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엉망진창이기 때문에 나는 여유를 사랑한다.
세계가 엉성하기 때문에 집에서 웃고만 계시는 부모님들의 여유를 사랑한다.
소설을 쓰는 것이 돈이 잘 벌린다는 걸 알면서도 시를 쓰는 사람들의 여유를
그러므로 나는 사랑한다.
구원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의 여유를 사랑한다.
위태위태한 의식의 혼란 속에서도 요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여유를 사랑한다.
로마군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수학계산을 하고 있는 아르키메데스의 여유를 사랑한다.
알렉산더에게 햇빛을 가렸으니 조금 비껴 달라던 디오니게네스의 여유를 나는 사랑한다.
재판정 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고 말한 갈리레이의 여유를 사랑한다.
달이 뜨지도 않았는데 문장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달…………운운한 샤또브리앙을
나는 그러므로 사랑한다.
나찌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교단에 서있던 훗설을 나는 사랑한다.
훗설이 추린 학생들 외의 학생들로 연습을 시작한 하이데거 조교의 여유를 사랑한다.
매독에 걸렸다는 걸 알고서 사바띠에 부인을 멀리 한 보들레르를 사랑한다.
"선생은 시에서 눈물을 흘리십니까?" 하고 묻는 어떤 청년에게 "코도 훌쩍이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한 말라르메를 나는 사랑한다.
결혼도 않고 십 여년도 넘게 한 여자를 데리고 사는 희한한 재주꾼 사르트르를 나는 사랑한다.
사형대로 올라가면서 "꼴좋게 일주일이 시작되는군" 하고 말하는 사람의 여유를 나는 사랑한다……….
여유는 심연 위에서 웃을 수 있는 용기를 준다.
Some of these days
You’ll miss me honey
이런 하찮은 노래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보는 로깡댕의
여유를 나는 사랑한다.
–김현의 반 고비 나그네 길에—
오를리
2010년 3월 11일 at 7:44 오후
이렇게 톡톡 튀는 글을
쓰는 불러거를 좋아한다…..
택사스는 겨울이 가고 서서히
대지가 무지비한 태양에
달구어질 계절이 왔네요!
염천지옥에서 올여름을 맞이할
생각만 하면 벌써 부터 짜증이 납니다…
Lisa♡
2010년 3월 11일 at 10:06 오후
오를리님.
염천지옥 무서워요…ㅎㅎ
이 거 제 글이 아닌 걸요.
JeeJeon
2010년 3월 12일 at 10:06 오전
김현은 젊은 나이에 죽은 평론가 였지요.
특히 갑자기 망자가 된 기형도를 위한 진혼가에서
가슴이 에이는 글을 남겨
문인을 잘 모르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답니다.
한국문학사의 중심에 있었던 김현은
전 이화여대교수였던 김치수와 더불어 가장 맹렬하게 인문학의 기초를 만든 분들입니다
김치수교수는 사실 철없을때 형부친구라 형부라 부르며 쫄랑댔는데..
김현의 글 보니 옛날 생각 납니다.
Lisa♡
2010년 3월 12일 at 12:25 오후
지전님.
그런 추억이 …..
김현이야 워낙 좋아하는 분들이 많죠.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이구요.ㅎㅎ
지전님 오십니까?
산성
2010년 3월 13일 at 3:22 오전
김현선생의 투병 기록을 보면
정말 가슴 아프지요.
우리나라 문단의 크나 큰 손실…
바쁘고 힘 든 세상,잠시 여유를…^^
Lisa♡
2010년 3월 14일 at 1:10 오후
산성님.
맞습니다.
정말 아까우신 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