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作
-김재혁 譯
-이레 출판사.
어른이 되어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참으로 소중하다.
젊었을 때의 치기로는 알지못하던 많은 사실들을 이해하게 되고 인생의 여러 관점들을
소중하게 곰곰히 씹어보는 맛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진정성을 한 눈에 알아보는 시력도 생긴다는 것이다.
영화를 먼저 봤다.
그리고 책을 읽으니 뭐가 우선이었더라도 같이 접했으니 이해는 빨랐다.
영화에서 알지 못했던, 혹은 뒤바꿔 계산했던 순간들에 대한 이해가 비로서 명확해졌다.
많은 문제들을 다룬 소설이다.
한나와 미하엘의 사랑에 촛점을 두었으되 사회적인 많은 부분들을 미세하게나마
드러내어 해결책은 없어도 우리를 적어도 약간의 사색에 빠지게 한다.
내용면에서야 줄거리는 이미 올리뷰나 다른 여타 매체에서 다루었으니 생략하고
내가 느끼고 내게 와닿았던 부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작가가 법과 관련이 되어있듯이 해박한 그러나 어렵지않게 누구나 읽어도 이해가 가능한
법지식들에 관한 문구가 나온다.
<오디세이>는 목표점이 확실하면서도 목표점이 없는, 성공적이면서도 헛된 운동의 이야기이다.
법률의 역사 또한 이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법의 심판자인 판사로서 법의 헛점과 어쩔 수 없는 원칙에의 갈등으로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그의 인간적인 부분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법률들은 이 세상에 하나의 훌륭한 질서가 내제되어 있으며 그렇게 때문에 이 세상을 하나의 질서 속에
위치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러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하나씩 법 질서 조항을 첨가해 나가는 것에 아름다움마저 느꼈고 그걸
첨가해나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그런 그가 깨닫게 되는 건
-법률의 역사에는 진보가, 즉 가끔씩 엄청난 퇴보와 후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아름다움과 진리,
합리성과 인간성을 향한 발전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이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낀 후로 나는 법률의 역사가 취하는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행보행태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로 그의 법에 대한 시선이 바뀌기도 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그녀의 이미지.
-그녀에게는 자신의 이미지가감옥에서 보낼 세월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녀를 구속하고 마비시켜 제대로 몸을 펼 수 없게 만든
이 거짓된 자기 이미지를 통해서 그녀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거짓된 자기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동원된 열정 정도라면 이미 오래 전에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녀는 완전히 솔직해 질 수 없었다.그리고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안타까운 진실이요, 안타까운 정의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싸움이 그녀의 싸움이었다.
회피하고, 방어하고, 숨기고, 위장하고 또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의 근거가 되는 수치심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수치심이야말로 모든 걸 희생하더라도 맞바꿀 정도의 인간본연의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하나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수치심은 있다.
그걸 얼마나 잘 감싸고 태연하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가 있겠지만 그 수치심이 인생전반에
치명적인 오류로 변할 때는 일종의 강력한 자기를 향한 무기로 변할 수도 있다.
한나는 그걸 왜 그대로 방치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그녀를 이해하는 편에 서서 이 글을 읽었다.
생각 속에 갇힌 그에 대한 이미지.
-한나를 사랑하고 열망한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던 것처럼, 내가 잘 알지만나 자신은아닌
그 누구였던 것처럼 그녀를 바라보게 해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나는 내 인생의 다른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한 쪽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否認이 배반의 보이지 않는 한 변형임을 알고 있었다. 외부에서 보면 부인을 하는 건지, 비밀을 지키고
있는 건지, 심사숙고하는 건지, 난처함과 불쾌함을 피하려는 건지 구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 본인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부인은 배반의 다른 몇 가지 떠들썩한 유형들과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토대를 앗아가버린다.
정말이지 이렇게 표현하는 우유부단한 그를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선뜻 나서서 그녀를 위해 변호하지 못하고 편을 들어주지 못하는 그를 나는 정말 이해한다.
두 주인공들을 이해한다는 건 각자 내가 그들의 속에, 아니 내 속에 그런 유형들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인간내면에 각각 존재하는 이유들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지배하는 괴로움을 그 근원적인 것들에서 그가 헤어나질 못하고 서술하므로써
약간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심정으로 회상하는 방식으로 써 진 글이다.
우리들 사이에 있고,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삶 속에 역사가 주는 상처와 사랑이 주는 상처와 회복에 대한 생각들이 채 정리되지 않은 채
이 책을 접어야 했다.
이 책의 많은 부분들이 공감을 주고 아름다운 문체로 이루어져 있어서 소개하자면 아주 길어질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적으면서 끝내려 한다.
