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이하의 사람들은 알 리 없는 무렵의 일을
당신에게 말하리라.
그 무렵나의 나무는 窓 아래까지 리라 꽃을 피우고 있었지
두 사람의 사랑의 보금자리였던 가구 딸린 방은,
볼품은 없었어도 그 곳에서 우리 둘은 서로를 알았네.
나는 굶주림에 울고 있었네.
그내는 누드 모델로 일하고 있었고.
라 보엠, 라 보엠, 그것은 두 사람이 행복하다는 뜻.
우리는 하루 걸러서야 먹을 수 있었어.
옆의 까페에서 우리는 함께 모여 榮光을 꿈꾸었지.
모두들 초라하게 배고픔을 안고 있었지만,
영광을 믿어마지 않았네.
그리고 술집에서 따끈따끈한 맛난 식사를 앞에 놓고 냅킨을 들 때,
난로 둘레에 앉아 겨울을 잊고 시를 읊었지.
라 보엠, 라 보엠, 그것은 그대가 아름답다는 말.
우리는 재능을 갖고 있었지.
캔버스 앞에서 가슴의 선과 허리 曲線의 데생을 고치며,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낼 때도 종종 있었지.
그리고 아침이 되어 겨우 우리는 크림을 넣은 커피 앞에 앉았어요.
그리고 감동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어요.
그것이 두 사람의 인생이었지.
라 보엠, 라 보엠.
그것은 두 사람이 스무 살이라는 뜻.
우리는 시대의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었지.
어느 날, 훌쩍 그냥 옛집 부근에 갔으나,
기억에 남은 것은 이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네.
나의 靑春을 기억하는 벽도, 거리도.
계단 위의 아틀리에도 찾아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어요.
몽마르트는 슬퍼 보이고, 리라도 시들고 말았어요.
라 보엠, 라 보엠, 이제 그 말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답니다.
전형적인 라 보엠이었던 모딜리아니는
마약과 빈곤에 시달렸다.
거기에 처지를 비관해 아내까지 자살한다.
어느 날 몽파르나스 거의 한 보헤미안 화가가
죽은 채 발견되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빈곤으로 상상력이라는 절대 필요조건조차
가누지 못한 채 병들어 가고 시들어 갔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커피.
설탕 4조각.
물 한 잔.
브랜디 한 잔.
이런 것들이었다.
그들은 카페에 죽치고 앉아 누군가 들고 올 돈을 기다리며
커피 한 잔으로 2-30명이 나누어 마시기도 했다.
그 당시 포도주 한 잔 값에 걸작을 넘긴 것도 부지기수였다.
부르조아들의 값싼 문화취향이 낳은 라 보엠만의 문화였다.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이들을 지치고 힘들게 하고 굶주리 만든
원인이 부르조아들의 새로운 취향 탓이기도 했다.
라 보엠하면 가난한 예술가들을 떠올리는 것은 비단 오페라 탓만은 아니다.
shlee
2010년 3월 23일 at 11:35 오전
카페에 죽치고 앉아
누군가 들고 올 돈을 기다리며
커피 한 잔으로 2-30명이 나누어 마시기도 ~
돈을 들고 가고 싶네요.
그 카페로
지금 그들은 다 가고 없겠죠?
Lisa♡
2010년 3월 27일 at 2:03 오전
쉬리님.
저도 가고 싶으니
되도록 같이 갑시다.
그 분들 다 가고 없지만
또 다른 그들이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