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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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인지 신의 뜻인지 의도한 바 없이 고른 영화가 ‘위대한 침묵’ 이었다.

168분 짜리 침묵 뿐인 영화.

영화라기보다는 2년간 감독 혼자서 수도사와 같은 생활을 하며 찍은

다큐에 가까운, 우리 영화로 치자면 워낭소리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화면으로 첫 장면부터 압도한다.

16세기 네델란드 화가들의 그림색조가 느껴지기도 하는그래서 베르메르가

살짝 그리워지기도 하는컷마다 명화가 존재하는 예술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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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300미터 알프산에 위치한 카르투시오 수도회 산하인 그랑 샤르투뢰즈 수도원.

철저한 묵언 수행으로 유명하고 타인의 방문을 허락치 않으며 일주일에 단 한 번

4시간 동안의 바깥 산책시에만 대화를허용한다는 규칙을 갖고 있다.

84년 촬영신청을 했다가 거절 당하고 거의 포기 상태였으나 수도원 측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서 99년에 촬영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조건은 감독 혼자만, 일체의 사운드나 인공조명 금지, 수도원에 대한 비평금지.

영화제에 먼저 작품을 올린다 였단다.

이렇게 바깥으로 드러나게 된 배경엔 보수적이던 종교를 세상에 알리자는 교황의 요청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인데 그래서인지 카톨릭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나 또한 모르고 갔으나 카톨릭신자로서 어쩌면 꼭 봐야하는 침묵의수행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침묵하고 있어야 함은 외부가 아닌 내 내부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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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거리는 문소리, 윙윙거리는 바람소리, 손씻은 대야를 세워두면 흔들리면서 고정될 때 까지

살짝 나는 삐끌림 소리, 눈이 녹아 떨어지는 소리, 괭이소리, 나무 쪼개는 소리, 나무토막이

땅에 떨어져 나는 커다란 소리, 상투스..상투스..찬송가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눈이 보이지 않는

수도사의 지팡이소리와 옷 버석거리는 소리, 별들의 움직임 소리마저 들릴 듯한그 곳의

모든 소리들을 자연 그대로 그리고 빛도 채광도 자연 그대로인 무공해영화다.

그간 돌비스테레오 시스템에 길들여 있던 영화관들이라 자연 고개가 아래로 떨구어지기도 하고

어느새 잠깐 졸리는 기분을 추스리지만 결국 그것조차 우리네가 수행해야 함이라는 걸..

옆 자리에 얼핏 비구니승이 앉아서 잠깐씩 졸면서 본다.

정물들이 고정된 화면에선 세잔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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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의 팔촌 중에 ‘리키’ 라는 녀석이 로마를 통해 스위스의 어느 수도회에

들어갔던 적이 있다.

리키는 미국서 태어나 첨단의 문명을 접한 아이로 가슴은 어찌나 순수한지 아기같은

녀석이었는데 고된 수도사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를 견디지 못하고세상으로

나왔다.

그렇지만 다시 갈 거라며 그리운 눈빛으로먼 곳을 응시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수도사가 되기로 서약한 두 수도사가 서약하는 장면에서 약간 울컥했다.

리키는 결국 두 번의 시도에도 파계를 하고 말았다.

수도사의 모습은 유럽 중세의 고성에서나 볼 것 같은데 이렇듯 영화를 통해 그 실체를

확인하고 보고나니 다시 그 존경에 우러름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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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각각의 수도사들 모두를 가만히 비춰준다.

에델바이스 같은 얼굴들이다.

한 번 시력을 잃은 눈의 프로필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기도 하는데

마치 동물의 그것을 닮아 어찌나 곱게 순결하며 많은 시간을 담고 있던지.

가히 아름다웠다.

무표정한 얼굴로 겸연쩍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모습들에서 자연과 신을 경외하는

흔적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었다.

진실로 믿는 것..그래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말을 시력을 잃고도 하시는 모습에서

현재 우리들의 삶이 정말이지 부끄러워졌다.

자기의 눈을 그렇게 만든 것도 다그 분이 뜻이 있어서 그리하신 거란다.

‘이끄셨으니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너의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서 나를 믿으려 하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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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하루 2시간 동안 촬영에 힘을 기울였고2년동안 6개월을 촬영했다고 한다.

