가 되는 그런 실제적인 진리들.
공연히 지적임네, 거만을 떨 필요도 잘났다고 거리를 둘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이 자유롭게 술술 풀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인간관계조차..
서로 조금의 마음도 허용하기 싫어서 눈치보고 계산하고 잇속을 따지는 건
피차 유치하고 손해보는 짓이다.
오죽하면 자존심 상해서 화도 못낸다고까지 말할까.
남을 인정하고 서로 꼴 필요가 없이 도와주고 마음으로라도 격려해주는
그런 관계에서 아름다움도 출발한다고 본다.
우산없이 나간 광화문에서의 하루.
뉴스에귀기울이지 않는 버릇은 아마 10년 전부터 이리라.
요즘도 거의 뉴스를 안 보고 안 듣는다.
그러다보니 자연 날씨조차 망각하고 지내기 일쑤이다.
지하철에서 낮에 비온다고 4000원하는 3단 우산을 파는데 좀 땡겼지만
비가 오다말겠지..하고 그 방심한 오산이 나중에 8500원을 쓰게 했다.
그래도 비오는 광화문을 조신하게 걷는다는 기쁨은 정체성에 깨끗한
신호등이 반짝거리게 하는 청신함을 주었다.
혼자 걸으며 조용히 나를 생각해봤다.
극히 도회적인 미시족이면서 어떻게 시골빵집에 앉아있는 귀도 안들리는
할머니에게 보자마자 말을 걸며 안부를 묻느냐던 오공이 떠오르면서
내가 많이 내성적으로 변해야하나,를 잠시 고민했다.
보기엔 양식인데 하는 짓은 한식인 나를 사람들은 간혹 뜨아하게 여긴다.
그런데 나 완전 오리지널 한식이다.
영상을 통해 호로비츠와 루빈스타인의 연주실황을 보았다.
같은 장소, 같은 곡, 비슷한 나잇대에 연주하는 폼이 두 사람이 어쩌면 그리도 다른지.
당대의 이름 난 피아니스트로 전설적인존재들에 더우기 만년의 노익장을 과시하던
두 사람은 손가락의 압이 주는 힘 때문인지 90을 넘기며 오래도록 연주활동을했다.
젊을 때 놀기 좋아하던 루빈스타인은 70대에 철이 들었다고 할만큼 뒤늦게 무르익은 연주를
했다는데 그의 연주는 편안하고 자연스럽다는데 최고점을 준다.
호로비츠는 단정하고 예리하며 우아하게 연주를 했다.
그의 연주장에는 몇 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느낌이라고 어느 평론가가 지적했단다.
내가 본 영상에서 루빈은 마치 찰리 채플린같은천재가 그저 그천재성으로 연주하는
자신만만한 그것이었다.
작은 키, 큰 머리, 당당함, 호방함, 그런대로 까칠함..같이 친하고 싶은 사람.
호로비츠는 아인쉬타인이 피아노를 치듯 과학적이고 칼날같은 연주를했다.
정교한 손놀림에 숨조차 쉬지않을 것 같은 몰두로 빈틈없이 수학적으로 하는 연주로 보인다.
연주를 마친 그는 어찌나 맘씨좋은 할아버지 같은지손잡아 주고싶다.
두 사람의 손을 보니 나의 둘째놈 손이랑 너무 흡사하다.
피아노를엄청 즐기는 그 녀석이 혹시 타고난 거 아닐까?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비싸보이지 않는 짧은 옷차림의 아가씨 셋이 내 앞에서 까분다.
세운 코가 역력한 콧대에 눈에 튀게 바른 물광반짝이에 아직 잘 여물지 않은 쌍가풀이
그 중 두 여성을 완벽하게 싸구려틱하게 만들고 있었다.
제대로 이성이 성립되지 않을 나이지만 반평생을 살은 내가 보기에 끔찍하다.
만약 내 딸이라면…정말 못참을 것이다.
염색한 노란 머리에 5-6개 뚫은 구멍의 귀걸이.
높고 치근덕스런 희안한 모양의 양옆으로 구멍난 부츠.
교육은 제대로 받았을까?
부모는 알고나 있는 걸까?
남의 자식 함부로 말할 게 못된다지만 세련까지는 아니라도 예의는 있어야지.
공해였다.
남자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어떨까?
내 아들이 저런 여자들을 본다면 어떤 느낌으로 쳐다볼까?
이제는 항상 딸과 아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지극히 얌전한 것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밝고 가림이 분명하고 일단 할일은 열심히 해서 자기 인생을 준비하는 아이가 되길
바라고 그런 상대를 만나길 바란다.