………..매주 똑같은 산책로를 맴돌면서 한나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면 생각 하나가 따로 떨어져나가
제 나름대로의 길을 좇다가는 결국 제 나름대로의 결론을 이끌어내곤 했다. 결론이 그렇게 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꼭 그곳이 아니 다른 곳에서라도 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주위 환경과 경관의 친숙함이 외부에서 느닷없이 들이닥친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저절로 자라난
정말로 놀라운 사실을 감지하고 수용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나 가능했을 것이다.
산을 가파르게 타고 올라가 차도를 건너 샘 하나를 지나 일단 늙고 큰 시커먼 나무숲 그늘로 접어 들었다가
다음엔 밝은 수풀로 이르는 길에서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흙둔지
2009년 3월 30일 at 4:50 오전
글씨를 쓸 줄 모른다는 것이
한 여인의 일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한 여인을 사랑한다는 것이
한 남자의 육체 뿐만 아니라
영혼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위 두가지에 대한 이해도 명확해졌나요?
영화의 주제는 인간의 수치심에 관한 거였지요..
Lisa♡
2009년 3월 30일 at 4:59 오전
주제요?
주제는 한 남자의 일생에 영향을 주는 사랑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수치심을 지닌 여인을 사랑한 이야기겠지요.
문맹에 대한 수치심으로 모든 걸 버리는 여성을 사랑한 유죄.
ㅎㅎㅎ…….명확해지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지우고파도 지워지지 않는 과거에 대한 애착이랄까.
또는 그 여자를 사랑하지만 사회적으로 내세우지 못하고 마는
숨겨진 사랑에 그녀의 수치심까지 가세한..
그리고 독일인들이 그들의 역사를 얼마나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가가 여기에서 또 포함됩니다.
결국 수치심이네요.
레오
2009년 3월 30일 at 1:46 오후
그렇지요? 수치심… .
법대교수의 ‘우리의 감정은 중요하지않다 우리의 행동이 중요한것이다.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아갈 것인가?’
주인공 역시 그녀를 변호하지 못한 죄의식으로 ..
녹음테입으로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보려했을까요??
레오
2009년 3월 30일 at 2:06 오후
진정성을 한눈에 알아보는 시력..
부러워요~
가장 취약한 점을 어찌 극복해야하나??…(나의 수치심을..)
Lisa♡
2009년 3월 30일 at 2:33 오후
레오님.
그렇치요?
그걸로나마 자신의 용서랄까..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선택했지만 그걸로도 결코 자기를
다 용서받는다고는 생각지 않죠?
하지만 결국 여기서 용서라는 게 있나요?
읽다보니 과연 누구의 잘잘못이라기 보다는
각자의 마음 속에 결국 소통되지 못한 부분들이더라구요.
맞나…?
ㅎㅎ……..정답은 없지요?
진정성을 한눈에 알아 볼 수’도’ 있다는 거죠.
다 그렇다는 건 아니죠.
하지만 좀 알겠더라구요.
저 사람이 진실이다, 아니다 라는 걸….
저같은 사람은 무조건 상대를 믿지만.
얼굴에서 나타는 그런 분위기도 있고.
좀…알아가지요?
도토리
2009년 3월 31일 at 3:34 오전
주제가 퍽 무겁군요.
보고싶은 영화 리스트로 꼽고 있는데
이것도 남푠이랑 보긴 좀 편치 않을 듯합니다.후후..^^*
Lisa♡
2009년 3월 31일 at 10:18 오전
도토리님.
같이 보셔도 되요.
남편이 약간 고지식하지만 않다면
한나를 욕하진 않을 겁니다.
엘레지랑은 다른 이야기라서 괜찮아요.
그리고 테마가 사랑에 촛점이 맞춰졌지만
그 이상의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후의 상처들이 결국 생활에 녹아있는
것이지요.
남편과 같이 보시길…남편도 자꾸 변해야죠.
도토리
2010년 2월 8일 at 3:17 오전
드디어 어젯밤에 dvd로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러고 이 글을 읽으니 리사님의 필력이 대단하다 느껴집니다.
마음이 좀 무거웠지만 어떠한 인연이 삶을 지배하는 거..
이것이 영화 속에서만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The Reader에 대한 감상을 접으려 합니다…^^*
Lisa♡
2010년 2월 8일 at 8:18 오전
마음이 많이 아팠죠?
도토리님은 보고픈 영화를 저처럼
끝까지 보시는군요.
ㅎㅎㅎ……
좋았죠?
그 작가가 새로 낸 책읽고픈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