기도와 묵상으로 이루어지는 수도원 생활을 그대로 했을 때 비로서 자기도 그 속에

합류될 수 있었고 몸으로 가슴으로 느낌이 왔다고 한다.

독방생활, 긴 기도, 묵상, 공부…등으로 하루를 보내는 수도사들 생활은 인내를 요구한다.

마지막 눈이 다시 쌓인 알프스 산맥 어디쯤에서 그들은 산책을 나가나 싶더니

눈 위에서 미끄러지기도 하고 아이들처럼 눈썰매를 타기도 한다.

뒤집어지고 넘어지고 뒹굴면서 즐거워한다.

현대인들이 휴식처럼 보고 지나갔으면 하는 영화다.

졸리기도 하지만 반드시 봐야하는 그런 영화라고 추천하고 싶다.

12월2일 오후 7시는 건축가 승효상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마련된다고 한다.

소격동 시네코드 선재에서 단독 상영 중이다.

2주간 상영이라고 하는데 3일부터 상영했다.

독일에서는 2주로 잡았다가 35주간 상영했다고 한다.

유럽영화제 다큐부문 상과 선덴스 영화제에선 특별상을 수상했다.

장면마다 명화와 같은 분위기이다.

14 Comments

  1. 데레사

    2009년 12월 5일 at 8:33 오전

    혹시 메가티비 에서도 하나 찾아 봐야 겠어요.
    찾아보고 하면 봐야지. 참 좋은 영화네요.

    리사님.
    고마워요.   

  2. Lisa♡

    2009년 12월 5일 at 11:18 오전

    아직 메가티비는 멀었습니다.

    이제 상영인 걸요….3일 부터.

    상영한지 3 일인데 메가에서 할리가 읍쬬?

    ㅎㅎ—데레사님 천주교 신자시니…관심가죠?   

  3. 이영혜

    2009년 12월 6일 at 10:58 오전

    Lisa♡ 님~마음 동합니다~리스트에 올리며…
    이런 멋진 게시물이 묻혀 있다니…
       

  4. Lisa♡

    2009년 12월 6일 at 11:10 오전

    영혜님.

    부산서는 안 하지요?

    서울서도 한 군데서만 하거든요.

    혹시 성당에서 방영할런지도~~ㅎㅎ   

  5. LINK4U

    2009년 12월 6일 at 12:46 오후

    멋진 영화일 거 같아요. 지방에서도 상영했으면~   

  6. Lisa♡

    2009년 12월 6일 at 2:01 오후

    LINK4U.

    ^^*

    그렇죠?   

  7. 광혀니꺼

    2009년 12월 6일 at 2:45 오후

    침묵이니
    보고 싶네요……
    듣는것보단
    보는게 더 좋을것 같아요^^

       

  8. Lisa♡

    2009년 12월 6일 at 10:36 오후

    좀 졸리긴 해~~~

    말도 없고

    음악도 없으니~~   

  9. 산성

    2009년 12월 7일 at 12:14 오전

    묵상하다가…졸다가…
    정신 번쩍…하다가

    일단 리스트에 !
       

  10. Lisa♡

    2009년 12월 7일 at 1:49 오전

    산성님.

    아마 제 생각에 롱런 할 겁니다.   

  11. 공룡

    2009년 12월 8일 at 4:31 오전

    전 서울주보같고 ㅎㅎㅎ 금욜에 보러갈거예요~~
    담은 생이 있다면 저렇게 살고픈 마음 간절함~

    건강하시죠?

       

  12. Lisa♡

    2009년 12월 8일 at 11:37 오전

    엇…………..누구?????히히/

    공룡님.

    주보갖고 꼭 가보세요.

    특히 그대는….관심있겠쑤~~   

  13. 정태원

    2009년 12월 10일 at 5:37 오전

    공식블로그에서 리뷰이벤트 진행하네요~ 응모하시고 향적 스님의 멋진 책, 프랑스 수도원의 고행도 선물로 받으셔요!!! http://blog.naver.com/greatsilence/94706998   

  14. 래퍼

    2009년 12월 11일 at 4:55 오후

    2주상영이면 언제..앗~? 사라진 0룡..ㅎ

    0룡님 함%ㅔ 5ㅏ실%까요~?

    5갑자5ㅣ 컴터 5글자5가 이상해 져서 더 이상 쓰5기5가 ..리사님 죄송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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