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않고 오랜만에 메일로연락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짧게나마 행복함의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뭔가에 떠밀려 살다보니 많은 걸 잊고 살기도 하고 어느새 세월에 밀려서
인연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서투르게 대하고 만다.
좀 더 따스하게 대해줄 걸..이거나 그 때 친밀하게 굴어줄 걸..도 있고
먼저 편지라도 해야하는 게 아닌가..싶다가 전화를 불쑥하면 놀랠까…싶기도 하다.
그렇게 조각난 상념들만으로 잠깐잠깐 떠올리다 어느 새 다른 일에 다시 몰두한다.
오랜만에 반가운 메일이 왔다.
내존재 확인에 기쁘기도 하고 잊었던 물건을 찾은 듯 반갑다.
멀리 있어도 기억이라는 실꼬리에 우리가 매달려 있구나 생각하니
혈관 속의 혈액이 빨리 순환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연결되나보다.
2년만인가 잊고있던 Hee의 번호를 찾아내어 부산으로 전화를 했다.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나이가 잠깐 서글프게도 한다.
모든 대화에서 이젠세월에 대한 용서랄까 포기랄까
뭔가 터득한 냄새마저 묻어있다.
지나간 이야기에 잠깐 웃다가 너도 나도 이젠 겉치레적인 건
훌훌벗어던져 버릴 때가 지났음을 감지한다.
세력도, 부유함도, 미모도, 잘난 감정도 아무 쓸모가 없음이
덧없이 터져나온다.
모든 부질없음을 이해하게 된 나이가 된 걸까?
신기한 건 꼬장꼬장하게 늙어가던 그녀의 야위디 야윈 엄마는 놀랍게도
건강하게 여전히 잘 지내신다는 거였다.
전화를 하게 된 동기가 약국에 갔다가 이북사투리를 쓰는 할머니를 보게되자
그녀의 엄마 생각이 문득 난 것이었다.
가늘고 예리한 목소리, 튀는 이북말투가 어쩌면 그리도 똑같던지..
비교적 어벙한 스타일의 나는 사실 알고보면 천년묶은 여우일 수도 있다.
저마다 이런 면 저런 면의 야누스적인 면모를 갖고 있지만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어눌한 말투일 때가 많은 내가 거기다 덤벙거리는 모습이 좀 바보같은 때도 있으며
스스로도 경박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참하고 깐밤처럼 야무지고 싶지만 그건 나와는 거리가 먼 스타일로 여겨진다.
그래도 간혹 야무지다거나 새침하다는 말을 듣게되면 우쭐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 스스로 판단될 때 조차 일부러 어벙하게 굴 때가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좋아한다.
자기보다 어벙하고 실수 잘 하고, 뭔가 빠져 있는 듯한 나를 보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때론 혀를 끌끌차며 낮추어 보는 시선도 인식하지만 ..
그 일부러 어벙함이란 가식적인 것과는 좀 다르다.
그게 편하고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고 다가오게 만드는 요인인데
그 어벙함이 어느 새 나도 모르게 내 방식으로 굳어버렸으며 삶 자체가 그렇게
되어버려서 이젠 일부러 어벙함이 아니라 실제 모습이 되어버렸다.
가끔 깔끔한 행동을 하고나면 이게 나였던가 싶다.
담배를 피우는 남학생 엄마가 아들 행동이 못내 미안한 듯 살짜기 전화가 와서
아들변명하기에 바쁘고 부끄러워한다.
좀 더 당당해지라고 말했더니 좀 놀랜다.
아니 중학교 여자애도 담배를 피는 판국에 고교생 아들이 담배를 좀 피웠기로
뭐가 그리 대순가?
좀 더 질 좋은 담배를 피게하고 숫자를 줄여서 피게하고그래도 마음에 안들면
같이 피우라고 말했다.
아들이 1개피를 피면 엄마는 10개피를 피겠다…어때?
엄마, 폐암 걸려서 죽으면 너 좋겠지? 그러면서—
막 웃다가 날더러 고맙다고 한다.
다들 돌아서서 아들 욕하는데 이렇게 통쾌할 수가 없다는 거다.
돌아서서 욕?
사실 그런 거 잘 안하는데 당사자인 엄마만 그렇게 소심하게 느끼는 거다.
아는 집 아저씨 중학교 때부터 담배피워도 명문대만 가고 지금껏 잘 산다.
뭐…그렇게 고민할 필요까지야~
정오 무렵의 압구정 현대백화점 5층은 머리가 아프다.
멋쟁이 건강한 할머니들의 만남의 장이기 때문이다.
