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 폴 사르트르.
그는 L’HOMME DE CAFE 라는 별명이 붙었다.
제도권의 지극히 아카데믹한 학자들은 그를 두고 비아냥거림으로
‘카페철학자’라고 지적했으나 실제 그에게 딱 맞아 떨어지는
사르트르를 꿰뚫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비현실적인 철학이야말고 공허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며
기성주의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기존사유의 방식을 뒤엎어 버렸다.
현실적이며 세상과 나와의 인식관계를 파고드는 철학으로
휴머니즘에 그 기초를 둔 실존주의를 부르짖음으로 일약 유명인사로
바람을 일으켰다.
철학자 들뢰즈는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사르트르가 있다"
후덥지근한 방에 쳐박혀 있는 우리에게 그는 상쾌한 야외이자 신선한
바람이었다고 말했다.
전후 방황의 시기에 그는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는 방향타를 갖고 나타났으며
인간은 우연히 세상에 내던져졌고 무가치, 무의미한 인생이지만 그 허망함이나
무가치를 극복하고 자기의 의지로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불안, 절망, 비장함 등 인간이 갖는 이 요소들은 타인이 주는 규정으로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흔들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내 의지와 무관하다.
자기 의지로 인한 적극적인 삶을 살 때 비로서 자유라는 걸 얻는다고 했다.
혹자는 그를 두고 심심풀이 철학이라고 깍아내렸지만 그럼에도 그는
전폭적인 대중의 지지를 얻는다.
까페 르 로통드.
사르트르는 르 로통드나 플로르에 자주 모습을 보였는데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속에는 쥴리엣 그레꼬, 사강 등이 있었다.
파리의 까페문화를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의 산실로 많은 예술가들이
진을 치고 앉아 예술과 인생을 논하기도 했다.
70년대에 이미 프랑스 까페는 20만개에 달했다고 한다.
지금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입맛도 변하면서 많은 까페가 문을 닫기도 하는데
파리의 유서깊은 까페 주인들은 정부에 까페를 문화재로 지정해달라는
청원을 한 상태라고 한다.
까페에서 싹튼 문화 중에는 인상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들 수 있다.
한 때 보헤미안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렸던 모딜리아니가 한참 까페를
전전하며 멋을 부릴 때 어디서 허름한작업복을 입은 때에 절은 키도 작고
볼 품없는 남자가 거지와 다름없는 차림으로 돈도 없이 나타났난다.
모딜리아니는 늘 조끼까지 받쳐 입은 검은 정장 차림으로 다녔는데
노동자도 아닌 것이 늘 몇 달은 빨지도 않은 냄새나는 작업복 차림으로
나타나는 그가 영 못마땅했단다.
안달루시아에서 온 촌남자는 눈빛만은 총명했는데 자기를 깔보는 모디에게
"어이~~술이나 한 잔 하세" 하며 기죽지 않고 넉살이 좋았단다.
피카소는 나중에 살아 생전에 부와 성공을 거머쥐지만 모디는 안타깝게
가난함을 면치 못하고 죽게 된다.
그들이 머물고 전전하던 그 까페들은 아직 그 자리에서 명성에 걸맞게
존재하고 있으며 술에 취한 파리의 밤들을 보낸 수많은 그들 덕에
프랑스는 여전히 문화의 정신적 영혼의 자리에 있다.
아래 사진 까페 드 마고.
마고는 중국 고양이 이름이다.
이름있는 와인에도 커피에도마고가 있다.
리챠드 버튼과 엘리지베스 테일러가 사랑을 속삭였던 까페.
마리 로랑생과 기욤 아뽈리네르가 만나던 장소.
사팔뜨기에 추남인 사르트르가 어떻게 결혼이라는 제약도 없이
한 여자를 오랫동안 곁에 머물게 했는지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그는 그 시대에서는 드물게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했으며 격의없는
대중과의 관계는 그의 인기를 폭발적으로 만들었다.
그가 강의를 하면 진짜 많은 여자들이 쓰러질 정도로 인기있었다고 한다.
