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의 마지막 편지

여보,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음을 분명히 느껴요. 우리가 저 끔찍한 시련의 시기를

한 번 더 이겨낼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는 회복하지 못할 거에요.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고 집중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가장 좋은 것으로 보이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가능한 가장 큰 행복을 내게 주었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누군가가 할 수 있는 모든 점에서 모든 것이었습니다.

이 끔찍한 병이 나타나기까지 나는 두 사람이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을거라 생각해요.

더 이상 싸울 수는 없습니다. 내가 당신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음을 알아요. 내가 없이도

당신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당신은 그럴 거라는 걸 알아요. 내가 이 글 조차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을 알겠지요, 읽을 수가 없어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 삶의 모든 행복은

당신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아주 잘 참아 주었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분

이었어요. 나는 이 말을 하고 싶고 누구나 그걸 알기원해요. 누군가 나를 구할 수 있다면

당신뿐일 겁니다. 당신이 선량하다는 확신 말고는 모든 것이 내게서 사라져 버렸어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삶을 망칠 수 없어요.

나는 두 사람이 우리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버지니아 울프> 나이젤 니콘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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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워즈’ 라는 영화를 세 번 봤다.

처음에 화면이 시작하면서 나는 울기 시작했다.

나도 왜그러는지 모르는 채 마지막 자막이 나올 때까지 울었다.

너무 울어서 영화관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옆의 친구 둘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저 옆의 외국인 여성이

처음부터 너무 울어서 신경쓰였다고 하다가 내 얼굴을 보고는

너는 또 왜그러냐고 물었다.

마음이 무겁고 아프고 찢어졌다.

한 세기를 먼저 태어난 버지니아 울프가 그 시대에 아파했을

고독과 절제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고통이라는 건 타인이 알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온다.

남과 다르다는 것과 모든 걸 알고 이해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점이

너무나 절절하게 아려왔다.

아는 젊은이 L군은 보다가 너무 가슴이 아파 뛰쳐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왜 그런지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

재미없어서 영화관을 나가는 이들도 더러는 있었다.

그 길로 서점으로 가서 ‘델러웨이 부인”자기만의 방”세월’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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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진실도 말할 수 없다.

♣외국어를 사용할 때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이 유머다.

♣고독할 때 우리는 우리 삶에, 우리 추억에, 우리 주변의 작은 것들에 열정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다.

♣여성은 수 백 년 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크기의 두 배로 비쳐주는 마력을 지닌 거울의 역할을 해왔다.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강사의 첫 번째 임무는 한 시간의 강의가 끝난 다음 학생들이 그들의 노트갈피에 살짝 끼워

벽난로 위에 놓고서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순수하고 진실한 가치의 덩어리들을 건네 주는 것이다.

8 Comments

  1. 벤조

    2010년 4월 15일 at 6:32 오전

    "첫 자막이 시작 될 때부터 마지막 자막이 나올때까지 울었다."
    버지니아 울프를 이렇게 쉽게 설명하다니…
       

  2. 이나경

    2010년 4월 15일 at 9:14 오전

    한 때 그녀에게 미쳐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세월이 참 많이도 지났네요. 긴 세월 거슬러 다시 이곳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니,
    왠지 그 시절로 회귀한 듯 가슴이 짜안해집니다.
    자주 들릴께요. 감사합니다.   

  3. 지안(智安)

    2010년 4월 15일 at 11:53 오전

    버지니아 울프 팬들이 꽤나 되네요.
    약간씩은 미쳐야 되능건가요?
    너무 심도 깊게 나가지는 마소!   

  4. Lisa♡

    2010년 4월 15일 at 12:30 오후

    벤조님.

    첫 장면이 영국의 전형적인 구도와 체크무늬 양말 같은 걸 신고
    무표정하게 강으로 걸어가는 버지니아의 모습이 잔잔하게 그려집니다.
    그때부터 울컥하면서 주머니에 돌을 넣고 강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정말 참기가 힘들더군요.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이었지요——   

  5. Lisa♡

    2010년 4월 15일 at 12:31 오후

    이나경님.

    울프의 팬이시군요.

    잊기 힘든 여성이죠?

    자주 들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바람이 제법 차가운 밤입니다.   

  6. Lisa♡

    2010년 4월 15일 at 12:31 오후

    지안님.

    주변에 조금씩 미쳐가는 이들이 있으면

    같이 미치는 기분도 들거든요….ㅎㅎ   

  7. wonhee

    2010년 4월 15일 at 7:56 오후

    저도 이 영화를 우연하게 극장에서 보았는데
    무언지 모를 강한 흡인력을 느꼈습니다.

    니콜 키드먼, 줄리앤 무어, 메릴 스티립
    세 여배우의 연기가 각각 인물묘사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5/60년대 미국 소도시에서 숨막힐듯 단조로운 삶을 사는
    주부의 역할을 묘사한 줄리앤 무어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자유롭고 싶지만 헤어나지 못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창백한 모습도 너무 애처로왔고요.

    오랜만에 님의 불로그에 들어왔다가 몇 년 전
    감명깊게 감상한 영화에 대한 글을 보고 반가와 글을 남깁니다. ^ ^   

  8. Lisa♡

    2010년 4월 15일 at 10:29 오후

    원희님.

    쥴리안 무어 연기 끝내줬죠?

    정말 그때 장면들이 다시 떠오르네요.

    <디 아워즈>는 그 때 내게 하나의 이슈였어요.

    아주 강하게 다가온…니콜의 그 허무하던 표정들…ㅎㅎ

    저도 원희님 글 잘 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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