수다의 데시빌이 유리라도 깰 참이다.
피하고 싶어서 잘 안가게 되는데 백화점 옆 동으로 이사 온 친구땜에
하는 수없이 가게 되었다.
할머니들이 그렇게 수다의 장을 펼치게 되는 건 좋은 일이고 권장할만한 일이다.
30년 후의 한국은 인구의 39%가 65세 이상이 된단다.
젊은 이들보다 노인이 더 많은 나라이면서 노인이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 말은 할 일은 없으면서 하고싶은 건 많고 반기는데는 없는데
가고싶은 곳은 많아지는 그런 세태가 뻔하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사라지고 열대과일이 풍성해지는 나라가 된단다.
온난화 현상으로 아열대로 점점 가고 있는 중이다.
파인애플과 바나나가흔해지고 사과는 없어지는…아찔하다.
멈출 수 없는 진행형이란다.
벤조
2009년 9월 10일 at 11:26 오후
정말 아찔.
그러나 삼십년 금방 지나가요. 흑.
‘건강한 할머니’의 ‘건강한’이라는 표현이 어째 빨간 립스틱처럼 보이네…
흙둔지
2009년 9월 11일 at 12:07 오전
나이 듦을 생각하면 누구나 서글프고 쓸쓸해지지요.
늙음은 연민스럽고 애연하며 처연하기 그지 없고
나 또한 그러하여야 함에 허허로울 따름입니다.
뒤돌아보면 아득히 멀리 걸어온 듯한데
지나온 세월의 기억 중 어떤 것은
저 멀리에서 어렴풋이 희미하지만,
대부분은 그리 멀지 않은 길 위에서
아직도 선명하고 눈부시지요.
유년과 소년 시절의 순수,
그리고 치열했던 청년 시절,
내가 매일 눈부시게 닦았던 내 꿈의 거울은
어느새 먼지 끼고 깨어져 금이 갔고,
쓸모없고 보잘 것 없는 한 조각의 유리 조각이 되어
잃어버렸거나 잊힌지 오래입니다.
늘푸른 상록수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꽃과 열매는 보잘 것 없지요.
봄이 되어 싹 틔우고 꽃 피웠다,
탐스럽고 맛있는 열매를 맺고,
그리고 잎새를 털어내고 다시 헐벗은 가지로,
죽은 듯이 겨울바람을 맞으며 외롭게 서 있는 나무들…
우리 인생은 그런 나무와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단 한번의 사계(四季)가 허용되어 있을 뿐이고
지금은 가을에 해당되는 것일지도…
낡고 오래된 고물자동차…
페인트는 볼품없이 벗겨지고 엔진의 힘은 떨어졌지만
닦고, 조이고, 기름칠한, 잘 관리되고 정비된 자동차는
여전히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문제없이 달려갈 수 있음을 명심하자구요…
산성
2009년 9월 11일 at 12:17 오전
아…바로 위 흙둔지님 댓글 너무
감동적입니다.
벤조님의 ‘건강한’이란 단어가
빨간 립스틱 같다는 말씀도…
이 다음에
사카의 수다 데시빌도 이렇게 높아질 날이…^^
멋지겠지요? ^^
참나무.
2009년 9월 11일 at 1:03 오전
리사님 매력이 다 나와있네요…^^
학가위 사셨네…^^
답글 올리고 우선 사과 한 개 먹어야겠어요
D day가 다가오고있습네다아~~~
전 지금 젤소미나 듣고 있거든요..^^
Lisa♡
2009년 9월 11일 at 1:07 오전
벤조님의 빨간 립스틱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느린 흑백영화에서
단연 눈에 띄게 나타난 특별한
빨간 립스틱 같구요.
그 배우는 마를린디트리히티 같은 생각.
후후후—정말 삼십년 후딱이지요?
그러나 아래 흙둔지님 말씀처럼’30년간 갈고 닦고 조인
기름칠이 만만치 않음을…우린 알고 있읍죠.
Lisa♡
2009년 9월 11일 at 1:09 오전
흙둔지님.
어째 내게 희망과 진실과 깊은 감동을 주는
일사천리의 댓글을 쓰셔서 아침부터 도가니탕을..
맞아요.
한 번 뿐인 사계를 가진 우리들..어쩌면 가을이구요.
그러나 늘 푸른 상록수만이 아름다운 건 아니라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오래된 고목이나 뿌리깊은 나무만이 가질 수 있는
내공과 품위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지요.
이 아침…뭔지모를 뿌듯함이 마구 밀려옵니다.
