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9일 이태원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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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선 옆자리 소녀는 말하길 60점 이하로 점수를 받으면 엄마가 1점에

한 대씩 때리기로 했다며 걱정이라고 핸드폰 속 친구에게 수다를 떤다.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음에도 칼칼한 낭랑 18세 목소리는 내 귀를 파고 들었다.

잠시 후 누군가 얘기를 주고받는지 "에이~~c8~~그 년 죽여버려야 해"

화들짝, 교복을 입은 아이가 그러더니 점입가경이라고 욕설은 더해만 간다.

옆자리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자리를 건너 편으로 옮긴다.

나도 모르게 팔꿈치로 툭하고 낭랑 18세를 칠 뻔한 걸 가까스로 참는다.

(상상-왜 쳐요? 엇따대고 지랄이야~~~하면 어쩌나 싶어서)

그 엄마 점수로 때리지말고 입에서 거침없이 나오는 저 말투로 좀 잡아족쳐야 할텐데..

앗 나도 모르게 말투가 험악하게~~전염이다.

읽으려고 편 책에 집중이 안되게 만드는 맹랑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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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지하철..자리가 빈틈이 없길래슬그머니 경로석에 앉았다.

옆자리 할머니가 아니 젊은 것이 여길 왜 앉나 싶은지 흘끔 쳐다본다.

건너 편 경로석에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열받아서 전화에 대고 열변을 토한다.

…그래 세 명이 옷갈아 입고 나왔는데 너네 둘만 쏙 가기냐? 말하고 가면

어디가 덧나냐? 같이 나와선 나혼자만 빼돌리고 그래~~잘 해봐라~~뭣? 아니긴 뭐가 아냐?….

고럼고럼, 그런 짓하면 열불나지…평범한 사람이면 말이야.

그런데 살다보면 그런 일 수태 당하는 걸 뭐 그까이꺼 갖고 열받아서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게 없이 행동하고 그러셈?

나도 상대에게 그런 짓 한 적 있고, 나 또한 그런 짓에 당해본 적 있다.

모르게 당하는 왕따 속에 성숙함 있따~~~

근데그 아줌마 그 사실을 어캐 알았을까나-그거이 궁금하단 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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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다가 이런 역은 처음이다.

녹사평역에 가본 사람?

긴 에스컬레이터를 3번을 돌아가면서 타고 내려가야 한다.

충무로역 에스컬레이터가 길다고 하지만 녹사평에 비하면 암 것도 아니다.

지하철역이 꼭 어디 커다란 몰에 쇼핑오거나 누구를 만나야 할 목적으로

들어 간 3차원 세계같다.

약간만 깨끗하게 만들고 환경에만 신경쓰면 멋질텐데 늘 2% 부족하다.

바람은 옷깃을 꽁꽁여며 이솝우화에 나오는 태양보다 쎈 그것으로 변하는 중이다.

때로는 갑자기 다가오는 것 처럼 그렇게 겨울이 맛배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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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라는 건 아무리 혼자 보려고 숨겨도글자로 써서 기록이 남는다는 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전제라고 한다.

그래서 완벽한 비밀을 쓰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무의식 중에 남이 볼 거라는 기반을 깔고 있다는 건데

남이 보는 내 마음이 싫으면 아예 기록을 않고 마음 속으로 소화시키거나

자기 뇌에 저장해야 한다.

그런데 가끔 내 비밀을 남이 알아도 그걸 뭐 어쩌겠다는 건지.

3살짜리 응석받이도 아닌데 미주알고주알 외워서 불화를 일으킬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안주거리로 삼는 일 밖에 더 있으랴.

대부분 삶에서 얻거나 기록되어지는 일상들은 거의 비슷비슷한 내용들이다.

나는 자신이 감상적 휴머니즘에 빠져 있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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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 주택의 경쟁률이 특별분양 경쟁률이 9.8:1 정도라면

지하철을 탈 때 구름처럼 몰려 나오는 인파들을 보노라면

무료 박물관에 몇 시간씩 서있는 관람객을 쳐다보자면

아직도 뻔뻔하게 멋없이 쑷쑥 지어버리는 아파트 군단을 보고있자면

우리 사회는 아직 할 일이 태산같구나…하는애국적 상상이 든다.

밤에 TV가 없다면 더 많이 나를 채울까?

밤늦도록 TV에 눈을 고정시킨 날이다.

16 Comments

  1. 김진아

    2009년 10월 20일 at 12:14 오전

    녹사평역에서 가끔은 조촐한 결혼식도 열린답니다. ^^
    전시회도 열릴때도 있구요..
    그곳 역에서 아이들과 함께 퇴근하는 남편 기다릴때가 종종 있어요.

    재미난 곳이예요.

    한티역의 천장 부분 혹 보셨어요?
    아이들이 바퀴벌레군단이 있다고 소리 지르는 곳이예요 ㅎㅎㅎ

    보금자리 주택이 서민주택이라고 광고는 나오지만요..

    아닌걸 모두가 다 아는 걸요..
    씁쓸하고, 슬픕니다.   

  2. Lisa♡

    2009년 10월 20일 at 12:23 오전

    진아님.

    보금자리주택…정말 그렇더라구요.
    뭔가 조건을 더 달아야 할 거 같은..
    그래도 한 번 ㅣ도나 해보시지 그랬어요?
    특특별분양 조건인데..
    한티역은 어디예요?
    찾아봐야겠네요.
    그러고보니 제가 진아님 덕분에 미군부대도
    구경한 경험이 있긴하네요.
    패스티벌….ㅎㅎ

    녹사평역이 그런 곳이군요.   