이제 나도 늙은이 대열에 끼나보다.
꼰대가 되어가는 거겠지.
겨울비
2009년 3월 6일 at 5:09 오전
저는 어제 밤에 우산을 쓰고^^ 광화문길을 아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피닌 콜린즈 와 함께한 모짜르트 협주곡도 좋았지만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이 압권이었어요.
이글 후딱 쳐 올리고 어디로 나셨을까…
김진아
2009년 3월 6일 at 5:35 오전
꼰대라니요…
나무의 나이테처럼..세월의 빗금을..아름답게 꾸며가시는걸요..
남겨주시는 글줄에서..조금씩, 늦게나마 시간터울을 배우구요..^^
하루종일 비가와서..
상쾌한 날이였어요..바람이 차가운것도..
Lisa♡
2009년 3월 6일 at 8:29 오전
겨울비님.
저요….?
오늘 뉴욕가느라 미루어진 맛수모임이 있었구요.
아들이 필요한 서류가 좀 있어서(썸머때문에)
병원에 가서 MMR서류떼어서 보내고 그러느라
나갔었지요…ㅎㅎ
Lisa♡
2009년 3월 6일 at 8:30 오전
진아님.
오늘부터 따스해질 줄 알았더니 반대로 추워진다네요.
바람이 싸늘하긴 하네요.
꽃샘바람요.
저도 이제 보수적인 사고로 변화되고 있어요.
정치적인 것 말구요.
오히려 정치적인 건 진보적으로 되어가구요.
佳人
2009년 3월 6일 at 8:31 오전
어젠 비가 하루 종일 추적거리며 내렸죠.
비 속에 여독과 함께 묻어있는 그리움이 느껴져요.
내성적으로 바뀌지 마세요.
그냥 시원한 성격, 거침없는 하이킥으로 나가세요.
좋아요.
Lisa♡
2009년 3월 6일 at 8:57 오전
가인님.
저 지나치게 거침없어서
좀 미안해요—
스스로 생각할 때는 좀 그렇거든요.
백작
2009년 3월 6일 at 10:38 오전
후후후..
저두 나이들면서 꼰대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때문에
스스로 깜짝깜짝 놀랄 때 아주 많은데요…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도 피아노 치시던
맘씨좋은 할아버지 같은 손을 덥썩 잡고픈 충동은 누구나 다 있을듯..
정말 그럴 기회만 주어진다면 절대 주저하지 않으리~~
Lisa♡
2009년 3월 6일 at 10:42 오전
백작님.
저도요~~
이젠 갈수록 그런 것에
몰염치가 되어가요.
ariel
2009년 3월 6일 at 12:51 오후
무슨 꼰대? No~~~!!
왠만한 젊은이도 끔찍하다고 생각할 것 같네요.
나 리사님 고향 다녀왔어요…^^
일 만 했지만 그래도 바다보고 좋았어요.^^
마일드
2009년 3월 6일 at 1:50 오후
꼰대?………Welcome to the club!!!!
onjena
2009년 3월 6일 at 2:47 오후
나이가 든다는것…마음 편하고 아름다운것이지요.
그리고 그 나이에 맞는 얼굴,몸매가 훨 보기 좋습니다.
만약 김 지미씨 얼굴이 아직도 송 혜교 같음 좀 징그럽지 않나요????
Lisa♡
2009년 3월 6일 at 2:55 오후
아리엘님.
부산 다녀오셨군요.
동백섬 근처에 계셨나요?
회 좀 드셨는지…ㅎㅎ
칠성집 세꼬시가 맛있는데—
Lisa♡
2009년 3월 6일 at 2:56 오후
홧~~~~마일드뉨.
그럴까…꼰대클럽.
마일드님.
이름만 봐도 방가운,,,
오공이 안부 전해달래요.
좋겠어~~마일드!!!
Lisa♡
2009년 3월 6일 at 2:58 오후
언제나님.
제가 거지도에 갔을 때 언제나님을 잠시 5초동안
생각했었답니다.
언젠가 한국오실 때 구너해드리고픈 코스 거든요.
맛집과 함께 해야만 제대로 된 고국 여행이 될 것 같아서이지요.
잘 적어 놓으셨다가 꼭 가보시길요~~거제도로요.
도토리
2009년 3월 7일 at 3:23 오전
겉은 양식이시고 안은 한식이신 리사님..ㅎㅎ
꼰대가 되어가신다는 것도 그렇고…
맘에 듭니닷..^^*
Lisa♡
2009년 3월 7일 at 8:31 오전
도토리님.
그럼——–우리 사귀기만 하면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