좋습니다.
화이팅~~
Lisa♡
2009년 9월 11일 at 1:10 오전
산성님.
맞아요–사카에서의 수다전경이
무척 다정하게 떠오릅니다.
그런 날 한번씩 있다는 것에 커다란
위안을 느끼면서—후후
Lisa♡
2009년 9월 11일 at 1:11 오전
참나무님.
저거 말고 정말 좋은 학가위가 있었거든요.
시어머님이 선물로 사주신..그런데 그게 말입니다.
남에 의해 부러져 버렸다는 거..
저건 그것보다는 한 등급 아래지요.
제가 학가위 참 좋아했었어요.
김진아
2009년 9월 11일 at 1:37 오전
쥐 잡듯이 한다는 표현이 있지요,
그게 너무 지나치면 중간에서 그만둘 헛한짓도 반발심에 더 이끌어가는것을요 ㅎㅎ
아이들 키우면서 요즘 생각이 더 많아졌어요.
물론 리사님의 담배에 대한 대처방법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다는것에 웬지 모를
으쓱함도 생기구요 ㅎ
오늘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서늘한 느낌이 오래 가는것 같아요.
사카에서의 정겨운 분들의 모습..
저역시 기다려집니다.
전, 마음뿐이지만, 진심으로요 ^^
네잎클로버
2009년 9월 11일 at 2:02 오전
담배에 대처하는 방법..
역시 쿨~하신 리사님… ^^
아직 가을 초입(?) 쯤인 나이지만,
확실히 나이 들수록 자연스럽게 터득되는
너그러움과 여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격하게 여겼던 부분은 어느새 두루뭉실해지고…
근데 생각해보니
또 한편으론 절대 양보 못할 듯이
더 까칠해지는 면도 생기는 것 같네요…ㅎㅎ ^^;;
Lisa♡
2009년 9월 11일 at 2:02 오전
진아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지난 번 시낭송회때도 그렇게까지..
세심하게 은근하게 배려해주시는 거
정말 아무나 못하거든요.
복이 송두리째 그리로 가야하는건데..
그러네요.
오늘 아침엔 그런 기운이 퍼집니다.
이제 가을 확실하죠?
갈수록 아이들에 대해서 완벽하길 요구하던
마음들도 느슨해지고 비우기 마련이거든요.
그게 다들 그렇다고 하네요.
Lisa♡
2009년 9월 11일 at 2:03 오전
클로버님.
그렇다니까요.
까칠함은 또 더해지는대로
포용할 수 있는 그릇만큼
더해가는 것 같더라구요.
같은 크기로///
까칠한 사람들도 그런데 은근히
매력적인 분들 있어요.
왕소금
2009년 9월 11일 at 2:05 오전
에구~~~ 천 년 묵은 여우방이구낭~~
(후덜덜….살금살금…휘리릭~~)ㅎ
Lisa♡
2009년 9월 11일 at 2:05 오전
왕소금님.
여우가 천년 묶으면
평이한 사람으로 된다나 어쩐대나..
그렁께 덜덜 떨기만 해봐~~~ci
마음의호수
2009년 9월 11일 at 3:25 오전
충분히 야무지고
새침하고 이쁜 리사님~^^
오랜만이지요??
이제사 놀러오게 되네~
섬에 살다보니
사람많으면 겁나걸랑~ㅋㅋ
지난번 얼굴보고
웃고 와야하는데
못보고와서 죄송~~
벌써 이 곳은 추워~
땀 뻘뻘흘리며 한국선 힘들었는데
다시 그립구먼요~^^
가을…
넘 외로워말고 ~^^
Lisa♡
2009년 9월 11일 at 4:46 오전
지숙아…까불지 말고 너라고 말혀지 그러냐?
마음의 호수?????
음…..마음이 넓긴 네가 좀 넓지.
그냥 가고 말이야.
너 그럴 줄 알았지만.
워낙 이번엔 좀 그랬잖아..
미숙도 정신없었대더라,
그래 초딩들이 더 좋타 이거쥐….
남자동창생들도 있을테구….흐ㅁ…
일러준다.
뉴펀들랜드 언제 함 가보지?
도토리
2009년 9월 11일 at 10:34 오전
전혀!!
어벙하지 않던데..
야무지고 똑 소리나게 당차던데.. 리사님..
오히려 제가 좀 엄벙덤벙거리지 않던가요…??^^*
Lisa♡
2009년 9월 11일 at 10:49 오전
아이고 도토리님이 왜요?
전혀…지적이라고 제가
그랬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