  3. 八月花

    2009년 10월 20일 at 12:51 오전

    한티역을 몰라요?
    강남 롯데랑 연결된..
    단대부고 입구.   

  4. Lisa♡

    2009년 10월 20일 at 1:05 오전

    저 몰랐어요……

    단대부고도 몰라요.

    강남롯데는 말아요.

    ㅎㅎㅎㅎ   

  5. 오를리

    2009년 10월 20일 at 1:11 오전

    녹사평역이 세계 잔찰역중 아름답기로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가끔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약속을 합니다…   

  6. 뽈송

    2009년 10월 20일 at 2:01 오전

    이곳 Lisa님 방에 들어오기 전 부터 기가 쎈 방으로 가야지
    했는데 역시 넘쳐나는 氣로 내 속을 채웁니다.
    덕분에 한 마디로 내 자신의 내공을 넓힐 수 있었답니다.

    Lisa님은 태어날 때 부터 그런 기를 받고 나셨는지 모르지만
    오늘 내가 받은 氣는 젊고 깨끗한 기가 틀림 없으렸다…   

  7. Lisa♡

    2009년 10월 20일 at 2:09 오전

    오를리님.

    아…………..그런 곳입니까?
    뭔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어제는 좀 지저분하더라구요,
    그리고 어두침침하고..
    뭔가 설계가 예상을 넘는데 느낌이
    20% 정도 부족해서 조금만 더 신경쓰면
    정말 고내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외국인들이 왕래를 많이 하는 곳이다 보니
    더 신경써서 했나보네요.
    ^^*   

  8. Lisa♡

    2009년 10월 20일 at 2:20 오전

    뽈송님.

    제가 그러잖아도 제 사진들을 요 며칠 보면서’
    잘난 척인지 몰라도 사진에 힘이 있다고 느꼈어요.
    생생한 느낌이랄까…그랬는데 그 젊고 깨끗한 기를
    말씀하시니 은근히 그런 뜻이련가..해봅니다.
    언제든 들어오셔서 기를 좀 갖고 가세요.
    더러는 사람들이 저를 만나면 그런 기운을 받는다고
    하더라구요..혹시 엔돌핀아닐까요? 깔깔~~   

  9. Hansa

    2009년 10월 20일 at 3:05 오전

    예전에는 중국사람들이 "양귀비" 이쁘다할 때는 별로인 걸 했었는데
    ‘양귀비’ 들여다 볼수록 이쁩니다. 명불허전이란 말을 요즈음 들어 실감합니다.
    양귀비의 귀족적 색깔과 얇은 꽃잎에 감탄합니다…

    아이들이 양귀비처럼 이쁘고 행동도 양귀비 꽃잎처럼 귀해졌으면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입에 상스런 표현이나 욕을 하면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자라서도 거의 전혀 가망이 없습니다.. 대략 그 모냥 그꼴로 살다가 죽습니다.
    그것도 삶이긴 합니다만 가련하지요. 태어난 보람이 없지요.. 리사님
    하하, 리사님 글에 과도하게 공명했나봅니다.

    한국의 젊은 청년들이 바르고 당당하고 젠틀하기를 희망합니다.

       

  10. Lisa♡

    2009년 10월 20일 at 8:41 오전

    한사님.

    저도요..동감입니다.

    명불허전을 하나 더 깊이 새기며…   

  11. 데레사

    2009년 10월 20일 at 9:09 오전

    요즘 학생들이 우르르 타면 욕설이 여기저기서 많이 들리는게
    보통이더라구요. 차마 입에 담아서는 안될 욕들도 거침없이
    하는걸 보면 한마디 해주고 싶기도 하고….그러다가 도로 욕먹을까봐
    슬그머니 피해 버리기도 하고 그런답니다.

    꽃들이 예쁩니다.   

  12. Lisa♡

    2009년 10월 20일 at 10:02 오전

    아………데레사님은 절대 가만있어야 합니다.
    갸들이 확 밀면 큰일납니다.
    나야 몸뎅이로 버팅기면 되지만서도 데레사님은
    절대로 나서면 안됩니다.
    아셨죠?   

  13. 이영혜

    2009년 10월 20일 at 11:42 오전

    요즘 아이들 책 안읽고, 일기 안쓰고 TV에서 독한 것 많이 봐서 그럴껄요~^^
    Lisa♡ 님 블로그에 일기쓰기는 명불허전이예요~~~
    사진 감각도 독특하고요~힘내세요!    

  14. 리나아

    2009년 10월 20일 at 1:17 오후

    요즘 날씨도 변덕스럽고 을씨년스럽기도 하든데..
    명쾌..경쾌..한 색상의 꽃 사진을 보니…
    눈과 기분이 좀 환해지는 듯 하네요 ^^

       

  15. Lisa♡

    2009년 10월 20일 at 1:53 오후

    영혜님.

    명불허전이 오늘의 뉴스네요.
    이름난 것들이 공연한 게 아닌 경우가 많지요?
    ㅎㅎ..비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16. Lisa♡

    2009년 10월 20일 at 1:54 오후

    리나아님.

    오늘 상당히 추울 줄 알았는데
    그나마 덜하더군요.
    벌써 추워지면 가을이 짧아질까
    걱정했거든요.
    잘 지내시죠?
    12월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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