1964년 노벨문학상을 거부하므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명실상부한 대중의 편에 서 있던 특별한 사람이었다.
보브와르와 함께 차를 마시던 그가 사랑했던 까페들.
그는 파리 생 제르맹 거리를 여행하는 이시대의 모든 문학에 관심있는
이들을 들뜨게 만들고 그가 앉았던 자리에 한 번이라도 앉아서 그가
마시던 커피를 마시고 싶게 한 장본인이다.
후에 아멜리에라는 영화로 오드리 뚜뜨가 열풍을 몰고와 파리 까페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고 그 두개의 빨간 풍차라는 까페는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아래는 까페 후케의 실내이다.
삼 년 전, 비오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비를 흠뻑 맞고 찾아들어 간 후케.
후케는 유서깊은 까페로 여전히 우아하고 깊은 분위기가 있었다.
(압생트나 칼바도스를 마셔야 함에도 어울리지 않게 마티니와 케익과 커피를 시켰다)
사르코지가 대통령 당선 후 파티를 열었던 장소이고 클린턴도 방문시에 모든 손님에게
맥주를 한 잔씩 돌렸으며 오드리 헵번, 브리지도 바르도 등 많은 스타들이 찾았던 까페.
나도 그들처럼 그 자리에 앉아 역사의 한 순간에 끼어들고 싶었던 걸까?
파리를 방문하는 이들은 늘 까페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까페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을 명사들을 기억한다.
그 사이에 또렷하게 남아있는 까페의 男子 사르트르를 기억함은 물론이다.
언제나 파리의 까페 하면 ‘사르트르‘ 가 떠오른다.
PHOTO-GOOGLE
바위섬
2010년 4월 2일 at 12:21 오전
프랑스 문화의 산실인 카페…
품격있어 보이는 그 카페에서 커피,와인과 함께
정겨운 사람과 마주앉아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낭만에 흠뻑 젖어 들고 싶게 만드네요……
Hansa
2010년 4월 2일 at 1:30 오전
보브아르는 사르트르의 압도적 지성에 끌린 것일 테지요..
Lisa♡
2010년 4월 2일 at 6:03 오전
바위섬님.
파리로 갑시다……
파리로~~~아, 여의도에 폴이라는 까페있어요.
비싸서 그렇지.
우리나라 카페는 유난히 비싼 것 같죠?
Lisa♡
2010년 4월 2일 at 6:04 오전
한사님.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그녀 또한 지성이라면
한 수 하는 여성이지만..
두 사람은 참 끈질긴 인연이지요.
아이페이스
2010년 4월 3일 at 12:41 오전
아! 카페는 모퉁이에 있어야 장사 잘된다는 사실!
Lisa♡
2010년 4월 3일 at 1:02 오전
아…………..그렇습니까?
블루베리 농사 잘 되고 있쪄?
저 무조건 첫빳따로 보내주세요.
6월20일 경요.
베리베리마치로요.
테러
2010년 4월 3일 at 1:51 오전
샤르트르는 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내 웨이터에게 주고 그가 알아서 차 값을
계산하면 다시 그 뭉치를 받아 주머니에 넣고… 뭐 그렇게 살았다고 해요….ㅎㅎ
요즘 우리 네티즌이나 정치권식으로 하면 ‘서민을 모른다’고 할 만하죠…ㅋ
Lisa♡
2010년 4월 3일 at 7:28 오전
테러님.
그는 돈을 몰랐다고 할 수 있어요.
제가 볼 때는..
그다지 물질적으로 밝지는 못했다고 들은 것 같아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별로 재산도 없었다고 하던데—글쎄~~ㅎㅎ
네티즌들이나 일부 정치권에서 그렇게 말하겠네요~~후후.
화창
2010년 4월 3일 at 9:41 오전
음…. 대통령을 시키면 안되는 양반이구만….
YS가 만나는 사람에게 용돈을 줄 때는 지갑채 줬다던데….DJ는 돌아서서 반드시 돈을 세어서 줄만큼 줬다고 하구…….
Lisa♡
2010년 4월 3일 at 11:06 오전
난 마음에 드는데….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